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멜버른앨리스 Aug 10. 2018

호주 대형마트 울월쓰와의 앵무새 대첩 #2



저번에 말했듯이 나는 프로불편러로서의 본분을 소홀히 하지 않고 

호주의 초대형 슈퍼마켓 체인인 "울월쓰"와의 전쟁을 시작했어. 


 <앵무새 전쟁이 뭔지 궁금한 사람 밑에 링크 참조!>

https://brunch.co.kr/@alicemelbourne/171


후세에 길이길이 남을 '수다 vs 울월쓰 앵무새 대첩'(ㅋㅋㅋㅋ)은 수다의 공식 홈페이지와 호주 내 한인 커뮤니티 등을 타고 타고 무려 10만 뷰를 찍으며 논란과 의문을 야기시켰어. 처음에는 대충 마무리하려고 '앵무새 모이 재고가 한 박스 남았길래 매장에서 임의로 나눠준 거뿐이다'라고 했지만 울월쓰에서 일하는 직원이 직접 댓글로 그건 회사 방침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말을 하여서 오히려 더 큰 공분을 샀어. 10만 뷰를 찍는 동안 한 명도 같은 경험을 한 (랜덤으로 나눠주는 앵무새 모이를 받은 경험) 사람이 없었는데 한 명이 본인의 조부모가 앵무새 모이를 받았다고 했고 그게 공교롭게도 영어를 못하는 어르신이어서 우리의 의문은 커져만 갔지. 




일주일 간의 치열한 공방 끝에 우리는 울월쓰 측의 사과와 사내에서 다시 조사를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 냈고 매장 메니져가 직접 전화를 해서 사과를 하고 상황을 설명을 하는 것으로 종지부를 찍었어. 





그리고 이 과정 동안 호주 커뮤니티와 공방전 중 내가 느낀 점들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서 호주 친구들과 한국 교민 동료들과 나누며 앵무새 대첩을 마무리했어. 긴 여정이었어. 얼마나 에너지 소모가 컸던지 며칠 동안 밥도 잘 못 먹고 잠도 잘 못 잤던 거 같아. 글로 정리하며 마무리하고 MOVE ON 할 수 있어 다행이야.

 




< 페이스북 발췌 / 한글 번역본 >


울월쓰 QV 메니져에게 연락을 받았어.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은 하였지만 불편할 요지가 충분히 있었음을 인정한다며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하였고 본사의 서비스 메니져에게도 연락을 하게 할 거라고 말했어. 사실 이렇게 크게 공론화시켜서 논란을 일으켜 조사를 시행하게 하여 누군가에게 책임이 있는지를 색출하고 처벌을 하려는 것은 우리가 원하던 바가 전혀 아니야.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에서 울월쓰 측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상황을 종료하려고 해. 며칠 동안 '인종차별의 정의'를 가르는 논쟁의 장이었던 우리 수다의 페이지는 이제 다시 원래의 기능을 회복하고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거야. 수다의 다정한 손님들과 소통하는 역할 말이야.


그 앵무새 모이가 어떠한 의미가 있는 선물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졌어. 확실한 건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울월쓰가 설명한 것처럼 한 박스 남아서 굴러다니길래 나눠준 거뿐이라고 해도) 울월쓰 처럼 거대하고 영향력 있는, 호주를 대표하는 기업이 하는 일은 조금 더 신중하고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는 거야. 어떤 행동이던 설명이 가능한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이번 사건으로 봤듯이, 작은 일 - 누군가는 아예 신경도 안 쓰는 사소한 일들 - 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고 큰 논란의 씨앗이 될 수가 있어. 악의 없는 무심한 말과 행동들이 상대편에게는 인종차별이나 성차별로 느껴질 수 있어. 세계 최고의 성숙한 다문화 도시에서 사는 우리들은 다양한 문화를 공유한 만큼 조금 더 서로를 대할 때 조심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어. 개인 대 개인을 넘어서 조직이 개인에게 하는 일이라면 더 더욱이.


