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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올리브 키터리지』는 열세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연작소설이다. 미국 메인 주의 작은 마을 크로스비를 배경으로, 올리브 키터리지와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인간 삶의 세밀한 감정선을 정교하게 포착하며, 단편 하나하나에 인생의 희로애락이 오롯이 녹아 있다. 엇갈리는 감정, 닿지 않는 사랑, 멀어지는 관계에서 비롯된 외로움과 상처, 결핍이 지면을 넘어 독자의 마음에 깊이 스며든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는 이유를 실감하게 된다. 기막힌 비유, 치밀한 구성, 여운을 남기는 결말까지—주저 없이 ‘인생 책’으로 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열세 편의 단편에 대한 간략한 줄거리와 단상을 아래에 정리해 보았다.


『올리브 키터리지』 첫 번째 단편 <약국>

<약국>의 중심인물인 헨리 키터리지는 평생 약사로 일해 온 온순하고 따뜻한 성품의 남자다. 반면, 그의 아내 올리브는 감정 표현이 거칠고 냉소적이다. 부부는 오랜 결혼생활의 권태로 서로에게 감정적으로 멀어진 상태고, 헨리는 자신이 운영하는 약국에서 함께 일하는 젊은 여성 데니즈에게 연민과 애정을 느끼게 된다. 데니즈는 남편을 불의의 사고로 잃고 상심하고 있다.

헨리는 데니즈에게 호감을 갖고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외로움을 돌봐주고 싶어 하지만, 그녀는 결국 약국을 그만두고 떠난다. 헨리는 그녀가 사라진 뒤에도 오랫동안 그녀를 그리워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며, 올리브와의 결혼생활 속에서 느껴온 감정의 균열과 정서적 갈증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다.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부부 사이의 권태와 감정의 틈새를 섬세한 시선으로 포착한다.


『올리브 키터리지』 두 번째 단편 <밀물>

약사인 헨리 키터리지가 온 동네 사람들의 질병 데이터를 다 알고 있었듯이, 올리브 키터리지는 마을에서 오랫동안 교사로 근무하면서 아이들은 물론 그 아이들의 부모들 사연까지 다 꿰뚫고 있는 듯하다. 갑자기 등장한 케빈, 그가 왜 나타났을지 아마 올리브는 짐작하지 않았을까? 올리브는 케빈의 차 조수석에 탄 뒤,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면서 도무지 내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케빈의 엄마와 올리브의 아버지 모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공통점이 어쩌면 올리브로 하여금 케빈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했을 것 같다. 올리브가 회상하는 어린 시절의 아버지와의 놀이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기억은 그녀의 거친 모습 이면에 감춰진 부드러운 면을 짐작하게 한다.


케빈은 어린 시절 불행했던 집에 대한 복잡한 향수를 떠올리며 어머니와의 관계, 자살 충동, 그리고 삶에 대한 절망을 회고한다. 케빈이 굳이 자신의 생을 마감하려는 순간에 예전 살던 집과 동네에 와 본 것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자, 누군가 자신을 붙잡아주길 바라는 무의식적 기대가 아니었을까 싶다. 타고 가려던 차가 없어진 줄 알았던 순간의 감정을 ‘희망은 마음의 암이다’라는 말로 생에 대한 환멸을 내비치지만, 물에 빠진 패티를 구하려고 바닷물에 뛰어들었을 때 그녀를 꽉 잡아주는 모습, 그리고 패티가 자신을 꽉 잡은 그 순간이 영원하길 바라는 모습은 삶이 계속되어야 할 이유와 서로 연대해야 할 이유를 보여준다. 케빈 역시 자신을 진심으로 붙잡아줄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 같다. 짧은 단편 속에 들어있는 이야기의 밀도가 놀랍다.


『올리브 키터리지』 세 번째 단편 <피아노 연주자>

<피아노 연주자>의 중심인물은 '앤절라 오미라'이다. 음악적 재능을 타고났으나, 환경이 받쳐주지 못했다. 어머니도, 그녀가 만났던 남자와 지금 만나고 있는 남자도, 그녀를 이용만 할 뿐 그녀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그녀는 크로스비 마을의 바에서 오래전부터 매일 저녁 피아노를 연주해 온, 이제는 오십 대가 된 중년 여성이다. 그녀의 음악은 주민들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있어 단순한 ‘배경음악’을 넘어 '등장인물'처럼 여겨진다. 그녀는 오후 여섯 시에 정확히 출근한다. 겉으론 차분하지만, 바텐더 조의 관찰에 의하면, 무대공포증이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의 귀가 자신에게 집중되는 순간을 가장 두려워했고, 그 긴장을 덜기 위해 세 시간 내내 연주를 멈추지 않는다. 그녀 안에 상처가 많음을 짐작하게 한다.


