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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나라의앨 Jan 17. 2021

평생에 한 번뿐인 결혼식, 너무 고민하지 않아도 괜찮아

적당히 보고 빠르게 결정하면 결혼 준비가 세상 즐거워집니다



결혼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실 이 날만을 기다렸다!) 나도 남자 친구도 목표가 정해지면 바로 실행에 옮기는 스타일이라 굵직한 결정을 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미 둘이서 포스트잇으로 이것저것 붙이고 옮겨가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왔기 때문에 사실 우리끼리는 이미 어느 정도 방향이 잡혀 있었다. 결론적으로 11월 첫째 주에 결혼 허락을 받고 결혼식을 올리기까지 4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지금부터 기억을 되짚어가며 참으로 스피디하고 재미있었던 나의 결혼 준비 과정을 풀어보려 한다. (TMI주의^^)



다이렉트 결혼 준비

나는 웨딩플래너를 끼지 않고 다이렉트로 결혼을 준비했다. 플래너를 낀다고 해도 결국 이것저것 비교해가며 고민해야 하는데 나는 계획하는 것도 알아보는 것도 좋아해서 직접 해보고 싶었다. 물론, 이것도 프리랜서라 가능했다. 카페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비교해서 결정하는 과정이 재미있었고 퀄리티도 비용도 결과적으로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결혼 비용

비용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는 뭐하지만 각자 모아둔 돈에 양가에서 비슷하게 지원을 해주셨다. (금액을 떠나 그저 감사합니다. 꾸벅.) 우리는 그 돈을 모두 하나의 공용 통장에 넣어두고 정해진 예산 안에서 모든 준비를 마쳤다. 집을 남자 쪽에서 하고 혼수를 여자 쪽에서 채우기보다는 얼마가 됐든 금액을 정해두고 그 범주 안에서 필요한 곳에 돈을 쓰고 그 결정도 함께 내리고 싶었다. 결혼 준비부터 부부 5년 차가 된 지금까지도 우리는 그 공용 통장을 곳간 삼아 모든 돈을 넣어두고 필요에 따라 용도가 정해진 여러 개의 통장으로 돈을 옮겨 사용하는 방식으로 우리 집 재정을 운영하고 있다.



신혼집

우리는 날도 잡기 전에 신혼집부터 보러 갔다. 신랑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부모님이 혹시 마음이 바뀌셔서 결혼 안 되겠다고 하시면 신혼집을 계약해버려서 어쩔 수 없다고 할 거라고 했다. 둘 다 인 서울은 생각도 안 했다. 돈도 돈이지만 복잡한 게 싫었다. 경기도 몇 개 도시를 두고 고민하다가 김포로 향했다. 연애할 때 강화도에 종종 갔었는데 오가는 길에 밥을 먹었던 동네가 떠올랐던 것. 처음 그 동네에 갔을 때 어딘지도 몰랐지만 굉장히 깔끔하고 정돈되어 있어서 놀랐다. 나중에 찾아보니 김포한강신도시의 한 동네였고 우린 막연히 '나중에 같이 살게 되면 이 동네 살기 좋겠다' 식의 이야기를 주고받았었다. 그리고 정말로 같이 살 집을 보러 그 동네로 간 것이다.


예산 안에서 계약 가능한 투룸을 몇 곳을 보았는데 다 뭔가 하나씩 아쉬웠다. 방이 크면 화장실이 너무 좁고, 화장실이 괜찮으면 주방 구조가 영 별로였다. 결국 그 날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돌아왔다. 며칠 뒤 신랑이 다시 집을 보러 갔고 괜찮은 곳이 있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그런데 아직 공사 중이라 시멘트만 겨우 발라져 있는 건물이었다. 하지만 평면도를 참고해서 구조를 알 수 있었고 내가 봐도 구조가 마음에 들었다. 결국 우리는 그 집으로 계약을 했다. 11월 둘째 주 화요일이었다.



