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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처이자 구도의 몸짓이었던, 그의 문학 그리고 인생

나쓰메 소세키 산문집 <인생의 이야기>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마음』 등 여러 작품을 남긴 일본의 소설가이자 평론가, 영문학자였던 나쓰메 소세키(1867~1916)에게는 '일본 근현대문학의 아버지', '일본의 셰익스피어', '일본 국민작가' 등과 같은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49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일본 근현대 문학계에 끼친 영향력은 실로 크다고 할 수 있다.


<인생의 이야기>는 소세키가 자신의 인생관, 인간관, 문학관 등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밝힌 산문집이다. 기고, 수필, 담화, 강연, 서간문 등의 다양한 형식의 글이 담겨 있다. 평소 소세키의 소설을 좋아했던 독자라면, 혹은 소세키의 소설을 읽어보고 싶은데 인간 소세키에 대해 먼저 알고 싶은 독자라면 관심 있게 읽어 볼 만한 책이다.


소세키는 1893년에 도쿄제국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1900년 국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영국 유학길에 오른다. 런던 유학 도중 타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신경 쇠약에 빠진다. 귀국 후 도쿄제국대학 강사로 잠시 근무했지만, 다시 정신 질환을 앓는 바람에 치유의 방편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때 완성한 작품이 바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였다. 이 작품이 대중과 평단에 큰 호평을 받았다. 이후 교직 생활과 소설 창작을 병행하는데 부담을 느낀 소세키에게 아사히 신문사가 전속 작가 제안을 하자, 수락 후 교직을 떠나 글쓰기에만 전념한다. 이후『우미인초』를 연재하고 『도련님』(1906), 『풀베개』(1906) 등을 연이어 발표하게 된다. 초기 작품들에는 경쾌하고 유머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다수를 이루었으나 나중에는 인간의 깊은 내면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묘사한 철학적 글들을 주로 발표했다. 병이 깊어지는 것과 무관하지 않았다고 한다.


<인생의 이야기> 속에 실린 여러 산문들은 그의 인생관을 엿볼 수 있게 하는데 결코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직진하듯 정곡을 찌른다.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표현들이 대가의 면모와 내공을 유감없이 드러내준다. 메이지 유신 시대에 태어난 인물이 쓴 글이 오늘날 읽어도 전혀 고루하지 않고 위트가 넘친다는 사실이 놀랍다. 산문집 후반에 등장하는 '자기본위'라는 개념은 '자존감'을 갖는 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나쓰메 가문에서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지만 집안 사정상 어릴 때 입양을 가야 했고 다시 본가로 돌아와 평생을 양부모와 친부모 사이에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던 그에게 문학은 일종의 도피처이자 구도의 몸짓이었다고 한다. 신경쇠약을 극복하기 위해 치열하게 글을 썼던 그였기에 짧은 작품 활동 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작품은 일본은 물론 전 세계 많은 작가들에게 큰 영감과 영향을 줄 수 있었다.

사인은 신경쇠약과 위궤양을 동반한 내출혈이었다. 글쓰기가 그를 구원했지만 또 그를 일찍 데려간 원인이기도 했다.



< 인생의 이야기>에서 발췌한 부분들


지금의 서생은 학교를 여관처럼 생각한다. 돈을 지불하면 잠시 머물 수 있는 곳이라 여길 뿐,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곧바로 숙박지를 옮긴다. 학생들을 대하는 교장은 여관 주인 같고, 교사는 심부름꾼이다. 주인인 교장조차도 때로는 손님들 기분에 맞춰주지 않으면 안 될 판에 하물며 심부름꾼은 오죽하랴. 훈육은커녕 해고되지 않는 것을 행복으로 여길 정도다. 당연히 학생은 거만해지고 교사의 가치는 땅에 떨어진다. (p.10)


1900년대 초기에 쓴 글인데, 학교와 교사의 처지, 학생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가 오늘날의 이야기라고 해도 믿을 만큼 흡사해서 놀랍다.


선한 사람만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화나는 일이 많다. 악한 사람만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마음 편할 일이 없다. 사람을 숭배하지 마라. 사람을 경멸하지 마라. 태어나기 전을 생각하라. 죽은 후를 생각하라.(p.12)


인간에 대해 과도한 기대도 실망도 하지 말라고 한다. 숭배하지도, 경멸하지도 말라고 당부한다. "태어나기 전을 생각하라. 죽은 후를 생각하라." 이 말은 인간관계에 흔들리고 상처받을 때마다 새겨봄직한 조언이다. 그래, 태어나기 전, 죽은 후를 생각한다면 그냥 넘기지 못할 일이 또 무엇이겠는가?