어린 시절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사람의 제안으로 음악학교에 입학할 수도 있었으나, 어머니의 집착과 통제로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녀의 삶에서 여러 기회가 왔다가 흘러갔다 그렇지만 그녀는 이제 담담하다. 사이먼이라는 과거의 연인은 그녀의 삶에 다시 나타나 모욕적인 방식으로 과거를 소환하지만, 앤지는 "잘 가요, 사이먼"이라는 말로 그 과거를 정리한다. 복수도, 설움도 아닌 한 마디의 고요한 작별이다. 누구에게도 큰 소리로 말하지 않지만, 스스로를 무너뜨리지 않고 끝내 존엄을 지키는 방식이다.


앤지가 마지막에 중얼거리는 혼잣말, “나는 그 누구보다도 더, 또는 덜 한심하지 않다"라는 생각은 이 단편의 핵심 메시지로 느껴진다. 누구나 낙심과 상처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심한 존재는 아니라는 위로다. 어쩌면 삶은 너무 늦었을 때에야 뭔가를 깨닫는 것일지도 모른다. 앤지는 자신이 연주하는 음악(we shall overcome)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회복하는 여정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억눌려 있던 감정이 서서히 피어오르고, 친절한 사람들의 조용한 지지와 함께 마침내 다시 피아노 앞에 앉을 결심을 하게 된다. 상처는 남아 있지만, 그녀에게는 여전히 사랑하는 음악이 있다. 인생의 낙심과 존엄을 지키려는 결심 사이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한 여성의 내면이 작가의 섬세한 묘사 속에 잘 드러난 단편이었다.


『올리브 키터리지』 네 번째 단편 <작은 기쁨>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올리브의 입을 빌려 말한 '작은 기쁨'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언급한 '소확행'-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처럼,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만족을 주는 행복”과 비슷한 느낌이면서도, 더 진지하게 와닿았다. 올리브는 말한다. "큰 기쁨은 결혼이나 아이처럼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일이지만 여기에는 위험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해류가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작은 기쁨도 필요한 것이다. 브래들리스의 친절한 점원이나, 내 커피 취향을 알고 있는 던킨 도너츠의 여종업원처럼." 정말 그런 것 같다. 살다 보면, '큰 기쁨'의 영역은 올리브의 말대로 '위험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해류' 때문에,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불가항력적 요소가 많다. 그러니 '작은 기쁨'을 많이 개발해 놓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일상의 소소한 감탄과 감동이 많아질수록 삶이 조금 더 견딜 만해진다.


이번 단편은 올리브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이야기였다. 올리브가 며느리의 브래지어와 신발 한 짝을 가방 속에 챙겨 나와 던킨 도너츠 화장실 쓰레기통에 버리고, 옷장 깊숙이 들어있던 며느리의 베이지색 스웨터를 펼쳐 한쪽 소매 밑에 매직으로 찍 긋는 행동은 그 자체만 두고 본다면, '뭐 이런 이상한 변태 같은 시어머니가 다 있나.' 싶다. 그런데 그 의도를 알고 나면,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올리브는 며느리 수잔이 세상을 다 아는 것 같은, 아들의 아픔과 사연을 훤히 꿰뚫고 있는 듯한 태도가 못마땅하다. 그래서 그녀가 살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 잠시나마 의구심을 가지게 되길, 아들 크리스토퍼가 '자기가 뭐든 다 안다고 생각하는 여자와 살게 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런 일들을 벌인 것이다. 그 마음을 공감하게 만드는 작가의 힘에 또 한 번 놀란다.


올리브가 한 말 "정말 어려운 게 삶이다"라는 한 마디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하다. 임신 중 겪은 아버지의 죽음, 아버지의 우울함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자신에 대한 자책이 평생 그녀를 힘들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들 크리스토퍼의 방황까지, '큰 기쁨'의 영역은 그렇게 자신의 바람과 다르게 엇나가기 일쑤다. 사람은 앞으로만 걸어야 한다고 올리브는 말하지만, 그 걸음은 항상 흔들리고, 종종 되짚게 되며, 때때로 멈춰 서서 울게 만든다. 아버지와 아들을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그 사랑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세월 앞에 힘들어하는 올리브의 마음에 공감하게 된다. 거칠고 솔직한 행동 내면에 자리한 말 못 할 슬픔을 살짝 엿본 듯하다.