본식 날 잡기

그다음, 날을 잡아야 했다. 나와 예비신랑 모두 겨울이 비수기인 직종이라 봄부터 다시 일이 바빠질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가능하면 봄이 오기 전에 식을 올리고 싶었다. 2월 초로 하고 싶었는데 시누이 출산 예정일과 겹쳤다. 출산으로 시누이 가족이 참석하지 못하는 걸 최대한 배려해서 2월 말로 미루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출산 후 회복이 더뎠던 시누이는 우리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두고두고 아쉽고 또 미안하다.



예식장

예식장은 세 군데 정도 둘러보았다. 신랑 측은 경기도였고 신부 측은 대전과 부산이라 버스 대절을 생각하고 있었다. 대중교통으로 오시는 분들을 고려해 강남 쪽 예식장을 알아보았다. 내가 본 조건은 1) 높은 천고 2) 위치/접근성 3) 식사 4) 단독홀이었다. 토요일 예식을 희망했고 꼭 점심시간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소위 말하는 피크타임을 고집하지 않았다. 마침 시기도 2월 말 비수기라 비용을 많이 예식장 비용을 많이 절약할 수 있었다.


계약 당시에는 하객이 얼마나 될지 몰랐지만 결과적으로 하객이 아주 많았고 높은 천고의 단독홀이었다는 점 덕분에 답답하거나 복잡하다는 느낌이 하객수 대비 확실히 덜했다. 감사하게도 토요일 오후 시간대에 비어있는 날이 있었고 결혼 날짜가 임박해서는 우리 다음 타임에 예약했던 커플이 계약을 취소하면서 뒤로 시간적인 여유까지 확보할 수 있었다.


예식장이 예쁘고 신부 마음에 드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결혼을 해 보니 예식장은 하객, 즉 귀한 발걸음 해주시는 손님이 불편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입구에서부터 복잡하면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니 홀도 로비도 최대한 공간이 확 트이고 널찍한 것이 중요.


그리고 맛있는 밥이야말로 하객에게 드릴 수 있는 최고의 답례가 아닐까 싶다. 맛있고 푸짐하게. 정말 비싼 코스요리가 아닌 이상 양식은 맛있다는 인상을 주지 못한다는 걸 알기에 적정 수준의 한정식 코스를 선택했다. 하객들도 왔다 갔다 하지 않고 앉은자리에서 편히 식사할 수 있어 좋지 않을까 싶었다. 사실 이건 호불호가 있지만 내가 하객 입장일 때 뷔페보다는 한정식이 편하고 맛있고 좋았던 경험이 많았어서 한정식으로 결정!


양가 부모님께서 아주 마음에 들어하셨고 하객들도 만족스러워했으니 그걸로 됐다. 예식장 계약은 11월 셋째 주에 진행했다.


6m의 천고와 단독홀, 넓은 로비가 큰 역할 했던 하객 많았던 결혼식



스드메

대부분의 예비 신부가 그렇겠지만 스드메는 옵션이 너무 많아서 정말 고르기 힘들었다. 다 예뻐 보이고 다 좋아 보인다. 처음엔 셀프로 촬영할까 했지만 따로 알아보는 게 더 일이었고 비용도 훨씬 비쌌다. 난 고민 끝에 스드메를  곳에서 해결할  있는 토털 을 선택했다. 성북동에 위치한 곳이었는데 실내외 촬영이 모두 가능하고 소나무 샷이 있어 마음에 들었다. 도착해서 드레스를 고르고 드레스 가봉을 하는 동안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았다. 그리고 곧 완성된 드레스를 입고 바로 촬영 시작.


이미 11월 중순이라 제법 쌀쌀했다. 그래도 조금 남아있는 단풍을 담을 수 있었고 야외 촬영도 무사히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곳인 암벽을 연상케 하는 콘셉트로 촬영한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편하게 한 곳에서 모든 걸 해결하고 기분 좋게 삼겹살을 먹으러 갔던 기억^^ 스드메 비용도 크게 절감하고 이동도 최소화할 수 있어서 정말 만족스러웠다. 이모님도 참 좋았고 대표님도 직원 분들도 따뜻하셔서 촬영 내내 너무 재미있었다. 다시 하라고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해서 11월 셋째 주에 스튜디오 촬영까지 클리어.

