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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곰 Jan 06. 2021

소중한 일을 먼저 하고 있는가

101일간의 여정 9주차  

10명의 사람이 모여 매일 101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공유합니다. 2주마다 한 명씩 질문 하나에 대한 글을 브런치에 연재도 하고 있답니다. 101개의 답변이 완성되는 그날까지, 마라톤을 하는 마음으로 차분히 임해보겠습니다.


41 소중한 일을 먼저 하고 있는가


소중한 일을 먼저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국회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국회의 업무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입법, 국정감사, 그 외 자잘한 일들. 입법은 말 그대로 법안을 만들거나 고치는 일인데 법안 제개정에서 끝나지 않고 토론회를 연다거나 법안과 관련된 정책을 제안하기도 한다. 국정감사는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국회의 꽃이자 보좌진이 밤낮으로 갈려나가는 시기다. 감시를 맡은 정부 부처와 관련된 현안들을 살펴보고 장관에게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숙명여고 쌍둥이 입시비리나 유치원 비리 같은 것들은 히트 상품에 속한다. 기자가 된 심정으로 특종을 찾아 자료를 요구하고 살펴보는 작업을 거친다. 질의에서 끝나지 않고 9시 뉴스나 신문 지면에 싣기 위해 기자들에게 아이템을 던지며 조율한다. 의원 이름이, 얼굴이 지면이나 방송에 나오는 것이 국정감사의 사이드 임무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자잘한 일들은 민원 해결부터 축사 작성 같은 것들이 있다. 


사회의 문제들을 찾아내고 나름대로의 대안을 의원의 입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내뱉을 때 짜릿함이 느껴진다. 실제로 현실에 적용될 때는 그 감정이 배가 된다. 물론 질의 과정에서 장관의 '네 살펴보겠습니다'라는 답변 뒤에 후속조치가 이어지지 않는 것이 태반이긴 하다. 입법 또한 바꾸고 싶은 것들이 천지지만 여야가 합의해야 하는 점, 쌓여있는 법안에 비해 지지부진한 국회 대치 상황들을 보면 법안을 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 싶을 때가 많다. 


이러한 과정들이 들인 노력만큼 술술 풀린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이지경은 아닐 테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수없는 장애물에 부딪치고 깨지기 일쑤다. 늘 똑같은 패턴으로 반복되다 보니 지치기도 짜증 나기도 하지만 그러려니 한다. 인생사가 그런 것 아니겠는가, 하고. 


위에 서술한 일들은 힘들었지만 내게 가치 있는 일들이었다. 세상을 가장 직접적으로 바꿀 수 있는 소중한 일이기도 했다. 세금으로 밥 벌어먹는 사람들이 가장 잘 해내야 하는 업무라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선출직 의원들은 때로 국회의원 본연의 임무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보좌진에게 요구한다. 지역에 계신 고문님들을 챙기는 것부터 말도 안 되는 지역 민원을 해결하라거나, 후원금을 모으기 위해 쓸데없는 북콘서트를 열기 위한 책을 쓰라거나. 


국정감사나 예산 시즌의 질의서는 보좌진이 작성한다. 보좌진은 하나의 문제에 대한 수많은 자료를 검토하고 요약해 약 3장짜리 질의서와 참고자료의 형태로 의원에게 전달한다. 이렇게 떠먹여 주면 의원은 질의서를 공부하고 효과적으로 장관에게 질의해 우리가 원하는 답을 이끌어 낼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업무를 지역구 행사를 순회한다거나 개인 약속들로 소홀히 하고 질의장에서 나를 갈아 넣은 질의를 망쳐버릴 때 나는 정말 마이크를 뺏어 내가 대신 질의를 하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인다.


언론의 주목을 받는 아이템이 우선순위가 되면서 국정감사는 내게 하기 싫은 숙제가 되었다. 남들이 주목하지 않아도 바꿔야 할 것들은 너무나 많은데 스타성이 없다는 이유로 정말 하고 싶은 현안들을 다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극적이고 단발적인 아이템을 찾아내기 바빴다. 환경에 꽤나 관심이 많은 편인데 관련 법안을 내고자 했을 때 당시 함께 일하던 의원님은 본인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이유, 사람들도 별 관심이 없고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법안이니 굳이 낼 필요가 있냐는 말을 하기도 했다. 


