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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버른앨리스 May 03. 2018

에필로그 - 막연한 동경도, 이유 없는 두려움도 없이



이민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그림이라고 하면

보통 화려한 외국생활 혹은 험난한 외국 생활인 것 같아. 

우리가 보통 미디어를 통해서 보는 모습이 그렇잖아. 아주 성공해서 매스컴을 타거나 아니면 마약중독이나 카지노 노숙 등의 이슈로 매스컴을 타거나. 

사실 이런 게 이상한 게 아니거든. 한국에서도 보통 방송 타는 사람들은 되게 멋있거나 무언가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인 경우가 많으니까 이민자들의 모습을 미디어에 담을 때도 비슷하겠지. 


크게 성공했거나
크게 실패했거나. 


이런 둘 중 하나의 이미지가 기억에 더 짙게 남은 나의 친구들은 난데없이 이민을 간 내가 둘 중 하나로 (엄청 잘살거나 엄청 못살거나) 산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신기했어. 사실 한국의 30대의 보통의 삶과 비교했을 때 나는 그 중간 정도 거든. 그리고 9년 동안 멜버른에서 사는 동안 나는 굉장히 화려한 사람도, 굉장히 초라한 사람도 거의 본 적이 없어.  이 곳 멜버른은 나 같은 보통 사람들이 사는 특별할 것이 없는 마을이야. 

당연히 소수 비율의 그사세 (그들이 사는 세상)도 존재하겠지만 대부분은 나, 그리고 내가 인터뷰를 했던 20명의 청년 이민자들과 비슷해. 여유롭게 보여도 분명히 치열하게 고군분투했던 배경이 존재하고, 반대로 전쟁같이 사는 것 같아도 나름대로 틈틈이 여유도 즐기면서 살고 있어. 


세상 어느 곳에나 있는 30대 40대들처럼 말이야.








호주에 오기 전, 열심히 알바 전선에서 외로운 전투를 하던 나는 갑갑했어. 

분명히 나름대로는 열심히 살고 있는데 제자리걸음은커녕 뒤쳐지는 듯한 기분을 털칠 수가 없었어.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 진짜 리셋할 수만 있으면 리셋 좀 하고 싶다고 생각했지. 예고된 내리막길을 묵묵히 걸어가기 전 단 한번 기적 같은 일이 벌어져서 다른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꿈꿨어. 

완전히 다른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 

내가 꿈꾸는 인생 리셋, 완벽한 새 출발에 가장 근접한 이미지가 바로 그 이민이라는 단어였어.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그 상큼한 단어. 이민.



와, 진짜 이민이라도 가야 하나?
야, 이민 갈래?
진짜 한국 싫다. 이민 가고 싶어.



입만 열면 해외생활, 이민을 들먹이면서도 나는 내가 무슨 말하는지도 몰랐어.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간단히 쉽게 입에 올릴 수 있었을 거야. 이민이란 게 무엇이고, 얼마나 많은 관문을 넘어야 하는 일인지, 내 인생을 얼마나 송두리째 바꿔놓을지 나는 몰랐기 때문에 그 단어는 쉬웠어. 이민의 무게를 간접적으로라도 느껴본 적이 없는 나에게 그 단어는 가벼웠어. 직장인이 휴가와 여행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버티듯 나도 이민이라는 섬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버텼어. 청량하고 평화롭고 신비한 이민이라는 섬에 대해 자꾸자꾸 말하고 싶었지. 그렇게 자꾸자꾸 새로운 세상에서의 새로운 나를 그렸고 다시 지웠어.


그게 나의 '이민'이었어. 

나의 이민은 암울한 현실에서의 도피였고, 실체 없는 막연한 동경이었어.








나와 가장 친한 친구 M도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고만고만한 10대와 20대를 보냈어.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 중 가장 착하고 싫은 소리 못하고 여린 이 친구는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눈을 낮춰서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갔는데 안타깝게도 일이 정말 적성에 안 맞았어. 그 친구가 가진 장점은 성실함과 티 없이 순수하고 긍정적인 성격, 사람을 의심하지 않고 곧이 곧대로 믿는 강직함이었는데 그것들은 오히려 그녀의 단점이 됐어. 눈치도 없고 직장 내 정치도 못하고 유도리없이 일만 할 줄 아는 만만하고 멍청한 애라는 딱지가 붙더라.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절대 변명하지 않는 내 친구의 우직한 성격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생겼어. 팀에 안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책임의 화살을 받는 희생양이 돼서 끊임없이 조리돌림을 당했어. 

이렇게 안 맞는 일을 또 찾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이 친구는 정신과 상담을 지속적으로 받으면서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했고 천천히 자리를 잡고 돈을 모았어. 