 

드레스 샷보다 마음에 들었던 야외 캐주얼 샷



신혼여행

사실 우린 둘 다 현지 여행을 즐기는 스타일이라 휴양지로 여행해본 적이 없었다. 늘 하루에 2만 보 씩 걷는 배낭여행이었다. 패키지는 딱 질색이다. 직접 찾아다니고 헤매 보고 맛집도 검색해서 가야 직성이 풀리는 종류의 사람들이다. 그런 우리는 신혼여행을 잘 먹고 쉴 수 있는 휴양지로 결정했다. 그것도 흔한 신행 패키지로. 직장인들은 보통 길게 휴가를 내고 그나마 길게 여행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유럽이나 미주로 가기도 하는데 우리는 상대적으로 휴가로부터는 자유로운 편이라 장거리 신행은 내려놓았다.


장소는 태국 코사무이로 정했다. 한국인 신혼부부가 정말 많았는데 신혼여행이라 그마저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아무렴 어때. 뭘 해도 좋은걸.


모던하고 깔끔했던 첫 번째 숙소.
태국 느낌이 풍기던 풀빌라. 개인적으로 분위기도 음식도 정말 마음에 들었음!
스쿠버다이빙 수중 샷. 새롭고 재미있었던 경험.

바다 보고 사진 찍고. 풀빌라에서 배 터지게 먹고 수영하고 스쿠버다이빙하고. 요트도 타고 바닷가에서 스냅도 찍고. 액티비티는 적당히 했고 널찍하고 잘 꾸며둔 풀빌라 내 산책도 하고 먹고 자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신혼여행은 정말이지 또 가고 싶다.



상견례

11월 마지막 주 주말 저녁에 상견례를 했다. 예식을 서울에서 하니 상견례는 대전에서 하기로 한 것. 대전에서 우리 가족이 자주 가던 중식집에 룸을 예약했고 코스요리를 먹으며 다소 어색하면서도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냈다. 양가 부모님 모두 긴장하신 모습에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나 또한 조심스러운 자리니 예의를 갖추고 너무 가벼워 보이지 않도록 애써 입술을 꾹 다물기도 했다. 편하지만은 않은 자리인데 그래도 음식이 맛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상견례는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딱 한 달 만에 결혼을 위한 굵직한 것들을 모두 끝냈다. 세상 후련 :)



청첩장

12월이 되어 청첩장을 보기 시작했다. 너무 종류가 많아서 고르기 어려웠지만 결국 '심플함'으로 결정했다. 예쁜 리본이 달려있거나 레이스로 장식되어 있는 건 싫었다. 청첩장을 수도 없이 받아보신 부모님조차도 '봉투 열어서 펼치는 것도 귀찮다'라고 말씀하실 정도였으니. 그래서 우리는 부모님의 의견을 적극 수용해서 엽서 형태의 한 장 짜리 청첩장을 골랐다. 앞면에는 이름과 날짜, 시간, 장소 등 기본 정보를 넣고 뒤에 모시는 글을 넣었다. 이 또한 대만족.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청첩장 앞뒷면


예물 및 예단

예물은 신랑 신부 웨딩 커플링으로 했다. 가장 클래식하게. 하지만 신랑은 결혼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반지를 잃어버렸다. 다시 맞추고 뭐고 없다.


본식 예물교환. 신랑 손가락에 반지가 안들어가서 진땀뺐다.


나는 기본 다이아 목걸이, 귀걸이, 가드링 세트를 하나 했다. 사실 난 주얼리나 명품백에 별 관심도 욕심도 없어서 이마저도 생략하려 했는데 엄마가 그래도 결혼하는데 기본 세트는 하나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하셔서 고분고분 엄마 말을 들었다. 지금 와서 보니 엄마 말 듣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막상 결혼반지는 특별히 외출하는 날 아니면 끼지 않게 돼서 평소에는 가드링만 하고 다닌다. 그리고 목걸이와 귀걸이도 딱 기본형이라 부담 없이 데일리로 하기 좋다. 엄마 말 들어서 손해 볼 거 없구나 싶다.


