난 그의 어떤 면이 그토록 좋았을까
오랜 시간 동안 결혼이라는 제도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던 내가 이 사람을 만나고 좀 달라졌다. 아니, 정확히 말해 결혼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그런데 결혼 자체를 좋게 보게 되었다기보다는 이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 케이스다. 그렇다면 난 왜 이 사람과 결혼을 하고 남은 인생을 지지고 볶으며 같이 살고 싶을 만큼 좋은 걸까?
꿈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그의 눈은 반짝이기 시작한다. 신이 나서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몸짓 손짓도 함께 커진다. 어느 유명 강사도 이야기했지만 꿈은 명사가 아닌 동사이어야 한다. 무엇이 되는 것은 방법이고. 꿈은 무언가를 하는 것이다. 그는 하고 싶은 게 있는 사람이다.
꼭 이성이 아니어도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은 꿈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매일 출근해서 영혼 없이 일하고 야근 후 녹초가 되어 퇴근하고 겨우 눈 좀 붙이고 다음 날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을 힘들어했다. 다 그렇게 살아가는 거라고. 그게 인생이라고 했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것 같았다. 애초에 꿈을 장래희망 정도로 한정 짓는 초등학교 생활기록부. 이후 시험과 성적 올리기에 급급한 학창 시절. 관심과 적성보다는 성적 맞춰 가는 대학과 이후 이어지는 취업난. 취업을 하더라도 어느 순간부터인지 좀비처럼 출퇴근하고 그나마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으로 버틴다며 푸념을 늘어놓기 일쑤. 그 어디에도 '나'라는 존재 자체를 들여다 보고 탐구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없다. '남들 다 공부할 시간'에 이런 고민을 하는 친구들은 '그 시간에 한 자라도 더 보라'는 잔소리를 듣기 일쑤. 결국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게 되는 거라 너무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이 정도만 하겠다.
평범한 한국인 부모님의 사랑과 기도로 평생을 한국에서 자란 그는 어두운 곳에서 어두운 인생을 살던 사람이었다. 그랬던 그가 20대 중반에 재미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그 길로 지금까지 달려왔다. 그 과정에서 방법과 모양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일은 변함이 없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 힘든 순간은 있어도 그마저도 즐겁고 행복하다. 자연스레 주인의식을 가지고 책임감 있게 일하고 행동한다. 그 모습, 그 반짝이는 눈을 보는 게 난 정말 좋았다.
같은 맥락이지만 정 반대로 남편이 속해있던 조직과 추구하는 목표와 방향이 틀어졌을 때 정말 힘들어했다. 그의 눈이 반짝이지 않았다. 출근길이 즐거워 보이지 않았고 표정이 어두웠다. 월급은 들어왔지만 그 사람이 죽어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게 나 또한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 꿈과 가치가 너무나도 중요한 사람에게 이런 생활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살아가기 위해 돈이 필요한 건 맞지만 그렇게 받아오는 월급은 나도 원치 않았다. 적어도 일터로 향하는 발걸음이 즐겁기를 바랐다. (결국 그 후 그 조직에서는 나왔다. 그리고 지금은 다른 모양으로 같은 일을 하고 있고 더 나아가서 영역을 넓혀 새로운 구상을 해보고 있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본인 꿈이 있으니 상대의 꿈, 내 꿈도 일도 적극 지지해준다. 지지 정도가 아니라 때로는 나 보다 내 일의 가치를 더 높이 사기도 하고 내가 일로 스트레스받거나 다운되어 있을 때 내가 이 일을 왜, 어떤 마음으로 하는지 다시 점검할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한다. 이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른다. '남들 다 그렇게 사니까' 하면서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게 아니라 각자에게 맞는 때와 방법이 있다고 믿고 목표를 가지고 사는 모습이 멋지고 도전이 된다.