『올리브 키터리지』 다섯 번째 단편 <굶주림>

『올리브 키터리지』의 다섯 번째 작품 <굶주림>에는 하먼과 보니 부부, 데이지 포스터, 그리고, 젊은 커플 티모시와 니나가 주요 등장인물이다. 아들 넷을 전쟁 치르듯이 키운 하먼과 보니 부부가 이제 그들을 독립시키고, 중년이 되었다. 하먼은 사건사고 많은 아이들 때문에 노심초사한 날들이 많아 애들이 훌쩍 커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는데, 정말 아이들은 그렇게 순식간에 커버렸다. 하먼은 아내 보니가 '빈 둥지 증후군'을 겪을까 봐 염려하며 유심히 살피는데, 오히려 보니는 독서클럽 활동과 취미생활이었던 러그 짜는 일로 부수입까지 올리며 바쁘게 살아간다. 보니는 자기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을 찾아 오롯이 '나'로 살아가는 데 성공한 듯하다.


오히려 공허함을 느끼는 건 하먼이다. 그는 아내가 부부관계에 더 이상 관심을 보이지 않자, 더 위축되고 방황한다. 그러다가 데이지와 가까워진다. 더 이상 자신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지 않는 보니 대신 그는 데이지 앞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고 관심사를 나눈다. 아들들이 전화해 주기를 기다리고, 얼른 손주들이 생겼으면 바라고, 보니와 헤어질 수는 없지만. 그들 사이의 교감은 점차 옅어진다. 서서히 감정적으로 무뎌지고 '따로 또 같이'의 삶을 살아가는 중년 부부의 모습을 작가는 담담하게 그려낸다.


단편 〈굶주림〉에서 ‘굶주림’은 단순한 육체적 결핍이 아니라, 이야기 속 인물들이 겪고 있는 정서적 결핍과 내면의 허기를 상징하는 것 같다. 니나는 거식증으로 자신의 몸을 통제하고 있지만,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라고 말한다.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던 올리브조차 “나도 굶주렸지”라고 고백하며 눈물을 흘린다. 겉으로는 강해 보이는 올리브에게도 말 못 할 상처와 불완전함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니나는 아무것도 먹지 않으며 스스로를 조이고, 올리브는 눈에 보이는 도넛마다 먹어치운다. 방식은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 내면의 굶주림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다.


하먼 역시 마찬가지다. 아내 보니와 감정적으로 교감하지 못한 채 살아가며 점점 더 커져가는 외로움과 공허함 속에 있다. 겉으로는 “물고기 헤엄치듯 순조롭다”라고 아들을 안심시키지만, 마음속은 점점 비어 간다. 보니와의 관계에서는 따뜻함도, 연결도 느끼지 못한다. 그런 하먼에게 니나는 삶의 균열을 자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니나가 “사랑 없는 삶”을 두려워했듯이, 하먼 역시 진정으로 연결되고 싶은 갈망을 안고 있었다. 시내에서 팔짱 끼고 다니는 커플들을 보며 하먼은 그들이 ‘살아 있다’고 느낀다. 살아 있는 동안 진짜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고 싶다는 욕망이 하먼을 데이지에게로 이끈다. 그는 데이지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아직 아내와 결별하지 못한 채 ‘그날’을 기다린다. 그 기다림은 희망이라기보다 체념에 가까워 보인다. 몸의 이상도 점점 느껴지면서,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이 그를 더 흔들리게 한다.


이번 단편은 막장스러운 사건 없이도 중년 부부의 정서적 단절과 위기를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그래서 더 마음에 와닿는다. 이 단편을 읽으며 나도 남편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게 된다. 그에게 더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나 싶다. 엊그제 주말에 남편이 호수공원에 함께 가자고 했을 때, 보니처럼 나도 책을 읽어야 한다며 거절했더랬다. 갑자기 불안해진다. 혹시 내 남편도 말하지 못한 외로움으로 인한, 굶주림으로 피자를 혼자 네 조각씩이나 먹은 건 아닐까. 모든 단편에 인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용히 음미하게 된다.


