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볼트 테일러가 쓴 두 번째 책
이 책의 저자 질 볼트 테일러는 인디애나 의과대학에서 신경해부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학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던 뇌과학자다. 그는 1996년 37세의 나이에 갑작스러운 뇌졸중을 겪으며 자신의 뇌 기능이 하나 둘 무너지는 과정을 몸소 관찰하게 되었다. 개두 수술과 8년간의 회복기를 거치며 뇌에 대한 깊이 있는 자각을 얻게 되었고, 회복 후 자신의 경험을 TED 강연으로 공개했다.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그의 TED 영상은 누적 조회 수 2500만 회 이상을 기록했다. 자신의 특별한 경험과 회복 여정을 담은 첫 책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를 2009년에 출간해 베스트셀러 저자가 되었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9년에 두 번째 책인 『나를 알고 싶을 때 뇌과학을 공부합니다』를 발표했다. 한국에는 2022년에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저자 질 볼트 테일러는 뇌졸중을 겪은 날의 상황을 회상하며 “내 좌뇌가 마침내 완전히 정지한 무렵 나는 우뇌의 평화로운 의식 속을 떠다녔다. 잠시나마 내 우뇌는 그 순간 단독으로 존재했으며, 과거의 후회도 현재의 공포도 미래의 기대도 없었다.”(p.48)라고 말한다. 그는 훗날 자신이 뇌졸중에서 회복되는 동안에도 “의식적으로 우뇌 우세를 ‘선택’했다.”(p.51)라고 이야기한다. 특이한 경험을 통해 남은 인생은 어떤 뇌에 더 비중을 둘 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뇌졸중을 겪은 아침에 좌뇌가 멈추었는데도 어떻게 내가 그때 일어난 사건들을 기억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나는 좌뇌의 회로망이 외상으로 정지했지만 그렇다고 죽지는 않았으며 의식을 잃지도 않았다. 게다가 뇌졸중이 더 심해지지도 않았고 거기까지였다. 좌반구의 혈관이 터지고 난 뒤 네 시간 동안 피가 천천히 좌뇌 조직으로 스며들면서 회로를 계속 차단했다.
내 좌뇌가 마침내 완전히 정지한 무렵 나는 우뇌의 평화로운 의식 속을 떠다녔다. 그곳에서 위기감을 다 잃어버렸다. 잠시나마 내 우뇌는 그 순간 단독으로 존재했으며, 과거의 후회도 현재의 공포도 미래의 기대도 없었다. 이후 8년의 회복 기간 동안 내 우뇌 회로망의 일이란 지금 여기, 현재의 경험을 처리하는 것임이 확실해졌다.(p.48)
뇌졸중에서 회복하는 동안 내 뇌에서 새롭게 우세해진 우뇌 사고형 캐릭터 4는 열린 마음과 포용력을 가진, 우주만큼 거대한 존재다. 이 캐릭터는 스트레스에 내몰려 움직이는 좌뇌 사고형 캐릭터 1이 회복 후 다시 돌아와 내 의식을 지배하려고 하자 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캐릭터 4의 열린 마음으로 무한히 평화롭고 감사하는 태도를 구현하는 쪽이 더 좋았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우뇌 우세를 ‘선택’했다. (p.51)
저자는 좌뇌와 우뇌, 사고형과 감정형에 따라 각각 네 가지 캐릭터를 구분하여 인간의 뇌를 설명한다. 또한 네 가지 캐릭터에 자신만의 고유한 이름을 붙인다.
캐릭터 1(좌뇌 사고형): 헬렌 ->정리 달인/분류 잘함 /기계조작 능숙/ 단정함/ 계획을 잘 짬/ 권위 존중/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의 문제에 까다로움/ 세부 사항에 신경 씀/ 모든 것 계산 / 방어적 (p.94)
캐릭터 2.(좌뇌 감정형): 애비->분노/욕하기/속이기/죄책감 느끼기/ 수치 내면화/ 조건에 따라 사랑하기/ 부정적 자기평가 /불안 /징징거리기/ 자기중심적 성향/ 비난 (p.135)
캐릭터 3. (우뇌 감정형): 피그펜 ->용서하는/경외감을 느끼는/ 즐거운/ 공감하는/ 창조적인/기쁜/호기심 많은/ 소탈한/ 희망찬/경험적인(p.166)
캐릭터 4. (우뇌 사고형) :여왕두꺼비->자신과 주변에 대한 깨어있는 인식/ 존재의 완전함 중시/ 광활함/ 연결/수용/변화의 포용/ 고유함/풍부한 영혼/ 명확함/의도/약점도 수용(p.199)
독자들에게도 각자 자신에게 직관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고유한 이름을 네 가지 캐릭터에 붙이라고 권한다. 네 가지 캐릭터는 칼 융의 정신분석학에 따라 또 네 가지 이름으로 정의할 수 있다.