다수에 기대어 한 사람을 무시하지 마라. 자신의 무기력함을 온 세상에 떠벌리는 것과 다름없다. 이런 자는 인간 찌꺼기와 같다. 두부 찌꺼기는 말이 먹지만, 인간 찌꺼기는 홋카이도 땅끝까지 가져가도 팔리지 않는다.


군중심리에 휩쓸려, 누군가를 왕따 시키고 괴롭히는 행태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자는 '자기의 무기력함'을 드러내는 꼴이고, 인간 찌꺼기와 같다고 단언한다. 그야말로 소세키는 단호하다. 직선적으로 일갈한다.


자신감이 강할 때는 남이 그것을 깨부수고, 자신감이 약할 때는 자기 스스로 그것을 깨부순다. 차라리 남에게 깨부수어질지언정, 스스로 깨부수지는 마라.


멋진 말이다. 남이 자신감을 깨부술지언정 스스로 자기 비하하거나 자신감을 내려놓지는 말자.


빈정거리지 마라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거나,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거나, 남을 조롱하거나 혹평하는 사람은 빈정거림을 떨쳐버리지 못해서 그러는 것이다. 인간뿐만 아니라 시(詩)나 하이카이의 경우에도 빈정거림이 담긴 것에 아름다움은 없다.


빈정거림이 담긴 것에 아름다움은 없다! 빈정거리는 것만큼, 관계를 망가뜨리는 것도 없다.


선생에게 야단맞았다고 해서 자신의 가치가 떨어졌다고 생각하지 마라. 또한 칭찬받았다고 해서 자신의 가치가 올라갔다며 우쭐하지도 마라. 학은 날고 있어도, 자고 있어도 학이다. 돼지는 울어도 짖어도 돼지다.

남의 비난과 칭찬에 따라 변하는 것은 값어치이지 가치가 아니다. 값어치의 높고 낮음을 목적으로 처세하는 사람을 재사라고 하고, 가치를 기준으로 일을 행하는 사람을 군자라고 한다. 따라서 재사는 출세를 많이 하고, 군자는 몰락을 개의치 않는다. (p.13)


한 마디 한 마디가 철학자이자, 지혜자의 금언들이다. 남의 평가와 칭찬에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함을 강조한다. 나의 가치는 남이 매기는 것이 아니다. 학은 자고 있어도 날고 있어도 학이고, 돼지는 울어도 짖어도 돼지라는 말! 자신의 정체성을 바르게 인식하고, 스스로 가치를 떨어뜨리고 훼손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람을 보라. 금시계를 보지 마라. 옷을 보지 마라. 도둑은 우리보다 더 멋진 옷을 입는 사람이다.

함부로 남을 평가하지 마라. 그저, 이러이러한 사람이구나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입 밖으로 나간 말은 다시 주워 담으려고 해도 소용이 없다. 하물며 주워들은 소문같이 빈약한 토대 위에 세워진 비평이야 말할 것도 없다. 학문에 대해서는 섣불리 논쟁하지 말고, 공격을 받고 논파될 것을 걱정해야 할 것이다. (p.15)


사람을 겉모습으로, 치장으로 판단하지 말지니, 도둑이 오히려 더 멋진 옷을 입는 법이다. 함부로 말을 내뱉지 말아야 함도 명심해야 한다. 학문에 관해서도 섣불리 논쟁하지 말라. 옳은 말이다. 논쟁은 결국 적을 만들 뿐이다.


아무리 소세키라도 이렇게 바쁘게 뛰어다니면 신경쇠약에 걸리는 것이다. 더구나 글도 여러 편 써야 한다. 별난 호기심에서 글을 쓰니 신경쇠약에 걸리는 것이라고 한다면 분명히 말해두겠지만, 근래의 소세키는 뭔가 글을 쓰지 않으면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가르치기 위해서든 수양을 위해서든 책을 읽기 않으면 세상에 면목이 서지 않는다. 소세키는 이러한 사정으로 신경쇠약에 빠진 것이다.


너무 많은 일을 벌이면 누구라도 신경쇠약에 걸릴 수 있다. 경계해야 할 일이다. 나도 완급 조절을 잘해야 한다. 살아 있음을 느끼기 위해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말하지만, 글쓰기가 어디 만만한 일이던가. 신경쇠약을 치유하기 위해 글을 썼지만, 그 글을 잘 쓰기 위해 또 신경쇠약에 걸리기도 했으리라. 이것이야말로 작가의 숙명이 아니고 무엇이랴.