이게 우리, 작은 아시안 레스토랑의 작은 팀인 우리가 울월쓰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였고 그 메시지가 전달이 되었다고 믿으니 우리는 우리의 본업으로 돌아가서 더 열심히 일할게. 





이 일을 나는 세 군데의 각기 다른 성격의 페이지에 공유를 했어. 


첫 번째는 호주 내 한인 페이스북 정보공유 페이지(한국인들이 100%)
두 번째는 나의 개인 페이스북 (한국인 반, 다양한 국적 외국인 반)
그리고 마지막으로  SUDA의 페북 (호주인 대부분)


뜨거운 반응인 것은 세 군데 똑같았지만 그 온도차랄까, 성격은 모두가 다르더라. 한국인들은 거의 99퍼센트, 공감하였고 공분했어. 그리고 외국인 중에서 백그라운드가 NON-ENGLISH SPEAKER인 사람들도 같은 반응. 공감과 공분.
그리고 태어날 때부터 영어를 써온 NATIVE ENGLISH SPEAKER들은 반 이상 ‘그래, 이상한 일이기는 한데 인종차별은 아닌 거 같은데? 너무 예민하게 굴고 작은 일을 크게 들쑤시는 거 아니야? 피해의식 있는 거 같은데?’라고 말했어. 흥미돋았고, 이상했고, 슬펐어.

그래, 인종차별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해. 정확하게는 인종이 아닌 ‘언어로 인한 차별의 가능성’이니까 인종차별이라는 단어가 맞지 않을 수 있어. 하지만 난 이게 의문인 거야, 인종의 차별과 언어의 차별, 이 둘은 과연 다를까. 다르다면 어떻게 다를까?


나는 공감하지 못하는 호주인들이 아주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정말 좋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더 이런 일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대부분의 호주 사람들은 성숙하고 열려있기 때문에 그런 일들은 좀처럼 벌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본인도 성숙하고 또한 성숙한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는 사람들. 그런 일들 - 언어 장벽을 조롱하고 차별하는 일들 - 을 설마, 설마 멜버른에서 대놓고 하는 일이 벌어질 거라는 일을 상상하기 힘든 사람들.

그들은 가해자로서의 그들을 상상도 할 수 없기 때문에 피해자로서의 그들 또한 상상할 수가 없는 거야. '누군가는 그렇게 잔인할 수 있다' 만큼이나 ‘나 또한 그런 입장에 처할 수가 있다’는 공식 자체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NON-ENGLISH SPEAKER들이 두려워하는 것들을 이해할 수가 없어. 입장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공감 또한 할 수 없겠지.


‘영어를 못해서 조롱을 당하고 멍청해 보이고 놀림감이 되고 위험에 처했을 때 나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면 어쩌지? 취객이 옐로 몽키라고 할 때에는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호주인들이 한국이나 일본을 여행을 할 때 하는 ‘영어가 안 통해서 불편하면 어떡하지?’ 와는 완전히 다른 성격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 수가 없어. 나의 호주 친구들은 한국에 갈 때 ‘내가 한국말을 못해서 멍청한 백인이라고 사람들이 조롱하면 어떻게 하지?’라고 걱정하고 무서워하는 일은 없어. 여행의 불편함을 걱정할 뿐이야.


  ‘영어가 안 통해서 여행이 불편하면 어떡하지?’ 


불편함과 두려움은 틀려. 그리고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작지만, 분명히 특권이라고 생각해. 
호주에 오는 한국인들은 음식을 주문할 때 아무리 엉망이라도 힘겹게 영어를 써. 반대로 한국에 오는 호주인들은? 한국에서도 영어를 쓰지. 알아듣기 위해 얼굴 시뻘게져서 노력하는 것은 한국 현지인들이야. 
메이저 언어를 쓴다는 것은 정말 편리하다는 것을 떠나서 작은 특권이고 작은 특권을 태어날 때부터 누린 사람들은 그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거야.





