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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즈 Jan 21. 2018

모두가 원하지만, 모두가 어려운 미니멀 라이프

"두려움"이 만드는 우리의 맥시멈 라이프

3주간의 여행을 끝마치고 인천 공항에 내리자마자 몸이 먼저 마스크를 찾아 끼었다. 압도적인 미세먼지의 모습은 나의 폐를 보호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자극했다. 미세먼지에 휘둘리던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안개마냥 뿌옇게 낀 미세먼지들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공기청정기를 알아보게 된다.
그러던 중 공기청정기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고민하며 방안을 둘러보았다.

맨바닥이 차가워 깔게 된 카펫, 다이어트와 헬스장 비용을 줄이겠다는 의지로 샀던 바이크, 수시로 스트레칭을 하고 위해 산 매트, 어깨 결림 때문에 샀던 마사지볼과 폼롤러, 읽은 책과 읽지 않은 책으로 꽉찬 책장, 아침 단장을 위해 필요한 화장대와 나에게 맞는 화장품을 찾아 헤메다 얻게 된 수많은 화장품들, 그리고 계절마다 트렌드마다 맞추어 사는 옷과 가방 등등...

나는 이미 맥시멈 라이프인데 사도될까?
그런데 저 많은 물건 중 어느 하나 활용하지 않는 것이 없고 실제로 그것들이 있어서 받은 도움들이 상당하다. 심지어 없으면 불편해질 모습이 벌써부터 눈에 선하다. 하지만 동시에 드는 생각.



최소한의 삶의 유지를 위해서 필요한게 참 많은 세상이다 
          

직장의 동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혼수를 장만하거나 이사를 하면서 새로운 가구와 가전제품을 구매하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데, 그때마다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필요한 물건들이 많다. 


미세먼지로부터 아이 보호를 위해 공기청정기는 기본이고, 장마철과 옷먼지로부터 해방하기 위해서는 건조기, 가스에서 나오는 유해물질을 막고 깔끔한 생활을 위한 인덕션 그리고 맛있는 커피를 싼 값에 먹기 위해서는 돌체 구스또 기계, 아이를 위한 전집은 기본이고 모바일 학습을 위한 아이패드, 집안의 위생을 위한 스팀청소기, 머릿결 보호를 위한 다이슨 헤어드라이기 등등....

건강하고 아름답게 교양있는 삶을 위해서는 필요한게 참으로 많은 세상이다. 모두의 마음에 불을 지핀 것은 분명 미니멀라이프인데 우리는 맥시멈라이프를 요구받기도 하고 갈구하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미니멀 라이프만이 답인 것은 아니지만서도 한도 끝도 없이 나타나는 삶의 필요 요건들은 미니멀 라이프를 갈구하게 된다. 


폼페이의 시민들은 화산이 처음 터지던 그 순간에 도망가지 않았다.



폼페이의 시민들은 우리의 예상과 달리 화산 폭발 직후 도망가지 않았다. 오히려 폼페이의 시민들은 베수비오 화산의 모습을 아주 인상깊게 보고 있었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화산 폭발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저 터져나오는 화산 폭발의 모습을 처음 본 폼페이 시민들은 신기한 구경을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누군가가 화산 폭발로 인한 불덩이에 죽음을 맞이하거나 화상을 입는 것을 보았을 때 그제서야 도망갔다. 모른다는 것은 이렇게나 사람을 단순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안다는 것은 새로운 두려움을 준다.

인류는 진보했고 이제는 화산 폭발이 위험하다는 것은 5살난 아이도 알 정도로 지식이 흘러넘치는 시대가 되었다. 복잡한 과학의 원리를 알고 연구하며 환경의 변화에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었으며 진보하는 스마트폰 기술은 갤럭시 1대가 50명 이상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과연 사람들이 그만큼 행복해졌는가 라는 질문에는 여전히 물음표로 답할 수밖에 없다. 아는 만큼 보이기도 하지만 아는 만큼 두렵기도 하다. 아는 만큼 편리하지만 아는 만큼 신경써야 하는 것도 늘어난다. 

이미 아는 것이 무서울 정도로 늘어난 현실에서 사람들은 단순하게 행동할 수 있길 바란다. 좋으면 좋다고 말하고 싫으면 싫으니 피해버리면 얼마나 좋은가. 이건 단순히 물건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관계와 지적 욕구와도 관련된다. 싫은 사람은 피하고 싶고 좋은 사람은 매일 보고 싶다. 궁금하지 않은 것은 배우고 싶지 않고 궁금한 것은 직접 알아보고 싶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쓰고 있는 나도, 이 이야기를 읽고 있는 당신도 알듯이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직장 상사가 아무리 싫다고 해서 안만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다고 나 혼자 쫓아 다닐 수 있는 노릇도 아니다. 영어가 싫지만 취업과 승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으며 공기청정기에 돈을 쓰고 싶지는 않지만 건강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이러니 어쩌겠는가
모두가 미니멀 라이프를 원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것을 알고 있기에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미움 받을 용기"가 아니라 "내가 아는 것을 무시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모두가 원하지만 할 수없는 것 뿐이다 미니멀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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