캐릭터 1: 페르소나 캐릭터 2:그림자 캐릭터 3: 아니마/ 아니무스 캐릭터 4: 트루셀프(진정한 자기)
[전뇌적 의사소통] (p.34)
저자는 “네 가지 캐릭터 각각은 어느 정도 정형화되어 있어서 적극적으로 자신을 관찰할수록 ‘자유로이 전뇌적 삶을 살 수 있다”(p.214)라고 말한다. 그는 “매 순간 우리가 바라는 캐릭터를 선택하여 존재할 힘이 있다”라고 주장한다. 그 방법의 일환으로 ‘두뇌 회담’을 제안하고 있다. “연습을 해두면 감정을 촉발하는 버튼이 눌릴 때도 뇌는 자연스럽게 두뇌 회담을 열게 된다.”(p.215)라고 설명한다.
네 가지 캐릭터 각각은 행동 패턴이 어느 정도 정형화되어 있어서, 일상의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더 적극적으로 자신을 관찰할수록 더 자유로이 전뇌적 삶을 살 수 있다. 우리는 매 순간 이 세상에서 우리가 바라는 캐릭터를 선택하여 존재할 힘이 있다. 이 캐릭터들을 두뇌 회담으로 모으면 우리는 그다음 순간 최고의 행동을 취할 수 있다. (p.214)
삶이 자동적으로 흘러가게 놔두면, 네 가지 캐릭터는 우리가 실제로 어떤 행위를 ‘선택’할 수 있는지 현실적인 고려 따위는 하지 않고 그저 마음에 드는 일을 할 것이다. 하지만 두뇌 회담을 위해 스포츠 경기의 한 팀처럼 한데 모이면, 네 가지 캐릭터는 각자의 입장을 알린 다음 최고의 전략적 행동을 함께 선택한다. 밖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상관없이, 정기적으로 두뇌 회담을 하면 적절하고 평화로운 해결책을 구할 수 있다. 두뇌 회담을 열기로 선택한다면, 성공하기 위해 스스로 서는 셈이다. 정말 목적 지향적 삶을 살고 싶다면, 체계적이고도 열정적인 방식으로 그렇게 해보자. 게다가 두뇌 회담을 열고 캐릭터 4가 대화에 참여하게 하면 분명 좋은 결과가 나온다.
살면서 힘들지 않은 때에 두뇌 회담을 연습해 두면 그만큼 해당 회로망이 더 강해진다. 뇌의 다른 뉴런 회로망과 마찬가지다. 나중에는 새로운 습관처럼 두뇌 회담을 자동으로 열게 된다. 일상에서 두뇌 회담을 자연스럽게 열면 삶이 얼마나 달라질지 상상해 보라. 연습을 해두면 감정을 촉발하는 버튼이 눌릴 때도 뇌는 자연스럽게 두뇌 회담을 열게 된다. 단언할 수 있다. 네 가지 캐릭터를 알고 캐릭터들이 두뇌 회담을 쉽게 열도록 연습하면서 나는 가장 훌륭한 선물을 얻었다고 말이다. (p.215)
저자는 인간이 ‘사고능력이 있는 감정형 생명체’ 임을 강조한다. 감정을 느끼고 사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한 다음에 감정을 느끼기 때문에 감정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고 말한다. 더불어 우리 사회가 “좌뇌의 가치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우리 다수가 삶의 진정한 목적과 의미를 찾을 수 없다”라고 말한다. 자신은 뇌졸중을 겪은 후 “좌뇌 자아를 버리고 우뇌의 영역으로 들어갔다"라는 사실을 언급하며, 독자들 역시 “자신만의 영웅의 여정에서 어디쯤 서 있는지 생각해 볼 것”을 (p.380) 권유하고 있다.
우선, 신경해부학과 뇌과학을 연구한 뇌과학자가 직접 자신의 뇌의 변화를 관찰한 결과를 토대로 쓴 책이기에 신뢰가 갔다. 그동안 좌뇌형과 우뇌형 두 가지 만으로 단순하게 구분하던 방식에서 좌뇌와 우뇌에도 각각 사고형과 감정형으로 세분화해서 네 가지 캐릭터로 나눈 후 개별 특징과 성향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고 있는 점도 신선했다. 칼 융의 분석심리학과도 연계하여 이해할 수 있어 좋았다. 그야말로『나를 알고 싶을 때 뇌과학을 공부합니다』라는 책 제목 그대로였다. '나'라는 존재를 좀 더 과학적으로,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은 듯했다.
마음이 요동치거나 내면이 혼란스러울 때, 내 안의 네 가지 캐릭터를 한 팀으로 보고, 즉시 '두뇌 회담'을 열어 현재 나의 상태를 진단해 보게 하는 점도 재미있는 발상이었다. 두뇌 회담은 지속적인 연습이 필요해 보이지만 습관을 들여놓으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현재 내 마음속에 어떤 캐릭터가 우세한 상황인지, 어떤 캐릭터를 진정시켜야 하는지를 심호흡을 통해 인지하고 감사를 표하고 질문하고 향후 방향을 결정하라고 한 조언은 현실에서도 적용 가능한 팁으로 여겨진다. 뇌과학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라면 『나를 알고 싶을 때 뇌과학을 공부합니다』를 꼭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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