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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즈 Oct 19. 2017

사소한 것을 보는 눈, 어쿠스틱 라이프

나의 첫 버킷리스트


초등학교 6학년 국어교과서에는 “인생의 목적지”라는 글이 있다. 내용은 삶의 재미와 원동력을 위해서는 인생의 목표나 목적지가 필요하다는 것. 의외로 교과서 속에는 어른들을 뜨끔하게 만드는 철학적인 글들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돌아보니 임용고시 패스 이후로 하루를 그냥저냥 보내고 있는 내모습은 말 그대로 “인생의 목적지”가 없었다. 그래서  버킷리스트를 만들어서 진짜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고 그 첫번째 시작은 다름아닌 “어쿠스틱 라이프 시리즈 모으기” 였다.


공부를 위해서가 아닌 정말 온전히 읽고 싶은 것들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생활만화”에 푹 빠졌다. 생활 만화는 내가 살지 않고 있는 다른이의 삶을 훔쳐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나 가스파드의 ‘선천적 얼간이들’처럼 믿기 어려울정도로 코믹한 일상들은 왠만한 드라마나 시트콤보다 더 재미지다. 하지만 생활 만화에 빠지게 되는 진정한 매력은 만화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작가의 삶에 대한 고찰이다. 그래서 나에게 베스트 생활툰은 누가뭐래도 난다가 그리는 “어쿠스틱 라이프”다.

난다의 만화는 특별한게 없다. 그림체조차도 마치 낙서장에 그린 것 같고 심지어 초반 시즌에는 배경도 종종 생략되어 있다. 내용도 게임 좋아하는 남편의 다이어트 (실패)일기, 가을 타는 이야기, 남편이 출근한 사이에 일어난 이야기... 소소하고 일상적이다.
그런데도 쉽게 지나치거나 무시를 할 수가 없다. 일상 생활 속에서 느끼는 사소한 감상을 자세하게 풀어내는 난다만의 재주는 신기하다. 만화 속에서의 모습만 보면 기름 튐 방지망을 아끼며 쇼핑을 도시인의 산람욕이라 설명하는 세상 느긋한 사람인데 감성은 예민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쿠스틱라이프 시리즈를 대표적인 결혼장려웹툰이라지만 나는 그보다는 수필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한군과의 결혼 생활도 부럽지만서도 난다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가벼운듯 가볍지 않고 건성건성 말하는 듯 하지만 섬세하고 늘 조심스럽다.

사실 어쿠스틱 라이프는 내가 도전하고자 하는 “일상을 리뷰하는 여자”의 모티브였다. 별일 아닌 것에 일희일비하며 생활 철학자가 되는 모습이야말로 나의 롤모델이라고 할까. 매일매일 아침 막장드라마 같은 일상을 살 수는 없다. 그렇게 살다보니 정신이 남아나질 않았다.
나는 혼자 해외로 여행을 떠나가서도 나는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아 기꺼이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쓰는 시간을 즐긴다. 나는 그동안 내가 생각한 것만큼 활력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의외로 게으르고 의욕적이지 않으며 귀차니즘도 자주 느낀다. 그러면서도 사소한것에 이것저것 곁다리를 붙여가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진다.(물론 그게 과하면 우울해진다)
그래서 이런 생각들을 그리는 재주는 없으니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그게 일상을 리뷰하는 여자였다.

그동안 심리학 서적은 죽어라고 열심히 읽으면서도 정작 나를 위한 힐링 서적은 잘 안모으는 축이었다. 언제나 문제 해결식의 태도로 현재 나의 심리를 안정시키기 위해서 책을 골랐다. 혹은 공부해야한다는 근본없는 압박에서 인문학 서적을 골랐다. 그렇게 살다보면 뭐라도 대단한 사람이 될 줄 알았던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태도를 조금 바꾸기로 했다. 이번 버킷리스트는 그동안 열심히 살았던 나에게 보내는 보상이자, 조금 빈둥거려도 된다는 합리화, 그리고 지쳐있는 나를 위한 위로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어쿠스틱 라이프를 읽고나면 나도 평범한 누군가라는 사실이 안심하게 된다.

(이제 1권을 샀는데 11권까지 나와있다니 세상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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