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유학업으로 일하는 이야기
꼰대.
요즘 귀찮은 사람들 입을 틀어막기 가장 효과적인 말들.
뭐야. 꼰대야?
아우, 꼰대 같아.
꼰대 되고 싶어?
어른이 되어가는 우리 모두가 함께 앓고 있는 증후군 - 꼰대 포비아.
요식업 특성상 언제나 동생들과 일하는 30대 중반, 피터팬 증후군 말기인 나는 '언니 나이 먹더니 고리타분해졌네, 꼰대 같아. 누나랑 이제 말 안 통해. 꼰대 됐어!'라는 말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야. 그래서 언젠가부터 내가 지금 꼰대질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듣기 싫은 잔소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선을 넘어서 참견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꾸준히 자기검열을 하고 있는 사람이야.
늘 가볍고 편한 농담 따먹기, 듣기 좋은 이야기만 하는 쿨한 언니,
같이 놀면 재미있는 앨리스, 권위 없이 편한 앨리스, 알누나.
언제부터인지 나는 동생들에게 가벼운 친구 같은 보스가 되었고 나쁘지 않았어. 싫은 소리 안 하고 안 듣고 쿨하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사이. 좀 찜찜하기는 해도 애들이랑 지지고 볶고 들러붙어서 싸우는 것보다 훨씬 편했고 듣기 싫은 꼰대 소리 듣는 것보다는 낫잖아. 이 정도 관계, 산뜻하니 괜찮네 싶었지. 닉과 준과 대화를 하기 전까지는. 그들과의 대화로 내가 깨달은 것은 왜 내가 편해서 좋다고 하면서도 무언가 찜찜하고 잘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느끼고 있는지, 근본적인 이유였어.
요새 내가 맺고 있는 관계들에서 결핍된 게 무엇이었는지 알게 된 거지.
오지랖 엄청 넓고 오만 쓰잘데기없는 참견은 다하고 다니는 언니, 누나.
씀씀이가 헤퍼서 학비를 못 모은 애는 월급을 차압해서 학비가 만들어지면 돌려주고 (이른바 알 적금) 일하는데서 다쳤는데 집에 안 보내준다고 하면 욕하면서 찾아가서 끌어내고 이상한 남친 만나서 신세 망칠 거 같으면 밤새도록 붙잡고 잔소리하고, 집에 데리고 와서 재우고, 새로 알바하는데서 무시한다고 하면 과자라도 잔뜩 사가지고 가서 보살피는 사장 언니가 있다는 걸 알리고, 영어 시험 보라고 공부하라고 설교하고 붙잡아놓고 공부시키고, 아빠한테 연락해서 용돈 끊게 한다고 협박하고.
언니가 뭔데, 우리 언니예요? 하는 말에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등짝 때리고 욕하고. 같이 울고, 싸우고, 끊임없이 잔소리하던 그런 언니, 누나였어.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내가 더 이상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도 모르는 채로 나는 변했어. 애들도 성인이니까 자기 일은 알아서 하겠지, 하면서 나는 외면하고 말을 아껴. 분명히 안 좋은 선택들을 연달아하는 걸 알면서도 그냥 양심에 찔리지 않을 강도로만 소극적으로 살짝 언급하고 말아. 분명 적극적으로 말리고 싶은데도 말이야.
나는 꼰대 소리가 듣고 싶지 않고 상처받고 싶지 않고 좋은 사람이고 싶어. 그래서 나는 더 이상 그런 알언니, 알누나가 아니야. 그리고 나만 생각하면서 사는 삶은 나름대로 편하고 안락해.
닉의 학생은 아니었고 나를 담당하던 언니가 그만두면서 닉을 알게 되었어. 하지만 그때는 졸업 바로 전이었기 때문에 나는 닉과 친해지지 못하고 학업을 끝마쳤지. 그렇게 인연이 끝난 것 같았던 닉과 나는 자주 엮었어. 내 남동생을 담당하던 유학원 형, 내 동생이 가장 힘들 때 나 대신 데리고 나가서 밥을 사주고 힘든 이야기를 들어주며 우울감에 허덕이던 동생을 수렁에서 끄집어낸 유학원 형이라는 사람이 닉이었고 우리 가게 메니져였던 제니가 고등학교 때 조기유학이 힘들어서 나쁜 길로 빠졌을 때 호주에 없는 부모님 대신에 학교 측에 사정하고 일을 수습했던 유학원 팀장님이 닉이었어.
아니, 밥을 사 먹이고 타일르고 잔소리를 하고 다시 학교로 돌려보내는 일을 왜 유학원 팀장이란 사람이 하는 거지? 그때는 몰랐어. 그냥 한가하고 오지랖 넓은 사람인가 보다 하고 생각하고 말았어. 심지어 그런 것도 다 고객관리, 마케팅일 거라고 생각한 적도 있어. 미안하게도.
유학업계의 멘토인 닉과 멘티인 준의 관계.
그리고 닉에게 배운 대로 학생을 대하는 준과 학생들의 관계.
그 순환의 고리를 보며 믿고 있었지만 잊고 있던 가치들을 다시 떠올렸고 아주 생각을 많이 했지.
그때의 내가 옳았고 지금의 나는 틀리다는 것을 깨달았어.
후배가, 동생이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붙잡아 주는 것. 꼰대 소리를 듣고 찡그리는 얼굴을 보더라도 해야 할 말을 하는 것. 누가 뭐라고 해도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것.
고지식하고 고리타분함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굽히지 않는 것.
필요한 쓴소리는, 반드시 하는 것.
꼰대가 되지 않는 것에 집중하다가 좋은 어른이 되는 것을 놓치지 않는 것.
이게 내가 믿고 있었던 것들이고 그게 나한테는 맞는 '선배가 되는 법'이야. 잊고 있었던 것들을 닉과 준 덕분에 다시 깨닫게 돼서 정말 다행이야. 다시 느꼈어, 정말 힘들지만 이 인터뷰 프로젝트는 참 잘한 일이야.
많은 이민자들이 종사하고 있는 곳이자 유학을 통한 이민자들, 유학생들, 워홀러들이 적어도 한 번은 거쳐가는 곳 유학원. 하다 못해 프린트라도 한 장 하고 길이라도 물으려고 오며 가며 들리게 되는 곳 - 동네 유학원. 모든 학생들에게 학교보다 가까운 곳이지만 모두가 스쳐지나기만 하는 플랫폼 같은 이 유학원이라는 곳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오늘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
좀 더 다양한 관점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유학원에서 극과 극의 위치에 있는 두 사람을 함께 인터뷰했어. 멜버른에서 가장 큰 유학팀의 수장의 역할을 하고 있는 최고참인 닉과 아직 한창 일을 배워가고 있는 주니어, 막내인 준이 보는 세상을 통해서 '호주에서의 유학'과 유학이라는 호주의 주요 산업을 조금 더 심층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
그럼 오늘도, 재미있게 읽어주길 바래! :-D
알 (알리스) : 안녕, 닉 그리고 준.
자기소개 먼저 간단히 해줄래?
닉 : 안녕, 반가워. 나는 닉이라고 해. 보통은 닉 팀장 혹은 현 팀장이라고 불리지. IAE 유학센터 멜버른 지점은 한국 회사이지만 일본, 중국, 베트남, 태국 등의 각 팀이 있고 또 유학 말고도 여행사와 법무팀 등 다른 분야들도 있거든. 나는 그중에서 한국 학생들을 유치하는 유학팀의 리더로 일을 하고 있어. 2006년에 이 일을 시작했으니 유학업의 경력은 올해로 12년이 됐어.
준 : 안녕, 나는 준이라고 해. 닉이 팀의 리더를 맡고 있다면 나는 막내를 맡고 있어. 올해로 경력은 3년 차야. 마케팅을 공부하면서 일을 병행하고 있어.
알 : 반가워, 둘 다. 그럼 먼저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건지부터 이야기해볼까?
닉 : 나는 2006년에 처음 학생 서포터로 일을 시작했어.
그때만 해도 스마트폰도 없고 인터넷도 아무데서나 되는 것도 아니고 학생들이 지금처럼 어느 정도 영어를 잘하는 게 아니어서 초기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많았거든. 그런 친구들의 적응을 도와주는 도우미인 거지. 멜버른 지사를통해 픽업신청을 한 학생들을 공항에서 홈스테이까지 데려다 주고, 은행에서 계좌여는거나 택스 파일 넘버 같은 거 신청하는 거 도와주고 홈스테이나 쉐어 하우스 구해주고.