사람이 꿈을 이야기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다 보면 진지해진다.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해야 하니 냉철하게 판단해야 하는 순간도 많고 현실 앞에서 좌절할 때도 있다. 또, 하는 일과 만나는 사람에 진심을 다한다. 빈 말을 하거나 번지르르하게 포장해서 말하지도 않는다. 난 그 진정성이 참 좋다.
본래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는 본인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내가 이야기하면 정말 경청하려고 애쓰는 게 눈이 보인다. 나를 향해 앉아서 내 두 눈을 바라보고 귀를 쫑긋 세우고 내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내게 감정을 표현하거나 어떤 말을 하고 싶을 때는 먼저 내 이름을 부르고 내 눈을 보고 또박또박 정확하게 이야기한다. 그런 그를 보면 진심이 느껴져서 매 번 눈물이 날 것 같다.
반면에 아주 장난기 가득하고 짓궂은 면도 있다. 나를 아주 들었다 놨다 하는 재주가 보통이 아니다. 다소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그의 진지함과 진정성에 까불거림이 더해진 그는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은 그런 사람이다.
나는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조건이 안되면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안 되겠구나 하고 포기하는 편이다. 반면에 그는 목표를 정하면 방법은 그 뒤에 생각하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때로는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일단 부딪혀보는 스타일.
한 번은 대출 신청 건으로 은행에 갔는데 은행 영업시간이 끝날 무렵이라 보안관이 셧터를 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 날 신청을 꼭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문을 닫고 있으니 이건 물 건너갔구나 하고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랬더니 빨리 돌아가서 문 두드리고 상황 이야기하고 양해를 구해보라는 답장이 왔다. 셧터 내렸으니 끝이라고 생각한 나와는 달리 직원들에게 미안하지만 안에 아직 사람이 있고 오늘 신청 안 하면 안 되는 상황이니 받아줄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나는 반신반의하며 다시 은행으로 향했고 마침 은행 업무를 보고 나오는 사람이 있어 보안관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다행히 전에 상담해주셨던 분께서 나의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을 기억하고 계셨고 그 날 필요한 신청 절차를 아주 신속하게 마칠 수 있었다.
이런 사례가 결혼 후에도 수 없이 많았다. 하지만 위 사진의 글귀처럼, 무언가를 정말 원하는 사람은 방법을 찾지만 간절함이 덜한 사람은 핑곗거리를 찾는다고 한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쉽지 않은 상황에 놓였을 때 나는 상황 자체를 놓고 발을 동동 구르고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밤잠을 설치곤 한다. 반면, 그는 해결책이 될 만한 옵션을 빠르게 생각해 낸다. 그는 현실적인 걱정이 앞서 정말 원하는 걸 하지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고 이야기한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두고 걱정하는 날 안심시키고 정말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걸 해낼 수 있도록 같이 고민해주는 사람이다.
난 아침잠이 아주 많다. 정확히 말하면 올빼미형 인간이라 밤늦은 시간부터 새벽까지 집중이 잘 되고 늦게 자니 늦게 일어나는 패턴으로 오랜 시간 살아왔다. 그러니 아침밥은 건너뛰고 점심을 첫 끼로 먹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요리를 잘하지도 즐겨하지도 않는 나로서는 하루 세 끼 밥을 챙기는 것도 부담이었다. 특히,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밥을 챙겨 오는 우리 부모님 세대, 심지어 결혼한 또래 유부녀들을 보며 나는 저건 못하겠다 싶었다. 눈 뜨고 잘 다녀오라고 인사라도 하면 다행이지, 아침밥이 웬 말인가.
다행히 그는 성인이 되어 적지 않은 시간을 외국에서 지내며 아침은 시리얼이나 요거트 정도로 가볍게 먹는 게 익숙한 사람이다. 아침에 밥(쌀)을 먹으면 부대끼고 속이 불편하단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아침은 각자 알아서 시리얼이나 요거트, 미숫가루, 빵 등으로 간단히 먹는다. 아침식사를 준비하는데 가스레인지를 켜지 않는다. 그리고 이후 두 끼 중 한 끼는 면, 한 끼는 밥으로 먹는다.
