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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곰 Dec 01. 2020

moonchild, 송정 해변을 걸으며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12월이 도래했다. 나의 2020년은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생각과는 달리 흘러간 해로 기억될 것이다. 현재로서는.


12월 1일. 강릉 한 달 살기를 하는 선배의 집에 방문했다. ㅊ은 내가 가장 사랑하고 따르고 싶은 롤모델이자 영감을 주는 사람이다. 그녀는 친구와 함께 서예 학원에 들렀다 저녁을 먹고 돌아오니 편하게 강릉을 둘러보라는 말을 남겼다.


광화문에서 국회 출신 선배를 만나 점심을 먹고 강릉에 도착한 시각 4시. 근처 꽃집에 들러 선물을 사고 소라아파트에 오니 5시. 곧 방전될 것 같은 맥북, 아이폰, 그리고 전자담배를 부랴부랴 충전시켜놓고 오후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검색에 돌입했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송정해변이 있으니 바닷가에 좀 앉아있다가 근처 송정해변막국수라는 곳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현관 문을 나선 시각 5시 30분.


겨울이 왔다는 것은 시린 코끝과 함께 하늘의 색을 보면 알 수 있다. 해변가로 걸어가는 10분 사이에 금세 하늘은 어둑어둑해졌다. 마치 내가 처한 상황 같았다. 해변가에는 오롯이 나 혼자였다. 넓다란 바다를 나 혼자 전세 낸 것인데 마냥 즐겁지가 않았다. 혼자여서였을까. 재빨리 나오지 못한 탓에 금방 어둑해진 바다를 바라보는 신세가 처량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미래의 불확실성에 몸을 내던지고 있는 나의 신세가 떠올랐다.


한눈에 담을 수 없는 끝없는 바다를, 저 멀리서 너울거리며 다가와 거품으로 사라져 가는 파도를 바라보며. 30분 거리의 송정해변막국수로 걷기 시작했다. 모래사장을 걷는데 푹푹 발이 빠졌다. 이것도 지금의 나 같았다. 남들이 걷던 발자국에 발을 딛으며 걷자니 그것대로 힘들었다. 그래도 씩씩하게 걸었다.


누구나 밤바다에 한 번씩 가본 적이 있을 것이다. 불빛 없는 깜깜한 바닷가, 철썩거리는 파도소리.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걷는데 겁이 났다. 걷다 말고 바다를 바라보았더니 빨갛게 해가 바다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내가 살면서 본 두 번째로 큰 해였다. 아, 해가 지는 모습에도 나의 모습을 투영했다.


2000 걸음만 걸으면 돼, 하며 계속해서 모래사장을 걷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소나무 숲을 지나 도로변으로 나왔다. 거기에는 가로등이 있으니까. 그러나 귓전에 맴도는 파도소리는 멀어졌다. 나는 겁쟁인가. 함께 걷는 이가 있었다면 끝까지 걸었을지도 모른다.


중간중간 걷다 그냥 숙소 근처 밥집에서 먹을까,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끼어들었다. 별거 아닌 건데, 사실 꼭 그 식당에 갈 필요는 없는데. 나는 괜한 오기가 발동했다. 걷자. 조금만 더 걷자. 이 정도는 참고 견디고 걸어보자. 그 막국수 집에 가는 걸 포기하면 마치 내가 지금 목표하고 있는 것들을 포기하는 것 같은 되지도 않는 대입을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걸어서 간 막국수집은 문이 닫혀 있었다. 7시도 되지 않았는데. 화요일이 휴무인 탓이었다. 그냥 웃겼다. 열심히 포기하지 않고 걸어갔는데 나를 반기는 건 까만 식당인것처럼 내가 지금 도전하고 있는 길의 끝도 그러면 어떡하지, 다시 한번 불안감이 엄습했다. 고작 이런 일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게 터무니없는 일이라는 것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마음이 약해질 때는 흔들리는 바람 하나가 태풍처럼 느껴진다.


인도를 터벅터벅 걸으면서 계속해서 오른쪽을 바라봤다. 소나무들 사이로 여전히 해가 옆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시 보니 둥근 원은 태양이 아니라 달이었던 것이다. 검푸른 바다의 경계에 머물러있던 달은 마치 태양처럼 바다 위로 솟아올랐다. 저 달을 나에 대입한다면, 나는 지는 해가 아닌 떠오르는 달이겠지. 그 커다란 달이 내가 가는 길을 지켜주는 것 같았다. 내 옆에서, 때로는 내 뒤에서.


내가 이런 생각을 한 것은 나의 수호성이 달이기 때문이다. moonchild. 세일러문을 보고 자란 아이에게 달은 논리적인 이유 없이 강하게 각인됐다. 나는 달을 나의 정신적 안식처로 삼곤 한다. 항상 하늘에서 달을 찾고 올려다보며 소원을 중얼거리는 어른으로 자랐다.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그저 차만 생생 달리는 이 해변가에 오롯이 홀로 걷는 나의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는 마음을 되뇌일 뿐이었다.


돌아오는 길엔 택시를 탔다. 막국수집 바로 옆 편의점에서 라면과 김밥을 사들고서. 택시 아저씨한테 '강릉은 원래 이렇게 달이 크게 뜨나요? 저는 제일 처음에 지는 해인 줄 알았어요'하고 말을 걸었다. 아저씨는 원래 이 시간에는 하늘 한 중간에 떠 있어야 하는데 오늘은 좀 낮게 떠있다는 둥, 강릉의 달은 늘 밝고 이쁘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달을 매개로 집으로 가는 길에 말동무가 생겼다. 5분 남짓한 거리를 달리는 동안에도 달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었다. 나는 아마 아주 오랫동안 오늘 보았던 달을 기억할 것이다. We're born in the moonlight.





소나무 숲 너머로 보이던 달 그리고 바다의 경계에서 모습을 드러내던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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