그리고 일없을 때는 유학원 리셉션에 앉아서 전화카드 팔았어. 그때는 페이스톡, 보이스톡 이런 게 어딨어. 국제전화 하려면 전화카드 사서 충전해서 써야 했거든. 그런 잡다한 일을 하다가 학생들이랑 많이 친해지면서 상담을 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말단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올라와서 지금의 팀장 자리에 온 거지.
알 : 아, 그렇구나. 작은 유학 사무실 같은 경우에는 들어가서 수습 끝나면 바로 차장이니 실장이니 하는 직함 주고 그런다고 해서 나는 네가 그렇게 오래 밑에서부터 올라온 건지 몰랐어!
닉 : 으응, 그랬으면 나는 편했겠지. 하하.
사실 멜버른 사무실만 보면 그렇게 안 보이겠지만 보기보다 더 규모랑 체계가 있는 회사야. 1992년에 시작해서 지금은 강남구 역삼동 본사 빌딩을 중심으로 한국의 모든 주요 도시, 호주, 미국, 캐나다, 인도, 중국 등 전 세계의 80개의 지사가 있는 대형 유학센터거든. 멜버른에서도 우리가 아마 규모가 가장 클 거야. 그러다 보니 진급이 막 1,2년 안에 초고속으로 되고 그런 일은 힘들지. 나만 해도 실적은 언제나 탑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팀장 다는데 6년이 걸렸는걸.
알 : 그럼 준이 너는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한 거야?
준 : 이야기가 좀 긴데 짧게 말해볼게.
나는 원래 다른 유학원 학생이었어. 다른 유학원을 통해서 홈스글렌이라는 학교에서 치기공 코스를 2년을 듣고 졸업을 했지. 그때 비자 대란이 일어나서 요리는 물론 치기공도 영주권 학과에서 빠진 거야. 진짜 관심도 없던 치기공을 오로지 영주권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겨우 끝냈는데! 너무 허무하고 암담한 거지. 유학원을 찾아가서 나를 관리해주신 분께 나 어떡하냐, 너무 힘들다, 어떻게 해야 하냐 하소연을 했는데 그렇게 친절하고 좋은 시던 그분이 딱 그러시는 거야.
선준 씨, 내가 선준 씨 형도 아니고. 알아서 해야지 힘든걸 왜 나한테 와서 그래요.
나는 유학원의 추천으로 시작해서 같이 등록하고 했고 또 전문가니까 뭐라도 조언이라도 해줄 수 있을 줄 알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찾아갔는데. 충격을 딱 받고 여기는 안 되겠다 해서 다른 곳을 찾다가 닉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닉의 학생이 된 거야. 다음 코스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진짜 형처럼 엄청 걱정해주면서 오만데 다 알아봐 주고 밥 사주고 내 하소연 다 들어주고 따끔하게 혼내주고 하는 거에 감동을 받았지. 시간 날 때마다 힘들 때마다 엄청 찾아가서 계속 귀찮게 했어. (사실 그때는 이렇게 바쁜 사람인지 몰랐어. 나 같은 애들이 몇백 명 있는 줄 몰랐었지. 지금은 그걸 아니까 미안해서 말도 잘 못 걸어.)
그렇게 몇 년을 지내면서 내 붙임성과 오지랖을 눈여겨보던 닉이 어느 날은 이 쪽일 한번 해보지 않을래? 하고 제안을 했고 그렇게 이 일을 배우게 된 거야.
알 : 이 일을 무얼로 분류해야 하나, 어떻게 초점을 맞추고 인터뷰를 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한 거 같아. 잡다한 부가서비스와 학생 서포트를 제외하면 가장 큰 틀은 아무래도 유학인데 우리가 이 유학업을 뭘로 분류해야 할까? 다양한 유학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세일즈 혹은 상담직으로 봐야 할까, 아니면 학생들의 교육을 직접적으로 돕는 교육업이라고 봐야 할까?
닉 : 참 어려운 문제 같아. 어렵고 조심스럽지만 내 생각은 이래. 그 팀을 이끌고 있는 팀장이나 사장, 리더가 어떠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틀리다고 생각해. 음식점도 그렇잖아. 사장 마인드에 따라서 대충 아무렇게나 해서 돈만 벌면 되는 곳이 될 수도 있고 좋은 음식과 문화를 나누는 곳이 될 수도 있잖아. 팀의 색깔에 따라 방향이 결정되고 그 팀의 색깔을 결정하는 것은 리더인 것 같아.
알 : 맞는 말이네. 음식점도 그렇거든. 팀의 리더가 깊게 고민을 해서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아닌 경우가 있는데, 그게 레스토랑이 나아가는 방향을 결정짓는 건 이 바닥도 마찬가지야.
그러면 IAE 유학팀의 리더인 너는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데? 세일즈야, 교육산업이야?
닉 : 팀을 이끄는 매니저로서 세일즈를 무시할 수는 없어. 보험업처럼 실적도 있고 다른 지사들과 경쟁도 하거든. 그런 현실을 보면 세일즈 업이 아니라고 하기도 뭐하지. 하지만 나는 학생과 같이 간다는 마인드가 기본으로 깔려있다면. 그리고 어떤 갈림길에서 돈이나 실적보다 이 학생의 미래에 더 무게를 두고 결정을 할 수 있다면 그건 교육업이라고 생각하거든. 이 팀의 리더인 나는 우리가 하는 일이 교육업이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방향성으로 움직이고 있어.
어떤 부분에서 교육을 지향하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볼게. 호주에는 이른바 '비자 학교'들이 많아.
호주에 오래 체류하는 것만이 목적인 학생들과 쉽게 돈을 벌고 싶은 사업가들의 합작품 같은 거야. 학교를 한번도 가지 않아도 출석체크를 해주니까 그 시간동안 일을 할 수있어서 아주 인기가 많거든. 대부분의 유학원이 이런 비자학교에 학생을 보내고 있는걸로 알고 있어. 하지만 우리가 보내는 학교에는 그런 곳들이 한 곳도 없어.
내 학생들이 와서 '학교 안 가도 되는 학교'에 가고 싶다고 하면 '내가 밥은 사주고 힘들 때 이야기는 들어줄 텐데 학교 가야 하는 곳 아니면 넣어줄 수 없어. 미안하다.'라고 하고 돌려보내. 그런데 그런 친구들이 워낙 많이 오니까 우리 안에서도 저 친구들을 다 놓치면 손해가 엄청난데 이 쪽 시장도 이제는 고려해봐야 하는 게 아니냐, 대세를 어떻게 무시하겠냐 하는 직원들도 나오지만 나와 대표님은 그래도 학생은 학교에 가야 한다는 마인드야.
예전에 부실 직업학교들이 성업할 때 정부에서 감사를 크게 해서 문을 닫는 곳이 속출했던 때가 있었어. 학비가 싸다고 해서 등록을 했던 죄 없는 학생들만 난민처럼 이 곳 저곳 떠돌게 되고 시간과 돈만 낭비해야 했거든. 그런 일들을 미연에 방지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준 : 지금은 옛날보다 덜하지만 내가 학생일 때는 유학원에서 대부분 세컨드 비자를 연결해줬잖아. 더 있고 싶은 친구들이 세컨드 비자 폼을 구매하는 걸 유학원이 대행해주고 심지어 잔고증명 대행 서비스도 해줬어. 근데 그게 다 불법이거든. 웬만하면 안 걸린다고 다들 별일 아니라며 너도 나도 하고 있지만 세컨드 비자 구매와 구매 대행은 명백히 비자 사기에 해달 돼. 100명 중 한 명이 내가 아니라는 법이 어디 있어. 운 나쁘게 걸리면 길게 10년간 못 들어오게 될 수도 있고 다른 나라에 여행도 제한이 될 수도 있어. 그리고 이 잔고증명 대행 서비스라는 게 사실 문서 조작이란 말이야. 포토샵으로 잔고금액을 고쳐서 서류를 조작하는 업체와 연결을 해주는 거야. IAE는 단 한 번도 그런 서비스를 제공한 적이 없어. 물어보러 오는 친구들은 진짜 많거든. 불법인 건 알지만 쉽게 비자를 연장하고 싶고 돈은 없는데 왜 욕심이 안 나겠어. 그런 친구들을 다시 생각해보라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라고 설득하면서 돌려보내는 거지.