그는 대단한 육식가이고 심하게 좋아하는 음식이 뚜렷하게 존재하기는 하지만 딱히 음식을 가리지는 않는다. 밥과 국, 고기반찬은 물론이고 양식 중식 일식 면류 빵류 할 것 없이 뭘 내놓아도 맛있게 먹어줘서 고맙다. 채소류를 정말 안 먹었는데 연애 시절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먹여온 결과 지금은 정말 많이 좋아졌다^^
나는 집안일은 여자가 하는 것이라는 말을 들으면 치가 떨린다. 같이 살아가는 공간인데 왜 여자의 일인지? 여자도 똑같이 일하고 돈 버는데? 설령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 해도 집에서 육아하는 건 일 아닌가? 아이 보면서 집안일하는 게 가능하기나 한가. 장 봐서 밥 세끼 차리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빨래 개키고 하는 일련의 일을 하루라도 멈추면 온 식구가 불편을 호소하는데 이걸 아내인, 엄마인 여자 혼자 다 감당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너무나도 불합리하다.
아마 우리 부모님 세대가 대부분 그랬지 않나 싶다. 남편은 종일 일하고 돈 벌어오고 아내는 전업주부로 집안의 모든 일을 해냈다. (직업란에 '전업주부'라고 쓰는 것 자체도 웃기다. 전업주부가 직업이라면 정당한 노동의 대가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무서운 건 어릴 때부터 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그런 불합리한 이분법적 역할분담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다음 세대에 대물림될 확률이 아주 높다는 사실. 우리 부모님도 크게 다르지 않으셨는데 어린 시절의 난 입으로 집안일하는 아빠가 싫었고 그 모든 걸 혼자 해내는 엄마가 안쓰러웠다. (지금은 그래도 아빠가 가끔 설거지도 하시고 과일 깎는 것도 아빠 담당이 되었다. 조금이나마 달라진 주방 풍경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진다.)
그는 외국에서 단체생활을 오래 해서인지 자기 것은 자기가 알아서 챙겨 먹고 치우는 게 익숙하다. 사무실 자리만 봐도 평소에 정리정돈을 아주 잘하고 사용한 물건은 제자리에 두는 게 습관이 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엄청난 요리가 아니어도 간단하게 한두 끼 정도 혼자 챙겨 먹을 줄 알고 필요하면 레시피를 보며 직접 요리를 시도해보기도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아주 맛있다^^) 때로는 내가 '오늘은 뭐 먹지' 고민할 때 배달음식이 먹고 싶다며 당기는 메뉴를 읊어주는 센스도 탑재하고 있다.
우리 집에서는 해당 끼니때 요리 안 한 사람이 설거지를 하는 게 원칙인데 그는 설거지는 전문가다. 빠르고 깨끗하게 설거지를 마치고 싱크대 정리와 가스레인지 뒷정리까지 척척이다. 청소기를 내가 돌리면 걸레질은 그가 했는데 지금은 아이가 있어 보통 내가 아이를 놀아주는 동안 그가 청소를 다 한다. 쓰레기 봉지가 차면 둘 중 외출할 일이 있는 사람이 나가면서 버린다. 그 외에 내가 하려 했는데 못했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도움 청한다. 그리고 아이가 18개월 정도에 조금 빨리 말을 시작했는데 그 시점부터 놀고 나면 함께 정리하는 걸 놀이 삼아했다. 이제 26개월 된 딸은 잠들기 전, 자기 장난감과 책을 모두 정리하고 양치질을 한다.