『올리브 키터리지』 여섯 번째 단편 <다른 길>

단편 「다른 길」은 위기 상황에서 인간의 본심이 얼마나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평소 두 부부가 감정을 얼마나 꾹꾹 눌러가며 살아왔는지도 드러난다. 마을 사람들은 ‘그 사건’ 이후 키터리지 부부가 달라졌다고들 말하지만, 정작 그 사건이 무엇인지는 초반에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어느 날, 올리브와 헨리는 친구 부부의 저녁 초대를 받고 식사를 마친 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병원 응급실 화장실을 급히 이용하려다 예상치 못한 인질극에 휘말린다.


그 극한의 상황 속에서, 올리브는 그간 마음 깊이 묻어두었던 감정들을 쏟아낸다. 시어머니와의 갈등, 아들의 결혼과 갑작스러운 이사, 신앙적 고민까지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헨리 역시 침묵 속에 묻어두었던 자신의 내면을 드러낸다. 그는 아들이 떠난 것이 올리브의 지나친 통제 때문이라며, 결혼생활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사과하지 않은 아내에게 처음으로 불만을 토로한다.


시간이 지나도 두 사람은 그날 밤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다. 겉으로 보기엔 인질 사건의 충격 때문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서로에 대한 인식이 송두리째 흔들리면서 겪는 혼란과 고통 때문이다.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부부가 서로를 잘 안다고 믿었지만, 정작 깊이 오해하고 있었음을 드러내는 이야기다.


‘다른 길’이라는 제목은 그날 이후 더는 예전과 같은 길을 함께 걸을 수 없게 된 두 사람의 관계를 상징한다. 특히 아들이 떠난 뒤, 올리브가 일부러 아들의 집이 보이지 않는 길로 돌아가는 장면은 부부 사이에 생긴 감정의 거리감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이 단편은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채 쌓여온 서운함과 분노가 한순간에 폭발한 뒤, 남는 공허와 상처를 섬세하면서도 날카롭게 그려낸다. 관계의 균열은 때로는 아주 작고 일상적인 틈에서 시작되어, 어느 순간 돌아갈 수 없는 ‘다른 길’이 되고 만다.


고집 센 올리브가 병원 화장실만 이용하고 바로 떠날 수도 있었지만, 간호사의 설득에 응해 잠시 머문다. 그 선택 하나가 삶의 방향을 바꿔 놓는다. 이어지는 인질극, 그리고 파국. 매번 이야기의 전개를 끌고 나가는 작가의 힘이 놀랍다.


『올리브 키터리지』 일곱 번째 단편 <겨울 음악회>

밥과 제인은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칠십 대 노부부다. 보건교사였던 제인은 직업 특성상 마을 사람들의 은밀한 사정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상황이 불편하면서도, 그 또한 삶의 일부라는 걸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음악회에서 리디아 가족과 대화를 나누던 중, 밥이 과거 연인이었던 여성을 마이애미 공항에서 다시 만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제인은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밥은 그 여성이 유방암을 앓고 있었고, 자신을 찾아 연락한 것이라고 해명하지만, 제인은 그가 그 사실을 자신에게 숨겼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느낀다.


그렇지만, 곧이어 제인은 최근 그들 부부가 각각 심장발작을 한 번씩 겪은 사실을 떠올리고, 더 이상 그 여자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며, “우린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요”라고 말한다. 밥에게 깊은 연민을 느끼며, 제인은 “서로를 빼면 아무것도 없다”는 진실을 다시 떠올린다. 언젠가 다가올 이별을 대비하며 서로를 의지해 살아가기로 다짐한다. 제인이 건넨 “내가 당신 곁에 있어요”라는 말은 그래서 더없이 따뜻하고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이 부부처럼 나이 들어갈수록 서로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 일은 그래서 참 중요한 것 같다. 올리브와 헨리 부부와는 또 결이 다른 부부다.


『올리브 키터리지』여덟 번째 단편 <튤립>

이번 단편 <튤립>은 유독 마음이 쓰였다. 남편 헨리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요양원에 들어간 뒤, 올리브는 주기적으로 그를 찾아 병간호를 한다. 하지만 이제는 대화도, 교감도 어려운 상태다. 아들 크리스토퍼는 수잔과 함께 캘리포니아로 떠난 뒤 1년 만에 이혼 소식을 전해온다. 아들은 부모가 찾아가겠다는 말도, 집으로 돌아오라는 말도 모두 거절하며, 아버지가 쓰러진 후에도 단 한 번밖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외로움에 지친 올리브가 전화를 걸면 그는 건성으로 대답할 뿐이다.