9년 전 멜버른에 왔을 때 나 또한 영어를 한 문장도 제대로 만들어 내뱉지 못하는 워홀러였어.
윌리엄 앵그리스 앞의 작은 스시집에서 아침부터 스시를 말고 청소를 하며 호주 생활을 시작했지. 어렸던 나는 호주가 좋았고 영어가 배우고 싶었어. 어느 날 청소를 하고 있던 중 한 무리의 호주 20대 친구들이 들어왔고 나에게 뭐라고 엄청 빨리 말을 거는 거야. 한 명이 천천히 말해도 들어먹을까 말까 한 테 여러 명이 빠르게 말을 하니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내 당황한 얼굴에 그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어. 그중 한 아이가 아주 다정하게 내 손을 잡으며 물었어.


Are you a deaf?


나는 DEAF가 무슨 뜻인지 몰라서 ‘Sorry? Pardon? So.. rry?’라고 계속 되물었는데 그녀도 물러서지 않고 계속 다정하게 같은 질문을 반복했어.


So, You are deaf. Right? Are you? Are you, dear?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에 당황한 나는 빨리 상황을 모면하고 싶어서 YES라고 말했고 그들은 한참 동안이나 배를 잡고 웃었어. 나중에 친구에게 DEAF의 뜻을 물어보고는 하루 종일 울었던 기억이 나.

그 후에도 아주 여러 번 이런 일들이 반복되었어. 심지어 나는 나의 레스토랑의 계약도 일종의 사기 계약을 당한 거였거든. 영어와 호주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어리숙함을 이용한 부동산 업자에게 제대로 당했었지.


펍에서 갑자기 나를 잡고 ‘DOGGY STYLE’ 좋아하느냐고 묻길래 나는 강아지 좋아하냐 묻는 줄 알고 그렇다 했는데 마구 웃으며 ‘이래서 아시안 여자가 좋다’고 말했던 사람들. 무슨 뜻인지 물으니 ‘JUST AN AUSSIE JOKE’ 니까 집에 가서 구글 해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사람들. (뒤로 하는 거 좋아하냐는 뜻이었음.) 8년 전의 나는 밤길을 걸을 때면 술 취한 사람들과 눈이 마주칠까 봐 바닥만 보고 걸었어. 누군가 나를 때리는 것보다 조롱을 당할까 봐, 그런데도 영어를 못하니 아무 말도 못 할까 봐 난 그게 더 무서웠어. 


이런 일들은 나는 지금도 가끔 겪어. 도서관에서 한국 책을 빌려 나올 때 

'너는 내 세금으로 멜버른에서 한국어책보니까 나한테 감사하지? 커피 한잔 살래?'

 라고 하며 데이트 신청(?)을 하던 사람. 두 레스토랑을 하는 내가 세금을 매년 얼마씩 내는지 그는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웃으면서 장난을 치려고 다가왔다가 ‘어, 너 영어 할 줄 아네?’하며 지나가는 사람들, 정말 있어. 대부분의 선량한 호주인, 너네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많이. 그리고 그런 사람들도 사실 본인은 착한데 짓궂은 면이 있다고 생각하지 절대 본인들이 인종차별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포인트야. 그냥, 언어 차이가 재미있으니까 장난 좀 칠 수 있지, 웃기면 되지 뭐 어때. 뭘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




나는 아직도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해. 

