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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던 시대, 몰랐던 사람들의 가슴 아픈 가족 이야기

양영희 감독의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

양영희 감독이 쓴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를 읽었다. 이 책을 남편에게 먼저 읽어보라고 권했다. 별다른 사전 정보 없이 남편은 책을 집어 들어 읽기 시작했고, 주말 반나절만에 다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더니 소파에서 눈을 감고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결혼하고 지금까지 함께 살면서 남편이 책을 읽고 우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드라마나 영화 보다가 눈물 흘리는 모습은 여러 번 보았지만, 책을 읽고 나서 운다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남편이 말한다. " 아~ 괜히 읽었어. 너무 가슴이 아파. 어떻게 이런 가족이 다 있지? 아버지도, 어머니도, 자식들도~ 정말 힘들었겠다." 그러더니 책 표지와 날개, 첫 페이지를 열어 확인한다. " 아직 1판 1쇄야? 더 많이 알려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봐야 하는 거 아니야? <디어 평양> 영화는 어디서 볼 수 있지?" 등의 폭풍 반응을 쏟아냈다. 급기야 아들에게도, 딸에게도 꼭 읽어보라고 권한다. 그렇게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에 대한 남편의 독후 감상은 요란스럽고도 엄청났다.


해방직후 조총련 재일코리안의 삶은 이처럼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나 역시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 영화 토론 모임을 통해 양영희 감독의 특별한 가족사를 처음 알게 되었다. 가족들과 제주여행을 갔을 때, 일정 중에 제주 4.3 평화공원 방문을 일부러 잡은 것도 그 영화 덕분이었다.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는 자신의 가족을 소재로 꾸준히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 온 재일코리안 2세 양영희 감독이 카메라에 다 담을 수 없었던 이야기를 글로 써 내려간 자전적 에세이이다. 아버지가 주인공인 영화 <디어 평양>, 오빠들과 친척들의 이야기를 다룬 <굿바이, 평양> 그리고 어머니의 이야기인 <수프와 이데올로기>로 이어지는 가족 3부작 시리즈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배경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양영희 감독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1970년대 초반 아들 셋을 각각 열네 살, 열여섯 살, 열여덟 살의 나이에 북송 사업(귀국사업)이라는 명목으로 북한으로 보낸다. 3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났지만, 오빠들 없이 외동딸처럼 외롭게 자랄 수밖에 없었던 양 감독이 이 기막힌 가족사와 부모님을 이해해 보고자 캠코더를 들고 평양과 오사카를 오가며 영상으로 찍기 시작하면서 시작된 다큐멘터리 작업이었다. 양 감독은 한때 아버지와 만나기만 하면 다투고 싸우느라 관계가 틀어지기도 했지만, 결국은 부모님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불행한 세월과 회한 어린 그분들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북한에 대한 충성심에 한치의 흔들림도 없어 보이던 아버지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는 모습이 담긴 장면, 그 장면을 <디어 평양>에 넣음으로써 양 감독은 북한에 더 이상 갈 수 없는 입국 금지 처분을 받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에 넣을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책에 소개된다.


"세 명 전부 보내서 후회해?" 갑자기 물어보자 침묵이 흘렸다. 될 대로 되라지 생각한 순간,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이미 가버린 건 별수 없다 싶지만, 가지 않았으면 더 좋았으려나 그렇게는 생각하지." 내 귀를 의심하면서 신중하게 질문을 이어갔다. 아버지는 타임캡슐을 타고 북송 사업이 활발했던 무렵으로 돌아가서 목차를 훑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때 아버지 연세가? 아들들을 보냈을 때. 아버지는 몇 살이셨죠?"

“몇 살이었으려나……….”

“지금부터 32, 33년 전이면 아버지가 43, 44세?”

“당시 전망이라는 게, 재일조선인 운동이 제일 앙양하던 시기이기도 하고. 문제가 다 잘 풀리는 쪽으로 보았으니까. 안일했지......."

아버지의 솔직함에 놀랐다. 내 질문에 진지하게 답해줘서 고마웠다. 이걸로 영화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p.92)



아버지가 투병 중일 때 가장 즐겨 부르던 노래는 북한 정권에 충성을 다짐하는 노래가 아닌 <제주도의 자랑가>와 <목포의 눈물>이었다는 대목에서는 나 역시 눈물이 났다. 아버지에게 '세포에 스며든 노래'는 제주도에서 불렀던 노래였던 셈이라는 대목이 뭉클했다. 더불어 부모님의 평생을 지배했던 신념이자 숭배의 대상이었던 북한 지도자의 초상화를 양 감독이 집안 벽에서 떼어내는 장면 또한 인상적이었다.


어떻게든 초상화를 치우는 장면을 넣고 싶었다. 넣어야 했다. 나 자신과의 결별로서, 새롭게 걸어 나가기 위한 생의 마디로서. 낡은 시대에 고하는 결별이자 가족과의 결별이기도 했다. '그런 시대는 이제 끝냅시다!' 하는 결별. 평양에 있는 가족이 걱정되지 않을 리가 있을까.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더욱더 가족과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북에 가족이 있어서 아무 말 못 했던 시대를 끝내고 싶었다. 이제 충분하지 않나. 무엇보다 나는 북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p.198)


그리고, 종교가 없었던 어머니가 생의 마지막 시기에는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대상을 향해 매일 두 손을 모아 기도를 드리는 장면 또한 가슴 먹먹했다. 어머니의 모든 행위가 '기도'였다는 양감독의 말이 깊이 와닿았다. 북에 보낸 가족의 뒷바라지를 위해 평생을 헌신했던 어머니가 말년에는 알츠하이머를 앓으며, '북송 사업'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고 이미 세상을 떠난 남편과 큰 아들은 물론, 남은 가족들 모두와 여전히 오사카 집에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모습은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은 심정이었다.


어쩌면 어머니가 가족을 위해 해온 모든 행위가 기도였던 것이 아닐까. 남편을 바라보고, 아이들을 안아주고,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깨우고 꾸짖고 칭찬하는 그 모든 것이 기도였다는 생각이 비로소 든다. (p.209)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는 우리가 몰랐던 세상, 몰랐던 시대를 살아간, 전혀 몰랐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고도 아프게 들려준다. 개인과 국가의 관계, 이데올로기와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 부침을 겪어야 했던 사람들에 대해 되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무엇보다 '가족'을 이해하는 일의 어려움과 필요성을 깊이 고민하게 한다. 일독을 권한다.


가족이란 혈연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절절히 믿게 되었다.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기능하는 관계성이 있어야 집합체가 비로소 가족이 되는 건지도 모른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기억을 공유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비록 당사자는 될 수 없지만, 타인의 삶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윤곽정도는 알고 싶다는 겸손한 노력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알고자 하는 것이다. 사건과 사실을, 감정과 감상을, 그리고 말할 수 없는 상상과 망상까지도.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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