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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앨리스 May 12. 2020

파란만장한 시작

 


 중학교 3학년 2학기를 한참 지나고 있던 무렵, 엄마가 나한테 말했다. 우리는 미국에서 살게 될 거라고. 처음에는 별생각이 없었다. 아니 별의별 생각들이 다 떠올랐다. 한 달 전에 비행기가 부딪혀 건물이 무너진 곳에 간다고? (처음에 미국에 간다고 해서 뉴욕에 가는 줄 알았다. 그리고 내가 가게 될 LA이랑 뉴욕이 서울에서 부산 거리쯤 되는 줄 알았다.) 또, 난 생각보다 학교를 재밌게 다니고 있었기에 학교를 그만두는 것이, 친구를 못 만나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영어를 못하는데 어떡하지? 가면 저절로 잘하게 되나? 물론 새로운 세상에 간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그건 단지 흥미에 불과했고, 정확히 내가 미래에 만나게 될 새로운 것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그려본 것은 아니었다. 아, 왠지 모르겠지만 내가 가게 될 그 나라는 숙제와 시험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그 좋은 곳으로 가는구나'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헛된 희망이었지만 말이다.

 
 일주일 뒤, 나는 학교에서 자퇴를 했다. 그래서 한국의 기록만 따져보면 사실 초졸이다. 그리고 그다음 주에는 동생과 손잡고 (진짜 손잡은 것은 아니지만) 로스엔젤레스행 비행기를 타게 됐다. 일주일 전에 자퇴할 때만 해도, 처음 타는 해외로 나가는 비행기를 엄마도 아니고 동생이랑 단둘이 이렇게 빠르게 일주일 만에 가게 될 줄은 몰랐다. 물론 그때는 어린 나와 내 동생이 몰랐던 (모른척했던) 어른들만의 사정이란 게 있었던 것 같다. 아빠는 이미 한 달 전쯤에 미국에 가 있었고, 엄마는 우리를 뒤따라 일주일 뒤에 도착했다.


 엄마와 같이 공항에 도착해서 탑승수속을 하고, 엄마와 헤어져서 남동생과 둘이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서 짐 검사를 하고, 게이트를 찾아서 기다려 비행기를 탔다.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 비행기를 타는데 어떻게 그렇게 잘했나 싶어 내가 참 대견하다. 사실 그냥 중학교 3학년이지만 중2병의 패기로 어떻게든 해냈었던 것 같다.


 비행기 안에서는 중학생 둘만 비행기를 타는 것을 알고 승무원 언니들이 매우 잘 대해주었던 기억이 있다. 근데 이 기억은 원래 승무원 언니들이 친절하다는 것을 비행기를 처음 탄 내가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여하튼 비행기를 내릴 때, 승무원 언니들이 좋은 여행 되라며 면세점 비닐가방에 말랑말랑한 사탕들은 한가득 넣어서 주었었다.


 엄마가 출발하기 전에 나에게 당부했던 말이 있었다. 도착해서 거기 사람들이 여권 달라고 하면서 왜 왔냐고 하면 무조건 '투어(tour)'라고 말하라고 말이다. 한 달 전쯤에 9.11 테러가 있었기 때문에 미국행 비행기가 많이 뜨지도 않았을뿐더러, 외국인들이 미국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우리도 거주할 수 있는 비자를 받을 수 없어 대신 여행 비자를 간신히 받아 비행기를 탔었다. 여하튼 엄마는 우리가 미국에서 입국 거절당할까 봐 아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엄마가 얼마나 당부를 했는지, 나는 승무원 언니들한테도 여행이라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미국에 온 목적을 숨겨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 부분이 재미있는 부분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영어강사를 할 때, 내 수강생들 중에 이 이야기를 못 들은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엄마의 당부대로 누구를 만나든 투어를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입국심사 대기 줄에 서 있었다. 우리 차례가 돼서 나와 내 동생은 입국 심사대에 섰고 입국 심사하는 흑인이 나에게 뭐라고 영어로 이야기를 했다. 중2병의 자신감이 있었지만 곧 처음으로 가까이서 본 흑인이 나를 쳐다보는 눈빛과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나는 일명 쫄았다. (나는 흑인을 좋아한다!) 그래서 난 엄마가 시켰던 대로 기계적으로 계속해서 외쳤다.


“!%#$%$%!%#?” 

“투어!”

“^%^&*(*^$#$%^?”

“투어!”

“!$%^$#@#$%^&*()(*&”

“투어!”


그분이 뭐라 하든 나는 계속해서 “투어!”를 외쳤다. 말이 안 통해서 답답했던지 나에게 손짓으로 내 가방을 가리키며 네모 모양을 만들어냈다. 여권을 달라는 것이었다... 여권 달라는데 계속해서 여행! 을 외쳤던 것이다. 나는 정말 쪽팔려서 죽고 싶었다. 여권을 주고 이어진 대화도 이런 식이었다.


“(여권) 고마워, 네가 미국 온 목적이 여행인 건 알겠고 언제가?”

“투어?”

“여행인 거 아는데 언제 돌아가냐고? 돌아가는 티켓 줘봐?”

“투어?”


지금 생각해보면 입국심사에서 일하는 게 극한 직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을 것이며 그때마다 얼마나 답답할 것인가. 그렇다고 소홀히 할 수도 없는 일이지 않은가. 어쨌든 그분이 이제 거의 소리 지르듯이 '티켓! 티켓!”이라 말했고 난 내가 가지고 있던 돌아가는 왕복 티켓을 보여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에게 6개월짜리 방문 비자를 내어 주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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