이 글들을 영어로 작성해서 페이지에 올리는 동안 나는 영어에 완벽하게 능숙한 팀 멤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 하지만 괜찮아. 나는 지금은 알거든. 완벽한 영어를 못한다는 사실이 나를 멍청하게 만드는 건 아니야. 나의 영어는 완벽하게 유창하지 않지만 친구를 만들고 깊은 대화를 나누고 내 사업체를 두 개 운영하는데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충분해. 괜찮아 나는. 나는 영어가 완벽하지 않은 대신 완벽하게 자연스러운 한국어를 아름답게 말하고 쓸 줄 알아. 영어를 100% 못 알아들을 때 나 자신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지지 않아. 지금은. 그래 지금은. 그리고 괜찮아 지기까지 나에게는 9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어.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어떠한 메이저 언어를 쓴다는 것은 편리함이 될 수는 있어도 권력이 되어서는 안 돼. 영어를 쓰지 않는 사람들은 그저 다른 문화의 다른 언어를 쓰는 것일 뿐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야. 영어를 못하는 것은 그 사람이 멍청하거나 하등 하다는 뜻이 아니야. 

호주인들이 한국말을, 혹은 중국어를 못한다고 해서 멍청한 것이 아니듯이.





나는 멜버른을 정말 깊이 사랑해. 

로컬 비지니스로서, 멜버른의 음식 문화의 한 부분으로서 이 도시에서 함께 공존할 수 있다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해. 그리고 대부분의 호주 사람들, 내 주변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문화에 열려있고 존중할 줄 아는 성숙한 시민인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 멜버른의 다정한 사람들이야 말로 내가 멜버른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기도 하니까.
영어를, 영어를 쓴다는 것을 과도하게 자랑스러워하고 그 힘을 남용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말이야. 한국에서 누군가가 ‘호주는 인종차별이 심해?’라고 말할 때 나는 언제나 ‘아니야. 다문화가 잘 정착되어 있어서 심하지 않아. 그리고 멜버른은 더더욱 시민의식이 성숙해’라고 말해. 언제나, 늘.


하지만 그 말은 멜버른이라고 완벽하다는 말은 아니야. 아직도 어두운 면은 생각보다 많은 구석구석 남아 있고 그것은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아. 인종차별 주의자가 극소수라는 말은 당하는 피해자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 운이 나빠서, 그저 운이 나빠서 내가 이런 일을 여러 번 겪었고 주변에서 이런 일들을 아직도 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이런 비슷한 일들, 겁먹고 영어를 못했던 어린 내가 겪었고 누군가 겪고 있는 일들이 줄어들기를 희망하는 마음이 용기가 되었고 나는 이제나마 목소리를 내게 되었어. 이제라도 목소리를 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내가 사랑하는 도시 멜버른인 멜버른을 누군가는 끔찍한 도시라고 기억하는 일이 없기를. 서로 존중하며, 약한 자를 배려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멜버른의 문화를 내가 계속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기를 바라며, 긴 글을 마칠게.


모든 다양한 의견들 다 감사하게 들었어.

이야기 들어주고 함께 공감해주고 의견 나눠줘서 고마웠어!






영문 버전 < 호주인들의 반응과 댓글들을 볼 수 있어! >

https://www.facebook.com/restaurantsuda/posts/1142910402513467



나.. 부끄럽지만 출간했어! 기사도 났다! 축하해줘!

ㅋㅋㅋㅋ그나저나 댓망진창은 여기도...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01&aid=0010255794&sid1=001



놀러와! :-)


앨리스 (개인 인스타) :  ALICEINMELBOURNE  (앨리스 팀 첫 번째 레스토랑)

SUDA (공식 인스타) :  SUDAMELBOURNE  (앨리스 팀 첫 번째 레스토랑)

NEMO (공식 인스타): NEMOMELBOURNE (앨리스 팀 두 번째 레스토랑)





*답글은 원래 하던 대로 반말로 주고받으면 더 좋을 거 같아!! 나도 그게 편하고, 언니 거나 오빠 거나 친구 거나 동생일 너도 그게 편할 거야, 하다 보면!! 물론 존대가 편하면 그렇게 소통해도 좋아 :-)


**출처를 밝힌 공유는 언제나 환영이야! 따로 물어보지 않아도 돼 :-)




https://brunch.co.kr/magazine/your-migrant


 https://brunch.co.kr/magazine/aussienews

 

매거진의 이전글 번외_나...강연이라는 것을 하였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