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고프스타인의 <할머니의 저녁식사>는 어른 손바닥만 한 작은 크기의 판형이자, 컬러 채색 없이 검정 선으로만 이루어진 간결한 그림과 짧은 글밥의 그림책이다.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이자 간소하고 담백한 미니멀라이프의 전형을 보여주는 할머니의 하루가 소개된다. 이렇게 살 수 있는 노년이라면 그 무엇도 부럽지 않고 두렵지 않을 듯하다.
이 그림책은 1977년 ‘그림책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칼데콧 명예상을 받은 작품이다. 작가가 어린 시절에 미네통가 호수에서 실제 어부였던 할머니와 보냈던 추억을 녹여 만들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침을 차려 먹고 햇빛을 가릴 모자와 낚시도구를 챙겨 물가로 간다. 배를 타고 나가선 온종일 낚시를 한다. 잡아온 물고기로 정성껏 요리해 저녁을 맛있게 먹은 뒤엔 설거지를 재빨리 하고 잠을 청한다. 내일 새벽 5시, 다시 낚시하러 나가기 위해서이다.
할머니의 일상은 그 자체로 '고요한 명상'이요, 삶에 대한 '예찬'이다. 할머니의 하루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이 책을 우리말로 번역한 이수지 작가의 <옮긴이의 말>이 인상적이다.
M. B. 고프스타인의 그림책에는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딱 필요한 것만 있습니다. 이 책 속 할머니의 하루도 그래요. 세상은 고요하고, 일상은 명료하고, 할머니는 오늘도 어김없이 낚시를 나갑니다. 작가는 따뜻한 눈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요. “이걸로 충분해. 지금, 여기, 이 빛나는 것을 봐." (이수지 작가)
이 작고 단순한 그림책 하나로 성인들이 모여 2시간을 토론했다. 할머니의 명료하고 단순한 일상이 현실에서도 실현 가능한 것인지, 할머니의 하루 루틴 중 어떤 부분이 가장 인상적인지, 영어 그림책 원제는 'Fish for Supper'인데 한국어 제목은 <할머니의 저녁식사>로 한 것에 대해 공감하는지, 온종일 낚시를 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또 다음날도 낚시를 하는 '나 홀로 취미 생활'에 문제는 없는지, 낚시를 할 때나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먹을 때 항상 구두와 귀걸이를 착용하고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에 공감하는지, 정말 옮긴이의 말처럼 "이걸로 충분"한 지를 묻는 논제 등이 있었다.
그림책 하나로 2시간의 토론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감동적인 토론 소감이 이어졌다. "이 그림책을 통해 앞으로 다가올 은퇴 이후의 노년의 삶, 인생의 길 등을 미리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림책 속 할머니가 자신의 일상을 사랑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다. 자신을 소중히 여길 줄 알고 몸과 마음을 챙길 줄 아는 분이다. 할머니를 보면서 나의 남은 삶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가 생각났다. 나의 삶도 보다 심플하고 명료하게 세팅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내가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일(할머니의 '낚시'같은)이 무엇인지 찾아봐야겠다. 할머니가 온종일 시간을 보내는 '낚시'의 자리에 나는 무엇을 넣을지 지금부터 찾아야겠다. " 등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재빨리' 설거지를 하고 다음날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다시 고기잡이를 가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드는 할머니의 일상은 내일이 기다려지는 삶이다. 빨리 일어나고 싶은 이유가 있는 노년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만큼 좋아하는 일(낚시)이 있는 일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할머니의 루틴은 경이롭다. 나는 나의 노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할머니의 '낚시' 같은 것을 나도 지금부터 찾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한 고마운 그림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