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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곰 Dec 05. 2020

간절하게 되찾고 싶은 한 가지는 무엇인가

101일간의 여정 6주차

각기 다른 분야의 10명의 사람이 모여 매일 101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공유합니다. 2주마다 한 명씩 질문 하나에 대한 글을 브런치에 연재도 하고 있답니다. 벌써 30개의 물음에 답을 했네요. 초반보다 깊이가 떨어지는 것 같아 반성합니다. 이번 주 답변은 일기 같은 느낌이 있네요. 101개의 답변이 완성되는 그날까지, 마라톤을 하는 마음으로 차분히 임해보겠습니다.


26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한 적 있는가


기도는 자신을 위한 것은 안 들어준다는 말을 들어서 그런지 나는 2+1 기도 수법을 구사한다. 2가지 정도는 나를 위한 것들을 읊은 뒤 마지막은 꼭 주변 사람들의 행복과 안전을 바라는 기도로 마무리한다. 나에게는 개인 무당 친구가 있는데(물론 진짜 무당은 아니다. 그녀가 장난으로 써준 부적이 실제로 그 효험을 발한 적이 종종 있었기에 붙여진 별명이다.) 그녀가 내가 원하는 바람들을 담아준 온라인 부적을 건네면 나도 아이폰으로 삐뚤빼뚤 부적을 그려 건네곤 했다.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들과 엄마에게 나는 늘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듯 기도를 종용한다. '엄마, 나 00이랑 결혼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줘', '00아, 나 빨리 여기 취직하게 부적 써줘'. 


요즘은 기도 대신 명상을 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세례를 받았지만 무신론자에 가까우며 절대적인 존재에 의지하는 것은 너무 불확실하니까. 내면의 힘을 길러보자는 취지다. 심상화라는 것을 주로 하는데 내가 원하는 모습을 그려보는 것이다. 내 개인의 성공을 상상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결국 기도와 마찬가지로 마지막은 그런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또 그들과 함께 행복을 나누는 모습이다.


요 근래에는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만한 심적 여유가 없긴 했다. 나를 위한 기도도 머리가 복잡해 안 되는 지경이기 때문이다. 하늘을 잘 보지 않는 이유도 있다. 달이 환하게 뜨는 날 늘 중얼중얼 소원에 가까운 기도를 말하곤 하는데 날씨가 추워지면서 최대한 빨리 집으로 들어간다. 하늘을 보는 여유가 사라지다니. 아무리 힘들어도 하늘 한 번 보고 힘내자!라고 외쳤던 나였는데. 나 자신 반성한다. 마음을 차분히 하고 오늘은 기도 대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평안을 바라는 덕담을 건네야겠다.


27 간절하게 되찾고 싶은 한 가지는 무엇인가


지금 기준으로 답하자면 나의 20대. 너무 큰 한 가지인가. 아니면 대학시절. 10대로 돌아가도 좋을 것 같은데 지금의 기억을 가지고 돌아가지 않는다면 크게 달라질 건 없을 것 같다. 물론 20대도 마찬가지지만. 


20대로 돌아간다면 나는 내일이 없을 것처럼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다.(과거에도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밤새 놀면서도 늘 조금의 겁을 안고 있던 우리는 아쉬움을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연애도 마찬가지였다. 결혼할 것도 아닌데 이 사람 저 사람 막 만나볼걸 하는 후회들. 그 겁 덕에 큰 사고 없이 살아왔을지도 모르지만. 서른을 앞둔 29살, 나는 미친년처럼 마지막 20대를 보내겠다고 다짐했지만 일과 선거에 치여 다짐은 물거품이 되었다.


다시 1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시간에 쫓기지 않고 정말 정말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다. 다시 20대의 여행지에 돌아간다면 더 끝장나게 그 장소를 즐길 수 있을 것이며,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돌아오리라. 책을 쌓아놓고 읽고 싶으며, 되지도 않는 아이템으로 사업으로 쪽박을 차보기도 하고. 오지 않을 미래가 무서워 용기를 내지 못했던 모든 순간을 주먹을 꽉 쥐고 도전해보고 싶다.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며, 할머니에게 더 애정을 쏟을 것이다. 


