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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장기전에 '신체력'이 중요한 이유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by 읽고 쓰는 윈디웬디 Mar 22. 2025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작가가 데뷔이래 지금까지 꾸준히 소설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아 살아오면서 느꼈던 소회를 담담하게 들려주는 자전적 에세이이다.  '소설가'라는 직업에 대한 하루키의 생각을 담고 있지만, '소설가'라는 자리에 다른 어떤 직업을 넣어도 적용이 가능할 만한 인생 덕목들이 많다. 철저한 자기 관리의 모범답안을 보는 듯하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단거리 스프린터'가 아닌 '장거리 마라토너'의 자세와 태도를 갖춰야 함을 그는 역설한다. 하루키가 오랜 세월 롱런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었는지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된다. 


'소설가는 링에 오르기는 쉬워도 그 링 위에서 오래 살아남기는 어려운 직종'이라고 그는 말한다. 진입장벽은 낮아도 생존 가능성은 높지 않은 분야라는 이야기다. 타고난 재주와 기량으로 반짝 주목을 받고 몇 작품 정도는 쓸 수  있겠지만 그 재주를 꾸준히 개발하지 않으면 금세 도태되고 만다는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지겨울 만큼 질질 끄는 장기전'이라고도 말한다. 그 장기전에서 자신의 소신을 지키고 업을 지키고 살아남으려면 영혼을 담는 '틀'인 육체를 어느 정도 확립하고 돌보는 노력 없이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점도 강조한다. 

처음 소설을 쓰고 전업작가가 된 시절부터  매일같이 하루 한 시간씩 달리기를 하고 시간을 정해 규칙적으로 글을 썼던 그는 우리가 흔히 생각해 온 작가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소설가인 셈이다. 참 현명한 사람이다. 젊은 시절부터 선견지명이 있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오리지낼리티'를 만들어갈 수 있었던 비결 또한 남다른 '신체력'에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대학 재학 중에 결혼해서 1974년부터 7년간 재즈카페를 운영한 하루키는 1978년 야구구장에서 자신이 응원하는 야구단인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경기를 외야 쪽 관중석에서 혼자 맥주 마시며 지켜보다가 1번 타자 데이브 힐턴이 2루타를 치는 순간, 어쩌면 '자신도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돌아와 영업을 끝낸 가게 식탁 테이블에서 1년간 첫 소설을 쓴다. 그것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였다. 그 소설로 하루키는 <군조> 신인문학상을 수상하고 소설가로 등단하게 된다. 


일견 황당해 보이는 데뷔 과정인듯싶지만 책을 찬찬히 읽어보면 그가 소설을 쓸 수밖에 없는 충분한 INPUT 과정을 이미 중고등학교와 대학시절에 거쳤음을 알 수 있다. 학창 시절과 재즈 카페를 운영하던 시절에 그는 엄청난 양의 독서를 했던 독서광이었다. 그런 사전 준비단계가 있었기에 '영감'을 얻은 순간 '결단'하고 곧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것이다.


1981년 가게를 접고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선 하루키는 오랜 세월 동안 지치지 않고 소설을 쓴다. 소설 쓰는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즐기는 모습에서 자신에게 꼭 맞는 천직을 찾은 사람의 여유와 자부심이 느껴진다.  평소 언론과의 인터뷰도 별로 하지 않고 대중 앞에 잘 나서지 않는 하루키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통해 처음으로 독자들의 궁금증에 친절하게 하나하나 답을 해주고 있어서 이 책은 하루키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평소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을 자주 읽었던 독자라면, 혹은 그가 작품을 어떻게 구상하고 어떤 방식으로 소설을 써 나가는지 궁금했던 독자라면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자신만의 소설 쓰기 방식과 작가정신으로 '오리지널리티'를 찾아가는 모습, 30년 넘게 매일 1시간씩 달리기나 수영을 하면서 몸과 정신을 관리하는 모습, 소설 쓰기에 돌입하면 다른 일체의 일을 정리하고, 매일 5~6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 200자 원고지 20매를 잘 써지는 날이나 못 써지는 날이나 동일 분량으로 규칙적으로 쓰는 모습, 초고 쓰기, 1차 수정, 2차 수정, 3차 수정, n 차 수정 등등 처음에는 다 뜯어고치고, 그다음에는 부분적으로 고치고,  또 그다음에는 세부적으로 고치고, 정교하게 다듬고 조이고 완성해 나가면서 '힘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한 것'을 세상에 내놓는 집요한 모습 등은 그가 소설가로서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비결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동안 나는 '하루키스트'까지는 아니더라도, 평소 '하루키 팬'으로 자처할 만큼 그의 소설과 에세이를 제법 많이 읽은 독자였다. 하지만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정독하면서 그동안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얼마나 소신 있게 자신의 길을 걸어왔고, 또 자기 관리에 철저한 사람이었는지, 좋아하는 분야(클래식, 재즈 음악, 달리기 등)에는 무서울 정도로 몰입하는 그야말로 덕질의 대가였는지 알게 되었다. 일본 문학계의 배척과 비판에도 결코 주눅 들거나 굴하지 않고 오히려 세계 시장으로 눈을 돌려 자신의 지평을 넓혀나간 점 또한 보통 사람이라면 결코 생각하지 못할 행보였음을 알 수 있었다. 


하루키는 매일 무언가를 꾸준히 하면서 '이건 내 인생에서 아무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라고 주문을 외우듯 실천했다. 그 말(만트라)이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격려이자 원동력이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나에게는 그것과 비슷한 만트라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꾸준히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려면 어떤 자세와 태도가 필요한지 고민해 볼 수 있게 하는 책이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함께 곁에 두고 펼쳐 봐도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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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하루키 #직업으로서의소설가 #하루키자전적에세이 #오리지널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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