1. 소중한 일, 해야 할 일을 다른 일에 밀려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2. 그 일을 최우선에 두고 해냈지만 누군가가 그 일을 망쳐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3.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사안이니 거절당하거나. 나에게는 소중한 일이었고, 법안이 통과되면 많은 사람들에게 소중한 법안이 될 무언가를 그렇게 뒤로 한 적이 쌓이고 쌓이자 나는 매너리즘에 빠졌다. 소중한 일을 먼저 하지 못하는 상황이 많아지자 나는 국회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이 이유가 전부는 아니지만.


여전히 세상을 바꾸는데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일을 그만두고 쉬면서 망망대해에서 방황할 때도 항로를 결정하는 가장 최우선은 좋은 일을 하자였다. 방향을 재설정하고 노트를 높여보려고 했더니 코로나가 발목을 잡아 여즉 바다 한가운데에 떠있다. 그래서 소중한 일을 먼저 하고 있지 못하다. 상황에 맞게 이것저것 우선순위를 조정해본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 일을 하기 위한 준비과정에 속도를 내고 싶다. 2021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천지가 개벽할 일은 없을 테지만 그래도 새해는 뭔가 두근거리니까. 2021년은 소중한 일을 하는 한 해가 되길 바래본다.


42 공정여행을 떠난 적 있는가


사랑해 마지않던 과거의 여행지를 떠올려 본다. 총알이 부족한 학생 때는 현지 에어 비앤비나 숙소들에서 머물렀다. 돈을 벌고 나서는 아무래도 대부분 유명 호텔 체인에서 호캉스를 즐기기 바빴지만.

 

인도 여행 중에 들렀던 빵집이 생각난다. 수익 일부분을 고아원이나 학교에 기부하는 곳이었다. 동남아에서 성행하는 동물 서커스나 체험쇼는 일절 가지 않았다. 우리나라보다 물가가 낮은 나라에서 물건을 구입할 때는 바가지가 아닌 이상 제값을 주고 물건을 사곤 했다. 파나마에서는 카리브해의 수많은 섬 중 한 곳에서 지내기도 했는데 그 여행상품은 섬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의 주요 수입원이었다. 


내가 찾은 공정여행의 의미를 적어본다. 

'공정여행은 우리가 여행에서 쓰는 돈이 그 지역과 공동체의 사람들에게 직접 전달되는 여행이자, 우리의 여행을 통해 숲이 지켜지고, 사라져 가는 동물들이 살아나는 여행을 말합니다.'


여행을 통해 숲이 지켜지고 동물들이 살아나는 여행이 과연 있을까 싶다. 비행기를 통해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상상해보라. 'Flygskam(플뤼그스캄)'이라는 스웨덴어 단어가 유행하고 있다는데 환경을 파괴하는 비행기를 타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의미라고 한다. 비행기는 자동차의 3배, 기차의 약 20배에 달하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비행기를 타는 행위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너무나 가슴 아픈 수치다. 


하루빨리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열차가 달릴 수 있기를(보고 있나 김정은), 탄소 배출을 줄이는 비행기가 만들어지기를 바래본다. 코로나 때문에 2024년까지 여행하기는 힘들다고 하니 공정여행은 아니지만 여행으로 배출하는 탄소는 줄일 수 있겠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다음 여행에서 공정여행의 모든 기준을 충족시킬 자신은 없지만, 나만의 공정여행의 표본을 만들어 보아야겠다. 


43 최고의 선물은 무엇이었는가


핸드폰도, 노트북도, 외출도, 자유도 허용되지 않던 고등학교 생활을 버티게 한 것은 엄마와 주고받은 편지들이다. 인강을 듣겠다며 컴퓨터실에서 몰래 타닥타닥 거리면서 쓰던 글들은 아직 메일함에 간직하고 있다. 서울로 대학에 와 이런저런 고민이 많을 때도 엄마는 매일 전화를 하면서도 가끔 메일로 안부를, 걱정을, 응원을 담아 보냈다. 어딘가로 여행을 떠날 때도 엄마는 꼭 편지를 써주곤 했다. 지금도 종종 열어보는 편지들은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힘을 주는 에너지 드링크가 되어준다. 엄마 아빠가 마포에 아파트를 선물해줬다면 최고의 선물로 꼽았으려나. 아직까지는 어떠한 물질적인 것보다 엄마의 정신적인 부분들이 담겨있는 것들이 가장 최고의 선물로 각인되어 있다. 이렇게 말하니 호크룩스 같기도.


일주일 전쯤 엄마가 단체 카톡방에 뜬금없이 편지를 보내왔다. 

