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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버른앨리스 Dec 11. 2017

번외_나...강연이라는 것을 하였어

코트라 잡담회에서 내가 한 강연 스크립트를 공개해볼게!



나...강연이라는 것을 하였어.

저번 주에 코트라에서 주최하는 JOB담회 라는 해외 취업에 관련된 세미나에 초청되어 짧은 강연을 했어.  

나 울렁증이 엄청 심하거든. 이게 말을 잘 못하는 건 아닌데, 나는 말보다는 글이 훨씬 편한 사람이야. 이상하게 전화통화도 못하고,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걸 잘 못했어. 그래도 가게를 하게 되면서 미팅을 진행할 일이 잦아지면서 울렁증이 조금 고쳐지기는 했는데 가까운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거랑 생판 모르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건 천지차이잖아. 

그래서 엄청 걱정했었는데 그 날 모인 친구들이 잘 들어줬고 그래서 생각보다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어. 



이번에 4회 차를 맞은 잡담회는 워홀러와 유학생들을 위해 코트라에서 주최한 행사였어.

그래서 호주에서의 취업과 비자 등의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20대의 친구들이 청중의 대부분이었어. 몇 년 전의 나도 똑같은 위치에서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고 지금도 진로에 대한 고민은 ON-GOING 중이라 친근하고 가깝게 느껴지더라.


부끄럽지만, 그 날의 스크립트를 브런치에 공개해보려고 해.

가방끈도 짧고, 잘난 것도 없는 내가 처음 강연자의 역할을 맡았던 그 날. 

호주에서의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20대의 친구들에게 내가 그 날 들려준 이야기를 브런치 친구들에게도 함께 나눠볼게. 건방지고 주제넘은 이야기가 있더라도 편하게 들어줬으면 좋겠어!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제 이름은 앨리스라고 하구요. 

저는 멜버른 시티에 위치한 한식 비스트로 수다를 운영하는 오너 쉐프예요. 저희 팀은 얼마 전 로열 멜버른 병원 앞에 네모라는 이름의 2호 점도 오픈하였고 지금은 자리 잡는 상태에 있어요. 이 두 개의 가게를 운영하는 것이 본업이고, 그 외로는 이민에 관련된 에세이 연재로 공모전에 당선이 돼서 출간을 앞두고 있는 상태입니다. 


저는 올해로 35살, 83년 생이고요 호주에 온지는 올해로 9년이 됐어요. 

호주에 오기 전에는 많이 힘들었어요. 집이 가난했거든요. 17살 때부터 알바하던 맥도날드 매장에서 메니져까지 근무를 했고 백화점, 레스토랑, 사무보조 같은 일들을 했어요. 취업을 하려고 했는데, 토익도 본 적이 없고, 지방 전문대, 평점 1.7이라서 중소기업도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도망치듯 워킹홀리데이를 왔어요. 영어라도 제대로 배우면 어디라도 취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죠.





제 워홀은 특별한 점은 전혀 없었어요.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한 채로 와서 8불 받고 한인식당 알바하고 매일 같이 일하는 친구들과 술만 먹고 그랬어요. 그런데 워홀이 반쯤 지난 후에 ‘영어를 배운 것도 아니고 한국 가면 뭐 먹고살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차피 한국가도 아르바이트하고 살 텐데, 그럴 바에는 돈 조금이라도 더 주는 여기서 하는 게 낫지 않나, 일이 년 더 있어볼까 한 거예요. 그래서 막판 6개월은 주 70시간씩 일해서 비자랑 학비를 겨우 마련했어요.  

그렇게 힘들게 요리 학교에 들어갔는데, 바로 사건이 터지더라고요. 제 바로 앞에서 부족 직업군에서 요리가 아예 빠진 거예요. 동기들 중 반은 자기 나라로 돌아갔고,  벌써 27살인데, 늦기 전에 돌아가서 아무 데나라도 취업을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싶었던 기억이 나요. 


처음부터 요리사가 되고 싶어서 요리 전공을 한 건 아니었어요. 

한국에서 홀 메니져로 오래 일을 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친숙했고, 회계, 간호 같은 다른 직종은 영어가 너무 부담되기도 해서 요리를 선택하게 됐어요. 그런데 막상 학교에 들어가 보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조리복을 입는 순간부터 설레고 좋았어요. 내 칼도 생기고 교수님들 요리하는 걸 보고 따라하는게 무슨 드라마같고,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더라고요. 좋으니까 열심히 하게 되고 실력도 늘게 되고 일하는 곳에서 인정받으면서 더 재미있어지고.. 처음으로 무언가 해내고 있구나 싶었어요. 그렇게 정신없이 2년을 보내고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 직장은 도클랜드의 큰 레스토랑이었어요. 