삶의 허망함과 고립감 속에서 올리브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상상까지 한다. 유서조차 남기지 않겠다는 생각에서, 아들에 대한 실망과 세상에 홀로 남았다는 깊은 상실감이 느껴진다. 가족 사진첩을 들여다보며 그녀는 남편 헨리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고, 그가 어떤 인생을 살게 되는지 내레이션처럼 읊조린다. 두 살배기 천사 같던 크리스토퍼 사진을 보면서도 이야기한다. 슬픈 장면이다. 그리고 오래전, 축구장 앞에서 헨리와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던 그들의 전성기, 중년 시절의 한 장면도 회상한다. 그 시절이 진정 행복했음을, 사람들은 대개 인생의 찬란한 순간에 있을 때 그 소중함을 미처 알지 못한다는 올리브의 깨달음이 나에게도 뭉클하게 다가온다.


<올리브 키터리지>가 놀라운 점은, 인물들의 속마음을 날카롭고 정직하게 그려낸다는 데 있다. 외로움에 잠겨 있던 올리브는, 자신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루이즈에게서 쪽지를 받고 그녀를 찾아간다. 그녀의 '불행'을 보면서 자신은 더 낫다는 위안을 받고 싶어 한 것이다. 하지만 루이즈는 위로를 주는 대신, 올리브의 민감한 부분을 찌르며 공격한다. 그 순간 올리브는 마치 가게에서 좀도둑질하다 들킨 사람처럼, 깊은 사적이고도 부끄러운 감정에 휩싸인다.


그럼에도 올리브는 씩씩한 사람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금세 깨닫고, 헨리에게 '이젠 그만 가도 된다'라고 무심코 했던 말도 진심이 아니었음을 인정한다. 아직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완전히 알지 못하지만, 여전히 알아가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예전에 수잔이 “튤립은 해마다 저절로 피는 줄 알았다”라고 말하자, 올리브는 “튤립은 한 번 피면 끝”이라고 했던 말에 참 많은 의미가 담겨있는 듯하다. 지나간 인생의 순간들은 다시 오지 않으며, 소중한 때를 소중히 여기고 다시 다음을 준비해야만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땅이 얼기 전 구근을 심을지 고민하는 올리브의 모습은, 생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올리브의 의지를 보여준다. <튤립>은 그렇게, 외롭고 고단한 삶 속에서도 다음 해를 준비하는 조용하고 강인한 마음을 보여준다.


『올리브 키터리지』아홉 번째 단편 <여행 바구니>

단편 <여행 바구니>는 인생이 언제나 우리가 의도한 대로, 꿈꾸던 대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담담히 들려준다. 어떤 여자는 말린 보니처럼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기도 하고, 또 어떤 여자는 올리브처럼 노년에 남편을 요양원에 보내야 하기도 한다. 또 어떤 여자는 자식에게서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 올리브는 정성껏 키우고, 예쁜 집까지 지어주며 곁에 두고자 했던 아들이 결혼 후 멀리 떠났고, 이혼 후에도 부모 곁으로 돌아오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 마치 아들을 '도둑맞은 것 같다'라고 말한다. 평생 친절하고 성실했던 남편 헨리는 뇌졸중으로 말을 잃고 시력까지 흐려진 채 병원 침대에 누워 있고,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단 한 번 문병했을 뿐이다. 올리브는 자신 곁에 아무도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열심히 살아온 인생이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왜 이토록 허망하고 고통스러운 걸까.


에디 보니와 말린 보니는 올리브가 학교에서 가르쳤던 옛 제자들이다. 두 사람은 학창 시절부터 사랑을 키워 결혼했고, 아이들을 낳아 반듯하게 길렀다. 하지만 에디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사람들은 순하고 성실한 말린에게 닥친 이 비극을 두고 “이건 옳지 않다”라고 입을 모은다. 올리브도 남편 헨리를 대신해 장례식에 참석하고, 말린을 돕기 위해 그녀의 집으로 향한다. 올리브의 마음속에는 말리의 슬픔을 통해 자기 자신을 위로받고 싶은 욕망도 있었다. 그러나 자식들과 친지들, 친구들로 둘러싸여 조용히 장례를 잘 치르고 있는 말린의 모습을 보며, 올리브는 오히려 더 깊이 낙심한다. 자신에겐 그런 친밀함을 느끼게 할 사람이 없음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올리브의 외로움이 절절하게 전해진다.


