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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버른앨리스 Jan 27. 2019

강연 녹취록 #3- 워홀과 인종차별에 대하여

10월 8일, 부천 유한대학교 강연 녹취, 편집본

10월 8일, 부천 유한대학교 강연 녹취, 편집본


 # 워홀과 인종차별에 대하여


전편 :  #2- 워홀과 영어에 대하여 : https://brunch.co.kr/@alicemelbourne/189





예비 워홀러들의 단골 걱정 TOP 3의 마지막은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예요.

사실 이 문제는 개인차가 무엇보다 심해요. 10년을 살면서 인종차별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고 공항에 내리자마자 인종차별 때문에 정 떨어졌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정말 많거든요. 돈과 영어는 본인의 노력 여하로 어느 정도는 상쇄가 가능한 고민거리이지만 인종차별은 본인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더 걱정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자 그러면

첫 번째 질문부터 대답해볼게요.



호주는 인종 차별이 정말 심해?


이 질문은 정말 많이 받는데 명확히 대답해 본 적이 없어요.

같은 도시에 있다고 하더라도 개개인 주변의 환경은 다 다르고 경험 또한 천차만별일 뿐이잖아요. 또 웃긴 건 완벽히 같은 상황에서 같은 경험을 했다고 해서 같은걸 느끼는 건 아니에요. 누군가는 심각한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느끼는 상황에서 또 누군가는 별생각 없거나 혹은 즐거운 장난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아주 많아요.


한국이나 다른 나라들도 그렇듯이

다양한 문화에 익숙한 젊은 세대일수록

다양한 사람이 모여사는 대도시일수록

다문화에 익숙한 사회일수록


인종차별이 덜한 면은 있어요. 덜하다기보다는 더 경각심을 가지고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어요. 땅덩이가 워낙 넓고 지역차가 크기 때문에 '호주는 이렇다'라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어요. 사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조언은 거르셔야 해요, 본인 혹은 주변의 제한된 경험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는 거거든요.

호주 사회도 물론 나쁜 놈 착한 놈 그냥 그런 놈들이 공존하며 살아요. 성숙한 문화가 있는가 하면 미성숙한 부분들도 적지 않아요.




단적인 예를 들어볼게요.

호주 청소년들 사이에서 '킹 힛'이라는 게 유행했던 적이 있었어요.

이 '킹 힛'이라는 게 뭐냐면 한마디로 한국의 뻑치기 비슷한 거예요. 돌이나 주먹 같은 거로 뒤에서 누군가를 가격해서 한 번에 기절시킬 수 있는지 없는지를 게임처럼 하는 게 유행했었어요. 대부분의 피해자는 유학생 혹은 이민자였는데 그중에서도 인도 계열이 많았어요. 그래서 인도 유학생들이 집단 시위를 하고 항의를 했고 국가 간의 외교 문제로까지 이어졌어요. 그 당시 요리 유학생이었던 저도 밤에 귀가할 때면 자꾸 뒤를 돌아보며 불안해했던 기억이 나요.


그런가 하면 3년 전쯤 시드니에서 이슬람 과격 무장단체가 한 카페를 점거했던 사건이 있었어요. 이런 이슈에서 비교적 잠잠한 편인 섬나라 호주에서 사망자까지 나온 테러가 일어난 것에 모두들 충격을 받았었죠. 사건 이후 이슬람에 대한 혐오로 사회가 들썩할 거라고 예상한 언론도 있었고 중동계 이민자들에 대한 보복 범죄를 우려하는 사람들도 생겼거든요. 그런데 상황은 반대였어요.


히잡을 쓴 이슬람 여성들이 대중교통을 타기를 망설이는 것을 목격한 시민들이 여성들과 함께 버스나 트레인을 타고 함께 내려주는 운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해쉬태그를 달고 그 작은 시민운동은 퍼져나갔죠.


내가 당신과 함께 타 줄게요.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NOTYOURFAULT #IWILLRIDEWITHYOU

NOT YOUR FAULT

I WILL RIDE WITH YOU



유튜브에서 대중교통, 혹은 거리에서 인종차별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올라오는 것보다 인종차별자들에게 맞서서 대신 싸워주는 영상이 훨씬 많아요. 사회적으로 인종차별자를 옹호하는 분위기는 아니라고 봐요. 호주는 이민이 근간으로 세워진 나라잖아요. 호주 인구의 4명 중 한 명은 본인이 호주가 아닌 곳에서 태어났고 2명 중 한 명은 부모 중 최소 한 명이 호주가 아닌 곳에서 태어났어요. 이민, 다른 인종에 대해 개방적이고 트인 문화라기보다는 환경적으로 익숙해진 곳인 것은 확실해요.

대부분 그렇다고 해도 모든 개인이 같은 성향과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이 문제죠.


다만!