신랑에게 시계 하나 하겠냐고 물었는데 신랑 역시 명품보다는 실용성을 중시하는 사람. 고민하더니 빔프로젝터를 사겠단다. 집에 따로 TV를 놓지 않기로 했는데 빔프로젝터가 있으면 필요할 때 틀어서 TV도 볼 수 있으니 공간도 차지하지 않고 실용적이라는 것. 이것 역시 지금까지 아주 잘 쓰고 있다. 강추 아이템.


예단은 본래 신부 측에서 신랑 측에 예물로 보내는 비단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양가에 같은 구스 침구세트를 맞춰드렸고 부모님 한복 및 양복 맞춰 입으시라고 현금을 챙겨 드렸다.



드레스 및 웨딩 슈즈

사실 신부로서 가장 고민되고 결정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다. 드레스도 얼마나 종류가 많은지... 처음 입어보는 거라 뭐가 뭔지도 잘 모르겠는데 결정하라니 참. 결론적으로 난 드레스투어를 하지 않았다. 그냥 한 곳을 지정해서 한 곳에서만 보고 결정했다. 드레스에 특별히 욕심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지정을 추천한다. 지나고 나서 하는 이야기지만... 솔직히 내가 결혼식 때 어떤 드레스 입었었는지 기억도 잘 안 난다. 웬만하면 전문가들이 나한테 어울리는 거 잘 추천해주고 드레스 봐주는 가까운 사람들 (엄마, 언니 여동생, 신랑, 베프 등) 의견 따르면 실패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본다. 드레스 투어 한다고 너무 진 빼지 마시길.


그리고 웨딩슈즈는 먼저 결혼한 친구의 추천으로 '세* 웨딩슈즈 서비스'를 이용했다. 원하는 날짜에 원하는 디자인을 예약하고 보증금을 입금하면 택배로 해당 웨딩슈즈를 보내준다. 예식날 예쁘게 착용하고 다시 택배로 돌려보내면 배송비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환급해준다. 즉, 거의 무료로 예쁜 웨딩슈즈를 대여해서 신을 수 있는 것.


난 웨딩슈즈 역시 크게 욕심이 없었고 힐도 신고 싶지 않았다. 웨딩드레스에 꼭 힐 신으라는 법은 없지 않나? 꽉 끼는 드레스도 불편하고 숨 막히는데 힐까지 신을 자신도 없었다. (평소에 힐 안 신는, 아니 못 신는 1인...) 마침 웨딩슈즈 중에 플랫도 있어서 주저하지 않고 선택했다.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예쁜데 편하기까지 했다. 본식을 본 하객 중에는 웨딩슈즈 플랫인데도 너무 예쁘고 웨딩드레스에 낮은 굽 신은 게 인상 깊었다고 말씀해주신 분들도 계셨다. 나도 편했으니 대만족. 웨딩슈즈 역시 구두에 크게 욕심 있는 게 아니라면 이 서비스 강추다.


대만족이었던 낮은굽 (플랫) 웨딩 슈즈



이사 및 혼수

난 자취 중이었고 신랑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난 매 달 월세가 나가고 있는 상황. 그래서 우리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12월에 내가 먼저 신혼집으로 이사를 들어갔다. 처음부터 아파트에서 시작하면 물론 좋겠지만 우린 그럴 여유가 되지 않았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가장 좋은 옵션을 선택했다. 신축 투룸이었는데 아주 깨끗하고 깔끔해서 마음에 들었다. (새집증후군으로 고생하긴 했지만...) 무엇보다 새로 지거진 텅 빈 집에 들어가서 신혼집을 하나하나 채워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돈 쓰는 재미도 쏠쏠.