상갓집에서 조용히 빠져나오려 했지만, 차를 뺄 수 없어 데크 아래 나무 벤치에 앉은 올리브는 흐르는 구름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상념에 잠긴다. 조문객들이 하나둘 돌아간 뒤, 말린에게 인사하려 그녀의 방에 들렀다가 올리브는 ‘여행 바구니’ 이야기를 듣게 된다. 병세가 악화되는 와중에도 에디와 말린은 함께 여행 갈 날을 꿈꾸며, 가고 싶은 곳들의 팸플릿을 바구니에 하나둘 모아두었다고 한다. 하지만 에디는 떠났고, 이제 말린은 그 바구니를 대신 버려달라고 올리브에게 부탁한다.


말린이 버려달라고 부탁한 ‘여행 바구니’는 함께 꾸었던 미래, 끝내 이루지 못한 소망, 그리고 관계의 흔적처럼 느껴진다. 그 바구니를 직접 버리지 못할 만큼 말린에게는 에디의 부재가 여전히 크고 무겁다. 올리브는 ‘사람은 그럭저럭 살아낸다’는 말을 떠올리지만, 그건 꼭 진실만은 아니라고 여긴다. 자신에게도 헨리와 크리스토퍼가 빠져나간 삶이 그렇게 말처럼 쉽게 살아지는 것이 아니듯이 말이다.


사실 누구에게나 마음속 ‘여행 바구니’ 하나쯤은 있다. 언젠가는 함께하리라 믿었던 미래의 꿈조각들이 거기에 담겨 있다. 올리브와 헨리도 그랬을 것이다. 아들을 위해 지은 집에서 손주들과 북적이며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따뜻한 저녁 식사를 함께 나누는 순간을 상상했을 것이다. 쇼핑센터에서 헨리가 새로 산 신발을 신고 둘이 나란히 어디든 떠나는 날을 꿈꿨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신발은 지금 봉지에 싸인 채 차고에 놓여 있다. 헨리가 다시 그것을 신고 걸을 날은, 아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단편 <여행 바구니>는 읽는 내내 여러 번 멈춰 눈물을 닦게 만든 이야기다. 얼마나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섬세한 관찰이 있어야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작가에게 절로 경외심이 들었다. 누구나 마음 한편에 꺼내지 못한 '여행 바구니'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테니, 그 바구니를 너무 늦기 전에 어서 꺼내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 여행바구니를 같이 준비한 사람을 지금 더 사랑하고, 더 함께 이야기를 나누라고 부추기는 듯하다.


『올리브 키터리지』열 번째 단편 <병 속에 든 배>

병 속에 갇힌 배처럼, 애니타는 과거의 상실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머물러 있는 듯하다. 어부였던 아버지를 잃고, 줄리의 아버지 테드마저 떠난 뒤에도 그녀는 아버지가 사두었던 집을 여전히 버리지 못한다. 그 집은 마치 애니타에게 ‘병 속의 배’처럼, 과거의 기억에 갇힌 채 움직이지 못하는 삶의 상징이다. 딸 줄리가 만난 남자 브루스는 함께 지내고 싶어 했지만 결혼은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애니타는 테드처럼 그가 줄리를 떠날까 두려워, 결국 결혼을 밀어붙인 것 같다.


한편 짐은 지하실 창고에서 정성스레 배를 만들고 있지만, 그것이 완성된 뒤 과연 그 배를 문 밖으로 꺼낼 수 있을지, 실제로 바다에 띄울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짐의 배는 쉽게 꺼내지 못하는 감정과 상처, 나아가지 못하는 삶의 은유처럼 느껴진다. 애니타는 병 속의 배를 물 위에 띄우지 못하지만, 줄리는 과감히 집을 떠난다. 그녀는 키터리지 선생님이 수업 중 했던 말을 기억한다. “배고픔을 두려워하지 마라. 배고픔을 두려워하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얼간이가 될 뿐이다.” 병 속의 배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바깥세상으로 나아갈 것인가. 우리 모두에게도 저마다의 ‘병 속의 배’가 하나쯤은 있는지도 모른다.