그럴 때야. 유학원의 실적이나 이익과 학생의 미래가 상충할 때란.
이런 갈림길에서 팀의 리더인 닉이 언제나 후자를 선택하기 때문에 우리도 똑같이 하는 거야. 그게 옳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학생들이 잘되면 결국에는 유학원이 잘되더라고. 친구의 친구들까지 다 데리고 오고 그게 이어지고.
당장의 작은 이익은 놓치더라도 길게 보면 교육을 잡아야 세일즈가 되는 거 같아.
알 : 모든 직업이 사실은 나의 시간과 서비스를 제공해서 이윤을 만드는 행위이고 당연한 경제활동임에도 불구하고 유학원에는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신성한 교육을 돈벌이에 이용한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고 사기꾼, 장사꾼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때는 어떤 생각이 들어?
닉 : 억울하지. 억울해. 안타깝고.
내가 내 학생들과 어떻게 지내는지를 안다면, 내 학생들이 얼마나 나를 의지하고 좋아하고 학업을 마치고도 끝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걸 본다면 그런 이야기를 못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유학업에서 진짜로 일해본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 못해. 학생들과 가장 가까이서 대화하고 사정을 듣고 하다 보면 아무리 돈만 밝히는 돈 귀신이라고 해도 내 앞에 있는 이 친구한테 조금이라도 좋은 옵션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어. 내 학생이 학교를 잘 다니고 졸업을 하고 원하는 곳에 취업을 하거나 영주권을 취득하는 걸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그 환희를 알 거야.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것도 이해해. 학생을 돈으로만 보는 유학원이나 유학업 관계자 들도 많은 게 현실이니까.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그런 소리를 들으면 아직도 욱하고 속상해. 억울해. 안타까운 부분이야.
그런 이야기 듣는 일을 줄여가려면 우리처럼 필드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더 노력해야겠지.
알 : 우리가 어떤 직업의 윤리관을 가지고 일을 한다는 게 굉장히 중요하잖아. 인터뷰로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느낀 건데 청소, 미용, 춤 어떠한 일도 직업윤리를 가지고 하는 사람들은 빛이 나더라. 의사도 교수도 아무리 유명해도 그런 윤리가 없으면 초라해 보이고.
닉 : 그렇지. 결정권은 우리한테 있어. 우리가 결정하는 거야. 교육을 할 것인지 세일즈를 할 것인지.
하지만 나는 다른 유학업계 관계자들도 그분들 나름의 윤리관 안에서 옳은 결정하는 거라고 생각해. 학생은 금전적으로 힘들고 호주에 더 머무르고 싶고 하다는데 이 친구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게 옳다고 생각할 수 있잖아. 이 친구가 돈도 벌고 호주에서 더 있다 보면 좋은 기회가 생길 수도 있으니 그런 부분을 도와주고 싶어 할 수 있는 거야. 무조건 돈벌이가 되니까 그런 선택들을 하는 건 아닐 수도 있거든.
그냥 다른 방식으로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
준 : 학생들 중에는 더 배우고 싶어서 학교를 등록하는 경우만큼이나 호주에 더 머무르고 싶어서 비자 연장 목적으로 학교를 등록하는 경우가 많아. 최소한의 과제와 시험이 있고 학교에 출석해야 하는 날이 적은 학교, 배울 게 없는 학교일 수록 인기가 많은 아이러니한 일이 생기는 거지. 이왕 학교에 가기로 결정한 거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학교 나가라 그리고 1년으로 치면 큰돈 차이가 아니니까 이왕이면 너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고 노력하는 학교로 가라. 학교에 출석하고 숙제하면서 영어단어 하나라도 더 배우고 그리고 꼭 수료해서 수료증이라도 하나 챙겨서 너 인생에 보탬이 되길 바란다 라고 설득하지. 내가 그렇게 하든 말든 회사가 버는 돈은 똑같고 애들은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고 이 형/오빠 뭔데 오지랖이고 잔소리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나는 학생들이 뭐라도 하나 얻어갔으면 좋겠어. 그게 내가 나름대로 다듬어 가고 있는 나의 직업윤리관인 거 같아.
알 : 우리 이번에는 유학업이라는 직업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교민들이 많이 몸담고 있는 직업군 중에 하나이기도 하고 학생들이 보통 유학원이라는 플랫폼을 통해서 호주 생활에 적응을 하는 만큼 이 유학원 직원이라는 직업을 많이 접하고 궁금해하는 거 같아. 유학업이라는 산업에 관심이 있는 예비 이민자들을 위해 유학업을 파헤쳐보자. 먼저 유학원에서 일하는 거 어때? 근무환경 같은 건 어떤 거 같아?
준 : (닉의 눈치를 슬금슬금 본다.)
알 : 눈치 보지 말고 솔직히!
준 : 진짜 솔직히 말할게. 나는 좋아, 아직은!!
일단은 팀장으로 있는 닉이 사실 칼퇴 주의자라서 늘 제시간에 제일 먼저 일어 나주거든. 그러니까 나 같은 말단도 편하게 퇴근이 가능해. 그리고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나 같은 말단은 사실 남아서 할 일이랄 게 없어. 야근 자체가 불가능 (?) 한 구조야. 이제 신입인 직원은 찾는 학생이 많지 않다 보니 상담도 많지 않고 서류 작업도 별로 없어. 눈치나 보면서 뭐하지 뭐하지 하다가 집에 가는 거야. 이번에 유학박람회를 하면서 우리 팀이 야근을 했거든. 그때 가만히 지켜보니까 웃기더라. 직급별 순차적으로 퇴근을 하는 거야. 맨 밑에 가장 막내가 제일 먼저 퇴근하고 그 위 퇴근하고 그 담에 나 퇴근하고 줄줄이 집에 가고 닉이 제일 끝에 남더라니까. 이게 당연한 현상인데 근무연차가 쌓여갈수록 관리하는 학생들이 쌓이고 찾는 학교들도 많아지고 하잖아. 그러니 책임도 무거워지고 일도 많이 생길 수밖에 없지.
알 : 신기하다. 다른 업계는 막내가 가장 힘들고 올라가면 약간 편해지는 경향이 있잖아. 유학업은 반대구나.
닉 : 나도 처음에는 이 일이 쉬울 줄 알았어. 데스크에 앉아서 찾아오는 사람들 상담해주고 그러는 일이 뭐가 어렵겠냐 생각했거든. 그건 막내 때 이야기고 시니어를 달면 상상도 못 하게 바빠져. 처음에는 막 일 욕심 때문에 안 쉬고 일하고 하거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그땐 나는 진짜 쉬고 싶은데 학생들은 계속 찾아오고 기다리고 일은 맨날 터지고 하니까 쉴 수가 없게 되는 거야. 오늘만 해도 인터뷰 때문에 예약을 안 잡는다고 했는데도 상담예약이 10개 정도 잡혀있어. 정해진 스케줄대로 예약 학생만 받느냐, 그것도 아니야. 예약 없이 그냥 찾아오는 친구들, 전화 상담, 학교나 교육기관에 메일도 수십 통, 밥 먹고 커피 한잔 하면서도 하루에 천 개가 넘는 카톡에 답변을 해줘야 해. 난 사실 밑에 직원들 편하게 퇴근하라고 제시간에 집에는 가는 척은 하는데 사실 잔업들 다 싸가지고 가서 집에서 하는 거야. 제시간에 절대 못 끝내!
그만큼 나를 믿고 찾아주는 학생들, 업계 관계자들이 많다는 뜻이니 힘들어도 어쩔 수 없지. 아무튼 이 업계는 연차가 올라가고 직급이 올라갈수록 일이 빡세져. 이 일이 편하다고 하는 사람은 아마 주니어급 사원이거나 아마 아직 성장 중의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어서 일거야.