그리고 이민을 생각했지. 

내 영향이 컸을 거야. 성실함이 무기인 단순한 애들, 우리같이 할 줄 아는 건 열심히 일하는 거밖에 없는 애들은 성실한 노동이 인정받는 호주가 답이다, 그렇게 힘들어할 바에는 넘어오라고 하는 내 이야기를 그녀는 귀 기울여 들었고 가끔씩 깊게 생각하는 듯했어.

어느 날 견디지 못해 퇴직을 한 그녀는 넘어진 김에 쉬어가려 한다며 내가 있는 멜버른으로 왔어. 그리고 그녀는 멜버른에서 지내는 한 달 동안 정말 매 시간을 행복해했어. 시장에서 장을 보고 공원에서 책을 읽고 길거리를 걷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참 오래간만에 그 순수하고 밝은 모습을 찾았지. 멜버른의 생활을 오롯이 즐기고 평안해 보이는 그녀를 보며 나는 다시 한번 마지막으로 이민을 권유했어.

우리는 오래간만에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M은 솔직하게 말했어.


계속 흔들렸던 건 사실이야. 네가 호주에 있고 내가 언제든 가면 도와주겠다고 하고. 네가 다시 시작해서 새롭게 잘살고 있는 거 보면 부럽기도 하고 좋아 보이니까. 그런데 알잖아. 나 겁 많은 거. 
넌 내가 이해가 안 될지 몰라도 무서워서 난 못 와. 영어도 못하고, 적응 못하고 돌아가면 다시 시작하기도 힘든 나이기도 하고. 가끔 그때 너랑 같이 워홀 왔으면 어땠을까, 아니면 조금이라도 일찍, 20대일 때 에라 모르겠다 하고 왔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볼 때도 있어. 그때 왔으면 지금처럼 무섭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야.
그래도 힘들 때마다 생각해. 네가 살고 있고 내가 언제든 쉬러 와도 되는 이 도시가 나한테는 마음의 도피처 같은 거야. 이거면 충분해. 한국에서 사는 거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아. 



나에게 이민이 실체 없는 막연한 동경이었다면

그녀에게 이민은 실체 없는 막연한 두려움이었던 거야. 








조건과 상황이 비슷한 친구 2명이 비슷한 시기에 이민을 고민하고 있었어. 

고만고만한 동네 친구들이라 모두 비슷하게 돈도 없고 딱히 기술이나 가진 게 없었어. 

유학을 하던 중 그들과의 술자리에서 이민을 이야기했는데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관심을 가지더니 끝에는 극명하게 다른 결론을 내리는 거야. 



A : 에이, 돈도 없고 뭐 대단히 배운 거도 없고 뭐 가진 게 없는데 뭘 믿고 이민을 가냐?

B : 돈도 없고 배운 거도 없는데 한국에서 뭘로 먹고사냐? 경쟁 덜한 데로 나가는 거밖에 답이 없지



B는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나름대로 만족하며 살고 있어.

A는? 한국에 남아서 직장생활 중이야. 은퇴 후 여유로운 동남아 이민생활을 꿈꾸며.


이민을 해도 될까? 아니면 안 될까?

고민이 되겠지만 정답은 절대 없어. 1000% 주관적이고 개인적이야. 

우리의 20명의 청년 이민자들이 나름대로 잘살고 있는 이야기가 네가 이민을 와야 하는 이유도 아니고 어떤 사람들의 실패담이 네가 이민을 포기해야 할 이유도 아니야. 같은 조건과 상황이라고 해도 네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움직이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100% 틀릴 수 있거든. 

어떤 조건이 어떻게 작용할지는 아무도 몰라.


20명의 동료 이민자들 중에 누가 봐도 좋은 커리어를 가지고 잘살고 있는 사람도 많았어. 커리어와 위치만 보고 인터뷰를 청하고 그들을 만나러 가기 전에는 나는 그들이 원래 상황과 조건이 받쳐준 상태에서 이민을 온 줄 알았거든. 놀랍게도 정반대인 경우가 많았어. 누가 봐도 악조건이고 힘든 상황에서 악이 받치고 부끄럽지 않게 돌아가겠다는 오기가, 타지에서의 극한 결핍에서 온 욕구가 이른바 헝그리 정신으로 승화되어서 본인도 몰랐던 잠재력을 끌어냈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었던 거더라고. 이미 가진 조건으로 잘 풀린 케이스는 의외로 드물었어. 돌이켜보면 9년 동안 내가 본 유학과 이민이 흐지부지되고 시간만 버리고 돌아간 경우 중에는 부잣집에서 모든 걸 지원받고 넉넉한 상태에서 온 친구들이 오히려 많았어. 어차피 힘들게 영어 배우지 않아도 먹고사는데 지장 없고 현지 임금을 받는 좋은 일을 빨리 구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보니 발전이 더딘 거지. 나는 안되면 돌아가면 돼, 이런 생각이 나태함의 씨가 되더라. 궁핍할수록 먹고살려면 언어가 필수가 되고, 일을 많이 하게 되는데 그게 또 이민의 경력으로 이어지고 하다 보니 가난의 덕을 보는 일도 심심찮게 있어.