집안일에 있어서 그는 엉덩이가 아주 가벼운 사람이다. 우리가 머무는 공간, 쉬는 공간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싶고 그래야 정말 쉼의 공간이 된다고 생각한단다. 신혼 때는 이걸로 많이 싸웠다. 난 청소도 집안일도 몰아서 하는 편인데 그는 그때그때 하니 나는 상대적으로 집안일을 미루고 안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평소에 잘해두면 우리 모두 깨끗하고 잘 정돈된 공간에서 쉼을 누릴 수 있으니 이 부분은 내가 조금 더 노력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리 부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중에 하나가 integrity(인테그리티)이다. 우리말로는 진실됨, 진정성, 정직, 완전함, 완전함 등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데 콕 집어 한 단어로 표현하기 쉽지 않은 말이다. 나는 이걸 벤다이어그램으로 설명하는 걸 좋아한다.
A를 말, B는 생각, C를 행동이라고 가정해 보자.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는 말과 생각과 행동이 얼추 비슷하기 마련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본인의 말과 행동이 상반된다는 걸 알았을 때 멋쩍어하거나 민망해하거나 부끄러워할 것이다. 위 세 가지 중 어느 하나가 너무 동떨어지면 위선자 또는 앞뒤가 맞지 않는 사람이 된다. 물론 완전할 수 없는 인간이기에 이 세 가지가 완벽하게 겹쳐져서 완전한 원을 이룰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대한 말과 생각과 행동이 일치되는 삶을 사는 것,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건 신앙관과도 직결된다. 종교 이야기라 조심스럽지만 사실 요즘 세상에 종교가 욕먹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생각(교리)과 그 종교를 믿고 따르는 사람의 말과 행동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본다. 특히, 보이는 모습은 바르고 성실한데 뒤에서 온갖 부정과 부패에 연루되어 있거나 옳지 못한 행동을 했다는 게 드러나면 사람들은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게 지도자의 행각일 때는 더더욱 그렇다. 나 또한 교회 내에서의 모습과 세상에서의 모습이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을 수 없이 봤다. 상처도 받고 시험 들기도 했다. 그리고 가끔은 나도 혹시 그런 사람이 아닐까 두려워지는 순간도 있었다.
Integrity is doing the right thing when no one is watching.
정직이란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 바르게 행동하는 (양심을 지키는) 것이다.
integrity를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정의이다. 말과 생각과 행동이 일치해야 하는 것처럼 사실 우리의 모든 생활이 연결되어 있다. 교회에서의 나와 일터에서의 나, 가정에서의 나는 결국 같은 사람이다.
어딜 가나 일관성 있고 한결같은 그가 그래서 좋다. 교회라고 특별히 더 거룩해 보이려 애쓰지 않고 일터에서는 진정성 있게 마음 다하고 가정에서는 여러 모양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그의 모습을 위의 벤다이어그램으로 표현하자면 '거의' 원에 가깝다. 그만큼 성숙하고 본받고 싶은 점이 많은 사람이다.
그렇다고 모든 측면에서 완벽하다는 뜻이 아니다. 크고 작은 실수도 하고 기억도 안 날 만큼 별것 아닌 일로 싸우기도 한다. 각자 모난 부분이 있고 다듬어지는 과정이기에 서로 끊임없이 부딪힌다. 하지만 그 후에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풀고 다시 굴러갈 수 있게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지려 애쓴다. 두 사람이 함께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아가면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통해 조금씩 더 예쁘게 다듬어질 것이다. 그리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내 배우자가, 그리고 우리가 부부로서 하나님께 칭찬받을 걸 상상하면 얼마나 설레고 기대되는지 모른다.
써 내려가다 보니 또 길어졌다. 늘 이렇다. 이 외에도 남편이 좋은 이유(positive list)는 너무나도 많다. (하하^^) 하지만 중요한 건 내 네거티브 리스트(negative list 즉,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은 안돼! 하는 목록)에 걸리는 부분이 없다는 것. 그래서 상대가 좋아할 만한 행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배운다.
이렇게 쓰고 보니 문득 궁금해진다. 남편은 나의 어떤 점이 좋아서 나한테 결혼하자고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