『올리브 키터리지』열한 번째 단편 <불안>

<올리브 키터리지> 열한 번째 단편 <불안>에서 올리브의 심리 변화가 섬세하게 읽힌다. 연락이 두절되다 시피했던 아들 크리스토퍼가 재혼한 뒤(재혼사실도 사후통보다) 뉴욕으로 이사까지 하고 올리브에게 아내가 입덧이 심하니 와 달라고 부탁을 한다. 올리브는 처음엔 ‘그다지 가고 싶지 않은 곳’이라 여긴 곳에서, 아들이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고 느끼자 점차 “삶을 가르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내면의 일렁임”, 즉 희망을 떠올린다. 누군가에게 다시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느낌 속에서, 올리브는 살짝 들뜬다.


며느리 '앤'이라는 인물은 올리브에게 혼란의 상징이자 도전이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크며, 무심하고 멍청해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따뜻하고 다정한 구석이 있다. “자신보다 더 큰 여자의 품에 안긴 건 처음”이라는 장면은, 자신의 세계에 대한 고정관념이 무너지는 순간을 보여준다. 앤의 ‘맹함’은 어쩌면 자기 방어적인 무심함일 수도 있고, 그런 무심함 속에서도 사랑이 자라고 있다는 걸 올리브는 점차 알아차린다.


핫도그를 먹으며 올리브를 바라보는 시어도어의 시선, 그리고 “할머니”라는 호칭 앞에서 느끼는 이질감은, 가족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아직 완전히 그 정체성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진 않지만, 결국 아들이 ‘토한다’고 말한 것이 진심이 아니었고, 그 말 너머에는 ‘엄마, 보고 싶어요’라는 그리움이 숨어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결국 이 단편의 제목처럼, ‘불안’은 사랑을 향한 간절함의 또 다른 표현이다. 여전히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인가, 내 자리는 남아 있는가, 그런 질문이 올리브의 내면을 끊임없이 흔든다. 아들의 윗집에 세 들어사는 남자의 이름만으로 사십 대에 자신의 마음속에 가만히 들어왔던 남자와의 추억도 떠올린다.


뉴욕에 도착한 올리브는 오랜만에 평온한 잠을 자고, 아들과 함께 지낼 수 있다는 사실에 희망을 느낀다. 오랫동안 단절되었던 관계가 회복될지도 모른다는 기대 속에서, 손자와 며느리까지 감내하며 새로운 가족 형태에 적응하려 애쓴다.


하지만 단편의 제목처럼, 불안은 서서히 드러난다. 올리브는 점점 노쇠해지는 자신을 자각하고, 한때 혐오하던 친척의 모습을 닮아가는 현실에 모멸감을 느낀다.

결정적인 갈등은 아들과의 대화에서 터진다. 크리스토퍼는 어머니를 “편집증적이고 감정적으로 피곤한 사람”이라 말하고, 더 이상 그런 감정에 휘둘리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올리브는 억울함에 반발하지만, 결국 자신이 평생 아들을 사랑해 왔음에도 그 마음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이 단편은 노년의 삶이 외로움을 견디는 것만이 아니라, 여전히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아를 점검하고 관계를 조율해야 하는 시기임을 보여준다. 사랑은 있지만, 그 사랑이 서툴게 표현되고 오해되며 서로를 상처 입히기도 한다.


크리스토퍼가 자신의 감정을 언어화하고 거리 두기를 시도하는 장면은, 감정적 독립의 필연성과 그로 인한 부모의 상실감을 동시에 드러낸다. 올리브는 상처 입고 분노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이 모든 관계를 끌어안고 살아가려 애쓸 것이다. 모자의 갈등 표출이 마음 아프면서도 비 온 뒤에 땅이 단단해지듯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한 뒤의 서로의 관계가 조금씩 달라지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올리브 키터리지』열두 번째 단편 <범죄자>

레베카는 평생 하지 말라고 배운 일이 많았지만, 어느 날 병원에서 처음으로 잡지를 훔친다. 이후 병원에서 꽃병을 훔쳐 가방에 넣고 나온다. 이것은 단순히 물건을 갖고 싶은 욕망이라기보다는, 억눌린 채 살아온 삶에 대한 무언의 항의처럼 보인다. 목사의 딸이라는 틀 안에서, 늘 조심하고 절제하며 살아야 했던 삶에 조금씩 반기를 들고 있다.


