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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곰 Dec 27. 2020

인생을 회복시킬 리셋 버튼을 갖고 있는가

101일간의 여정 8주차

10명의 사람이 모여 매일 101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공유합니다. 2주마다 한 명씩 질문 하나에 대한 글을 브런치에 연재도 하고 있답니다. 101개의 답변이 완성되는 그날까지, 마라톤을 하는 마음으로 차분히 임해보겠습니다.


36 단 한 명이라도 인생을 바꿔준 적 있는가


커리어 쉬프트를 하고 있는 중이라 이 도전을 일단락하면 아마 내 인생을 바꾼 최초의 경험으로 기록될 것이다. 실패하더라도 인생을 바꾸려고 애쓴 시도가 되니 남는 것은 꽤 많을 테다. 이 경험을 누군가에게 공유한다면 나의 경험을 지렛대 삼아 나의 성공의 성패와 관계없이 그들은 성공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타인의 인생을 조금씩 바꿔주며 살고 있지 않을까. 거창한 모멘텀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놈팡이처럼 월급만 받아가며 부하 직원의 업무에 꼬투리를 잡는 상사를 보며 다짐하지 않는가. 나는 저런 선배는 되지 말아야지. 책이나 인터뷰에서 목격하는 멋진 리더들의 행동을 보며 나의 루틴으로 만들어보려고 노력하고. 친구들이나 가족의 고민을 들어주며 자신의 경험을 설명하며 대안을 제안해보기도 한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들, 나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낀다. 선후배들에게서 얻은 영감들을 차곡차곡 메모해놓았다가 주변 사람들이 필요한 상황에 그 경험들을 풀어놓는다. 정답은 아닐지라도 정답을 찾아가는 길에 에너지바라도 되길 바라며. 


언젠가 나의 인생이 내가 목표한 대로 흘러갔을 때 나의 인생을 바꿔준 이들을 한 명, 한 명씩 만나고 싶다. '당신이 내 인생을 이렇게 바꿨어요. 당신에게 받은 인사이트를 보답하는 길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경험을 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그렇게 살아갈게요. 고마워요, 진심으로.'라고 말하는 상상을 해본다. 상상만으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37 인생을 회복시킬 리셋 버튼을 갖고 있는가


게임처럼 리셋 버튼 클릭 한 번으로 새로운 기회를 얻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언젠가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가 해주었던 말이 기억난다. '어렸을 때는 무언가를 하다 잘 풀리지 않을 때 모든 것을 뒤로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습관들이 성인이 되어서까지 이어진다면 그건 문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드는 기회비용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긴 지점을 고찰하고 그걸 풀어내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특정한 시점에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하고 후회하지만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머리가 터질 것 같고 불안할 때 나는 고요한 시간을 찾아 나선다. 고요히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먼저 생각을 멈춘다. 어지러운 머릿속에서 이것저것 생각을 더하다 보면 더 엉키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우선 좋아하는 노래를 튼다. 리셋 버튼이 간절해질 때는 대부분 클래식을 듣는 편이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크리스티앙 짐머만)이나 브람스의 4번 교향곡이(정명훈과 라디오 프랑스의 협연) 나의 애청곡이다. 책상이든 침대든 누워 책을 집어 든다. 아무 생각 없이 책에 집중한다. 


책들을 읽다 보면 순간순간 머릿속 혼돈을 잠재우거나 정리할 수 있는 문장들과 이야기를 발견한다. 내가 직면한 문제와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에서도 반드시 한 문장은 머리에 탁, 하고 명중되고야 만다. 재빨리 문장과 느꼈던 생각들을 에버노트에 타이핑한다. 잠시간 그런 시간을 가지고 다시 랩탑 앞에 앉는다. 엉킨 생각의 타래를 조금 풀어내 본다. 이런 시간들을 반복하다 보면 빗나간 목표를 다시 바로 잡을 방법이 불현듯 완성된다. 그러고선 훌훌 털고 다시 가보는 것이다. 


가장 최근 불안했던 내 마음을 다독거렸던 책의 구절을 소개하고자 한다.

Haraka haraka, haina braka 서두르는 것에는 축복이 없다.