준 : 새벽에 자다가, 술 먹다가 폰을 보면 닉이 보낸 메일들이 포워드 돼서 보이거나 피드백을 받거나 하는 때가 있거든. 그럴 때면 진짜 존경스럽기도 하고 좀 무섭하고 해야 하나 그래. 이 사람은 잠도 안 자나? 싶은 거지. 닉이 IAE 월드 지사들 통틀어 언제나 실적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순위이고 우리 지사에서는 아예 넘사벽이거든. 사무실에는 막 트로피 같은 거 진열되어있고 그래. 어느 업계나 이유 없는 1등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지. 그런 거 볼 때마다 자극도 되는데 닉이 무섭다는 마음이 더 커. ㅋㅋㅋ
닉 : 결론을 말하자면 기본적으로 이 일이 보기보다 복합적이고 다양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노동강도가 상당한 일이라는 거야. 처음에도 말했듯이 유학원은 단순한 교육 상담직이라기보다 학생들의 호주 생활의 많은 부분을 케어해주는 종합서비스센터 같은 곳이거든. 막 호주에 와서 무슨 일이 터지면 이 친구들이 아는 사람이 누가 있어. 그나마 학교 등록해주고 이것저것 알아봐 준 내가 제일 믿음직스러우니까 나한테 손을 뻗게 되는 거야. 그러니까 시도 때도 없이 카톡이랑 전화가 울리기 마련이야.
준 : 나는 업무용 카톡이라고 해도 업무시간 외, 막 밤 11시, 새벽에 연락해도 깨어있는 한 다 받아. 아프거나 사고를 당했거나 급한 일일 수도 있는데 연락할 사람이 나밖에 없으면 어떡해. 그러니까 칼퇴는 칼퇴이되 잠들기 직전까지 마음을 놓지는 못하는 거지. 하지만 말은 이렇게 해도 나는 막 닉처럼 힘들다고 하소연할 정도는 못돼. 사실 나는 학생이 많지 않다 보니까 연락이 막 자주 오는 건 아니거든. 아직까지는!
알 : 그런 힘든 점이 있는지 몰랐어! 나도 학생 때 유학원 오빠들 엄청 귀찮게 했었는데 약간 미안해진다..^^
우리 그러면 이번에는 유학업에 잘 취업하려면 어떤 요건을 갖춰야 유리한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어떤 전공이 가산점을 얻을까? 너는 직원을 채용할 때 어떤 전공을 가진 사람들을 우선순위로 꼽아?
닉 : 유학원에서 전통적으로 선호하는 전공과 경력이 몇 가지 있어. 마케팅이나 카운슬링, 세일즈 같은 것들.
나는 개인적으로는 전공은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아. 상담이나 학생관리 같은 것들은 사실 학교에서 배운 전공보다는 본인의 성격이 크게 좌우하거든. 결국에는 배운 거 보다는 성격이 크게 작용해.
굳이 어떤 전공의 지원자를 선호하는지를 꼽는다면 나는 차분한 일, 꼼꼼한 서류 작업이 수반된 전공을 선호하는 편이야. 어카운팅, 북키핑 (회계, 장부정리) 이런 일들을 해본 사람들. 화려한 언변과 친화력으로 학생의 호감을 사고 등록을 하게 하기는 쉬워. 그런 일들에 특화된 사람들도 있지. 그런데 말을 아무리 잘해도 결정적으로 비자나 지원서를 어플라이하는 과정에서 서류가 하나 빠지거나 숫자가 하나 틀리거나 덜렁거려서 이메일 보내는 걸 까먹거나 하면 학생 입장에서는 시간을 낭비하거나 손해를 볼 수 있어. 학생들은 대부분 착하니까, 늦어져도 이해하고 괜찮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아니겠지.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은 관계가 형성이 되는 거야. 오래갈 수가 없지.
준 : 나는 유학원에서 일을 하면서 전공을 다시 정해서 지금 공부하는 중이거든. 이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 마케팅을 배우고 있어. 나는 닉처럼 쌓아놓은 게 있는 게 아니니까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잖아. 어떻게 하면 나를 더 잘 알리고 많은 학생들을 만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정한 거지. 내 개인 브랜딩을 잘하고 싶은 욕심도 있지만 나아가서 우리 회사를 조금 더 알리는 일을 하고 싶어. 회사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지금 열심히 배우고 있어.
알 : 유학원이라는 곳이 단순하게 보면 학교, 학원 등의 교육기관과 개인인 학생을 연결해주는 기관인 거잖아. 그러면 학생들과의 소통만큼이나 교육기관과의 소통도 중요할 텐데 영어는 얼마큼 잘해야 해? 일을 하려면 어느 정도 수준의 영어가 필요할까?
닉 : 솔직히 말하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엄청난 영어실력이 필요하지는 않은 것 같아.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서류들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 그런데 어차피 하는 영어가 비슷하고 보는 서류들도 비슷해서 이 것도 일하다 보면 빨리 늘어. 생각보다 영어가 엄청 중요시되는 업무환경은 아니야.
왜냐하면 현지 교육기관 입장에서 우리는 학생들을 보내주는 타국의 유학원이잖아. 현지 교육기관과의 관계를 봤을 때, 굳이 갑을을 따지자면 학생들을 보내주는 우리가 갑이란 말이지. 학생을 보내준다는데 그쪽에서는 감사하지. 개떡같이 말해도 신기하게 찰떡같이 다 알아듣는 거야. 우리 말고도 세계 각국의 유학원들과도 일하고 있으니 다양한 스타일의 영어와 억양에도 익숙해. 결국 상대의 말을 알아들으려고 노력하는 쪽은 우리가 아니고 현지 학교 쪽인 거야.
하지만 반대의 입장으로 생각했을 때 우리 유학원한테 갑은 누구겠어? 바로 학생들이야. 우리가 잘 알아듣도록 노력하고 환심을 사야 하는 곳은 우리한테는 우리를 선택해주는 학생들이란 말이야. 그래서 영어보다 한국어로 소통을 더 잘해야 해.
준 : 나는 솔직히 여기서 일을 시작하고 영어가 줄었어. 한국말이 엄청 늘었지. 학교 다니고 할 때는 호주 친구들이랑 놀면서 매일 영어 쓰고 했는데 여기서는 맨날 한국말로 떠드니까. 아무튼, 생각보다 영어 스트레스는 심하지 않은 환경인 것은 분명해. 아이엘츠 성적이 5.5 - 6.0 사이, 여기 학교 입학 허가를 받을 수 있는 정도만 되어도 일을 시작하는데 무리는 없어. 하지만 영어를 잘하면 할수록 일이 편한 것은 사실이기도 해.
알 : 닉 네가 팀장의 위치에서 직원을 채용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부분들이야?
닉 : 나는 사실 특이하게 직원을 뽑는 편이야. 경력도 전공도 사실 잘 안 봐.
인터뷰를 할 때 정말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많이 묻고 하거든. 그러면서 이 사람이 이 일을 어떤 마음으로 하려고 하는지와 사고방식 같은 거를 보려고 노력해. 학생들을 대할 때 고객을 상대하는 좋은 세일즈인이 될지 아니면 이 친구들의 미래를 고려하는 조력자가 될지. 그리고 학생들이 비자 혹은 돈 때문에 경솔한 판단을 하려고 할 때 한 번쯤 제동을 걸고 한번 더 생각해보도록 설득할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를 알아보려고 대화를 많이 해. 그런 사고방식이 첫 번째야.
두 번째로는 나는 소심한 사람이 좋아.
자신만만하고 화려한 언변으로 사람을 끄는 마력이 있는 사람보다, 엄청난 경력이나 학력이 있는 사람보다 소심하고 겁 많은 사람이 내가 선호하는 타입이야. 학생을 무서워하고 내 앞에 있는 이 학생의 미래를 무서워할 줄 아는 사람. 우리가 하는 한두 마디로 내리는 결정으로 이 학생이 앞으로 2,3년 동안 어떤 시간을 보낼지가 좌지우지될 수 있고, 내가 이 학생의 서류 한두 장을 꼼꼼히 관리하고 못하고 가 이 학생의 비자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걸 아는 그런 소심한 사람을 좋아해. 그걸 면접으로 꿰뚫어 보기는 쉽지 않지. 그래서 면접 볼 때 막 혈액형도 묻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하고 그래. ㅋㅋㅋㅋ
알 : 너희가 하는 일이 크게 보면 현지 교육기관과 한국의 학생들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는 역할이잖아. 그렇게 다른 두 문화의 그룹을 연결하다 보면 갈등이나 고충이 있을 거 같은데. 그런 점은 어때?
준 : 진짜, 정말 힘들어. 이런 점은 진짜 힘들어. 만만한 내 새우등만 맨날 터지는 거 같아.
일단 이 호주인과 한국인의 그 기질이랄까 성향 차이가 생각보다 엄청나. 호주 사람들은 일단 느긋하고 고지식하고, 그냥 엄청 느려. 하지만 알다시피 한국인들은 세계 최고로 성격이 급하지. 모든지 빨리빨리 처리되는 것에 익숙한 민족이야.