학생 때 막내로 시작해서 쿡, 파트장, 수쉐프, 헤드쉐프까지 천천히 진급을 하였고 과분한 연봉으로 스폰서 비자까지 들어갔는데 457 브릿징 중에 갑자기 회사가 부도가 난 거예요. 출근을 했는데 쇠사슬로 가게 문이 닫혀있더라고요. 10개의 레스토랑의 300명의 사람들이 졸지에 실업자가 됐어요. 저는 거기다가 비자까지 잃게 된 거죠. 포기하고 돌아가려다가 겨우 아이엘츠를 봐서 졸업생 비자를 받았어요. 


다음에 일하게 된 곳은 팔리아먼트 앞 5성 호텔인 윈저였어요. 

연회 파트와 비스트로 1년 반 정도 근무를 했어요. 스폰서 비자를 진행하였지만 건강상의 문제도 있었고, 사내 문화가 맞지 않아서 이직을 하게 되었어요. 


마지막 직장은 크라운이었고 직책은 룸서비스, 조식 뷔페 총책임자였어요. 

크라운 메트로폴이 호주 내에서 객실이 가장 많은 오성 호텔이거든요. 많은 숙박객을 관리하는 일도 어려웠고 이끄는 팀의 규모도 훨씬 커서 힘들었지만 그건 괜찮았는데 비자가 또 문제더라고요. 457은 해주겠는데 영주권은 향후 몇 년간 안 해준다고 하는 거예요. 그때 이렇게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라고요. 세 번이나 비자를 진행하다가 엎어지게 되면서 고용주한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알아서 비자를 해결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나중에 혹시 모르니까 가게 보는 안목도 기를 겸 가게 자리를 한번 보러 다녀 보자, 한 거죠. 


지금 수다 자리는 정말 완벽히 망한 베트남 쌀국수집이었어요. 

한번 둘러보러 갔었는데 부동산에서 사기를 치는 바람에 얼떨결에 계약을 한 거죠. 명백히 사기계약이라 파기도 가능했지만 저희가 가진돈으로 인수 가능할 만큼 망한 가게가 또 나올 것 같지도 않고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라면 힘들어도 지금 해보자, 하는 마음에 그냥 진행하게 됐어요. 인테리어를 할 돈이 없어서 엎을까 할 때 기적처럼 인테리어 업체 솔트를 만나서 인테리어를 지원받게 되었어요. 은인과 같았던 솔트와는 지금까지 동업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함께 2호점을 오픈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호주에서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씀드려 보았구요, 지금부터는 본론으로 들어가서 제가 그 과정 속에서 느끼고 배운 점에 대해서 여러분과 한번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저는 한국과 호주에서 요식업에만 16년을 근무했어요.  

맥도날드 알바부터 시작해서 홀과 키친의 거의 모든 직책을 거쳐서 지금의 오너 자리까지 저는 몇백 장의 이력서를 뿌렸고 몇천 장의 이력서를 받았거든요. 그러면서  '구직'이라는 주제를 놓고 제가 생각해본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사람의 관점은 어쩔 수 없이 자기중심적이다, 이 말부터 시작하고 싶어요. 

누구나 내 관점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 내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걸 상대편에서도 똑같이 느낄 거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에요. 고용인 입장도 마찬가지예요. 예전 사장 중에 먹을 거 잘 사주고 거기에 대해 자부심이 엄청난 사람이 있었어요. 매일 밥 사주고 술 사주고 하면서 나 같은 사장이 어딨냐, 했었는데 사실 그거 고맙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솔직히 저희는 그 돈으로 깔끔하게 기본시급이나 챙겨 주고 제시간에 집에나 보내주지 싶었죠. 나중에 이야기해보니 이 사장은 처음 와서 너무 외로웠고 힘들었던 거예요. 그래서 본인은 ‘타지에서 정 붙일 수 있는 가족적인 곳’에서 일하고 싶었던 거더라고요.


