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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술한 공작새 Apr 18. 2019

다시, 홀로, 그 길

산티아고 순례길 5일차

 팜플로나에서 광란의 밤을 보내며 마신 맥주 때문인지 오랜만에 6시 이후에 일어나게 되었다. 일행이 없기에 서두를 필요도 없었다. 느긋하게 짐을 챙겼다. 알베르게에서 준비해준 아침을 먹고 평소보다 느리게 길을 나섰다. 오늘부터는 혼자 걷게 된다. 오늘의 일정에는 나름 랜드마크인 용서의 언덕이 포함되어있다.     


 힘차게 팜플로나의 새벽 거리를 걸었다. 배낭을 매고 신호등을 건너고 나바레 대학 내부를 걸었다. 이상하게 도시에서 배낭을 지고 걸으면 힘이 빠진다. 거리를 여유로이 걷는 이들을 보며 느끼는 이질감 때문일까.     


 도시에서는 모든 것이 편리하다. 대중교통을 탈 수가 있다. 걸어서 한 시간 걸릴 거리를 적어도 20분이면 간다. 바쁘다면 택시도 탈 수 있다. 잘 되어있는 신호등 덕에 신호 위반만 하지 않는다면 교통사고를 당할 여지도 적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근처 백화점이나 마트에 가서 사오면 된다.     

 하지만 순례자의 입장에서 느낀 도시는 혼돈이었다. 시골길을 따라서 걸을 때는 길이 하나밖에 없으니 갈림길이 나오기 전까지 길을 따라 아무 생각 없이 걸으면 목적지에 도달한다. 도시의 길은 곧지만 여러 선택지를 제공한다. 이방인에게는 도시를 빠져나갈 단 하나의 길이 필요할 뿐이다. 도시를 헤메며 나는 마치 OX퀴즈로 나온다던 기말시험에서 서술형 문제를 맞닥뜨린 학생 같았다.     


 드디어 팜플로나를 빠져나왔다. 내 앞에는 새로운 도로가 펼쳐졌다. 정들었던 135번 국도를 따라 팜플로나까지 왔다. 팜플로나에서 135번 국도는 끝나고 이제부터는 12번 도로 주변으로 걷게 된다.     


 12번 도로를 따라 걷다 다시 빠져나와 시골길을 걷는다. 오늘의 코스 중 하나인 용서의 언덕이 저 멀리 보였다. 용서의 언덕은 말만 언덕이지 사실 관악산보다 100m 가량 높다. 칼날처럼 좁은 언덕 위에는 끝없이 돌아가는 풍력 발전기가 줄지어 서있다. 언덕 위에는 순례객들을 형상화한 모형이 있다. 첫날의 트라우마가 아직 생생해서 시작부터 겁이 났다.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안개가 오늘도 짙어 힘은 힘대로 들고 정작 볼 것은 없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밭으로 내려가자 안개가 다시 눈앞을 가린다. 멀리 보이던 팜플로나 다음 날 코스는 윈도우XP 배경화면을 걷는 느낌일 것이라던 선험자에게 ‘액정이 깨져있는데?’ 하고 장난스레 메시지를 보냈다. 매일 장관을 봐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만큼은 높은 코스 때문인지 어느 정도 풍경을 기대했지만 안개뿐인 오늘 풍경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밀밭 따라 난 조그만 시골길을 걷다보니 햇빛이 안개 사이로 뚫어 비춘다. 바스크 지방의 겨울 햇빛은 희고 차갑다. 적어도 내 기억 속 햇빛은 노란 색이었다. 어쩌면 한국에 있는 동안엔 햇빛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삶을 살아서 못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희고 차가운 햇빛을 왼편으로 받으며 걸었다. 안개가 걷히면서 햇빛은 점점 뜨거워졌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는 태양을 보며 걷게 되었다.     

 언덕 중턱에 있는 작은 마을 성당 앞 벤치에서 점심을 먹었다. 첫날과 다름없이 빵과 버터에 소시숑을 곁들였다. 첫날 힘이 빠져 혼쭐난 기억이 있어 든든히 먹고 물도 많이 챙겼다. 성당 앞에는 스페인 가족 셋이 모여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돌아갈 때 눈이 마주치자 부엔 까미노하고 반갑게 인사를 했지만 인사를 반갑게 받아주고는 언덕을 내려간다. 마실 나온 근처 도시 사람들 이었나보다.     