신문사는 교사로서 돈을 버는 것을 금지했다. 그 대신 생활이 궁핍하지 않을 정도의 급료를 준다. 먹고 살 수만 있다면 뭐 하러 that이며 it이며 고생고생 떠들어댈 필요가 있겠는가. 그만두지 말라고 해도 그만둔다. 그만두고 난 다음 날부터 갑자기 어깨가 홀가분해지고, 지금껏 맛보지 못한 공기가 폐 속으로 한껏 들어왔다.

학교를 그만둔 뒤 교토로 놀러 갔다. 거기서 옛 친구를 만나 들과 산과 절과 신사를 돌아다녔는데, 어디를 가든 학교보다는 유쾌했다. 휘파람새는 몸을 거꾸로 하고 첫울음을 내지른다. 나는 마음을 비우고 4년 묵은 먼지를 폐 안쪽에서부터 내뱉었다. 이것도 신문쟁이가 된 덕분이다.


생계를 위해 교사로서 일했던 그가 신문사에서 오롯이 글 쓰는데만 집중할 수 있게 되자 날아갈 듯이 기뻐한다. 더 이상 학생들에게 that이며 it이며 따분한 영문법 따위를 가르치지 않아도 되자 어깨가 홀가분해짐을 느낀다. 밥벌이의 고단함에서 벗어나 글 쓰는 것에만 올인할 수 있는 것, 모든 작가들의 로망일 것이다. 아사히 신문사가 큰 일을 했다.


사람은 이해타산이 아니라 상대방의 따뜻한 마음씨에 감동해서 움직인다고 한다. 괴짜인 나를 괴짜에 맞게 대우해 준 아사히 신문을 위해 괴짜로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나의 즐거운 의무이다. (p.25)

우리가 속인들보다 더 걸출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네. 하지만 우리는 사회에 대한 영예로운 공헌을 통해서만 걸출해져야 하네. 걸출함을 요구할 수 있는 최상의 권리는 언제나 우리의 됨됨이와 우리의 업적이 어떠한가에 의해서만 결정되어야 하네. (p.43)


나는 박사 제도를 없애야 한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박사가 아니면 학자가 아니라는 식으로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게끔 박사에 가치를 부여한다면, 학문은 소수 박사들의 전유물이 되어 몇 안 되는 학자적 귀족이 학문의 권리를 장악하게 되는 동시에, 그 선택을 받지 못한 학자들은 완전히 홀대를 받게 된다. 그 결과 나쁜 폐해가 속출하게 될까 나는 대단히 염려스럽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프랑스에 아카데미가 있는 것조차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p.50)


그 시대에 벌써 '박사 무용론'을 펼치는 이가 있었다니....


"안심하고 요양하시게”라는 전보가 내가 피를 토한 다음 날 만주에서 도착했다. 생각지도 못한 친구와 지인들이 잇달아 내 머리맡에 다가왔다. 어떤 이는 가고시마에서 왔다. 어떤 이는 야마가타에서 왔다. 또 어떤 이는 코앞에 닥친 결혼식을 미루고 왔다. 나는 이 사람들에게 왜 왔냐고 물었다. 그들은 다들 신문에서 내가 병이 났다는 소식을 보고 왔다고 했다. 자리에 누운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세상 사람들은 다들 나보다 친절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사는 게 고달프다고만 생각했던 세상에 갑자기 따스한 바람이 불었다. (p.82)


그의 재능을 아끼고, 그의 병을 안타까워했던 지인들과 독자들의 친절이 얼마나 지극했는지 그대로 느껴진다.


마흔을 넘긴 남자, 자연 속으로 사라지기를 바랐던 남자, 내세울 만한 과거도 없는 남자에게 이 바쁜 세상이 이렇게까지 시간과 노력을 친절하게 베풀어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병으로 되살아남과 동시에 마음으로 되살아났다. 나는 병에 감사했다. 또한 나를 위해 이렇게 노력과 시간과 친절을 아끼지 않은 사람들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부디 선량한 인간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행복한 생각을 무너뜨리는 자를 영원히 적으로 삼겠다고 마음속으로 맹세했다. (p.83)


흰머리와 인생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것이 젊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우스꽝스러워 보일 게 틀림없다. 하지만 젊은이들에게도 머지않아 무덤과 속세 사이에 서서 방향을 결정하기 어려운 시기가 올 것이다. (p.101)