아예 영향이 없다고는 못하지만 '수저'의 힘은 한국에서 멀어질수록 조금은 약해지는 것 같아. 


어떤 조건이라서 이민이 되고 안된다는 객관적인 지표는 개인의 선택 속에서 아무 의미 없어. 





이민을 결정하기 전

많은 성공사례를 접할 때 간혹 보이는 실패담도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되도록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많은 정보를 수집하기를 바래.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상대 문화를 많이 접하고 애정을 쌓았으면 좋겠어. 객관적으로 남들이 아무리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해도 나와의 케미 (?)가 안 맞으면 아무 소용없거든. 애정이 생기는 곳이 있다면 그곳에 대해 많은 사전조사를 거쳤으면 좋겠어. 최대한 긴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이!


무엇보다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을 모두 똑바로 바라보려는 용기가 필요해.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막연한 동경, 혹은 이유 없는 두려움이라는 색안경을 벗을 수가 없어. 두려움과 동경의 색안경이 우리의 시야를 가릴 때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되잖아. 그러면 좋은 판단을 할 수가 없어져.  


나에게는 이민이 동경이었고 현실에서의 도피였지만 

너에게는 네 스스로 더 나은 환경의 미래를 선택하는 과정이기를 바래. 






멜버른 시내, 그리고 요식업계, 나의 두 레스토랑 안에서만 맴돌던 나의 시야는

이번 인터뷰 연재로 정말 지뢰 찾기에서 알맞은 버튼을 누른 것처럼 확 넓어졌어. 아직도 치유하지 못한 꼬여버린 자격지심으로 누군가가 잘살고 있으면 분명히 부잣집, 아니면 좋은 학벌, 인맥 같은 배경이 뒷받침됐을 거라고 지레짐작해야 마음이 편했는데 그런 버릇이 고쳐지더라. 누구나 희로애락의 롤러코스터를 타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치열한 삶 속에서도 웃을 일을 찾아가면서 사는구나를 느꼈어.  


매주 낯선 누군가와 매번 깊고 본질적인 대화를 하고 그 대화록을 다시 편집하면서 곰곰이 생각을 하는 시간들, 정말 감격스러울 정도로 좋았어. 레스토랑 운영이라는 바쁜 시간 중에 잠잘 시간은 다 뺏기고 몸은 너덜너덜 너무 힘들었지만 그래도 매 순간이 좋았어. 이 귀한 이야기들을 듣고 옮길 수 있는 영광이 내게 와준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20주를 보냈고 마지막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감사하는 마음이 충만해. 


인터뷰에 응해준 너무나도 멋있는 20명의 이민자 동료들에게.

귀한 기회를 제공해 준 다음 브런치 편집자님들께.

그리고 연재 내내 응원을 해주고 모자란 글을 읽어준 독자분들께


말로 다 전할 수 없는 감사함을 전하며.

이 글들로 조금이라도 경제적 수익이 생긴다면 우리 모두의 이름으로 꼭 환원하도록 할게. 

너무 즐거웠고 행복했어. 




그동안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다음 메거진으로 만나요!




https://brunch.co.kr/magazine/movetoaustralia


https://brunch.co.kr/magazine/bluemelbourne




놀러와! :-)


앨리스 (개인 인스타) :  ALICEINMELBOURNE  (앨리스 팀 첫 번째 레스토랑)

SUDA (공식 인스타) :  SUDAMELBOURNE  (앨리스 팀 첫 번째 레스토랑)

NEMO (공식 인스타): NEMOMELBOURNE (앨리스 팀 두 번째 레스토랑)





*답글은 원래 하던 대로 반말로 주고받으면 더 좋을 거 같아!! 나도 그게 편하고, 언니 거나 오빠 거나 친구 거나 동생일 너도 그게 편할 거야, 하다 보면!! 물론 존대가 편하면 그렇게 소통해도 좋아 :-)


**출처를 밝힌 공유는 언제나 환영이야! 따로 물어보지 않아도 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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