안녕? 아가들아. 이 엄마는 21년 새해 계획을 또 세워보는구나. 코로나 시대로 당분간은 조용한 상태가 이어질 것 같고 해서 몇 년 동안 게을리한 독서계획도 세운다. 그중 한 권이 ‘생의 한가운데’이고. 낭이가 읽은 건지 유자가 읽은 건지 밑줄이 제법 많이 그어져 있더구나, 거기다 이 엄마도 또 밑줄을 그어가며 읽는구나.  (생략)

엄마의 서평인 듯 서평 아닌 서평 같은 글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엄마와 주고받은 편지를 책으로 내보자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나와 동생의 육아일기는 엄마의 일방적 편지일테지만. 작가가 꿈이었던 엄마를 위해 열심히 글감을 전해주는 딸이 되어야겠다. 2021년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우리 가족 모두에게 아주 소중한 선물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44 목 놓아 울어본 적 있는가


별명이 수도꼭지인 사람은 퍽 하면 우는 것이 일상이다. 슬퍼서, 화나서, 기뻐서, 좋아서, 벅차서. 이유는 제각각이다. 곡성을 보고도 운 사람이 여기 있다. 곽도원이 산에서 효진이를 애타게 부르며 찾는 장면에서 어찌 울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는 행위는 스트레스를 해소해준다. 특히 회사에서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때. 4년 전 승진 문제로 굉장히 분했던 적이 있다. 부글거리는 화를 털어버리기 위해 퇴근 후 침대에 홀로 앉아 엉엉 울었다.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혼자서 말 그대로 목 놓아 울었고 기분은 조금 나아졌으나 후유증이 꽤 있을 것 같으니 데이트 코스를 잘 짜오라는 경고도 던졌다. 이즈음은 뭔가가 조금씩 다 어긋나면서 원하던 선택을 강제로 포기해야 하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시기였다. 우울과 분노가 번갈아가면서 나를 갉아먹을 때이다. 한 시간가량 떨어진 곳에 사는 친구를 새벽에 불러내기도 했다. 친구는 기꺼이 택시를 타고 여의도로 와주었다. 이 자리를 빌려 꽁치님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러나 정말 목 놓아 울어야 할 것 같은 때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할머니를 화장장 너머로 보낼 때는 슬픔이 울음음 잠식했다. 너무너무 가슴이 아파서 울음이 목 너머로 흘러나오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엉엉 목 놓아 울고 나면 후련함과 동시에 멋쩍음이 찾아온다. 이렇게까지 울 일이었나 싶기도 하다. 다행히 아직까지 목 놓아 울 일이 그다지 없었다. 지금도 자주 울기는 하지만 대성통곡이라기보다는 또르륵 흐르는 눈물에 가깝다. 언젠가 슬퍼서가 아니라 너무 벅차고 기쁜 일이 생겨 목 놓아 울 수 있기를 바란다. 기뻐서 목 놓아 우는 장면은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럴 만한 목표를 만들어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


45 당신의 인생을 선택했는가


원하는 것을 모두 다 선택할 수는 없었다. 경제적인 이유로, 나의 재능과 노력이 부족해서. 이유는 다양했다. 그럼에도 가능한 선택지들을 어찌어찌 자의로 골라서 지금까지 굴러왔다. 어렸을 때는 선택할 수 없었던 선택지들에 화가 나기도 했다. 머리가 굵어지면서 내 노력으로 넘어설 수 없는 상황을 탓하지 않기로 했다. 조금은 성장했다. 재작년까지는 잘못된 선택들을 가슴에 담고 말 그대로 땅을 치며 후회했었다. 그 선택들도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 일부분이라고 인정하기로 했다. 과거의 나는 그 선택을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 혹은 차선이라고 생각했겠거니, 하고 나를 믿기로. 한 발짝 더 성장했다.


얼마 전 과학상식 유튜브에서 자유의지란 없고 이미 유전자 프로그램이나 뇌의 알고리즘에 따라 행동한다는 썰을 듣기도 했다. 앗, 사실은 내가 선택한 것들이 아니라니. 뇌 과학에 세계에 다시 한번 빠져드는 순간이다. 어찌 됐든 이것도 정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으니 나는 내 생을 스스로 선택해왔다고 믿고 있다. 


가끔은 선택이 자유로운 상황이 버겁기도 하다. 모든 책임을 결정을 내린 나 자신이 져야 된다는 의미니까.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책임을 회피하고 싶어 선택지를 애써 모른 척하고 싶어 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당장의 두려움이 버거워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한다. 기왕이면 하면 할수록 더 재미가 있고, 그에 비례해 내가 성장하고, 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선택들을 해나가길 바란다. 그 선택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가슴이 설레는 그런 것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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