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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술한 공작새 Apr 18. 2019

L'aube de Bayonne

아두흐 강가에서 일출을 보며 상념에 잠기다

 일어나보니 시계는 오늘도 3시 5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일찍 잔 덕에 몸은 피곤하지 않았다. 옆방에서 주인 부부의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방음은 이곳에서도 완벽하지 않다. 평소 코골이가 심한 터라 전날 나 때문에 잠을 설쳤을 것이 분명한 주인 부부에게 괜스레 미안했다. 이제야 찾았을 그들의 안식을 방해하지 않고 싶어 서둘러서 조용히 짐을 챙기고 나왔다. 새벽 5시 30분. 길가에는 아직 아무도 없다. 어제 바욘 역에서 숙소까지 걸어오며 건너왔던 아두흐 강변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손에는 루르드 루피노 아저씨가 싸주신 바게뜨 샌드위치가 들려있다.     


 새벽에 깨어나는 도시는 분명 낮에도 존재했겠지만 볼 수 없었던 도시의 면모를 보여준다. 사람의 그런 모습도 새벽에 나타난다. 아무런 화장기 없이, 좋은 옷도, 왁스나 헤어스프레이도 없이 부스스한 모습. 그것이 원초적 인간들의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강은 북쪽에 있다. 바욘 시내 전체를 지나가는 강이니 구글 지도도 없이 무조건 북쪽이라고 생각되는 곳으로 걸었다. 40분쯤 걸었을까. 승객이 없는 버스 한 대가 옆을 스쳐 지나갔다. 버스의 목적은 승객을 태우는 데에 있다. 고로 텅 빈 버스는 지구에 아무 의미 없이 탄소를 흩뿌릴 뿐이다. 하지만 어디엔가 있을 의미를 찾기 위해 버스는 오늘 새벽도 달리고 있는 것이다.     


 인생에서 굳이 의미를 찾기 위해 발버둥질할 필요가 없다는 반항적인 생각을 했다. 죽지 않는 이상 우리는 빈 버스처럼 달려갈 것이고 적어도 한 정류장에서는 손님이 올라타게 되겠지. 하지만 공터에 덩그러니 서 있는 버스에 손님이 올라탈 리 없듯 우리는 적어도 달려야 한다. 나 역시도 쉴 새 없이 달리다보니 어느덧 이 곳 바욘까지 오게 되었고 바욘의 새벽을 달리다보니 아두흐 강에 다다랐다. 오늘 새벽 기행의 목적지이다.     


동녘이 밝아오는 아두흐 강가

 새벽 6시 16분. 앉을만한 벤치를 찾았지만 어제 내린 비로 인해 젖어있었다. 가방에 비닐봉지를 쟁여둔 것이 다행이었다. 비닐봉지를 꺼내 벤치에 앉아 강 건너편의 또 다른 바욘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나는 맞은편의 낮고 긴 아파트 하나와 마주하게 되었다. 뒤로는 루르드에서의 단잠을 방해했던 나이팅게일의 노래가 들렸다. 루르드가 남겼던 인상이 워낙 좋았던 터라 새삼스레 반가웠다.     


 도시가 깨어나는 것을 보려면 아파트를 바라보는 것 만한 일이 없다. 아파트의 꺼진 불이 하나 둘 씩 들어올 때 도시는 뒤척이며 잠을 깨기 시작한다. 한국보다 해가 늦게 뜨는 만큼이나 유럽의 도시는 늦게 일어난다. 그러나 이미 몇 채에는 불이 들어와 있는 것이 보인다. 조금 전 스쳐 지나간 버스기사처럼 도시를 처음으로 깨우는 사람들일테다. 이를 필두로 하나 둘 씩 불이 들어오고 금세 어두웠던 아파트가 환해진다.


 아파트가 환해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새 나올 때 고요했던 도시는 여러 소리로 가득하고 가로등만이 지켰던 다리 위로는 차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아무도 없었던 내 앞으로도 조깅하는 사람들과 자전거 몇 대가 스친다.     

해가 뜨는 아두흐 강가

 동쪽 하늘도 슬슬 푸른 기를 머금기 시작한다. 이대로 일출을 보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해가 뜨는 듯 하더니 이윽고 천둥이 울리며 빗방울이 톡톡 머리 위로 떨어졌다. 우산은 없다. 부지런한 주인이 운영하는 카페든, 슈퍼마켓이든, 그 어디로든 들어가야만 한다. 서둘러 자리를 떴다.     


 강변에서 시내로 접어들자 시외버스 승차장이 보였다. 캐리어를 세워두고 담배를 태우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몇몇은 근처 브루어리 옥외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아침부터 와인 한 잔을 곁들인 대화를 나누고, 몇몇은 커피잔을 들었다. 옆에 홀로 앉아 프랑스인처럼 와인을 즐겨볼까도 했지만 성당으로 향해 아침 미사를 참례하기로 했다. 시계는 8시 정각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잠자던 건물들에서는 화장을 하고 옷을 갖춰입고 왁스를 바른 사람들이 드디어 줄지어 나온다. 아. 바욘이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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