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예스맨을 미루다가 이제 겨우 다보았다
혹자는 B급 영화에 불과하다느니 기타 등등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심리학적으로는 꼭 한번쯤 용기를 줄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다
요즘 나의 자존감은 매우 바닥에 박혀있다. 가라앉아 있다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저 바닥 한가운데 박혀있다는 것이 아주 정확한 표현일 정도로 사실상 자존감이란 것을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오늘은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등등 무엇이 되었든 나의 자존감에 대해 낱낱이 파해칠 수 있는 최대로 파해쳐보려고 한다.
사실 나의 자존감이 매우 낮은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혹은 정말 제대로 피하지 못할 정도로 대면한게 된 것은 불과 최근의 일이다. 아마 최근 3주의 이야기이겠지. 덕분에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살아감이 무슨 의이를 지닌 것인지, 그리고 그것의 필요성 혹은 의무성에 대해서 잃어버리고 있다. 영화 "예스맨" 속 "칼" 처럼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말을 하는 것도 주말에 침대밖으로 나가는 것도 모든 것을 거부하고 있으며 본래 하던 컴퓨터 게임도 살을 빼겠다며 시작했던 운동과 다이어트도 모두 올스탑된 채로, 될대로 되라지 라는 마음으로 침대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고 있다.
도대체 나의 낮은 자존감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이 의문의 답을 찾기 위해 나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가장 큰 촉매제는 가족 문제에 있었고 좀더 되돌아가보면 나를 버리고 떠난 사람들의 이기성의 발견에서 다시 원인을 찾았으며, 그보다 안으로 들어가보면 끝없이 경쟁하고 이기성만이 개개인들의 방어기제가 되어버린 학창시절과 사회생활, 그리고 그보다 더 안으로 걸어들어가면 타인들이 나에 대해 기대하던 역할들과 이미지,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그 아무도 믿을 수 없음에서 비롯된 것 같다.
김도인의 글 "숨쉬듯 가볍게"에서는 상처에 대한 치유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들이 나의 일부임을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하며 자기 일생의 시나리오를 다시 돌이켜보는 것과 yesman 프로젝트, 운동화를 신으세요 등등 여러가지 방법들을 제시해준다. 이런 행동들의 목표는 크게 2가지로 볼 수 있는데 첫번째는 자기 자신에 대한 아주 세밀하고 섬세한 인식이고 또다른 이유는 기존의 틀을 깨고 나오는 것에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과연 내가 김도인의 조언처럼, 혹은 칼처럼 과감하게 yes프로젝트를 실행하거나 기존의 틀을 깨부수는데에 도전할 수 있을까? 칼의 친구들처럼 나의 친구들은 아주 감사하게도 나의 틀을 깨는 도전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반드시 해내길 바라고 있다. 또한 언제나 나에게는 흔들리지 않는. 편이 되어줄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고 그 틀을 깬다는 행위가 생각보다 대단하거나 위험한일이 아니라고 안심시켜주려고 애쓰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사회 구성원의 일부일뿐, 내가 속한 사회는 나의 도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개인이 어떤 형태의 갈등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다루는 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고 개인의 감정과 상관없이 하나의 톱니바퀴로써 해내야할 역할 수행을 요구하고 있다. 사회 전체의 시스템 유지라는 측면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그러기엔 그 톱니 바퀴 하나하나가 노쇠해지고 약해지며 부서지기 시작할때, 그를 대체한 톱니바퀴가 또 그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법이 있을까? 그리고 사회 구성원이 되길 바라는 톱니바퀴들이 정작 사회 구성원이 되었을 때, 기존의 톱니바퀴들처럼 약해지지 말란 약속이 있을까?
이미 우리 사회는 우리 스스로를 톱니바퀴로 취급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서 1인가구가 늘어나는 세상이니 출산율이 저조하니 이리저리 떠들고 말같지도 않은 정책들로 얼버무리려고 한다. 오랫동안 묵혀있던 우리 사회의 문제들, 특히 우리 스스로를 톱니바퀴화시키고 자존감을 잃게 하는 이 사회가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과연 나는 이 낮은 자존감을 높이고 우울감에서 극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