돈에 무지했던 나를 반성하며 재테크에 일찍 눈 뜬 20대가 되고 싶으며 두둑한 통장에서 나오는 여유를 가지고 좀 더 많은 도전을 해볼 수 있기를 바라기도 한다. 물론 아직 만으로 20대라며 자위하고 있지만 서른이라는 나이가 주는 조급함, 커리어 쉬프트를 위해 붕 떠 있는 나의 상태들로 비롯된 불안감들이 과거를 간절하게 되돌리고 싶은 마음을 불러온다. 월급쟁이 후회의 삼각지대가 괜히 '그때 비트코인을, 집을, 그 주식을 샀더라면'이 아닌 것이다. 


물론 다시 돌아오지 못할 시간을 그리워하는 것은 우울감만을 더해줄 뿐이다. 이런 생각 할 시간에 그때 하지 못했던 것들을 지금이라도 시작하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한 일일 테다. 불안하면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는 습관을 다시 깰 때가 왔다. 과거는 과거일 뿐. 100세 시대. 아직 늦지 않았다. 더 이상 간절하게 되찾고 싶은 것이 없도록 살자. 


시험 치기 전 카페에서 벼락치기하던 모습으로 추정됨
(좌) 전공 수업 하나를 빠트려 한 학기 더 다니고 여름에 졸업한 나 / (우) 학교 친구들과 서울숲에서 인라인 스케이트 타던 날(자전거를 타지 못하기 때문)


28 내 아이는 지금 행복한가


아이가 생긴다면 늘 가슴에 새기고, 스스로에게 그리고 내 아이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다. 사실 결혼을 한다고 해도 아이를 낳을지 모르겠다. 과연 내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나의 일부분을 내려놓고 그것을 아이를 위한 부분으로 치환할 수 있을까, 에 대한 우려다. 엄마는 아이로부터 비롯되는 행복이 어마어마하지만 그에 따르는 걱정과 근심이 평생 함께 한다고 말한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잘 지내는지, 적성을 찾았는지, 직장에서는 별 탈이 없는지, 결혼생활은 잘 유지하고 있는지, 건강한지. 


나 하나 책임지는 것도 벅찬데, 과연 점점 더 험난해지는 세상에서 아이를 책임질 여력이 되는 인간으로 성장할 것인가. 물론 엄마가 된 이후에 배워나가며 아이와 함께 성장할지도 모른다. 친구같은 엄마가 되어줄 수 있다는 확신은 든다.


나는 아이를 낳아도 계속해서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인데, 지인들은 대부분 아이를 낳고 일을 그만두었다. 부모가 된 그들의 삶의 시계는 아이가 태어난 이후, 아이에게 맞춰 흘러간다. 일과 육아를 모두 잘 해내고 싶은 욕심이 나를 망쳐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든다. 금전적 여유가 뒷받침된다 해도 말이다. 육아를 뒷받침하는 사회 시스템의 문제라기보다는 모성애의 발현이 나를 늘 시험에 들게 할 것이다. 부모의 역할이 아이의 성장에 지대한 역할을 끼친다는 이야기는 가족주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부모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기에 부모의 부족한 부분을 사회가 채워주는 시스템 확립이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나는 내가 엄마가 된다면, 아이에게 많은 에너지를 쏟으려고 할 것을 안다. 몸이 따라주지 않아도 마음은 늘 그럴테다. 아이와 함께 보내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과 에너지를 확보해야 하고, 그 시간 동안 나는 엄마가 아닌 나라는 사람의 무언가를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그 균형을 잘 유지하는 것이 나와 아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일텐데,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를 상상하는 것이란 참 어렵다. 그 상상에 나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혼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이가 된 후 친구들과 결혼과 육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엄마가 된 나의 모습이 전혀 상상되지 않는다.


조카나 친구들의 아이들과 놀아줄 때 나는 꽤 높은 점수를 받는 이모다. 에너자이저로 변신해 내가 아이가 된 것 마냥 함께 뛰놀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달리며 꺄르르 웃는 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소리 중 하나다. 그런데 이게 하루가 아니라, 매일이 된다면. 아침 일찍 출근해 늦게까지 일에 열중하고 집으로 들어오고 나서라면? 이야기가 달라질테다. 