식탁과 책장은 신랑 지인이 재료비만 받고 직접 원목으로 만들어주셨다. 좋은 나무로 직접 짜주신 거라 정말 특별한 선물이 됐다.


다른 건 몰라도 매트리스는 좋은 걸로 하고 싶었다. 백화점에서 이름 있는 브랜드 제품을 봐도 너무 거품 같고 신뢰가 잘 안 갔는데 우연히 가게 된 한 이*자리 오프라인 매장에서 450만 원짜리 씰* 매트리스를 120만 원 초대박 특가에 구입했다. 알고 있던 브랜드였고 부모님도 추천하셔서 더 고민하지 않았다. 매트리스에 돈을 아끼지 말자고 했는데 좋은 가격에 좋은 매트리스를 구매했다. 지금까지도 대만족. 좋은 침대에서 자면 구름 위에서 자는 기분이라고들 하는데 사실 이 침대에서 잘 때는 잘 몰랐다. 그 정도인가 싶었다. 그런데 다른 침대에서 자보면 우리 침대가 얼마나 편하고 좋은지 알 수 있다.


그 외에 냉장고와 세탁기, 공기청정기는 모두 L사 제품으로 했다. (우리 집 유일한 S사 가전은 에어컨.) 청소기는 일*트로룩스. 하지만 지금 다시 선택하라고 한다면 무조건 무선으로 살 것이다. 전선 꽂고 뽑고 옮겨 다니는 것도 너무 일이다.


주방용품은 엄마와 함께 보러 다니고 엄마 의견을 대부분 따랐다. 엄마도 딸 주방 살림 쇼핑 같이 하는 것에 몹시나 신나 하셨는데 그러길 참 잘했다 싶다. 접시와 그릇은 이*, 냄비는 W*F에서 구입했다. 모두 아주 잘 쓰고 있고 만족스럽다.


가까운 친구들이 결혼 선물로 전기밥솥과 커피머신, 전기포트, 소파 등을 선물해줬다. 이런 실용적인 선물, 매우 몹시 아주 고맙다. 그 외에 자잘한 것들은 인터넷으로도 주문하고 다*소도 애용했다.


아늑하고 따뜻했던 우리의 첫 보금자리.



주례, 기도, 축가, 반주, 부케 등

결혼식은 우리답게,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도 참여하는 잔치가 되게 하고 싶었다. 일단 주례는 신랑의 스승님께 부탁드렸다. 나도 여러 번 함께 만났었고 신랑의 인생을 바꾸어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신랑에게 영향을 많이 끼친 분이셨다.


기도는 시부모님과 신랑이 출석 중인 교회의 담임목사님께 부탁드렸다. 우리 부모님은 교회를 다니지 않으시지만 나와 신랑, 그리고 시부모님의 종교를 존중하셨고 기도 순서를 갖는 것도 괜찮다고 하셨다. 이 또한 감사하다.


사회는 신랑의 베스트 프렌드가 맡아주었다.


축가는 두 팀이었다. 신랑 지인 중에 음악 하시는 분이 계셔서 특별히 우리를 위한 곡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가사는 신랑이 쓰고 작곡을 해서 직접 불러주셨다. 우리 이야기가 담긴 곡이라 정말 특별했다. 결혼 후에 자주는 아지만 종종 찾아뵙곤 한다. 나는 카페 공연 중 프러포즈 현장을 가능하게 했던 노래하는 대학원 동기 언니와 동기에게 축가를 부탁했다. 노래는 프러포즈 곡이었던 정인의 '오르막길.'


반주는 발레 피아니스트로 활약 중인 당시 교회 리더 언니에게 부탁했다. 오랜 시간 우리 결혼을 위해 함께 기도해준 동역자였기에 특별히 모시고 싶었다. 잔잔한 찬양과 내가 좋아하는 디즈니 메들리로 부탁했는데 역시나 즉흥적으로 넘나 센스 있는 연주를 해주었다. 부케 역시 꽃 하는 언니가 있어 부탁했는데 심플하면서도 예쁜 주황색 튤립과 분홍색 카라로 준비해주었다. 부모님과 주례 선생님, 사회자를 위한 호접란 코르사주와 신랑 부토니에, 그리고 반주자 코르사주까지 준비하는 센스까지. 정말 최고였다.


