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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뭐길래

자식은 부모에게 신이 맡겨 둔 선물

20~30대 젊은 친구들은 잘 모르겠지만, 90년대 초에 '사랑이 뭐길래'라는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순재, 김혜자, 하희라, 최민수, 신애라, 이재룡 등의 연기자들이 출연했고,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와 애환을 김수현 작가 특유의 감칠맛 나는 대사로 버무려 매회 시청률 고공행진을 벌였던 화제의 드라마였습니다. 최민수와 하희라가 결혼해서 만나게 된 양가는 어른들의 성격과 집안 분위기, 가족 문화 등이 달라도 너무 달랐고, 자연히 신혼부부인 두 사람의 가치관과 생활습관도 차이가 많았죠. 좌충우돌 부딪히면서도 그 놈의 '사랑이 뭐길래' 결국은 화해하고 양보하고 인내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많은 시청자들이 공감했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은 '사춘기' 관련 일요편지의 제목을 그 드라마 제목을 패러디해서 '자식이 뭐길래'로 해볼까 합니다.


아주 오래전 일이 기억납니다. 결혼을 앞 둔 몇 달전, 저는 친구와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떨면서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나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절대 공부하라고 강요하거나 강압적으로 지시하는 엄마는 되지 않을 거야. 대신 3가지 만은 꼭 실천할 거야. 첫째는 칭찬과 격려를 통해 자존감 높은 아이로 키우기, 둘째는 여행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어 주변 사물과 환경에 호기심이 많은 아이로 키우기, 마지막으로 독서가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어 스스로 지적 호기심을 채워가는 아이로 키우기. 다른 건 몰라도 '칭찬, 여행, 독서' 이 세 가지 만큼은 꼭 실천하겠어"라고 이야기하자 친구도 참 좋은 생각이라고 동조했던 기억이 납니다. 결혼하기도 전에 말로는 이미 '좋은 엄마' '현명한 엄마'의 자세와 철학을 다 확립한 듯 자신만만했습니다.


세 가지를 실천해서 '좋은 엄마' 가 되겠다던 그때의 결심은 세월이 지나면서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고 잊혔습니다. 딸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에는 내가 절대 되지 않겠다던 '공부하라고 강요하고 지적질하는 엄마'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나아가 딸이 사춘기 정점을 찍은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에는 딸과 사소한 일에도 설전을 벌이기 일쑤였고, 칭찬은커녕 매일 야단치기 바빴습니다. 나름 '괜찮은 엄마'라고 자부했던 나의 자존감이 바닥으로 추락했습니다. 어릴적에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두 아이를 양쪽에 눕히고 꾸벅 꾸벅 졸면서도 그림책을 열심히 읽어주었는데,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에게는 독서보다는 영어, 수학 학원 숙제했는지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자식 문제에 관한 한 절대 장담하는 법 아니다'는 누군가의 말이 그제야 떠올랐습니다. 누구보다 자녀를 잘 키울 줄 알았는데 아이의 사춘기 시절 제 모습은 결혼 전 원하던 '좋은 엄마'의 모습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가 무엇을 놓쳤던 걸까? 도대체 왜 내가 자식 때문에 이렇게 힘들어해야 하는 걸까?' 당시에는 그저 억울하고 속상할 뿐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춘기 폭풍이 지나가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문제는 제가 자식의 인생과 제 인생을 분리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식을 독립된 인격체로 보지 못하고 나의 분신처럼, 내가 돌보지 않으면 큰 일 날 것 같은 불완전한 존재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식에 대한 관심이고 사랑인 줄 알았습니다. 당연히 부모가 해야 할 직무라고 여겼습니다. 자식의 성적이 곧 나의 성적이요, 자식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칭찬보다는 질책을, 아이의 자율성보다는 일방적 지시를, 스스로 찾아가도록 배려하기 보다는 빠르고 안전한 길로 안내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자식을 통해 나의 만족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에 저 역시 여지없이 빠져들었습니다. 그 함정에 빠지니 멀쩡했던 부모 자녀 사이가 한순간에 원수지간으로 돌변했습니다. '자식이 뭐길래' 소리가 절로 나오고, 하루에도 열두 번 넘게 한숨을 쉬게 되고, 공연히 눈물이 났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자식이 뭘까요? '자식은 신께서 부모에게 잠시 맡겨 둔 선물'이라고 합니다. 선물은 선물답게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또한 잠시 맡겨 두신 선물이기에 온전히 내 것이라 착각해서도 안됩니다. 자식이 스스로의 인생을 행복하고 독립적으로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부모의 역할입니다. 자식은 부모의 꿈을 대신해서 성취해 줘야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자식 잘 되는 것이 부모의 기쁨이고 행복임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게 되도록 기도하고 응원하되, 그 과정에서 자녀를 아프게 하거나 상처를 주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이론이 아닌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무더운 여름철입니다. 건강에 유의하시고 가족과 함께 행복한 휴일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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