38 물려받은 것은 무엇이고, 물려줄 것은 무엇인가


생을 그리 오래 살지 않아 레거시라고 말할만한 것이 아직은 없다.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떤 일을 해내고, 어떤 유산을 물려주고 싶은지는 종종 상상하곤 한다. 물려받은 것이라 하면 결국 DNA를 들여다볼 수밖에 없겠다. 큰 키나 마른 몸은 아빠로부터, 쌍꺼풀이 진 눈 같은 생김새는 엄마로부터 물려받았다. 책과 클래식을 좋아하는 취향 또한 엄마로부터 물려받았다 할 수 있겠다. 공공영역에서 일을 하게 된 배경도 가정환경의 영향이 컸다. 엄마는 늘 고아원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고 우리는 저녁을 먹거나 자기 전에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하곤 했다. 자연스레 관심을 가진 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욱하거나 짜증을 내는 기질은 아빠로부터, 예민함은 엄마로부터. 맥주 한 잔만 먹어도 얼굴이 빨개지는 알코올 쓰레기 형질도 엄마로부터. 


물려받고 싶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나는 엄마의 평정심과 사람과 지구를 대하는 따뜻한 시선을 닮고 싶다. 끝없이 공부하는 탐구욕과 정신을 고양하기 위한 자기 수련 같은 것들도. 내가 엄마의 이러한 기질을 잘 물려받게 된다면 아마 누군가에게 물려주고 싶은 나의 레거시가 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엄마의 꿈인 고아원이나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기숙사를 꼭 만들고 싶다. 엄마가 말해주기 전에도 나의 꿈이기도 했던.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고 금전적인 걱정 없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사회에 나갈 때까지 보호받을 수 있는 곳. 그리고 그 공간에 머물렀던 사람들이 계속 자신과 같은 아이들에게 그 유산을 물려줄 수 있기를.


39 편견 없이 사람을 대하는가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아니다. 누구나 첫인상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않습니까? 처음 만난 자리에서 사람들의 행동이나 말들을 보고 내 나름대로 이 사람을 이럴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한다. 적중률이 높은 편이기도 하다. '싸하다' 느꼈던 사람들은 대부분 그러했다. 물론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도 선을 넘거나 예의를 실종하는 행태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 사람과 가까이 지내지 않을 뿐. 


이러한 첫인상을 깨트린 경우도 많다. 선거 캠프에 만난 ㄱ은 옆자리 동료였는데 수시로 주식 창을 들여다보고 형님들과 식사를 하느라 바쁜 사람이었다. 국회에 차고 넘치는 허세 가득한 '형님 정치'나 하는 양반인 줄 알았는데 같이 일정을 짜고 일을 하면서 그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일에 진심인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싫어하는 모습은 발견하기 쉽다. 한 발자국 더 들어가 보아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 수 있다. 일 때문에 가까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그랬을지도. 사적으로 만났다면 첫인상으로 사람을 판단해버리고 그다음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첫인상으로 피해를 보는 편에 속하면서 이런 무의식적인 판단을 멈추기란 쉽지 않다. 무섭게 생겼다, 싹수없을 것 같다, 일을 열심히 안 할 것 같다, 외동딸인 것 같다(부정적인 의미겠죠...?) 등등. 첫인상으로 오해를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계속해서 나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멋진 사람을 알지 못하게 되다니. 당신은 인생의 큰 기회를 놓쳤다!'라며 자기 위안하거나 '인연이라면 그 오해를 뛰어넘겠지'라고 초연하게 넘긴다. 


편견을 갖는 것은 한 사람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그로 비롯될 수 있는 많은 가능성을 제한한다. 어릴 적 가장 좋아했던 책 중 하나가 '오만과 편견'이었다. 리즈처럼 편견에 휩싸여 떠나보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리즈는 결국 편견을 깨고 트루 러브를 찾았지만. 책의 교훈을 제목에서부터 알려주고 있는데도 이렇게 살아왔구나. 