다시 봐도 곱고 예쁜 부케와 부토니에.


이 분들께는 소정의 사례 혹은 신혼여행 다녀오면서 감사의 선물을 전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양가 아버지들께 덕담을 한 마디씩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복덩이라며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고 하셨고 우리 아부지는 이제 부부가 되는 우리 두 사람을 위한 조언과 격려를 해주셨다. 코 끝이 찡해지는 순간이었다. 두 분 다 목소리도 좋으시고 또 말씀하시는 걸 좋아하셔서 예식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졌다고 한다...^^



청첩 모임

1월과 2월은 청첩 모임으로 가득 채웠다. 만나고 싶은 사람들, 초대하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또 성격상 단체 만남을 별로 안 좋아해서 소규모로 여러 번에 걸쳐 만났다. 그러다 보니 정말 약속으로 꽉꽉 채워졌다. 사실 결혼 준비 자체는 한 달에서 한 달 반이면 충분한데 청첩 모임 때문에라도 좀 더 시간적 여유를 둘걸 하는 아쉬움이 남을 정도였다. 혹자는 오랜만에 하는 연락에 결혼 소식 전하면 달갑지 않다고도 하는데 글쎄, 그래도 이어질 관계라면 그래도 반가울 것 같다. 적어도 난 그렇다. 누군가가 결혼을 구실로 오랜만에 연락하고 직접 얼굴 보며 사는 이야기 나누는 게 참 좋다. 그렇게라도 날 기억해줘서, 또 좋은 날 나를 잊지 않고 초대해줘서 고맙다.



가족사진 그리고 여행

결혼을 결심하고 부모님 허락을 받기 전, 가족사진을 찍자고 했다. 어릴 때 찍은 걸 제외하면 제대로 된 가족사진 한 번 못 찍은 것 같아서. 헤어 & 메이크업도 받고 장장 룩 하나, 캐주얼룩 하나씩 챙겨서 재미있게 찍었다. 엄마는 원체 사진 찍는 거 좋아하시지만 아빠 표정이 그렇게 밝은 걸 처음 알았다. 예쁜 가족사진을 액자로 해서 집에 걸어두었고 마음에 들었다. 그때 찍길 참 잘했다.


결혼을 한 달 반 정도 앞두고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떠났다. 엄마, 아빠, 여동생, 남동생, 나, 이렇게 다섯 식구. 내게 나만의 가족이 생기면 이제 오롯이 다섯 식구끼리 어디 갈 일은 없을 것 같아서 떠났는데 정말 좋았다. 직접적으로 결혼이라는 말을 꺼내진 않았지만 모두 가슴 한편에 나를 보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맛있는 거 많이 먹고 많이 웃고 다섯 식구 함께 사진도 정말 많이 찍었다.




본식날 많이 울까 봐 걱정했는데 난 싱글벙글 세상 신난 신부였다고 한다. 본식 스냅만 봐도 입을 다물고 있는 사진이 없다. 사실 아빠랑 여동생이 수도꼭지라 두 사람이 울면 난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잘 참아주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아빠는 내 결혼을 앞두고 집 앞 흔들의자에 앉아 한참 눈물을 훔치고 들어오셨다고 한다. (아빠....ㅠㅠ) 사실 옛날처럼 결혼한다고 출가외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결혼 후 해외 나가서 사는 것도 아니라 언제든 볼 수 있는데도 딸을 시집보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가 보다. 나도 먼 훗날 부모님의 마음을 알게 되겠지.