아이를 좋아하지만 꼭 그 아이가 내새끼여야 하냐는 질문엔 좀 더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나는 내 아이가 없더라도,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 출생률이 떨어진다고 나랏님들은 고민이 많지만, 개인적으로 경제와 사회 시스템을 굴러가기 하기 위해 생식하는 것에 대해 회의감을 느낀다. 그렇게까지 유지해야 할 가치가 있는가, 지금의 세계는. 많은 사람들이 사회의 압박에 못 이겨, 혹은 아이를 낳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에 그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다만 그들이 아이를 낳기로 결정했다면, 이 세상이, 사회가 그들에게 관대할 수 있기를, 나아가 함께 아이의 행복과 삶을 책임질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는 길을 찾고 싶다.


29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는가


친구 결혼식을 위해 주말 동안 잠깐 본가로 내려왔다. 백팩에는 노트북과 각종 충전기, 주말 동안 읽을 책과 결혼식 때 입을 옷과 구두 등등이 들어가 있다. 어깨가 빠지는 줄 알았다. 이는 내가 무거운 짐을 내려놓지 못함에서 기인한다. 이직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고, 5개월 정도를 나 자신의 회복을 위해 시간을 보냈다. 슬슬 조바심이 들 때다. 3일간의 짧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 동안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백팩에 이것저것을 담게 만든 것이다. 


무거운 짐은 아마 아주 아주 먼 훗날에 내려놓게 될 것 같다. 물론 예기치 못한 상황이 닥치면 나는 그 짐을 서둘러 내려놓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짊어지고 있는 짐은 오롯이 내가 선택하고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지금 목표하고 있는 바를 내려놓는다면 그 짐을 내려놓게 되는 것일 텐데 아직은 그럴 마음이 들지 않는다. 아마 반강제적으로 내려놓게 되는 순간이 올지도.


그런 때가 오더라도 그때에 맞는 짐을 지게 될 것이다. 아마 죽는 순간까지 가방에는 무언가가 늘 들어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누군가의 짐을 함께 들어주기도, 그들이 나와 함께 나눠 들기도 하는 삶이 필요하다. 배낭이 너무 무거워 길 한 바닥에서 주저앉기 위해서 말이다. 최근엔 나의 짐 좀 들어주지 않으련? 하는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기만 했던 것 같다. 내가 가진 것 안에서라도 함께 짐을 나눠들 수 있는 여유를 되찾자. 


30 몇 권의 일기장을 갖고 있는가


내 어릴 적 일기장들은 본가 창고의 박스 안에 잠들어있다. 대부분 학교 숙제용이었던 것 같은데 다시 펼쳐보면 내가 이 나이에 이런 생각을 했단 말인가, 하며 놀라게 된다. 일기 검사가 없던 중학교 이후엔 간헐적으로 이곳저곳에 일기를 썼던 것 같은데 그 흔적들이 너무 산재해있어서 그걸 다 모으려면 꽤 많은 에너지가 들 것 같다. 전자사전 메모장, 예전 데스크탑, 노트북 등등. SNS가 생긴 이후로는 싸이월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통해 누구와 만났는지, 뭘 먹고 무엇을 했는지를 기록하면서 일기장의 역할을 대신했다. 


사실 삶이 바빠지면서 일기를 쓸 여유를 잃었다. 일을 하면서는 긍정적인 감정보다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지배하는 날들이 많아졌고 이런 것을 기록하는 것 자체가 괴롭다는 생각도 했다. 그럼에도 하루의 좋았던 점을 적어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요즘 들어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거창한 내용은 아니다. 정말 초딩일기처럼 오늘 누구를 만났고 무엇을 먹었다는 이야기만 적을 때도 있고,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쓰일 때도 있다. 비가 오는 소리를 들으며 집에 누워있다던가 그런 사소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난중일기에도 시덥잖은 내용들이 잔뜩인데, 그런 것들이 이뤄 나를 만드는 것 아니겠어요? 매일매일 쓰려고 노력은 하는데...어디 보자... 마지막 일기가 언제였더라. 한 달 전이다. 습관을 만들기란 이리도 힘든 것이다.


일기장을 권수로 측정하는 시대는 지났다. 내 일기의 대부분은 무형의 클라우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싸이월드 일기장을 아주 즐겨 썼는데 서비스가 종료되면서 나의 과거들이 다 날아가버렸다. 이것을 교훈 삼아 인스타그램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면 꼭 백업을 해놓으리라. 오늘부터라도 간헐적이지만 일기를 다시 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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