그녀의 내면을 가장 깊게 흔든 것은 부모와의 관계였다. 어머니는 배우가 된다며 집을 떠났고, 이후 사이언톨로지에 귀의한 채 딸의 부름에도 응답하지 않았다. 처음엔 절박하게 엄마를 기다렸던 레베카는, 시간이 지나면서 '엿 먹어'라고 되뇌며 감정을 차단하고, 결국 어머니와의 정서적 단절을 선택하게 된다. 아버지는 또 다른 억압의 중심이었다. 거울 한 개만 허락된 집에서 허영은 죄악이었고, 식사 중엔 말을 해선 안 됐다. 레베카는 친구를 집에 초대한 적도 없었고, 누구와 특별히 친한 표시를 해도 안되었다. 목사였던 아버지는 절제와 침묵을 강요했고, 레베카는 그런 아버지를 향한 애증의 감정 속에서 살아갔다. 아버지가 음식을 할 때 버터를 많이 쓰는 걸 보며, 자신이 요리를 맡게 되었을 땐 버터를 듬뿍 넣어 아버지에게 제공한다. 자신은 은밀한 '범죄자'였다고 남자친구 데이비드에게 고백한다. 언젠가 그것이 아버지의 죽음을 앞당기길 바랐던 생각은 그녀가 품고 있던 숨겨진 분노의 증거였다.


마지막 장면에서 레베카의 내면이 한층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녀는 어머니의 엽서를 찢고, 배낭에 셔츠와 잡지, 바비큐 라이터를 챙겨 넣는다. 이 행동은 그동안 자신을 얽매었던 과거와의 결별이며, 억눌렸던 감정을 불질러 버리겠다는 의지처럼 보인다. 그동안 레베카는 목사의 딸이라는 사회적 틀 안에서, 그리고 말 없는 아버지와 부재한 어머니 아래에서 늘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자신이 경찰에 체포된다면, 자신에게 고지할 '미란다 원칙'을 스스로 생각하면서 자신에게는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다'는 말을 되풀이함으로써 이제는 누군가의 기대에 의해 침묵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으로 침묵할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의미인 듯하다. 바르게 살라고, 조용하라고 받았던 억압에 대한 그녀만의 커다란 외침으로 들린다. 이 단편에도 여지없이 한 대목에서, 올리브가 등장한다. 학교 생활에서 레베카의 불안을 알아보고 무슨 일 있으면 자신에게 이야기하라고 했던 이도 올리브였다. 모든 사람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이야기 구조가 참 신기하고 놀랍다.


『올리브 키터리지』마지막 단편 <강>

『올리브 키터리지』의 마지막 단편 〈강〉은 헨리를 떠나보낸 올리브가 아침 산책길에서 역시 혼자가 된 남자, 잭 케니슨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정치적 성향도 다르고 살아온 배경도 전혀 다르지만, '홀로 남은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두 사람을 서서히 이어준다. 처음에는 툭툭 던지는 말들 속에 거리감이 흐르지만, 그 안에는 상실과 고독을 이해하는 사람들만이 나눌 수 있는 조심스러운 애정이 자리 잡는다.


잭은 아내를 잃은 뒤의 지옥 같은 시간을 고백하고, 올리브는 헨리와의 관계, 아들과의 어긋난 기억 속에서 느낀 후회와 슬픔을 털어놓는다. 그녀는 자신이 사과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헨리의 말을 떠올리며, 그 말이 맞았을지도 모른다고 인정한다. 아들과의 기억이 다르다는 데서 오는 혼란도 그대로 받아들인다.


올리브는 나이 들고 처진 몸이라 해도 여전히 사랑을 갈망한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받아들이며, 잭 곁에 조용히 눕는다. 젊은 사람들은 모른다고 생각한다. 늙은 몸도 젊은 몸만큼이나 사랑을 원한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헨리를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아픈 후회를 삼킨다. 그녀는 잭과 자신을 구멍이 숭숭 난 스위스 치즈에 비유하며, 불완전한 인생이라도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를 새삼 깨닫는다.


〈강〉은 노년의 고독과 상실, 그리고 다시 사랑하려는 마음을 잔잔하게 그려낸다. 케니슨과 올리브의 만남은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삶의 공허 속에서 서로를 건져낸 작은 구명보트처럼 느껴진다. 화려하지 않지만 묵직하고 단단한 감정, 하루하루를 견디며 쌓이는 애정이다.


삶은 구멍투성이이고, 세상은 여전히 올리브를 힘들게 하지만, 그녀는 마지막에 조용히 말한다. 세상을 아직 등지고 싶지 않다고. 그 고백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를 응축한 문장이자, 독자에게 던지는 마지막 위로처럼 다가온다. 우리 역시 그런 삶의 구멍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갈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이 단편은 조용히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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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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