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누리 교수의 <경쟁교육은 야만이다>
김누리 교수의 <경쟁교육은 야만이다>는 2월 중순에 있을 토론 모임을 위해 집어 든 책이다. 책을 읽는 내내 김교수의 주장에 구구절절 동의하면서도, 마음 한켠에서는 외부자의 시선에서 비판하는 일은 명쾌해 보일지 몰라도, 교육행정 일선에서 이해관계를 조율하며 정책을 입안하고 변화의 드라이브를 거는 일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문제제기를 하고, 개혁이 아닌 혁명 수준의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늘어날 때, 우리 사회의 교육문제도 조금씩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경쟁교육은 야만이다> 책 제목부터 돌직구다. 아주 직설적이다.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그 지옥 같은 입시 경쟁을 저자는 ‘야만’이라는 한 단어로 정의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며 견뎌온 교육 시스템이 사실은 얼마나 비정상적인지, 반인권적인지 자각하게 만드는 제목이다. 이 책은 단순히 교육 제도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 한국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능력주의’와 '공정'이라는 허상과 승자독식 구조를 날카롭게 해부한다.
저자는 한국의 교육을 ‘반(反)교육’이라고 단언한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인간의 존엄과 연대를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옆자리의 친구를 밟고 올라서야 내가 사는 '전쟁터'가 되어버렸다고 말한다. 우리는 흔히 시험 성적으로 줄을 세우는 것이 가장 공정하다고 믿지만, 저자는 이것이야말로 부모의 경제력이 학력을 결정하고 그 학력이 다시 계급을 만드는 ‘세습 사회’의 알리바이일 뿐이라고 일갈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공정'을 외치는 것만큼 불공정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공교육만으로는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사교육에 매달려야 하는 이 구조는 아이들을 점점 더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살인적인 경쟁 속에서 성숙한 시민을 길러낼 기회를 한국사회가 놓치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성교육', 비판적 사고를 하는 주권자를 기르는 '정치 교육', 자연과 공존하는 '생태 교육'이 부재한 교실에서 아이들은 정서적 불안과 무력감에 시달린다. 성적으로 줄세우는 학교에서 아이들은 달달 외운 지식으로 매달 평가를 받고, 서열에 따라 오만함과 열등감을 내면화한다. 그렇게 길러진 엘리트들은 자기만 아는 괴물이 되어간다.
저자는 ‘경쟁 없는 교육’을 실천한 독일의 사례를 들며 지금의 한국 교육을 개혁이 아닌 혁명 수준으로 뒤집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학 입시인 수능을 폐지하고 유럽처럼 일정 학력만 갖추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는 자격고사로 전환하자는 것, 그리고 대학 서열화를 철폐하여 ‘대학 평준화’를 이루자는 것이다. 다소 급진적으로 들리지만, 교육의 목표가 소수의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학생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양성’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철학만큼은 거부할 수 없는 설득력을 가진다.
물론 현실적인 의문은 남는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수능을 폐지하고 대학 평준화를 이룩할 수 있을까? AI 기술혁명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대학의 간판이 가지는 의미가 점점 퇴색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학벌주의를 단기간에 걷어내기는 여전히 어려워 보인다. 당위와 현실 가능성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는 지점이다. 독일이나 북유럽의 다른 국가들이 걸어온 길과 우리가 해방이후 급진적 산업화와 독재시대를 경험하면서 걸어온 길이 확연하게 다르기에 그들의 교육제도와 철학을 우리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사회적 맥락과 가치관이 달라도 너무 다르기에 아무리 좋은 취지의 제도를 가져와서 이식해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작용을 염려할 수밖에 없다.
책을 덮으며 가장 깊게 남은 것은 “지금 행복하지 않은 아이는 나중에도 행복할 수 없다”는 메시지였다. 우리는 늘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라고 강요받아왔다. 하지만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식의 논리가 승자에게는 오만을, 패자에게는 굴종을 심어주는 동안 우리 사회의 행복도는 바닥을 쳤다.
저자의 주장처럼 이 지옥 같은 경쟁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현실 안주가 아니라 현실 파괴일지도 모른다.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세계 최저 출산국, 자살률 1위의 오명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비록 당장 내일 입시 제도가 바뀌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다른 삶은 가능하다’는 상상력, 그리고 무한 경쟁 대신 연대를 택하는 용기가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배움이 아닐까.
이 책은 읽고 나면 질문이 많아지는 책이다. 우리가 반드시 가야 할 방향을 가리키고 있기도 하다. 함께 공감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늘어날 때, 견고해 보이는 이 사회도 어느 순간 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