학생은 문의하고 뭐 서류 내고 등록하고 허가받고 하는 모든 과정을 발 동동 구르면서 기다리고 재촉하는데 우리가 아무리 중간에서 연락을 해도 호주 사람들은 맨날 휴가 가고 자리 비우고 일찍 퇴근했다 하고 전화 안 받고. 금방 해줄게~ 하고 안 해주고. 그런 일들이 허다한 거야. 호주 사람들은 자기 업무보다 자기 삶이 제일 중요한 거지. 그런데 학생들도 인생이 달린 대학교 입학이나 비자 신청은 확답을 받고 싶을 수밖에 없다고. 막 호주에 온 학생들은 이 느긋한 호주의 문화를 모르니까 '왜 오늘 안돼요? 언제까지 돼요?' 계속 물어보는데 난 확답을 못주니까 내가 게을러서 일을 안 한다고 오해를 하기도 해.
요새 학생들은 여러 곳에 문의도 하고 찾아보면서 비교해서 유학원을 정하잖아. 학생한테 어떤 문의를 받았을 때 시원하게 대답해주고 처리해주고 싶어도 사실 나는 중간 입장이니까 저기서 답이 와야 전달을 하고 말고 한단 말이야. 내가 정보를 정확하게 먼저 알려줘야 하는데 그 일처리가 느려지면 나는 학생을 놓칠까 봐 전전긍긍하는 거야. 미치고 환장하는 거지.
닉 : 호주애들은 어떤 일에서 착오가 생겨서 문제가 생기면 그냥 미안하다고 해. '다음부터 조심할게. 미안.'
한국처럼 항의한다고 해서 유도리있게 사정 봐주고 그런 일이 정말 드물어. 실수했네. 미안하게 됐어. 안녕. 그게 끝이야. 이런 일들이 가끔 있거든. 학생이 어학 코스를 오전반으로 등록했는데 오전반이 아니고 알고 보니 오후반이라는 거야. '미안한데 변동사항이 있었어. 너희 학생한테 오전이 아니고 저녁반에 나오라고 말해줘.'라고 나한테 연락이 오는 거지.
그러면 학생은 난리 나는 거야.
뭐라고요? 장난하세요? 오후에 알바 이미 다 구해놨고 일하고 있는데 어쩌라는 거예요? 학비랑 물어내요!
학생을 대변해서 항의를 해봐도 학교 측에서는 계속 미안한데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는 거지. 호주에서는 어떤 피해를 제대로 증명하지 않으면 손해배상을 받기도 힘들어.
저 정도는 양반이야. 무슨 일이 있었냐면 내 학생 중의 한 명이 한국에서 이미 4년제를 졸업한 상태에서 그 학위로 편입을 하려고 호주에 왔어. 멜버른의 한 대학교에서 학점인정을 해줘서 3년짜리 과정을 1년만 들으면 호주 학사학위 취득이 가능한 상태였어. 학교 측이랑 다 이야기를 해서 이 친구는 학교에서 요구하는 영어 레벨을 맞추려고 이 대학교 부속 어학원에서 영어수업을 30주나 들었지. 영어에만 거의 만불을 썼어. 그리고 이제 학교에 딱 들어가려고 하는데 학교에서
어머 미안. 학점인정이 잘못됐네. 미안한데 이건 인정이 안돼. 처음부터 다시 들어야 하겠는데?
라고 하는 거야. 진짜로 그때의 심정이란. 항의를 하고 또 해봐도 학교에서는 꿈쩍도 안 하는 거야. 미안하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해. 다른 학교로 가고 싶으면 가라고. 근데 그게 말도 안 되는 게 영어는 이 곳 에서 들었기 때문에 여기서 밖에 인정이 안되거든. 그럼 다른 학교 가서 다시 영어부터 들어야 하는데 이게 말이 돼?
이걸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이 학생이 변호사를 선임해서 이 메이져 대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거는 방법뿐인데 그럴 만큼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있는 학생은 드물지. 다행히 나를 정말 좋아하는 학생이라 내가 한 노력을 알아주고 내 입장을 이해해주어서 다행이었어. 학교와 조율이 실패하고 울며 겨자먹기로 처음부터 학교를 다녀야 했지.
이 학생은 정말 착한 케이스이고 진짜 화난 학생들 같은 경우에는 영어로 학교랑은 못 싸우니까 상대적으로 만만한 유학원만 조지는 (?) 경우가 굉장히 많아. 우리 잘못은 없지만 안타깝고 미안하니까 학생들의 입장을 들어주고 어떻게 던 손해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거지. 학생들도 불쌍하고 무력감도 느끼고. 그럴 때가 정말 힘들어.
알 : 하긴 나도 학교에서 무슨 일 생기면 말통 하는 유학원 먼저 찾아가서 항의했던 기억이 난다. 다시 한번 미안한 마음이 드는군.....^^;;
자, 그러면 넘어가서 닉과 준이 유학업에서 일하면서 개인적으로 느끼는 좋은 점들과 안 좋은 점들을 꼽아볼까?
준 : 첫 번째로 나는 정말 정말 사람들 만나는 걸 좋아하거든. 새로운 사람을 매일 만날 수 있다는 게 제일 매력적이야.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되는 느낌이 좋지. 어떤 계획을 짜주고 그 길로 가게끔 도와주는 걸 보는데서 오는 성취감이 좋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일을 하면서 정말 다양하게 많이 배워. 사무나 상담만이 아니고 정말 멀티로 다양한 일을 수행해야 하니까 일은 힘들어도 성장하는 게 느껴지지.
나쁜 점은 상처를 받는 일이 종종 생겨. 마음을 열고 학생들을 대하고 친해지다 보면 나는 정이 들고 이 학생과 개인적으로 관계를 쌓는다고 생각했는데 반대편에서는 유학원 직원이니까 필요할 때는 매일 연락하고 친하게 지내다가 내가 더 이상 줄게 없으면 연락을 끊어버린다던지. 힘들고 외로우니까 아무 때나 전화해서 연애사 힘든 일 들 이야기해도 나는 다 들어주고 개인적인 일들도 쉬는 날 도와주고 했는데 나 힘들 때는 다짜고짜 돈 이야기부터 꺼낸다던지 하는 일들에 나는 상처를 받거든. 익숙해져야 하는데 그게 어렵더라. 내가 내공이 부족한 탓이겠지.
닉 : 좋은 점은, 학생. 진짜 좋은 학생들을 만나고 알고 지낼 수 있는 거.
나는 멜버른 한인들 중에 사람 많이 만난 거로는 아마 순위권에 들 거야. 멜버른 어디를 가도 내가 12년 동안 만난 내 학생들이 꼭 있고 나한테 다 잘해줘. 그 친구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이 곳 저곳에서 자리를 잡고 활약을 하는 걸 보는 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몰라.
두 번째로는 유학원에서 일하면서 나는 정말 엄청 많은 정보를 자의반 타의반 알게 되었고 그게 도움이 될 때가 엄청 많아. 유학원에는 별의별 질문들이 다 들어오거든. 맛집부터, 공항 이용방법, 세금 환급,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해요? 뭐가 필요한데 어디서 사요? 맛집은 어디예요? 비자 문제 생기면 어떻게 해요? 일하고 돈 못 받았어요 어쩌죠? 이런 모든 질문들을 받고 대답을 해주다 보니 완전히 인간 다산콜센터가 되는 거지. 모르는 게 없어.
이제 안 좋은 점을 말하자면 아까도 말했지만 일이 안 끝나. 끝이 없어. 업무용 폰을 놓고 퇴근하고 싶어도 다음날 출근했을 때 화면에 떠있을 만개의 카톡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지. 틈틈이 천 개씩 해결하는 게 낫다 싶어 지는 거야. 나는 사실 12년 동안 출장은 그렇게 다녔어도 휴가를 가본 적은 없어. 학생들 비자나 학교 등록서류 같은 거를 출장 전에 다른 직원한테 인수하고 가면 되지 않냐고들 하는데 내가 몇 시간 상담하면서 시시콜콜히 다 알고 있는데 그걸 어떻게 넘겨. 하던 사람이 해야지 인수인계 잘못했다가 중간에 실수라도 나면 어떡해. 내가 출장이고 휴가라고 비자랑 학교에 문제 생겼다는 학생한테 '나 출장 중이니까 네가 알아서 하던지 기다려'라고 할 수는 없잖아. 그러니까 자연히 폰과 노트북을 잡고 살게 되는 거지. 와이프랑도 처음에는 싸우다가 이제는 포기했어. 같이 놀러 가면 부탁을 해. 아침 먹는 동안만, 우리 걷는 동안만 핸드폰 방에 놓고 가면 안되냐고. 그럴 때는 진짜 미안해.