어차피 나도 부족한 것 투성이 인간이다. 남들이 나를 바라보길 원하는 방법으로 타인을 대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안된다. 인간관계로 소모되는 에너지가 너무 많아서일까. 계속되는 관계 속에서도 편견을 마주할 때가 있다. 나의 편견이 아니라 기정사실화가 되는 순간 '손절'까지는 아니지만 자연스레 거리를 두게 된다. 물리적이든, 심리적이든. 사람을 보는 눈을 기르고, 그 편견을 극단까지 끌고 가지는 않으며, 언제든 편견이 깨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살면 안 될까?


40 기억할 만한 장례식에 갔는가


꼬꼬마 시절 선산에서 친할아버지의 무덤을 위해 땅을 파던 포클레인을 지켜보며 포도알을 따먹던 기억이 있다. 아빠가 삼베로 된 상주 옷을 입고 할아버지네 감나무 옆에 서있던 기억도 난다. 죽음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때다.


그리고 20년이 지나 사회초년생 1년 차에 처음으로 장례식장이라는 곳에 가봤다. 수행비서님의 빙모상이었는데 선배들이 하는 행동들을 정신없이 따라 했었다. 두 번째 장례식장은 ㄱ의원의 빙모상 빈소였다. 대선 직전이었는데 당 대변인으로 임명된 날이라 의원이 일이 꼬인다며 짜증을 내기도 했다. 빈소 입구에서 귀빈들이 오면 자리로 안내하고 의원님을 그 자리로 모셔오느라 3일 내내 장례식장으로 출근 아닌 출근을 했다. 내가 이 집안사람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다행히 가까운 친구들의 가족이 돌아가신 적은 없다.

그리고 작년 우리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나에게 기억할만한 장례식이란 아마 할머니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던 그 시간들일 테다. 잊으면 안 되지만 상기시키고 싶지도 않은 기억들. 


여느 장례식장이 그렇듯, 손님들이 밀려오고 안주거리를 주워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휑한 공간을 마주했다. 서울에서 내려온 직장 동료들, 친구들을 마주할 땐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닌데, 어른 행세를 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할머니 부고를 들은 일터에서 부총리, 장관, 국회의원들의 조화가 배달됐다. 남들의 시선에 민감한 이모부는 의전 서열대로 조화를 정리하며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손님이 없을 때 엄마는 어디선가 울고 있었고, 때마다 상을 차려 할머니에게 절을 하는 시간에는 실감이 나지 않는데도 눈물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순간순간 울고 있던 기억들이 대부분이다. 염을 마친 할머니를 마주하던 때, 입관할 때, 운구차가 집 근처에 다다랐을 때, 화장을 하기 직전 마지막 인사를 하던 순간, 할머니가 뜨거운 불 안으로 사라질 때, 한 줌의 재가 되어서 우리 앞에 나타났을 때, 나무 곁에 할머니를 남겨두고 돌아올 때.


떠나간 할머니를 되찾아오고 싶은 마음이나 할머니를 추모하는 마음보다는 엄마를 걱정하는 마음이 앞섰다. 우리 엄마 마음이 너무 아파서 어떡하지. 내게 할머니의 장례식장은 엄마의 새로운 모습을 목격한 장소이기도 하다. 나는 난생 엄마가 그렇게 우는 것을 처음 보았다. 짐승의 울음소리처럼 절규에 가까웠다. 아마 엄마는 죽을 때까지 그렇게 울 일이 없을 것이다. 


ㄱ의원의 빙모는 오랫동안 치매를 앓다 돌아가셨다. 요양병원에 계셨지만 오랜 시간 동안 간병을 하다 부모를 떠나보낸 자들은 꽤나 담담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당연히 슬프지만 그 죽음으로부터 피어난 해방감 또한 느껴졌다. 물론 내가 목격하지 않은 시간 속에서 그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아파하고 슬퍼했을 것이다. 우리 할머니는 생각보다 일찍 생을 떠났다. 아마 좀 더 우리 곁에 오래 계셨다면 엄마는 덜 울지 않았을까. 죄책감이나 후회로 덜 괴로워하지 않았을까. 엄마를 걱정하는 마음보다 할머니와 잘 이별하는 시간을 갖지 않았을까. 


엄마의 장례식은 어떤 모습일까. 영원히 오지 않아 기억할 필요가 없는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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