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 커포티 『인 콜드 블러드』
트루먼 커포티(1924~1984)의 『인 콜드 블러드』는 '논픽션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연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1959년 미국 캔자스 주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실제 벌어진 '일가족 살인 사건'을 배경으로 쓰였다. 교도소에서 알게 된 두 범인, 딕과 페리가 일면식도 없었던 '클러터 씨'의 집에 몰래 침입해 일가족 네 명을 무참히 살해한 사건이다. 금고를 노리고 들어갔으나, 금고는 없었고, 그들이 떠날 때 손에 쥔 것이라고는 단돈 50달러 남짓과 라디오 하나뿐이었다.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인 트루먼 커포티는 신문 한편에 실린 사건 보도 기사 한 토막에 영감을 얻어 직접 현장으로 달려간다. 그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취재하고, 자료조사한 뒤 『인 콜드 블러드』 (냉혈한으로)라는 제목의 '논픽션 소설'을 완성한다. 체포된 두 사람, 딕과 페리가 여러 차례의 재판을 거쳐, 최종 교수형에 처해지는 장면까지 소설 속에 담느라 무려 6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커포티의 집요한 기자정신과 소설가로서의 탁월한 문학적 재능이 결합해 탄생시킨 걸작이다.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생생한 현실감'이다. 허구가 아닌 실제 벌어진 사건을 재현하는 소설이기에 독자들이 느끼는 몰입감이 강력하다. 이 점이 독자에 따라선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실제 희생자가 있고, 그로 인해 교수형에 처해진 범인들이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그들이 살아 있던 마지막 날 : 피해자 가족의 죽기 전날 모습이 그려진다.
2부 신원 불명의 범인들 : 점점 살인 현장으로 다가오는 범인들의 동선과 행적이 묘사된다.
3부 해답 : 미궁 속으로 빠지려던 사건의 실마리가 잡히고, 범인이 검거된다.
4부 구석 : 재판이 계속되고, 사형선고를 받은 범인들이 교수형에 처해진다.
범인이 이미 다 밝혀진 실제 사건이고, 500페이지의 방대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은 전적으로 작가 트루먼 커포티의 어마어마한 필력과 기막힌 플롯 구성력 덕분이다. 한순간도 긴장감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이 소설의 또 다른 강점은 '탁월한 심리묘사'에 있다. 살인사건을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 수사관들, 범인 가족들의 심정과 태도를 예리하게 분석한다. 또한 살인범들의 성장과정, 범행 동기, 불안 심리를 범죄 심리학 측면에서 기술한다. 교수형을 앞두고 사형수들이 보여주는 심경 변화까지 자세하게 묘사한다. 인간의 본성, 선입견과 편견을 깊이 있게 파헤친다. '딕'과 '페리' 중 특히, 페리의 어린 시절과 성장 배경을 자세하게 추적 관찰함으로써 불행한 인생의 진원지였던 가정과 사회의 공동 책임을 되돌아보게 한다. 예민하고 섬세한 아이였던 페리가 어린 시절 부모의 불화와 이혼, 알코올중독과 방임으로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아동보호소에 맡겨져 심각한 아동학대를 경험한 뒤, 정신적 트라우마가 있는 성인으로 살아가게 되는 과정이 잘 묘사되어 있다. 작가 커포티가 '페리'를 보면서 자신과 유사한 면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에게 과도하게 감정이입한 흔적이 작품 곳곳에 드러난다.
이 책 4부에서 묘사하고 있는 교수형 장면은 너무 생생해서 실제 사형장에 함께 참관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사형제도에 대한 찬반 논란을 충분히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장면이다. '범죄와 처벌'에 대한 적정성 이슈는 여전히 모든 사회에서 쉽지 않은 문제이다.
실화에서 영감을 얻어 소설 작품을 구상하는 소설가는 많다. 그들은 '픽션'을 표방하기에 '모티브'만 가져올 뿐, 인물, 사건, 배경 설정에 얼마든지 변주가 가능하다. 하지만, '논픽션 소설'의 경우는 소설적 기법을 사용해서 쓴 '객관적 사실'이어야 하기에 완성 이후에도 '진실 공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 기록 문학이나 증언 문학처럼, 상상적 허구가 아니라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쓴 소설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인 콜드 블러드』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인 만큼 실제와 다르게 묘사되었다는 항의와 왜곡 논란이 끊임없이 있었다고 한다. 여러 사람들로부터 내밀한 이야기를 이끌어내기 위해 작가가 동원한 방법상의 무리수가 도덕적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 콜드 블러드』 가 이룩한 성취는 대단히 놀랍다. 탁월한 문장과 빼어난 플롯 구성, 인간의 어두운 면과 본성을 꿰뚫는 심리묘사 등 문학작품으로서의 가치가 훌륭하다. 커포티가 작가 인생을 걸고 치열하게 매달렸을 6년의 세월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작품이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가정이란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 범죄자의 심리와 범죄자를 양산하는 불안정한 환경에 우리 사회는 어떤 대책을 강구해야 하는지 여러 가지 생각거리와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추천하고 싶은 독자는 '실화'를 배경으로 쓰인 소설 읽기에 관심 있는 독자들, 인간의 본성과 내면, 범죄 심리에 관심 있는 독자들, '논픽션' 소설 쓰기에 관심 있는 예비 작가들, 무엇보다 사회비판적이고 철학적인 문제에 관심 있는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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