알 : 유학원에서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일이 끝났을 때 다음 단계로 어떻게 넘어갈 수 있는지도 중요한 것 같아. 유학원에서 경력을 쌓는 것이 어떤 커리어로 연결이 될 수가 있니? 필드에서 일하다가 이직한 동료들은 보통 어떤 일들을 해?
준 : 학교! 학교로 많이 가. 직업학교나 어학원의 사무직이나 마케터로 가는 경우가 가장 많아. 그렇게 또 경력을 쌓아서 유명 대학교로 넘어가는 케이스들도 있어. 유학원이라는 플랫폼이 교육기관과 많이 연결되어있다 보니 교육 쪽으로 빠지는 게 대부분이야.
닉 : 일차는 단연 학교야. 준이 말한 대로 작은 학교들부터 시작해서 큰 대학이나 교육기관으로 옮겨가지. 유학업에 일단 발을 들이면 대부분 이 일을 좋아해. 현실적으로 사무실에서 일하니까 근무환경이 나쁘지도 않고 사명감이나 보람도 있고. 그런데 유학원은 학교 대신에 돈 이야기를 하는 곳이다 보니까 조금이라도 학비를 깎으려는 학생들과 마진을 조금이라도 남겨야 하는 회사 사이에서 조율을 해야 한단 말이야. 그 부분을 많이 힘들어해. 학교는 학생들을 만나고 도와준다는 골자는 같으면서 그런 부분에서는 자유로우니까 좋지.
그리고 학교에서도 유학원 출신이라고 하면 좋아해. 아무래도 오며 가며 얼굴을 미리 튼 경우도 많다 보니 기회도 잘 주어지고. 유학원에서는 하는 일의 폭이 정말 넓고 일도 빡세기 때문에 유학원에서 일 배운 사람들은 학교 같은데 가면 정말 일 잘한다는 소리 들어. 지금 유명학교에서 중요한 일들 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 이런 유학원 출신들이 정말 많거든.
그리고 IAE처럼 외국 지사가 많은 곳들은 해외 지사로 옮겨가서 일하는 경우들도 있어. 멜버른에 있다가 한국 본사로 넘어간 사례도 있고. 굉장히 가능성이 많고 여러 방면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기회가 많은 업계야.
알 : 유학업에서 일을 하는 것으로 이민이 가능할까?
닉 : 작년까지만 해도 가능했어. 지금 우리 회사에도 일하면서 이민을 한 직원들이 있고. 작년에는 에듀케이션 관련 카운슬러로 경력을 쌓으면 영주권 신청이 가능했거든. 지금은 그 직업명이 목록에서 빠져버리는 바람에 직접 영주권 신청은 불가능해졌어. 하지만 회사를 통해서 스폰서 비자를 받으면 최대 4년까지 체류하면서 일을 할 수도 있고 이 유학원 메니져라는 직업이 아니더라도 다른 직업군으로 연결해서 이민을 하는 사례도 있어. 어쨌든 영주권, 부족 직업군이라는 시스템이 돌고 도는 것이라 지금 전망이 어둡다고 해도 또 언젠가는 밝아질 거라고 생각해.
알 : 현업에서 종사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봤을 때 호주 내 유학산업의 전망은 어떤 것 같아?
준 : 솔직히 말하자면 체감상 예전보다는 조금 힘들어진 거 같아. 호주 정부가 영주권 자격요건을 대폭 강화한다고 공표한 이후로 이민의 문턱이 높아지니까 포기하고 돌아가는 학생들도 많고 호주 오려던 친구들도 비교적 이민이 쉬운 캐나다로 넘어가기도 하니까 걱정이 좀 됐지. 그런데 막상 정식으로 바뀐 이민법을 보니까 생각보다는 덜 까다로워서 분위기도 좀 쇄신되고 있는 거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닉이 늘 하는 말이 이 이민의 문이라는 게 항상 좁았다 넓어졌다를 반복하고, 유리한 직업군도 돌고 도는 법이라는 말이거든. 그 말을 생각하며 지금 당장은 힘들더라도 금방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려고 하고 있어.
닉 : 이민 가능 여부가 학생들의 유입에 영향이 작다고는 못해. 하지만 그렇게 절대적인 영향력은 아니야.
전체적으로 통계를 내서 보면 이민과 연결된 직업학교 진학만큼이나 순수 어학, 순수 유학, 조기유학 등의 비율도 높거든. 영주권 학과 학생들은 줄었지만 오히려 작년 대비해서 순수 유학을 온 대학생들은 훨씬 늘었어. 호주의 환율이 내려가면서 한국의 비싼 등록금이나 이 곳의 학비나 별반 차이가 없어지니까 부모님들이 경쟁이 심한 한국보다는 외국으로의 진학이 낫다고 판단하고 많이 보내셔. 내가 봤을 때는 지금이 나쁜 상황은 아니야. 이렇게 환율이 유지되거나 낮아지면 이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한테는 나쁘지만 한국에서 송금하는 입장에서는 좋으니까 아마 상황은 더 나아질 거라고 봐.
일을 하다 보면 재밌는 점들이 보이는데 이를테면 이번 달에 테솔 학생이 많아졌다 싶으면 다음 달에는 테솔 학생이 더 늘어. 대학생이 많아졌다 싶으면 또 대학생이 점점 늘어. 왜냐하면 애들은 같이 사는 집에서, 알바하는 곳에서 이야기를 하고 공유를 하잖아. 한 명이 나 테솔해. 그러면 테솔이 뭐야? 나도 해볼까? 나 여기서 대학교 다녀. 정말? 다닐만해? 나도 해볼까? 솔깃해하고 관심을 갖게 되는 거지. 영주권 학과 학생들이 줄면서 대학생이나 어학생이 늘었는데 그런 것도 아마 영향을 미칠 거야. 나는 사실 꽤 낙관적으로 보고 있어.
알 : 유학업을 진로로 두고 있는 후배들을 위해 현직 근무자로 전해줄 수 있는 정보는 이만하면 된 거 같아. 적나라한 이야기들도 솔직하게 이야기해줘서 고마워.
이제는 학생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 유학을 가려고 하는 친구들에게는 설렘만큼이나 불안감과 두려움이 밀려올 거야. 외국의 학교에 나 혼자 덜렁 떨어지게 되면 어떻게 하지,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잖아. 그럴 때 유학원이 많은 도움을 주고 있지만 그 외에 호주 내 교육기관은 어떠니? 우리 같은 해외 유학생의 적응을 지원하고 도와주는 어떤 장치 같은 것이 마련되어 있어?
준 : 일단은 어학원이나 작은 학교들 같은 경우에는 INTERNATIONAL STUDENT COORDINATER라는 사람들이 있어. 유학생들과 교직원을 원만하게 연결해주는 역할인 거야. 내가 공부를 했던 RMIT 같은 경우는 유학생들의 과제를 도와주는 선생님이 따로 있었어. 이력서를 손봐주거나 취업을 지원해주는 센터도 있고 아르바이트나 인턴쉽을 연결해주는 서비스도 제공하는 학교들이 많아. 그리고 학교마다 있는 STUDENT SERVICE CENTER는 정해진 거 없이 학생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와줄 수 있는 걸 도와주는 곳이거든. 정말 열성적으로 소매를 걷고 학생을 돕는 센터 직원도 많아. 정말 사무적으로만 학생을 대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다쳤다거나 사기를 당했다거나 심지어 사장한테 돈 떼여서 신고해야 하는 경우에 이 곳에 도움을 요청하면 이 곳에서 영어를 도와주고 대신 전화를 해주고 절차를 알려주기도 해.
유학생들을 위해 학교에서 제공하는 이런 서비스들이 있다고 오리엔테이션 때 다 정보를 주지만 대부분은 한 귀로 듣고 흘리거나 까먹어버려서 제대로 활용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야. 그리고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 그냥 유학원 형한테 찾아가야지, 하거나! ㅋㅋㅋ 안 그래도 위급한 상황에 급하고 힘들어 죽겠는데 영어로 또 그걸 설명하고 하는 것도 스트레스고 같은 한국사람, 유학원 형/누나가 편한 거지.
