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 사이

17. 우리는 어디쯤에 있을까

by Alice Min

‘민 선생님, 내가 미안해. 우리 화해하자.’


K 직원과 나는 2주 동안 서로 없는 사람 취급을 하며 지냈다.

평일에 한 번 쉬는 날이 있는데 K 직원이 쉬던, 내가 쉬던, 그 날만큼 숨통이 트이는 날도 없었다.

진료실은 총 두 곳인데 정보 전달은 서로 네 진료실, 내 진료실 없이 모두가 알아야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내게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고 정말 유치하게 나 빼고서만 간식을 먹는 것도 모두 눈 앞에서 보고 있어야 했다.

그렇다고 나도 똑같이 해 줄 수도 없고. 내 속만 타 들어가는 답답한 상황이 지속되었다.


약을 타러 간 정신과 상담에서 처음으로 울먹이며 말했다

내가 그렇게 사회 생활을 못하는 거냐고.

정신과 원장님조차 경위서를 쓰고도 아무 조치가 없다는 것에 의구심을 가졌다.


용기를 내어 내가 먼저 과장에게 물어보았다.

이렇게 경위서 제출만 하고 끝인 건지. 아니면 더 기다려야 하는 건지.

과장은 며칠 뒤 그녀와 나를 각자 불러 과장이 만든 각서를 받게 되었다.


1. 상호 존중하며 ‘선생님’이라는 호칭과 존대를 사용한다.

2. 개인적인 감정으로 원내 소란을 일으킨 점을 인정한다.

3. 사적인 감정은 묻어두고 공적으로 진료실 정보 교환을 한다.

4. 퇴사를 결정하면 후임자가 올 때까지 자신의 임무에 최선을 다한다.

5. 퇴사 후 이 일에 대해 어떤 조치가 없었다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읽으면 읽을수록 뭔가 내가 잘못해서 생긴 일인 것만 같았다. 내가 시발점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내 표정이 안 좋아진 것을 본 과장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며, 자신도 감정적으로는 내 편을 들어주고 싶지만

자신의 위치가 그럴 수가 없다며 미안해했다.


각서와는 별개로 과장의 그 말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히 위로가 되어 주었다.


각서를 쓰고도 일주일은 서로 못 본 척 하며 지냈다.

그러다 K가 먼저 내게 말을 걸고 미안했다며 사과를 전했다.

자신의 말투가 원래 툭툭 내뱉는 스타일이라며 그동안 상처를 받은 게 있다면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말하는 방법을 고쳐야 한다는 것을 이제 깨달았다고 한다.


마음 같아서는 나도 툭 쏘아 붙이고 싶었다. 그걸 이제서야 아셨다고요?

그녀는 두 아이의 어머니이고, 한 어머니의 딸이다.

그러면서 원장에게 혼날 때마다 입버릇처럼 하던 말은 ‘나도 누군가의 귀한 딸이야!‘

라며 억울해 하고,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듯 늘 하소연을 했다.

그런데요, K 선생님. 저도 한 부모의 귀한 자식이거든요

당신의 말투로 상처 받은 적 없다. 하지도 않은 욕을 면전에서 했다며 과장에게 이르러 간 그 행동에 나는 분노했다.

나아가 부모님의 가정교육까지 욕보이는 것 같아 참을 수 없는 화가 났다.


대학생 시절이었다면 나는 당연하게 그녀와 더 대놓고 싸웠을 것이다. 남들 보란듯이.

하지만 나는 이제 쌈닭 별명을 들었던 기 센 대학생이 아닌, 이제는 참고 일할 줄 알아야 하는 직장인이 되었고

우리 두 사람의 눈치를 보고 있는, 같이 일하는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이 냉전을 끝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