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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술한 공작새 Apr 18. 2019

피레네에서 깨달은 생(生)

산티아고순례길 1일차 

피레네에서 깨달은 생(生)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기 마련이다. 나름 인생의 진리를 담고 있다 말하는 흔한 클리셰이다. 하지만 사실 별 도움이 안 되는 말이기도 하다. 인생에는 분명히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지만, 대체 언제까지 이 길을 올라야하고 어디서부터가 내리막인지를 알려주는 이정표 따위는 없다. 내 앞을 가로막은 그 피레네 산맥처럼 말이다.     

활기차기만 했던 출발 전

 산뜻하게 첫 날을 시작했다. 서로 통성명도 안 한 한 한국분과 함께 했다. 동 트기 전부터 일찌감치 준비해 땀을 뻘뻘 흘리며 소똥 냄새가 물씬 풍기는 길을 걸었다. 한 시간 반을 걸으니 몇 개의 크고 작은 언덕을 넘었다. 그때는 그것이 산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자 조그만 상가가 보였고, 그 상가가 딱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에 위치한 것을 확인하고는 드디어 국경을 넘었다며 아이처럼 좋아했다. 흥분에 찬 발걸음은 날듯이 빨라져 열한 시가 채 되기도 전에 중간지점인 발카로스에 다다랐다. 발카로스로 오르는 길이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정석적인 트래킹이었다. 오르막이 있으면 그 끝엔는 으레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내리막이 있었다. 그 사실이 보장된다고 하면 그 누구든 오르막을 오를 수 있다.

아직은 힘이 넘쳤던 발카로스에서

 발카로스에서 빵과 소시숑, 과일 몇 개로 점심을 때웠다. 진짜 순례자 같다며 서로 보며 웃었다. 물을 채우니 시간은 열한 시 반이 되었다. 오전에 14km를 오는데 세 시간 밖에 안 걸렸으니 넉넉잡아 세 시에는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하겠다는 여유로운 생각을 가졌다. 그리고 아스팔트 위로 펼쳐진 오르막길을 동행과 함께 천천히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발카로스에서 만난 순례자 할아버지

 걷다보니 발카로스에서 만난 한 할아버지가 보였다. 그때는 보행기 대신 유모차를 끌고 강아지를 산책시키러 나온 동네 할아버지인줄로만 알았다. 사실 마을에서 만났을 때 본인 입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다는 말을 들었더라도 믿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걷고 있었다. 유모차를 개조한 듯 보이는 수레에 짐을 가득 싣고,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시시포스가 돌덩이를 밀어 올리듯 한 발 한 발 힘겹게 내딛고 있었다.     


 나는 체력이 좋은 편이 아니다. 좋았던 인생의 리즈 시절도 있었지만 그 이후 나태한 삶으로 인해 요즘 체력은 거의 인생의 바닥을 찍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동행을 따라잡으려 발악을 했다. 그러다보니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새털처럼 붙어있는 산양들과 파도처럼 넘실대는 산맥 등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었다. 이래서야 한국에서 피티를 받으며 헬스트레이너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시시포스처럼 수레를 밀어올리는 저 할아버지는 자신의 나이가 어떻든, 누가 자기를 앞서가든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오늘의 목표를 향해 자신의 방식대로 걸을 뿐이었다. 내 방식을 찾기로 했다. 동행을 먼저 보내고 천천히 한 발 한 발 걷기 시작했다. 자연을 즐기고, 오래된 생각을 새 생각으로 바꿔가며.     


씨발.     


 삼십 여 분 후 나는 욕을 곱씹으며 걷게 되었다. 끝없는 피레네의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했다. 고려대 법대 후문에는 기숙사로 올라가는 오르막 도로가 있다. 새내기 적에 어느 정도 오르고 더 이상 오르막이 안 보이길래 이제 내리막인가보다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길을 꺾으니 그보다 더욱 험한 오르막길이 있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다. 대서양에서 나와 미 대륙을 횡단한다 해도 결국 태평양에서 내리막을 걸을 것이고 태백산맥을 종단한다 해도 끝은 부산 앞바다다. 피레네도 예외는 아니다. 내리막이 보였다. 이젠 끝인가 하고 내리막을 신나게 내려갔다. 그런데 갑자기 길은 차도 아래 산길로 뻗기 시작한다. 계곡의 개울물을 밟은 후에야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어 차도 높이까지 이어진다. 암, 당연히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오르막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를 말해주지 않는다. 오르고 오르고 또 오르면 언젠가는 내리막에 닿겠지만 지금 당장 오르막을 오르고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는 뻔한 한 마디가 아니다.     


 점심 이전의 신바람 나는 발걸음, 산맥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그리고 굽이치는 산맥들의 절경이 만나면 무엇이 될까? 답은 체력 안배 실패와 칼날 같은 산바람, 그리고 무식하게 꼬불꼬불한 오르막길이 만나 선사하는 체력 고갈이다. 설상가상으로 물조차 떨어졌다. 오르막길은 아직도 내 앞으로 끝없이 이어지는데, 이제는 쉰 걸음마다 걸은 시간 만큼씩은 쉬어주어야 한다. 한 발짝을 걷는 데에는 1초 이상이 걸린다. 이때쯤 오늘의 목적지가 몇 킬로 남았다는 팻말은 희망이라기보다는 절망에 가깝다. 쉰 걸음이면 50미터, 그리고 휴식 시간을 합하면 50미터를 거의 2분에 가는 셈이다. 이렇게 4.8km를 더 가려면 2시간이 훨씬 넘게 남았다. 겨울이라 해는 빨리 지고 바람은 차가워져 갔다. 길도 한번 잘못 드는 바람에 얼마 남아있지 않던 체력이 반은 소진된 것 같았다. 칼로리를 채워줄 초콜릿은 있었지만 혹시 모를 상황이 계속 떠올라 차마 먹지 못했다.     

정상에서 마주친 십자가는 구원 그 자체였다.

 침낭을 펴고 오늘은 산맥에서 하룻밤을 지새야 하나 하는 생각이 거의 현실로 느껴질 때쯤 오르막이 드디어 끝났다. 물론 주변에는 더 높은 산들이 있었지만 적어도 내가 향하는 방향에는 그저 내리막, 내리막뿐이었다. 절망의 표지판은 다시 희망의 표지판으로 변해 있었다.     

첫 날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나를 맞아준 노을

 해가 뜨기 전에 출발하여 지는 해와 함께 목적지에 도착했다. 마을 전체에 곧 저녁미사 시간임을 알리는 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허벅지에는 쥐가 나고, 17kg짜리 배낭을 졌던 어깨와, 이를 받치던 등과 허리에는 감각이 없고, 생장에서 살짝 삔 발목에는 힘이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았지만 행복했다. 살아있음을 극렬히 느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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