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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술한 공작새 Apr 18. 2019

미슐랭 레스토랑에서의 백일몽

코스요리 음식을 보며 엉뚱한 생각에 빠지다

영양분 섭취는 생명 유지에 있어 필수적 수단이다. 하지만 식자원이 풍부해지고, 대다수가 음식 섭취로 인해 곤란을 겪지 않게 되는 사치스러운 시기가 되면 인간은 섭취 방식에서 한 발짝 나아간다. 바로 탐미의 단계이다.     

프랑스의 미식은 유네스코 세계 무형 문화유산에 등재됐을 정도지만 사실 프랑스가 미식의 나라가 된 것은 오래지 않은 일이다. 본디 프랑스의 뿌리가 되는 민족은 골족과 프랑크족이다. 골족은 특별한 요리법이랄 것을 가지지 않았고, 그 이후 이주해온 프랑크족 역시 그러하였다. 앙리 2세 때 그 당시 미식의 나라였던 이탈리아 출신 왕비가 셰프들과 각종 조리법, 재료들을 본국에서 도입한 것이 그 시작이다. 원래 로마시대부터 미식의 나라는 프랑스가 아닌 이탈리아였다. 그 이후 루이 왕정을 거치며 루이 14세의 전국 조리법 집대성과 천혜의 자연을 통해 프랑스 요리는 꾸준히 발전해왔고, 그것이 현대에 와서는 세계적인 미식의 나라를 만들었다.     


탐미의 끝은 의미 부여이다. 예술에서 이는 잘 나타난다. 마르셀 뒤샹이 만일 르네상스 시대에 살았고, 그 시대에 예술작품이랍시고 양변기를 하나 가져다놓았다면 아마 그는 분노한 동시대 예술가들에게 양변기로 뚝배기가 깨져 사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 양변기에다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그는 '샘'이라는 당시는 물론 지금도 충격적인 작품을 만들었다.     


오늘 나름 미슐랭 원스타를 받은 식당에서 큰 마음 먹고 셰프 스페셜 코스 식사를 했다. 트러플 수프에서 와인 초이스부터 마지막 디저트까지 완벽한 식사였다. 적어도 메인 디쉬까지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뜯고 맛보고 즐겼다. 셰프님이 그래픽 디자이너를 겸하는 분이어서 그런지 플레이팅도 훌륭했다.     

마치 나무 같았던 디저트

뇌에 경종이 울린건 그 다음, 디저트가 나왔을 때였다. 디저트는 거대한 나무와 같았다. 밤으로 만든 무언가와 그 위에 올려진 유자 소르베는 굵은 기둥이었고 설탕 과자로 넓게 뻗은 줄기와 이파리들, 그리고 귤 알맹이들로 낙엽을 그린 듯 하였다. 맛있게 먹으며 흘끗 보니 접시 바닥에 소스로 그려진 어떤 무늬가 보였다. 나이테였다. 뭔가를 찍어먹는 것인가 싶어 포크로 긁어보았지만 딱딱하게 말라붙어 긁히지 않았다. 마치 벌목 후 덩그러니 남은 나무 둥치 같았다. 부러진 설탕 과자와 가니쉬로 들어간 식용 이파리가 사실감을 더해주었다. 대단한 연출력이라 생각했다.     

벌목 완료!

다음으로는 안에 누텔라와 크림이 차있는 조그만 과자 하나와 에스프레소가 나왔다. 그랬으면 안 됐는데 몹쓸 상상력이 불을 뿜었다. (사실 나이테를 발견한 순간부터 브레이크는 고장나 있었다.) 그 조그만 과자는 흡사 도토리를 생각나게 했다. (정말로, 브레이크가 고장났다면 이때 사이드 브레이크를 당겨서라도 멈췄어야 했다.) 거대한 나무, 벌목된 후의 나무 둥치, 하지만 남아있는 하나의 씨앗. 나무가 쓰러져도 희망은 남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것 같았다. 아니면 자연은 순환하니까 너도 순환해서 이 곳에 다시 오라는 Come again 식의 마케팅 메시지이거나.     

도토리를 닮았던 디저트

이어서 앞서 먹은 요리에도 생각이 미쳤다.(이랬으면 정말 안 됐다.) 프랑스 코스 요리는 수프, 전채 요리, 해산물이나 육고기의 메인 디쉬, 그리고 디저트로 구성됨은 중학교 기가 시간을 통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왜 굳이 버섯 수프를 주었을까에 대해 사뭇 진지해졌다. 버섯은 균류이고, 균류는 지구의 초기 생물 중 하나이다. 물론 버섯이 초기 지구의 첫 생물은 아닐테지만 버섯 말고 아메바를 내놓을 수는 없으니까 버섯을 내놓았을 것이다. 그리고 생물은 바다에서 번성하다 육상으로 올라왔다.      


그렇다. 셰프의 숨겨진 의중을 파악했다(고 생각했다). 이 식사는 지구이다. 지구는 번성하다 인간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아주 작은 열매 하나만 남아 있다면 희망이 있다는 장엄한 함의였다. 이쯤 되니 디저트로 나온 도토리 모양의 과자를 먹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마지막 희망을 없앨 순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만은 독실한 카톨릭 신자로 밀알은 썩어야 산다는 성경의 말씀을 따르기로 했다. 맛있었다.     


현대미술은 그 의중을 파악해야 감상자에게 의미가 있다. 캠벨 수프캔이 예술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감상자가 앤디 워홀의 의중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충실한 고객이 되었다는 보람에 뿌듯했다. 나가면서 셰프님께 느낀 점을 말하고 기뻐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만족스럽게 계산서를 받아들고 셰프에게 물었다. 오늘 코스에 무슨 의미라도 있냐고. 셰프는 대답했다. 아니라고. 무슨 불편한 점이라도 있었냐고. 다시 물었다. 적어도 디저트에는 혹시 함의가 없냐고. 그는 대답했다. 자기가 그래픽 디자이너를 취미로 하고 있어 플레이팅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숨겨진 뜻은 없다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당혹스러운 빛이 얼굴을 스쳤는지 셰프가 다시 물었다. 왜 그러냐고. 당당하게 설명했지만 뒤로 가면 갈 수록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셰프는 호탕하게 웃으며 고맙다고 트레 비앙을 외쳤다.     


그랬다. 역시 꿈보다 해몽이었다. 셰프의 의중과 딱 맞아떨어졌다면 좋았겠지만 확실히 요리는 맛있었다. 지원이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적어도 선배는 그 식사에서 그런 것을 느꼈으면 된 거란다. 미슐랭 원 스타지만 쓰리 스타급 식사를 한 것이란다. 참 현명한 후배다. 깊이 공감하는 바다.      


마지막 에스프레소 한 모금을 마치고, 4유로를 팁으로 올려두고 나왔다. 요리로는 이미 모나리자를 그리고 있는 이 빼어난 셰프가 언젠가는 작품에 훌륭한 의미를 실어 꼭 미슐랭 쓰리스타를 받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다시 그 셰프의 요리를 맛볼 수 있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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