다음 모퉁이에 다다랐을 때 여자는 "선생님께서 바래다주시니 영광입니다" 하고 말했다. 나는 "정말로 영광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고 진지하게 물었다. 여자는 짧게 "그렇습니다" 하고 분명히 대답했다. 나는 "그렇다면 죽지 않고 살아 계십시오" 하고 말했다. 나는 여자가 이 말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한 정쯤 걸어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숨이 막힐 듯한 괴로운 이야기를 들은 나는 오히려 그날 밤 인간다운 아름다운 마음을 오랜만에 경험했다. 그리고 그것이 고귀한 문예 작품을 읽고 난 뒤의 기분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라쿠자 극장이나 제국극장에 가서 흡족해하던 내 과거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불쾌함으로 가득한 인생을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 나는, 언젠가는 나 스스로 한 번 다다르지 않으면 안 될 죽음이라는 경지에 대해 늘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죽음은 삶보다는 편안한 것이라고만 믿고 있다. 어떤 때는 죽음이란 인간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상태라고 생각하기도 한다.(p.116)


이렇듯 언제나 삶보다 죽음이 귀중하다고 믿는 나의 희망과 조언은 불쾌함으로 가득한 이 삶이라는 것을 끝내 초월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것을 실행하는 동안에 나 자신이 평범한 자연주의자임을 증명한 것만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지금도 나는 반신반의하는 눈으로 내 마음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p.119)


어떤 사람이 내게 “남이 죽는 건 당연하게 보여도 내가 죽는다는 건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전쟁터에 나간 경험이 있는 남자에게 "그렇게 병사들이 줄줄이 쓰러지는 걸 보면서도 나만은 죽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 사람은 "그럴 수 있습니다. 사람은 대개 죽을 때까지는 죽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요" 하고 대답했다. (p.127)


톨스토이가 쓴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떠오른다. 모든 사람은 "남이 죽는 건 당연하게 보여도 내가 죽는다는 건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다. "사람은 대개 죽을 때까지는 죽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요". 이반 일리치가 죽기 직전까지 그렇게 생각했었다. 정말 맞는 말이다.


세상 사람들은 소설가를 교사나 관리나 상인처럼 단순히 직업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상호 간의 도덕적 관계라는 문제에 대해서 자신이 소설가와 같은 수준의 판단력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소설가 자신도 그렇게 안이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학문은 교사에게 물어야 하고, 사무는 관리에게 맡겨야 하며, 돈벌이는 상인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가 세상 한가운데에 서 있는 기반, 도덕적 의무라는 문제의 해결, 상호 간의 갈등에 대한 비평, 이러한 것들은 소설가의 의견을 듣고 참고로 삼아야 합니다. 소설가 스스로도 그런 각오가 없어서는 안 됩니다. (p.145)


그때 내가 깨달은 '자기본위'라는 생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니, 해가 거듭될수록 점점 더 강해집니다. 저작 사업으로는 실패로 끝났지만 그때 확실히 붙잡은, '자기'가 주인이고 남은 손님이라는 신념은 지금 저에게 큰 자신감과 안심감을 줍니다. 저는 그것을 이어받아서 오늘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런 높은 단상에서 서서 여러분을 상대로 강연하는 것도 역시 그 힘 덕분인지도 모릅니다. (p.189)


나쓰메 소세키의 <인생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의 하나가 '자기본위'가 아닐까 싶다.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사는 인생, 남들의 눈치를 보며 휘둘리는 인생이 아닌, 자기가 주인인 삶, 남은 손님이라는 인식, 중요할 것 같다. 소세키는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짧지만 굵게 살다가 갔다.


아무래도 자신만의 곡괭이로 광맥에 닿을 때까지 파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안 된다고 말하는 이유는 만약 광맥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평생 불쾌하고 항상 어정쩡한 태도로 우물쭈물 살아가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것을 역설하는 것은 오로지 그 때문이며, 저를 모범으로 삼으라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저 같은 시시한 사람도 스스로 길을 찾아서 나아갈 수 있었다는 자각이 있는 한, 여러분의 눈에 그 길이 아무리 시시하게 보인다 해도 그것은 여러분의 비평과 관찰일 뿐, 저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저 자신은 그것으로 만족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제가 그것으로 자신감과 안심감을 얻었다고 해서 그 길이 똑같이 여러분의 모범이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니까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거야 어찌 됐든 제가 경험한 번민이 여러분에게도 종종 일어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는데, 어떻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무언가에 부딪힐 때까지 가보는 것은 학문을 하는 사람, 교육을 받는 사람이 평생의 일로, 혹은 10년, 20년의 일로 삼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아아, 여기에 내가 가야 할 길이 있다! 드디어 찾았다! 그렇게 마음속에서 감탄사를 외칠 때 여러분은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 자신감이 그 외침과 함께 불끈불끈 고개를 들지 않을까요? 이미 그 경지에 도달한 사람도 많을지도 모르지만, 만약 도중에 안개나 아지랑이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아아, 여기는구나 하는 곳을 찾을 때까지 계속 가보는 게 좋을 것입니다. (p.19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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