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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즈 Apr 20. 2017

"그때 포기했어야 했는데..."

6학년의 짝사랑


A라는 남학생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친구는 이 학교에서 나와는 벌써 2번째 만남으로 여전히 글씨 때문에 종종 혼나긴 하지만 게임 이야기로 나에게 장난을 걸고 농구하는 것을 좋아하는, 일반적인 남학생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친구가 1년 넘게 혼자 좋아하고 있던 여학생이 있었던 모양이더라. 물론 겉으로는 일체의 티도 내지 않았지만(어쩌면 나는 그냥 담탱이라 몰랐는지도) 상당히 많이 괴로워하고 또 좋아하고 있었던가 보더라. 그게 속으로만 있었더라면 그나마 덜 괴로웠을 것이, 주말 동안 친구들끼리 카톡하던 내용이 학교에서 이야기 되면서 문제가 되었다. A가 좋아하는 여학생 B의 절친과 카톡하던 중, A가 자신의 친구B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서 그런건지 어떤건지 모르겠지만 A에게 “나는 B랑 볼뽀뽀(물론 여학생들끼리의 흔한 스킨십을 말하는 거다)도 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A가 “내가 너였으면 좋겠다”라고 말을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당시 사춘기 학생들이 그렇듯 이 친구가 여학생 B에게 “A가 그랬대!”라고 전해졌고 순간적으로 B는 놀라고 무섭다며 울음을 터트리고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졌다.


상황을 들어보니 B 역시도 아마 나름 곤란한 부분이 한둘이 아니었지 싶다. B의 또다른 절친이 A에게 좋다고 하였건만, A는 거절하고 B를 좋아한다고 했던 모양이다.(고놈 참 소나무일세) 크게 놀랐던 B에게 달달한 과자를 주면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게 해주었다. 아마 일부러 나쁜 의도를 가지고 그런 것은 아닐거라고, A가 그 정도로 나쁜 친구가 아니지 않느냐, 선생님도 살다보니 그런 경험이 있다, B는 얼굴이 예뻐서 이런 일들도 더 많이 일어날 수 있다 등등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었다. 그리고 당분간은 A와 거리를 둘 수 있도록 자리를 바꾸어 주기로 하였다. 다행히 내 품에서 속 시원하게 울고 난 B는 A를 대면하는 것에는 어려워했지만 다시 자신의 친구들과 이전처럼 잘 어울리는 모습에 좀 안심하였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발언의 주인공 A한테 있었다. 슬쩍 불러내서 이야기를 하려는데 그래도 얼굴보고 이야기하기에는 마음이 많이 착잡했던지 쉬이 이야기를 하지 못하길래, 휴지나 건네주며 뒷모습을 보며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때 포기를 했어야 했는데...”


이때 나는 교직생활, 아니 인생에서 잊지 못할 대사를 들었다.

B가 다른 남학생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도 자신의 마음을 어쩌지 못해 1년이 지난 이 지경까지 와버린 이 녀석이 너무 안타까웠다. 자기도 어쩔 수 없는 자기 마음 때문에, 그리고 말도 못할 정도의 미안함 때문에 끅끅 울어대는 녀석의 모습을 보면서 감히 어찌 학교폭력을 논하고 성희롱을 논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A가 말한 그 대사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청춘 드라마 속 대사와 다를 게 없는, 아니 그보다 절절한 대사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상담을 이어가야하는 나 역시 순간적으로 A에게 이입해서 눈물 날까봐 겁났다. 임뫄 너는 그래 1년이지 선생님은 10년이다... 어디 가서 말은 하지마라 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했지만 요즘 그 10년이 점점 한계로 느껴지던 나에게 A의 대사는 분명 내 마음속 어딘가를 제대로 강타해버렸다.




어린이의 짝사랑이던 어른의 짝사랑이던 참 어렵다. 


그 사람이 날 향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하게 되는 짝사랑은 어렵기만하다. 분명 A도, 그리고 나 역시도 그 짝사랑을 이어갈 필요가 없다. 그럴 의무는 더더욱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포기했어야 했는데...”라는 대사를 내뱉게 되는 것은 마음 속 무언가가 쉬이 꺼지지 못함 때문이고, 그걸 꺼트리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더욱 커지는 것 때문에 너무나 힘들다. 그래서 꺼트리지 못한 불꽃은 결국 어느 순간 나를 잡아먹어버려서 더 이상 그 불구덩이 속에서 나올 길을 잃어버리게 되는, 그리고 그 불구덩이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고 믿게 되는 그게 짝사랑이다.


원래 오늘은 학급 자리를 바꾼 날이었다. 나는 A와 B의 속사정도 모르고 같이 앉혔었는데 이 사건 때문에 A의 짝꿍은 급히 다른 친구로 바뀌었다. 아마 아침 자습시간에 다른 아이들이 담탱의 독재적 자리배치에 분노하고 있을 때, A는 분명 겉으로 티는 낼 수 없었겠지만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말에 상처 받고 펑펑 우는 B를 보면서 그 마음이 단 한시간만에 조각나고 오늘 하루 종일 B의 뒷통수만 보며,(사실 그마저도 혹여나 눈이라도 마주칠까 계속 쳐다보지도 못하던...) 수시로 마른세수만 하고 넋이 나가 있는 모습을 직접 본 사람이라면 과연 A에게 니가 잘못했어! 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A는 어쩌면 이제 상당히 커져 있던 마음을 강제로라도 꺼트리고 포기하려 들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의 예상일뿐 아닐 수도 있고 내가 경험한 것보다도 더 지혜롭게 묻어내거나 극복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A가 걸었던 길을 먼저 걸어본 그저 인생 선배로써, 짝사랑이라는 덫에서, 덜 상처받고 잘 헤어나오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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