쉐프생활을 할 때 메니져가 한국분들한테 이력서를 받으면 저한테 보여줬거든요. 어느 날은 물어보더라고요, 왜 이 친구들은 호주에 관심이 많고 문화를 경험하고 싶은 것을 자기소개에 쓸까? 심지어 영어를 배우러 여기 왔다는 말은 왜 하는 거지? 나는 외국인 친구를 구하는 게 아닌데, 이상하다는데 딱히 할 말이 없는 거예요. 제 워홀 때 이력서가 딱 그랬거든요. 제 입장에서는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고 한국을 배우고 싶은 외국인 친구에게 더 호감이 갈 것 같고 그런 사람들이랑 일하고 싶을 것 같은데 그건 저와 이력서 주인들의 생각이었던 거죠. 


한국에서 서비스를 아주 오래 했다는 친구가 수다에서 트라이얼을 했어요. 

무릎을 꿇고 응대를 한다거나, 무조건 손님의 요구는 예스여야 한다거나 하는 고집이 저희 팀에는 맞지 않아서 고용되지 않았죠. 나중에 인연이 닿아서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저 정말 친절한데 왜 저를 안 뽑았죠?’ ‘얼마나 숙이고 얼마나 더 웃어야 언니 기준에 닿을 수 했나요?’ 하더라고요. 사실 저는 '덜' 친절하길 바란 거였거든요.

그 친구가 뽑히지 않은 이유는 간단해요. 본인의 틀에 갇힌 ‘좋은 서비스’에만 집중하다 보니까 정작 저희 ‘가게가 추구하는 서비스 스타일’을 보지 못한 거예요. 저는 손님과 동등한 입장에서 친근하게 다가가는, 부담스럽지 않은, 자연스러운 서비스를 원했고, 그 친구는 제가 무언가 불만족한 듯할수록 더 굽신거리고 더 웃으면서 한국식 서비스를 한 거죠. 완전히 반대방향을 서로 보고 있던 거예요.


레스토랑마다 추구하는 가치와 스타일이 틀릴 수밖에 없어요. 

특히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호주에서는 ‘틀’이라는 것이 더더욱 없죠. 그래서 나의 ‘틀’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나 보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이런 분위기의 레스토랑 혹은 호텔에 이런 업무라면 어떤 사람이 어울릴까? 내가 이런 곳을 운영하는 오너라면 어떤 사람을 매력적으로 생각할까? 를 생각해보는 거예요. 구직자가 다 다른 사람인 것처럼 업체들도 다 다른 성격이라는 것을 기억하기, 내 관점의 틀에서 벗어나 생각해보기. 이게 제가 첫 번째 드리고 싶은 말씀이에요






저는 개인적으로  사람에게는 자존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이번엔  저희가 호주에서 돈을 벌면서 당당하게, 자존심을 지키며 일하기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게요.

한국과 비교했을 때 호주는 직업의 귀천이 별로 없어요. 수다는 법원 근처라 점심 손님들은 대부분이 변호사 판검사거든요. 매일 보다 보니까 개인적으로 친해진 사람들도 많아요. 병원 근처인 네모의 손님은 의사분들이 많고 그분들과도 저희는 잘 지내고 있어요. 검사, 의사 앞이라고 해도 한 번도 저희가 더 낮은 위치라고 느껴본 적이 없어요. 이유는 사실 간단하거든요. 기본 상식을 제대로 갖춘 상태에서 각자 하는 일을 제대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저자세가 될 이유가 없는 거예요. 의사라도 의사일을 못하면 무시당하고, 청소부도 누구보다 자기의 일을 멋있게 하면 존중받는 곳이 저는 호주라고 생각해요. 


베지테리안, 베건, 넛 알러지, 글루텐프리가 뭔지 알고 계시는 분 계세요? 

이 개념들은 음식을 다루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숙지해야 할 기본상식이지만 한국에는 아직 보편적이지 않아서 모르는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호주에서 음식을 만들고 팔면서 이런 건강과 안전에 직결되는 상식을 모른다는 건 한국에서 한식당에서 외국인이 일하는데 한식의 아주 기본도 모르는 것과 같아요. 나는 한국인도 아닌데 내가 왜 이런 걸 배워야 해? 한국인들이 이런 알러지로 아프던 말던 나는 외국인이니까 몰라도 돼. 하지만 나는 한국에 있는 식당에서 일은 해서 돈은 벌고 싶어.라고 말하는 외국인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한국과 호주의 식문화는 많이 틀리기 때문에 당연히 모르는 게 많을 거예요. 

