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보고 난다면 의외라서 놀랄지도 모른다
*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 스포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느와르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세계"만큼은 명작 느와르라고 생각한다. 소재는 사실 느와르! 하면 떠올릴만 했으면서도 이야기의 방점을 찍고 풀어나가는 시점이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찝찝, 씁쓸한 마무리와 우울하기 그지없는 분위기까지..!!! 그래서 원래의 영화 취향대로라면 볼 이유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박훈정 감독이라는 네임과 아주 신선한 소재(기획귀순), 그리고 화려한 라인업에 반해서 봤다. 그런데 막상 보고나니 그런 생각이 든다. VIP가 그렇게 욕먹을 영화인가?
사람들은 어떤 곳에 방점을 찍고 이 영화를 봤는지는 모르겠으나 필자는 이 영화의 초점이 단순한 사나이들의 의리라던지 그런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자기중심적인 인물들의 충돌에 방점을 두었다. 이것이 혹평을 하는 다른 관객들과 필자와의 결정적 차이점이 아닐까 싶다. 박훈정 감독에 대해 정확한 디테일이나 다른 것을 기대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기존에 한국에서 인기있었던 "홍콩식 느와르"에서 다루는 의리와 현실 사이의 괴리라는 주제를 기대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여기는 사실 그런건 없다. 디테일보다는 각각의 이익을 쫓는 전체적인 그림을 연출해내는 것에 더욱 공을 들인 느낌이다.
솔직히 인물들 하나하나 따지고 봐보면 현실에서 실제로 있을 법한 것은 국정원의 박재혁 정도? 설정도 가장 현실적이고 아주 약간에 설명만 있었다면 정말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음지적 특징을 더욱 잘 보여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형사 채이도나 북에서 내려온 리대범은 그냥 독하다는 느낌만 강한데다가 특히 리대범은 답답한 행보를 보이기도 한다. 물론 개인적 취향으로는 불량아 같은 채이도의 태도가 마음에 들기는 했지만 채이도의 내면세계가 아주 잘 드러난 연출이라기에는 납득이 안되는 부분도 적진 않았다.
하지만 말도 안돼는 설정들에도 불구하고 인물들은 자신들의 이익 혹은 세계관에 따라 치열하게 맞붙는다. 이 과정들은 나쁘지 않은데다가 상반되는 이익관계 속에서도 느끼게 되는 김광일에 대한 모두의 분노가 분명하게 나타나고 그것이 박재혁이라는 인물이 영화의 시작과 끝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굉장히 잘 드러난다. 그리고 그 마무리가 엄청난 해소를 주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여지를 남기고 씁쓸함만 남긴다는 점에서 느와르의 장르적 특성에 충실하고 있다고 본다. 단순히 장르를 위한 결말이 아닌 "정말 해낼 수 있는 최대의 복수가 고작 그거뿐일수 밖에 없지"라는 느낌이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와 연결되는 감성이 아닐까 싶다.
이 영화에 대해 여성의 역할에 대한 지적이 매우 많이 나오고 있는데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영화를 볼 때에는 그런 논란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태도에 대해서 일각에서는 이미 남성우월주의적인 시각에 익숙해져서 그런 것이라고 지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영화는 대놓고 남자들의 세계를 이야기했다 라고 생각하고 보니 사실 눈에 거슬리지는 않았다. 물론 지나치리만큼 생생한 잔인을 보여주는 것은 그닥 내키지 않지만서도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것에는 김광일이라는 인물에 대한 캐릭터적인 이해의 연장선상에서 보게 된다. 자신보다 신체적으로든 경제적, 권력적인 측면에서든 나약할 수 밖에 없는 존재를 대상으로 범죄를 일으키는 사람. 그리고 채이도의 대사에서 알 수 있다시피 성적 열등감과 결핍을 느낀 상태의 인물이라면 그 분노를 남자에게 푸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과거 영화 "추격자"에서 4885가 했던 행태와 비슷한 맥락을 보였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봐도 상당부분 평가 절하되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장동건의 연기가 매번 똑같다고 하지만 크게 과하지 않은 범위에서 중심을 잘 잡고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또한 나머지 캐릭터에 대해서도 아쉬운점이 분명 있지만 정말 못볼 영화라고 하기에는 꽤 잘 만들어졌다. 연출이나 편집에서도 인상적인 부분들이 눈에 띈다.(첫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연결지어 마무리하는 센스는 감탄스럽다.)
그래서 자꾸 의문이 든다.
VIP가 그만큼 욕먹을 영화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