객관적으로 확실한 것은 제도적으로 인종차별을 줄이고 없애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고 법제정이나 교육시스템 안에서 꾸준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거예요. 매년 어떤 것이 인종차별이냐, 아니냐 하는 기준은 상향하여 업데이트가 되고 처벌도 강화되고 있어요.

예를 들면 한식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제가 구인광고를 올릴 때 <KOREANS ONLY>라고 쓰게 되면 그건 불법이에요. 국적이나 인종을 이유로 고용 혹은 비고용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KOREAN SPEAKERS ONLY>는 불법이 아니에요. 한국어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보겠다는 거니까 허용이 되는 거죠.

사회적으로 차별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직장이나 학교에서 인종차별, 성차별을 방지하고자 하는 교육도 더 자주, 강력하게 이루어지고 있어요. 그런 사회, 국가적 노력 덕분에 대도시를 구심점으로 해서 차별을 부끄럽게 여기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중이에요.

차별이 있다, 없다를 딱 잘라서 분명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사실 그건 호주가 특별해서는 아니고 세계화돼가고 있는 지구 전체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 같아요. 인권에 대한 관심, 차별에 대한 경각심, 철벽 같았던 국경과 인종의 벽이라는 것이 허물어지는 과정에 있는 건 호주뿐만이 아니고 한국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럼 이어지는 두 번째 질문


호주에서 인종차별을 당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종차별을 당했을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본인의 안전이에요. 이방인으로서 억울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본인 신변의 안전이 가장 우선이 돼야 해요. 선배로서 더 시원한 발언을 해줄 수없는 게 미안하지만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그래요.


차별에 대한 경각심이 만연한 대도시 시티 한복판에서 대놓고 인종차별을 하는 경우, 사람이 많은 대중교통에서 인종 차별을 하는 경우를 보면 대부분이 마약중독자나 만취한 사람들, 정신적으로 온전치 않은 사람들이 많아요. 또 외진 공원이나 골목에서 아무도 없을 때 시비를 거는 사람들은 인종차별 발언으로 도발한 후 다른 범죄를 할 확률이 있어요. 증오범죄나 강도짓을 하려고 흉기를 휴대하고 있는 경우도 있거든요. 주변을 둘러보고 도움을 요청할 곳이 있는지 신변이 안전한 지를 먼저 파악하셨으면 좋겠어요. 어떤 상황에서도.




길거리가 아닌 일상생활에서, 대화 속에서 쎄한 인종차별 발언을 들은 경우에는 일단 문제의식을 숨어주는 게 중요해요.


'어? 방금 그 말, 인종차별 발언인 거 알고 한 거야?^^'

'오~ 위험한 발언인데?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라고 하던지. 여러 방법이 있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장난처럼 손을 입으로 가져가고 웃으면서

'헐, 친구야! 난 네가 인종차별주의자인지 몰랐어! 쇼킹한데?'(Hey, My dear friend. I never knew you were a racist. I am shocked!!)

라고 말해요. 그러면 본인들이 깜짝 놀라서 아니야 아니야! 나는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야! 라며 변명을 하고 그 후로는 눈에 띄게 조심하거든요. 성차별과 마찬가지로 인종차별도 의도적으로 저지르는 경우보다는 무의식 중에, 그래 왔으니까 툭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거든요. 나쁜 의도가 아닌 둔감함에서 나오는 실수는 공격적으로 대응하지 않되, 문제제기 정도는 해주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자, 이번에는 학교나 직장 같은 조직에서 인종차별을 당했을 경우.

이런 경우는 지속적으로 악의를 가지고 (혹은 악의가 없더라도) 신경거슬리는 인종차별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엎어버릴 정도로 심각한 발언이나 행동을 하지는 않는데 반복성이 있고 그 상판을 계속 봐야 하는 스트레스가 크죠. 이럴 때는 이렇게 하는 게 가장 좋아요.

호주는 개개인 모두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어서 동일한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뭐든지 서류로 판단하려는 성향이 아주 강해요. 기록, 증인, 증거가 살면서 정말 중요해요. (모든 생활 전반에서요!) 직장이나 학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기록을 하는 거예요.


1. 언제 어디서 누가

2. 어떤 발언과 행동을 했는지

3. 목격자가 있는지. CCTV가 있는지


아주 세세하게 기록을 해야해요.

 

이런식으로

1월 22일 6시 30분 카운터에서 메니져 00가 나를 김치키드라고 불렀다. (목격자 00)

1월 24일 4시 30분 주방에서 메니져 00가 손으로 눈을 찢는 흉내를 냈다. (목격자 00)


어느 정도 기록이 모였을 때 인사부, 혹은 메니져, 사장, 학생지원센터 등에게 보여주고 정식으로 리포트를 해야 해요. 리포트를 받고도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후에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액션을 취해야 하거든요. 차별의 가해자가 사장인 경우에는 자료를 들고 '옴부즈맨'이라는 조정센터로 가면 되고요. 경찰이나 이런 단체에는 한국인 통역을 무료로 요청할 수 있어요.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많으니까, 넘어가고 싶지 않다면 넘어가지 않으셔도 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타지라고 꼭 당하고 있을 필요는 없어요. 차별을 금하는 호주의 법은 자국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호주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거거든요.