하지만 여기서 너무 기본적인 것들, 예를 들면 소비엣이 냅킨인걸 못 알아듣는다거나, 레드와인에 얼음을 담아준다거나, 메뉴에 대해 설명을 못한다거나 하는 사람을 은근히 무시해요. 식당에서 일해서 무시하는 게 아니고 소통이 안되고 맡은 일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에 무시하는 거예요. 사실 트레이닝을 제대로 못한 업체의 책임이지만, 무시당하고 자존심 상해야만 하는 것은 손님을 응대하는 직원인 거죠. 


마음만 먹으면 정보들은 넘치게 있어요. 인터넷에서 조금만 찾아보면 이런 호주만의 커피 스타일, 요식업계에서 쓰는 영어, 알러지 인포 등을 쉽게 찾을 수 있거든요. 저 같은 선배들을 이용해도 좋구요. 요식업에서 근무를 하고 계시거나 취업을 준비한다면 가게를 위해서가 아니고 본인의 자존심을 위해서 기본을 공부하셨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무엇'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언제나 불분명하고 변하잖아요. 

하지만 ‘어떻게'는 - 자유롭게, 안정적으로,  치열하게, 소박하게, 이타적으로, 창의적으로 살고 싶다, 등등 - 더욱 본질적인 문제라 잘 안 변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우리가 어떤 직업을 꿈꾼다는 것은 그 직업의 어떤 모습 속에 우리가 원하는 삶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거든요. 예를 들면 누군가 회사원이 되고 싶다는 것은 ‘회사원’이 꿈이라기보다 안정적인 삶이 꿈일 확률이 높아요. 요리사가 되고 싶은 것은 활동적인 현장에서 치열하게 사는 삶을 원하는 것이겠죠. 그래서 막연히 무엇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잠시 멈춰 서서 '어, 근데 내가 그게 ‘왜’ 되고 싶지?'를 한 번쯤 스스로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제 주변에 창의성을 발휘하며 살고 싶어서 그래픽 디자이너가 된 친구가 있었어요. 하지만 정작 직장에 들어가니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상업적인 디자인만 반복하고 진절머리가 난다는 거예요. 요리사들 중에서도 이런 사람들이 많아요. 자신의 음식을 먹어주는 사람들에게 정성 담긴 내 요리를 해주고 싶어서 이 길을 택했는데, 커머셜 쿠커리라는 게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잖아요. 공장처럼 다량의 일정한 레시피를 반복하는 게 이 쪽 업계의 주된 일이에요. 생각했던 그림이랑 너무 다르다고. 몸도 힘들고 보람도 없다며 그만둔 친구들을 수도 없이 봤어요. 


자영업을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한테 왜냐고 물어보면 ‘자유롭고 얽매이지 않게 살고 싶어서’라고 대답해요. 

그럴 때마다 저는 한숨부터 나와요. 사실 자유롭고 싶은 사람이 가장 하면 안 되는 직업이 자영업이거든요. 24/7 신경의 한 부분은 언제나 가게를 향해있는 삶이에요. 휴가를 어쩌다가 받아도 무슨 일이 터지지는 않을까 마음이 불안하죠. 하지만 보여지는 모습은 화려하고 자유롭죠. 그게 제 스스로도 남들 앞에 보여지고 싶은 모습이기도 하구요. 과시욕같은 거예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어떤 직업을 고려할 때는 그냥 그 직업의 단편적인 모습에 속지 마시고 

보고 싶지 않은 뒷모습까지 꿰뚫어 보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진로를 정하는 길목에 서서 잠시 왜 그게 되고 싶은지, 그 직업을 통해서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리고 그 직업이 그걸 진실로 가져다줄 수 있을지? 이런 걸 한번 고민해 보면 좋을 것 같다는 말이 제가 진로에 관해 첫번째로 드리고 싶은 말씀이었습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에 좋은 일, 나쁜 일도 생기 잖아요.

근데 그게 진짜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그때는 알 수가 없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어요. 저를 예를 들면, 한국에서 취업이 안됐기 때문에 호주를 올 수 있었고 제 인생에서 가장 좋은 일이었어요. 또 요리로 이민을 쉽게 올 시기를 놓쳐서 많은 경력과 높은 영어점수가 필요해서 힘들었지만, 그걸 준비하면서 저도 모르게 기본기를 탄탄히 쌓을 수 있었어요. 다니던 회사가 망하고, 457 비자가 계속 엎어지고 했기 때문에 점점 더 좋은 곳에서 일을 할 수 있었고, 심지어 사기 때문에 수다를 시작 헸어요. 돌아보면  와, 진짜 망했다 싶었던 순간들이 사실 기회였던 적이 많아요. 그때는 결코 알 수 없고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니 그렇더라고요. 나를 좌절하게 만드는 일들이 결국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는 지나 봐야지 아는 것 같아요. 그러니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어요. 이 기회가 지나가도 다음 기회가 올 거라고 믿고,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생각보다 사람은 강하고 인생은 유연하거든요.





