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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즈 Apr 08. 2018

친하게 지내자는 말이 어려워질 때

#그것은_독거노인의_길

"친하게 지내자"

학교 배경의 청춘 드라마에서 나올 것 같은 대사라 오그라드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들었을 때 기분이 좋은 말인 것은 분명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누군가에게 나는  "친해지고 싶은 사람"으로 보여진다는 것이니까. 돌려서 말하지도 않고 딱 그대로 정직하게 말하니 정말 싫지 않고는 "그래!"라는 대답이 안나올 수가 없다. 솔직하고 모든 인간 관계의 시작을 산뜻하게 만들어주는 말이다.


대학때 MBTI 성격검사를 했을 때, 나의 이런저런 성격 중 다른 건 다 까먹고 딱 하나의 설명만 기억에 남는다.

"하즈님은 쿨한 사람이야. 친해지고 싶다고 말하면 '그래! 그럼 지금 같이 밥 먹으러 가자!'라고 말할 완전 쿨한 성격. 그래서 사람을 가리지 않고 잘 사귀는 사람이야."

지금 생각해봐도 아주 틀린 분석은 아니었던 것 같다. 쿨한 것까지는 모르겠지만(나는 소심하니까) 분명한 것은 사람을 가리면서 사귀지는 않았던 것 같다. 성격이 어떻든 외모가 어떻든, 나이, 성별, 학벌, 집안과 상관없이 "사람을 만나는 건 즐거운 일이야. 새로운 세계를 듣게 되잖아?"라는 심플한 생각으로 만났다. 그리고 "친하게 지내자!"라는 말은 나에게 그다지 어려운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친하게 지내자."는 말을 하는 것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친하게 지내자."라는 말을 먼저하기 보다는 사람들을 유심히, 그리고 곰곰히 관찰하고 또 관찰한 다음에 분석하고 그리고 결론 짓는다. 

친하게 지내도 괜찮을 사람, 친하게 지내기 어려울 사람

내가 대단한 사람이 아니란 것은 알지만 그래도 생각하게 된다.

나랑 잘 지낼 수 있을까? 저 사람의 안좋은 면을 감당하면서 친구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그리고 다시 고민한다.

나는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저 사람은 원치 않으면 어떻하지? 

정말 친하게 지내보고 싶은 것일뿐인데 오해하면 어떡하지?

이런 고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결국 "친하게 지내자"라는 말은 삼켜지고 만다.


뭐 인생의 쓴맛을 몇번쯤 보고 사회생활에 치이고 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변하는 것 같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 느끼는 설레임, 호기심, 두근거림은 

결국 따분하고 지루하고 견뎌야 하는 어떠한 것들로 변질되어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리모컨을 들어 텔레비전 속 인물들에게서 그 설레임을 대리만족 받고 만다.


사실... 드라마 속 인물들처럼 설레이고 싶으면 용기내야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외면하며 사는 요즘이다.

...이렇게 반복되다보면 홀로 남아 독거노인의 길로 이어지겠지?

심란하기 짝이 없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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