워홀 가기전에 인종차별에 대해 걱정을 하고 있는 동생에게 제가 해줄 수있는 말은

세상에 차별이 없는 곳은 없고 호주도 사람 사는 곳이라 물론 있지만, 이런 걸 두려워한다면 세상 어디에도 결코 떠나지 못할 거라는 이야기예요. 살고 있는 한국에서도 알게 모르게 작고 큰 차별이 이루어지는데도 살고 있잖아요? 한국에서도 외국인노동자들, 약자들에 대한 차별 혐오 사건이 매일 일어나는데 호주라고 뭐 천국이겠어요. 일부 인간 본질이 그렇고 그런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할 방법은 없어요. 그게 두려워서 떠나지 못한다면, 워킹을 올 준비가 안된거예요. 냉정하게 말하면. 


인종차별은 정말 말하기 힘든 주제예요.

<호주의 인종차별> 이라는 주제의 본질을 흐리는 걸 수도 있지만 차별이란 건 사실 내가 당할 때만 크게 느껴지는 법이거든요. 저는 그걸 가장 크게 느꼈을 때가 배낭여행 중에 백배커에서 얼굴을 익힌 백인 친구가 저에게 니하오! 했을 때 짐짓 정색하며 '너 지금 내가 중국인일 거라고 짐작한 거 인종차별인 거 알아?'라고 했을 때였어요. 그 때 그 친구가 웃으면서 저에게 말하더라고요.


"앨리스, 나 사실 프랑스 사람이야. 네가 백인인 나에게 헬로,라고 했을 때 나는 너에게 화내지 않았어. 영어가 백인의 메이저 언어기 때문에 네가 '실수'했다고 생각했지 네가 '인종차별'한다 생각하지 않았어."


그 기억이 저는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아요. 그 전까지는 아시안으로서의 내가 인종차별의 피해자가 될 수는 있어도 가해자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제가 이 강연을 위해 귀국을 하려고 멜버른 공항에 가는 길에 우버를 탔는데 기사는 인도계 호주인이었어요. 원래 IT업계에 있었는데 한국에 파견을 가서 2년을 일했다고 하더라고요.


오, 그래? 한국 어땠어?


하는 제 말에 삼겹살, 치킨, 찌개가 맛있었다고 소주는 써서 싫다고 하며 음식 이야기만 하더군요.

지내는 건 괜찮았어? 사람들은 친절했어?라고 묻자 대답을 흐리고는 다시 음식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삼겹살이 나는 젤 좋더라.


아무튼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이 친구가 하는 말이 한국에서의 경험은 bizarre 했대요. 이상하고 기이했다고.  대중교통에서 사람들이 본인 옆에 앉지 않았대요. 꼭 한 칸 떼고 사람들이 앉았다고. 사무직이라 땀이 나지 않았는데도 냄새난다고 소곤소곤 대는 사람들 때문에 동료들과 택시를 타고 출퇴근했다고 하더라고요. 분명히 삼겹살과 소고기를 같이 파는 고깃집에서 소고기를 못 먹는다고 하니까 한국음식도 못 먹을 거면 한국음식점에서 나가라며 쫓아냈다고.

그것도 추억이랍시고 웃으면서 말하는 기사를 보며 할 말이 없었어요.


이제는 누가 어떤 언어를 할 수 있고 알아들을 수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사회가 됐어요. 저희 한국 청년들만 해도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들이 굉장히 많고 많은 언어들을 알아들을 수 있잖아요. 그건 다른 나라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거 같아요. 한류가 세계를 휩쓸고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한국말을 알아듣는 사람들이 정말 굉장히 많아요. 저번 주만 해도 저희 직원 중 한 명이 가게 앞을 지나가는 호주 여학생들을 보고 '와 XX 이쁘다!' 하고 작게 말했는데 한 학생이 뒤돌아 생긋 웃으며 '응 XX 고마워!' 하더라고요.  

중국인, 일본인, 인도인 비하 단어들을 알아듣는 사람들도 정말 생각보다 많으니 이제는 우리도 좀 더 조심하면 좋을 것 같아요.

차별을 당하지 않기 위해 예민해지는 것만큼, 차별을 하지 않기 위해 예민해질 필요성도 있는 거 같거든요. 차별은 사실 돌고 돌아요, 우리가 알게 모르게. <차별>을 우리가 고민할 때는 한 번쯤 쌍방향으로도 생각을 해봐야 이 거대한 차별의 굴레를 끊을 수 있지 않을까,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해요.








앨리스 첫 번째 책 출간했어요! :-)

http://www.yes24.com/24/GOODS/63313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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