이건 가끔 ‘영주권이 목표’라고 말하는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제가 해주는 말인데. 

이민도 그저 하나의 관문일 뿐이더라는 거예요. 영주권은 입시나 취업과 비슷한 한 과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진짜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라는 말을 드리고 싶어요. 왜 고3 때는 원하는 대학만 들어가면 그다음은 잘 풀릴 거 같잖아요. 원하는 회사만 들어가면 잘 살 거 같은데 그렇지 않아요. 그 후 갈길이 첩첩산중이에요. 그런 것처럼 영주권을 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후에 이민자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어떻게 밥벌이하면서 살지가 더 중요한 거 같아요. 적성에도 맞지 않는 일을 하면서 어떻게 영주권은 땄는데 그다음부터는 갈팡질팡하는 케이스를 많이 봤거든요. 마치 전공은 아무거나 해도 돼, 하는 생각으로 대학교 이름만 향해 달려간 수험생과 비슷해요. 막상 들어가기는 했는데 맞지 않으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숨 가쁘게 뛰다가 목적지에 다다르니까 이게 뭐지, 허무하다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이 문을 여는 것에만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이 문을 열고 내가 가고 싶은 세상은 어떤 곳인지, 내가 원하는 삶은 어떤 것인지에 더 초점을 맞추기, 그게 제가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이에요.




제가 여태까지 한 이야기는 선배 입장이라기보다 같은 청년층으로서

 고민하고 있는 이야기를 공유한 거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20대 때 저는 진로 고민은 그때까지만 하게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지금이 더 고민이 많아요. 전 요식업으로 얼마나 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늘 있거든요. 지금은 현역으로 뛰고 있지만, 언젠가는 체력도 감각도 떨어질 텐데 그땐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생각하면 밤에 잠이 안 와요. 30대가 끝이 아니겠죠. 60대가 돼도 은퇴한 후에는 뭐를 하고 먹고살아야 하지 하는 고민을 할 거예요. 누구나 평생 하는 고민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어차피 평생 해야 할 고민이라고 생각하시고 조금 느긋하게 플랜을 짜셨으면 좋겠어요. 

사람이 조바심이 들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흐려지거든요. 초반에 힘 빼지 말고 우리 모두 페이스 조절을 하면서 걸었으면 좋겠어요. 이야기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답글은 원래 하던 대로 반말로 주고받으면 더 좋을 거 같아!! 나도 그게 편하고, 언니 거나 오빠 거나 친구 거나 동생일 너도 그게 편할 거야, 하다 보면!! 물론 존대가 편하면 그렇게 소통해도 좋아 :-)


****기존 독자들은 이미 익숙한 이야기일 거야! 다시 읽게 돼서 지루하다면 사과할게.

뱉어내듯이 그냥 적었던 이야기들을 출간을 염두에 두고 다시 편집 정리하는 중이야. 쏟아내듯이 써 내려간 이야기들이 뒤죽박죽이더라고. 그래서 조금 더 가독성 있게 정리하고 다듬어서 다시 차례차례 올려보려고 해.

많이 응원해줘서 고마워! 가게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답글도 답장도 잘 못하지만, 잘 챙겨보고 있어. 이민에 대한 고민도, 궁금한 점도 다 그때그때 대답해주고 싶은데도 여건이 안될 때가 많아.

그래도 재연재를 시작하면서 다시 마음 잡고 열심히 해볼게. 훨씬 더 매끄럽고 읽기 좋은 글들이 될 거야!


*** 멋진 사진들은 멜버른에서 활동하는 사진작가 '김수빈' 님의 작품이야!!

***공유는 출처를 밝힌다면 어떤 방식으로도 괜찮아!  



ALICE`S INSTAGRAM   :   ALICEINMELBOURNE

사진작가 수빈'S INSTAGRAM   :   SBIN_

SUDA`s INSTAGRAM :  SUDAMELBOURNE  (멜버른에 있는 앨리스 팀 첫 번째 레스토랑)

NEMO`s INSTAGRAM : NEMOMELBOURNE (멜버른에 있는 앨리스 팀 두 번째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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