알 : 학교를 정할 때 호주 친구들은 학과 특성을 따라서 학교를 정하는 반면에 한국 학생과 학부모들은 유난히 학교 이름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잖아. 예를 들면 멜버른에서 공대는 Swinburne University 가 제일 좋고, 법대는 모나쉬가 제일 좋고 의대는 멜번대가 좋고, 요리는 윌리엄앵그리스가 좋다는 인식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전공에 상관없이 '멜번대, 시드니대, UNSW' 등의 소위 말하는 '명문대'를 가야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대학의 명성 vs 세분화된 전공의 퀄리티를 놓고 볼 때 어떤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닉 : 한국처럼 호주도 G8 (GROUP OF 8)이라고 불리는 명문대가 존재하고 그런 곳들이 한국의 학부모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이야. 이런 곳들은 일단 학비가 만만치 않은 데다가 커리큘럼 자체가 빡빡해서 알바를 많이 병행하기 힘들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재정이 넉넉한 집에서 지원을 해서 보내지. 이런 친구들 중에는 본인이 원해서 유학을 오고 전공을 정했다기보다는 부모님이 권유를 해서 부모님이 원하는 길로 온 친구들이 많아.
하지만 G8외에도 특정한 전공을 잘 가르치키로 유명한 학교는 많아. 가령 스윙번 같은 경우에는 G8에 포함 되지는 않지만 공대가 와 디자인과가 유명하지. 한국에서는 스윙번이 뭔지도 모르지만.
한국에서 디자인으로는 홍대가 최고라는 것은 우리만 알지, 외국인들은 모르는 거나 마찬가지야. 이런 것들을 꼼꼼하게 스스로 알아보고 합리적인 학비인 곳을 택하는 경우는 보통 본인이 결정하는 경우가 더 많더라고. 부모님이 결정하면 아무래도 더 이름값을 따라가게 되니까.
이런 것들을 결정할 때 나는 학생이랑 굉장히 많이 이야기를 하는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 학생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뭔지 파악이 되거든. 그것만 명확하게 해주면 학교를 쉽게 정할 수가 있어. 명성인지, 가성비인지? 그리고 이걸 배워서 호주에서 써먹을 것인지 한국에 돌아가서 써먹을 것인지. 호주는 한국에 비해 학교 이름값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명문대를 갈 필요성이 떨어지거든. 전문가랑 상담을 되도록 많이 하면서 본인과 부모님이 어떤 요소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꼼꼼하게 생각해서 파악하면 되는 것 같아. 무엇을 얻어가고 싶은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
알 : 학생들 중에 요리는 싫은데 영주권 따려면 요리가 가장 무난하니까 요리를 하겠다, 혹은 치기공이 뭔지 모르지만 영주권 때문에 배워보겠다고 하는 친구들이 많잖아. 내 주변에도 요리가 싫은데 요리를 하는 경우가 아주 많았어. 나중에는 거의 다 중도포기했지만.
그렇게 적성은 고려하지 않고 영주권에만 초점을 두는 경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준 : 그런 친구들을 만나면 상담이 굉장히 쉽지. 왜냐면 나는 내 케이스를 이야기해주거든 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가 그렇게 치기공을 했다가 홀랑 말아먹은 경우라서. 나는 졸업만 겨우 했지 영주권이고 뭐고 하나도 써먹어보지를 못했어. 전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영주권 때문에 등록을 했는데 학교 수업은 어찌어찌 친구들이랑 노는 재미로 따라갔거든. 그런데 2년 차에 실습을 갔는데 골방에 앉아서 손톱만 한 것들 들여다보면서 하루 종일 있는 거야. 그때 깨달은 생각이 아, 나는 이 일을 하면서 살지 못하겠다는 거였어. 아차 싶었지. 너무 늦은 거야. 후회하기에는. 처음 전공을 정할 때 조금이라도 더 알아보고 손톱만큼이라도 관심이 있는 일로 정할걸 하는 생각을 했어.
영주권 학과들이 다 고만고만해 보이더라도 그 안에서라도 그나마 적성에 맞고 하고 싶은 걸 해야만 해. 그나마 내 성격에 할만하겠다 싶은 걸 고르도록 노력은 해야 한다는 거야. 그래야 나중에 지쳐도 억지로나마 끌어갈 수가 있어. 내가 이건 하려던게 아니야, 이건 내가 고른 게 아니야 라는 마음이 나중에는 핑계가 돼서 포기하게 되기가 굉장히 쉽거든.
그래서 나는 내 학생들한테 전공을 전하기 전에 남는 시간에 다 해보라고 그래. 뭐 요리, 타일, 페인팅, 목공 단기 알바라도 내가 다 꽂아줄 테니까 현장에 다 가보고 일도 해보고 그중에서 조금이라도 재미를 찾을 수 있는 걸 정하라고 해. 그래도 실패를 안 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확률은 확실히 줄어들 테니까.
닉 : 좀 위험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나는 내가 함께 결정을 하던지 결정을 해주려고 노력하는 편이야. 뭐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는 친구는 앞에 앉혀놓고 정말 많이 시시콜콜하게 물어봐. 어릴 때는 뭐했냐, 알바는 뭐해봤냐, 집은 뭐하는 집이고 어떤 환경이냐, 워킹홀리데이 동안에는 무슨 일을 했냐, 재정 상태는 어떻고 앞으로는 어떻게 학비를 마련할 계획이냐, 취미는 뭐고 뭐를 좋아하냐 등등 대화를 정말 많이 해. 그리고 그 안에서 한 두 개의 좁은 옵션을 만들어서 주는 거지. 이거는 어떠니, 이거 한번 해봐. 내가 도와줄 테니 이거 한번 해보자.
어차피 뭐를 할지 뭐가 하고 싶은지 모르는 상황에서 학생 본인이 아무거나 고르는 거 보다는 내가 같이 골라주는 게 확률상 성공률이 높더라. 결정을 내릴 때는 정말 이 친구한테 푹 몰입을 해서 애는 내 동생이다, 내 동생이다 생각하고 정말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하지.
하지만 아무리 노력을 하고 이 쪽일에 잔뼈가 굵었다고 해도 나의 판단도 틀릴 수 있고 아닐 수도 있어. 그러면 같이 고쳐나가고 같이 힘들어하는 거야. 학생이 받는 스트레스는 이제 나도 같이 받는 스트레스인 거지. 2년이고 3년이고 학교를 다니는 동안 내내 나도 함께 스트레스를 받아. 가끔 실패한 친구들, 영주권 못 받고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보면 나도 한동안 우울하고 힘들어. 그래도 내 일이라 생각하며 함께 힘들어 주고 같이가고 싶어.
알 : 준도 그렇겠지만 닉은 정말 셀 수 없는 학생들을 만났을 텐데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학생을 꼽자면?
닉 : 어렵다. 너무 많은 얼굴이 스쳐 지나가네.
음, 커리어로 잘된 친구를 꼽아보자면 한 학생이 자동차를 정말 좋아해서 캉간이라는 직업학교를 진학했어. 적성에 너무 잘 맞았던지 졸업 후 RMIT로 편입을 해서 AUTO VIHECLE ENGEENERING 학위까지 땄지. 그때만 해도 내가 지금처럼 학생이 많지 않아서 좀 여유가 있었거든. 그 친구랑 같이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레터를 쓰고 해서 결국에는 자동차로 가장 유명한 독일까지 보냈는데 지금은 벤츠 본사에서 일하고 있어. 연봉도 엄청나게 높지. 지금도 잘 연락하고 지내는데 우스갯소리로 말하지만 엄청 유명한가 보더라고. 여성이 흔하지 않은 직업군이라 더 주목받는 것 같아. 진짜 뿌듯하지.
앨리스 너랑 네 남동생 남매도 내 학생으로 요리 시작해서 한 명은 레스토랑 두 개를 운영하는 사장이 되었고 한 명은 호텔 쉐프가 되었잖아. 너희 남매도 기억에 남는 학생들이고. 사실 너무너무 많아. 기억나는 친구들이.
그렇게 잘 자리 잡고 잘 살고 있는 학생들을 보는 것이 이 일을 계속하게 하는 원동력이야.
