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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시가은리 Feb 20. 2022

사랑하는 우리 할머니

주말에만 삽니다 Episode 5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던 순간을 맞은 날,

2022년 2월 9일(음력 1월 9일) 수요일. 내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던, 무서워했던 순간을 맞았다.


하나 뿐인 할머니의 영면 소식.


태어날 때부터 쭉 함께하며 맞벌이하시던 부모님 대신이었고 친구였던 우리 외할머니. 할머니가 영원히 떠나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어 부정하던 일이었다. 정정하셨을 때도 혹여나 만약 내가 멀리 가 있는 사이 할머니가 갑작스레 떠나셔서 마지막을 보지 못 할까봐 유학의 기회들도 포기했었다.


그 정도로 내 인생에선 할머니를 빼 놓을 수 없을만큼 큰 의미였다. 그래서 가끔 내게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어떻게 해야하는지 유언같은 이야기들을 하셨는데 항상 그런 일은 아직 안 일어난다고 부정하며 듣고 싶지 않아했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는 걸 아는 나이지만 나와는 아직 상관없는 줄 알았다.


3년 전 사고로 병원에 가신 후부터 항상 휴대폰에 부모님 연락처가 뜨면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하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첫 목소리 톤을 듣고서 안심했는데 이 날도 그랬다. 오후 2시쯤, ‘갑자기 낮에 무슨 일이지? 설마’했는데 떨면서 간신히 말씀하시는 엄마의 목소리에 믿기지 않았다. 온갖 생각이 다 났다.


마지막이라도 볼 수 있을까 싶어 급히 내려가는 내내 할머니께 했던 마지막 약속이 떠올랐다. 2주 전쯤 코로나라 면회금지였던 상황에서 딱 한번 면회가 가능했던 날이 있었다. 나와 동생을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셨는데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한 후, 할머니께선 좋아지셨다고 했다. 그 약속때문에 지금까지 기다리셨던 건 아닐까하는 생각에 너무 죄송하고 후회가 밀려왔다. 다시 면회하게 해달라고 부탁이라도 해볼걸..


바로 기차타고 내려와 들은 바로는 오후 1시쯤 편하게 가셨다고 했다. 부모님도 이미 돌아가신 후 연락받았다고 하는데 어찌 해볼 도리도 없이 조용히 혼자 떠나셨던 것 같다. 부모님은 그 전날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아 할머니를 뵈었는데 할머니는 엄마를 허공보듯 하염없이 보기만 하셨다고 했다. 부모님은 그동안 이런 고비가 많았기에 이렇게 빨리 가실 줄 모르고 우리에게 연락하지 않았다고 하셨다.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원망으로 남아있는 버팀목인 부모님과의 시간을 망치고 싶지 않아 그런 감정을 지웠다.


하얀 리본을 머리에 꽂고,

처음 해보는 직계 가족으로서의 장례

첫 날은 다시 돌아오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사를 지내는 게 아닌,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의학이 발달되지 않았다보니 병풍 뒤에 있던 시체가 깨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첫 날은 제를 지내지 않고 기다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영정사진이 앞에 있었지만 다시 오시지 않을까 하는 아주 작은 기대로 가만히 있었다. 잘못했던 생각만 떠올라 울컥하기도 했지만 그런 걸 좋아하시지 않을 거란 생각에 추억을 떠올리려 애썼다. 그러다 밤엔 잠도 오지 않고 온갖 생각에 눈물만 나서 남몰래 계속 눈물을 닦았다.


둘째 날, 죽음을 받아들이고 염습을 한 후 제사를 지내는 날이라고 했다. 이 날 드디어 할머니를 뵐 수 있었는데 처음 보는 메이크업과 너무 차가워진 살결에 낯설게만 느껴졌다. 믿기지 않았는데 머리카락을 만진 순간 ‘할머니 맞구나’라는 게 느껴졌다. 할머니가 파마하거나 머리 감고 난 후와 비슷했다. 계속 만지니 따뜻해져서 다시 깨어나실 것 같았다. 모두 한마디씩 전하고 돌아와 절을 두번씩 하는 제사를 지냈다.


‘진짜 돌아가셨구나’하는 생각에 현실감이 들었는데 곡소리를 내는 순서가 되자 나도 모르게 할머니와 나만 아는 이야기가 스쳐 지나가면서 멈출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증조할머니 장례식 후였나

할머니 : 나는 누가 아이고 아이고 해주나~

 : 내가 해주지. 근데 요새는 그런 거 안 해.

할머니 : 왜 요새도 다 해. 근데 그렇게 소리가 작아서 어따 써 아이고 아이고는 다 들리게 크게 해야 해


할머니와 항상 같이 잤는데 잘 때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보니 모든 게 할머니와의 추억으로 얽혀있었다.


콜라를 봐도 ‘할머니가 탄산 먹지 말랬는데’

머리 묶을 때도 ‘할머니가 머리 깐초롱하게 하랬는데’

패딩 지퍼가 찝혔을 때도 ‘안 되는 게 어딨어 다 돼라고 하셨는데’


그럴 때마다 울컥해서 크게 숨을 들이마시면서 가라앉혔다. 그리고 밤새 향초를 지키면서 할머니와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할머니가 해주신 이야기, 추억을 다 적어두었다.


셋째 날, 삼일장의 마지막 날로 화장하고 발인하기 위해 아침부터 준비했다. 할머니가 늘 말씀하신대로 머리를 깔끔하게 묶은 후 영정사진을 들고 앞장섰다. 빈소에 있을 땐 그래도 할머니가 곁에 계신 것 같았는데 이제 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화장 과정을 보는데 저 뜨거운 곳에 홀로 들어가신 할머니를 보니 마음이 아프고 죄송했다. 차마 이후룰 볼 자신이 없어 멀찍이 있었는데 할머니의 진짜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가까이 갔다가 오래 전 척추 수술로 갖고 계셨던 철심이 할머니임을 다시 증명해주며 마지막 모습을 잊지 못하게 했다. 이후 발인하면서 손바닥만한 한지에 쌓이게 된 할머니를 보게 됐는데 허무함이 느껴졌다. 인간은 흙으로 간다는 말을 실감한 채. 우리는 할머니 뜻에 따라 절에 모시고 난 후, 주말 내내 유품 정리를 했다.


사실 장례식에서 웃고 떠드는 게 이해가지 않았다. 슬픔에 잠긴 채 엄숙해야 하며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게 위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반대였다. 우리 가족은 오히려 계속 할머니 이야기를 하며 할머니를 잊지 않기 위해 서로가 가진 추억을 공유했다. 나는 모두가 기억하길 바라면서 끊임없이 나만 알고 있던 할머니 이야기를 꺼냈고 웃긴 얘기엔 웃으며 할머니를 기억하려고 애썼다. 그렇게 얘기하다보면 할머니가 곁에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지금은 49재를 지내는 과정이다. 할머니가 가끔 얘기하시던 대로 장례와 유품정리를 했는데 잘 한 게 맞는지 모르겠다.


할머니 나 잘 한 거 맞지?

할머니 키워줘서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해.


우리 할머니 꼭 좋은 곳으로 가게 해주세요.


2022년 2월 둘째주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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