사랑하는 엄빠


다른 건 몰라도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사는 게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난 대단한 효녀도 아니고 딱히 부모님을 잘 챙기지도 못한다. 설령 내가 능력이 돼서 부모님께 아무리 좋은걸 많이 해드린다 한들 부모님의 내리사랑에 비할 게 못된다는 것도 잘 안다. 그래서 잘 사는 모습으로 보답해야지 다짐 또 다짐한다. 보여주기 식 말고. 이 사람을 만나 부부로 살면서 속까지 찐 행복한 나를 보여드려야지. 부모님이 믿어준 딸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 보여야지 :)


본식날은 정신없어서 하나도 기억 안 난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는데 난 순간순간 다 눈과 마음에 담으려 애썼고 다행히 하나하나 기억이 아주 선명하다. 내가 어디서 어디로 이동했고 어디서 누구를 만났고 어느 순간 내 감정이 어땠는지.


소중한 사람들이 축하하러 귀한 발걸음을 해주었고 바쁜 주말에 시간을 내어 그 자리에 함께해주고 축복해 준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알게 됐다. 식을 마치고 겨우 밥을 챙겨 먹고 집에 도착해서 너무 피곤한데 화장을 지우기 전에 한참 휴대폰을 붙잡고 있었다. 축하해주신 분들께 감사 메시지를 전하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




평생에 한 번 하는 결혼이라 후회 없이 완벽하게 준비하고 싶은 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무엇보다 내 지인, 그리고 부모님의 지인들을 초대하는 자리이다 보니 더 잘 준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결혼 준비도 결국 당사자가 즐겁지 않으면 너무나도 괴로운 과정이 되어버린다. 과정이 즐겁지 않으면 아무리 호화롭고 잘 준비된 결혼식이라 해도 정작 신랑 신부가 즐겁고 행복해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어딘가 모르게 피곤해 보이고 어두워 보일 수밖에 없다.


나도 결혼을 한 번밖에 안 해봐서 잘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유경험자로서 결혼을 준비하는 예비부부들에게 감히 조언을 한다면 너무 고민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가령, 나의 경우 본식 드레스로 A를 입을지, B를 입을지, 또 어떤 볼레로로 매칭 할지 사실 판단도 안 섰고 그게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그래서 함께 드레스를 보러 갔던 엄마와 친구, 신랑의 의견을 따랐다. 웨딩 슈즈도 마찬가지. 난 힐이 싫었고 마침 단화로 된 낮은 굽 웨딩 슈즈가 있었다. 나한텐 고민할 가치가 별로 없는 것이었다. 반면에 예식장은 결정하기까지 여기저기 알아보고 발품도 많이 팔았다. 시식도 꼭 챙겨서 하고 식순 별 동선도 체크하고 담당자에게 귀찮을 정도로 질문을 많이 해댔다. 매트리스 구매도 마찬가지. 내가,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부분에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은 것이다. 청첩장은 사실 크게 고민하지 말자 영역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내가 청첩장 수십 가지 샘플을 붙잡고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고 예비 신랑이 말했다. "우리 청첩장에 너무 신경 쓰지 않기로 했잖아. 심플하게 가자." 그래서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단번에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분명 정말 신중하게 고민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반면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도 있다. 사람마다 무게를 두는 가치가 다르기에 정답은 없지만 예비부부로서 신중히 고민해야 할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을 함께 결정할 것을 추천한다. 신중해야 할 부분은 신중하되 다른 영역에서는 좀 과감하게 적당히 보고 결정해도 큰일 나지 않는다. 어차피 완벽한 준비란 불가능하고 보면 볼수록 결정하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내 결혼 준비가 정답도 아니고 완벽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 기준에서 나는 나와 예비 신랑의 가치에 맞게 잘 준비했다고 본다. 다시 결혼 준비를 한다고 해도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중요한 건 우리가 예비부부로서 준비 과정에서 즐거웠고 양가 부모님 또한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셨기에 이 모든 게 가능했다는 사실이다. (역시 우리의 어벤저스^^) 그렇게 약 4개월 동안 수많은 결정의 순간들을 지나 순간의 '결혼식'으로 우리는 부부가 되었고 이제부터 진짜 현실 결혼 생활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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