준 : 한 학생을 박람회에서 만났는데 이 친구가 영어에 관심이 많고 관련 직종에 취업을 하고 싶은데 한국에서는 지방 전문대를 졸업해서 힘들어하는 상황이었어. 통번역을 권유했고 등록을 했지. 그런데 이 전공을 이수하는 2년 동안 이 친구를 지켜보는데 너무나도 성실한 거야. 코피 터져라 공부하면서 남은 시간 일해서 학비 벌고 생활비 벌고. 그렇게 학위를 취득해서 한국에 갔는데 얼마 후에 연락이 온 거야. 형, 나 어학원에서 강사로 일하게 됐어요. 원하는 직업에 취업을 했어요. 고맙다고 하는데 가슴이 뭉클하고 기분이 정말 좋았어. 이런 학생들이 일 년에 한명만 있어도 이 일을 평생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
알 : 그러면 반대로 힘들게 했거나 안타까웠던 학생들도 있니? 그런 친구들이 더 기억에 남을 거 같아.
닉 : 힘들게 했던 학생? 지금 내 옆에 한 명 있네. 준이라고...ㅋㅋ
준이는 힘들게 라기보다 나를 너무 따라서 힘들게 했던 (?) 친구지. 그래도 이런 친구들은 정이 가고 좋아.
음, 가장 마음 아팠던 일은 내 학생 중 한 명이 여기서 잘 있다가 영어공부를 더 하겠다며 갑자기 필리핀을 가겠다는 거야. 나는 엄청 말렸지. 여기서 하던 공부가 있는데 여기서 마저 하라고, 형이 도와주겠다고. 그런데 아무래도 금전적으로 넉넉하지가 않으니까 필리핀행을 결정을 했어. 끝까지 설득을 해보려고 했는데 안됐어. 결국에는 본인 결정이니까.
그렇게 호주를 떠나서 필리핀에 가서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고로 이 친구가 사망을 한 거야. 나랑 참 친하게 지내던 친구였는데 그 친구들 그렇게 허무하게 보내고 나서 정말 힘들었어. 그리고 그 친구의 일이 나를 참 오래 생각하게 했어. 내가 이 친구들 인생에 얼마나 개입을 하는 게 옳은 것일까에 대해. 더 말렸어야 했을까, 내가 어떻게 했어야 이 일을 막을 수 있었을까를 정말 많이 생각했지.
공부는 못해도 되고 학교는 좀 빠져도 돼. 그런 슬럼프야 충분히 극복할 수 있고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거든. 그런데 다치는 애들, 상처받는 애들은 정말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모르겠어. 일하는 데서 다치고 보상 못 받는 애들, 길가다가 호주 청소년이나 마약중독자들 같은 사람들에게 물건 뺏기고 그거 지키려다가 두드려 맞고도 경찰서 가서 신고도 할 줄 모르는 애들. 한 번은 내 학생이 그렇게 흑인들한테 맞고 얼굴이 칼로 크게 베어버린 거야. 여기서는 보상도 치료도 어려워서 결국에는 한국에 갔어. 그럴 때는 정말 너무 힘이 빠지고 나 자신이 너무 무능하고 무력하게 느껴지는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경솔한 선택, 대표적으로 얼마 만나보지도 않고 비자랑 돈 해결을 위해 크게 고민 없이 결혼으로 비자를 묶겠다고 오는 애들. 그러면 나는 꼭 물어봐. 듣는 입장에서는 뭔데 참견이세요? 하기도 하는데 나는 그래도 물어보고 직원들한테도 한 번쯤은 꼭 물어보라고 당부해. 부모님이랑 상의는 해봤는지, 신중하게 결정한 문제인지, 비자를 위해 꼭 결혼이라는 선택밖에 없는지.
꼰대 같다고 싫어하고 뭔데 참 견질이냐고 욕하는 친구들이 있는 건 알지만 어쩔 수 없어. 잘 모르는 상태에서 결혼이라는 중대한 선택을 했다가 가정폭력을 당한다던지 금전적으로 사기를 당한다던지 하는 사례, 결혼한 지 얼마 안돼서 이혼을 하면서 비자까지 문제가 생긴 사례들을 너무나도 많이 봤기 때문이야.
사실 나이가 20살이 넘었다고 다 어른이 되는 건 아니거든. 아직도 부모나 어른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친구들이 너무나도 많아. 부모님, 가족 없이 이 먼 곳에 와있는 애들이 무언가 섣부른 판단을 할 때에는 한 번쯤 만류해주고 조언해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거지. 유학원과 학생의 관계를 떠나서 인생선배, 호주 생활 선배로서. 나도 그렇고 우리 팀 전부가 그런 마음으로 학생들을 대하기를 바라는 거야.
알 : 정말 이야기 잘 들었어. 매일 가까이서 접하고 학생 때는 밥먹듯이 들리던 유학원이 어떤 곳인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일하고 있는지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된 것 같아서 뿌듯하다. 나도 학생이었고, 또 평생 학생으로 배우면서 살고 싶은 사람으로서 좋은 조력자들이 있다는 것이 굉장히 든든하게 느껴져. 그동안 수고 많았고 앞으로도 수고해줘! 마지막으로 닉과 준, 너희는 꿈이 뭐니? 업계에서 어떤 것들을 이루고 싶어?
준 : 나는 아직 주니어의 솜털도 못 벗은 상태라 더 큰 꿈을 꿀 위치는 아니고 지금 할 일을 잘하고 회사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게 내 계획이야. 가장 원하는 것은 팀장인 닉한테 인정을 받아서 닉이 학생을 믿고 맡길만한 든든한 직원이 되는 것? 닉을 믿고 유학을 맡기는 학생들을 닉이 나를 믿고 맡긴다면 그것만으로도 나한테는 더할 나위 없는 성취감이 될 것 같아. 아직은 욕심 없어. 여기까지야. 하하
닉 : 가끔 생각해보는 일인데 나는 완전히 다른 꿈이 두 가지가 있어.
하나는 이 유학이라는 사업을 더 발전시켜서 유학원을 크게 운영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 사랑하는 회사이지만 언젠가는 독립해서 내 학생들과 직원들이 더 멀리 높게 뻗어 나갈 수 있도록 발판이 되는 큰 유학원을 내 힘으로 세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
그리고 두 번째는 완전히 상반된 이야기인데 아주 작은 곳, 돈이 여유가 되고 내가 여유가 생길 때 조그맣고 예쁜 오피스를 구해서 1대 1로 학생을 상담하고 끝까지 관리해주는 곳을 해보고 싶기도 해. 이민 법무사 자격증도 따서 어학부터, 유학, 나아가서 이민까지 라이프를 컨설팅해주고 도와주면서 옆에서 함께 끝까지 함께 하는 그런 맞춤형 유학원을 해보고 싶기도 해. 유학업의 심야식당 같은 그런 콘셉트이지. 하하.
다른 일을 해보고 싶어서 생각을 많이 하다가도 결국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유학인 거 같아. 해외에서 공부하고 꿈을 키우는 학생들을 뒤에서 보살피고 서포트하는 교육계의 조력자. 유학업계에서 평생 내 몫을 하고 싶어. 그만큼 매력 있는 직업이야. 이 유학업이라는 것은.
매일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만 하다가 우리 이야기를 이렇게 하니까 어색하기도 하고 신기하다.
유학, 이민, 모두 상관없이 어디에서 무엇을 배우고 도전하고 싶은 모든 학생들을 진심으로 응원할게.
긴 이야기 여태까지 잘 들어줘서 정말 고마워!
*답글은 원래 하던 대로 반말로 주고받으면 더 좋을 거 같아!! 나도 그게 편하고, 언니 거나 오빠 거나 친구 거나 동생일 너도 그게 편할 거야, 하다 보면!! 물론 존대가 편하면 그렇게 소통해도 좋아 :-)
**호주 이민 생활 중이거나, 호주에서 이민 과정을 밟고 있는 동료들 중에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이민을 생각하는 한국의 청년'들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조언들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부담 없이 댓글이나 인스타 디렉트 메시지를 줘! 꼭 영주권자나 시민권자일 필요도 없어. 지금 이민의 과정을 밟으면서 느끼는 고충과 어려움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민에 대한 좋은 점과 후회되는 점도 가감 없이 나누고 싶은 동료들의 참여 기다릴게!
***출처를 밝힌 공유는 언제나 환영이야! 따로 물어보지 않아도 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