 배낭을 지고 오르막을 오르다보면 온몸에 열이 후끈하며 땀이 나고, 햄스트링에 힘이 들어가고, 숨이 거칠어진다. 그리고 심장이 뛰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몸이 살아있다는 것을 감출 수 없다. 운동하는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상생활에서 못 느꼈던 것들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서 우리가 그것을 느낄 여지가 적다.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끼며 용서의 언덕에 올라섰다. 장관이었다. 올라온 길을 따라 쭉 뻗은 밀밭. 멀리 보이는 지나온 도시들. 론세스바예스에서부터 함께 걸어오던 스페인 형제 한 쌍도 멈춰서서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바람개비만했던 풍력 발전기가 어느덧 제법 풍력발전기처럼 보였다. 왜 용서의 언덕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무거운 배낭과 멍청하게도 노파심에 온갖 잡것들을 배낭 안에 때려박은 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을만한 경치였다. 안개는 이제 몇몇 산골짜기에 자취만 남았고 청명한 가운데 비행기에서나 보던 구름 그림자가 들판을 군데군데 칠하고 있었다.     

 표지판에 익숙한 표기가 보였다. 서울까지 9700km,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는 550km. 물론 직선거리겠지만 지금껏 온 것의 16분의 1만 더 가면 된다. 올 때는 비행기로 하루, 생장까지 하루, 생장에서 이곳까지 나흘, 6일이면 오는 거리지만 앞으로 그 다섯 배 정도가 더 남아있다. 비교해보니 슬로우 라이프가 어떤 의미인지 속절없이 와 닿는다.     


 용서의 언덕을 지나면 끝없는 자갈밭이 보속처럼 이어진다. 햇빛을 정면에서 받아 마치 낙엽처럼 반짝이는 자갈들은 낙엽길을 걸을 때와는 정반대의 둔탁함과 충격을 무릎에 선사한다. 덜렁거리던 발목을 몇 번 씩이나 접지를 뻔했다. 무릎보호대와 발목보호대를 안 했다면 아마 이 길로 한국행 비행기를 타지 않았을까.     


 보속의 자갈밭을 내려온 후 마을 셋을 더 지나야 오늘의 목적지인 푸엔테 라 레이나에 도착한다. 축구강국 스페인답게 동네 아이들이 모여 축구를 하던 마을 하나와, 휴일이라 그런지 고요하던 마을 두 개를 거쳐 마지막 마을에 도달했다. 푸엔테 라 레이나는 여왕의 다리라는 뜻이다. 마을 이름답게 마을에는 사연 있어 보이는 다리 하나가 놓여있다. 웬일인지 힘이 남아돌아 왕복 2km쯤 되는 여왕의 다리에 다녀왔다. 마침 해가 뉘엿뉘엿 산 너머로 넘어가는 중이었고 다른 마을에서 온 관광객들이 다리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강가에 앉아 평온한 표정으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한 노년 부부의 모습도 보였다. 노년의 부부는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어쩌면 자신보다 서로를 더 잘 알고 있을 사람들이다. 평생 이야기를 나누며 살았음에도 아직 나눌 이야기가 있다는 것은, 그리고 그러한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내일 어차피 걸어와야 할 길이었지만 내일도 안개에 싸일 것이 분명하니 미리 와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로 시골 마을들을 거쳐가며 걷는 순례자들에게 일요일은 힘든 날이다. 마트고 식당이고 연 곳이 거의 없다. 성수기가 아닌 비수기 때는 더욱 그렇단다. 오늘의 마을 푸엔테 라 레이나 역시 그렇다. 아주 시골도 아닌 동네인데 연 상점이 하나 없다. 시원한 맥주나 한 캔 사들고 돌아가고 싶었지만 마을을 한 바퀴 돌다 포기했다. 사온 식량은 점심에 다 먹어 쫄쫄 굶어야 할 판이다.      

 다행히도 돌아가는 길에 마을 바에서 하몽 보카디요와 튀긴 베이컨에 시원한 생맥주를 곁들여 저녁을 먹었다. 전자레인지에 데운 튀긴 베이컨은 바싹 말라 육포 느낌이 난다. 하몽 보카디요는 길쭉하고 딱딱한 빵에 그저 하몽 한 조각을 끼운 것이다. 평소라면 맛있다 느끼기 힘든 음식들이었지만 낮에 고생한 덕인지 무엇보다 맛있었다. 음식이 남으면 맥주가 부족하고, 맥주가 남으면 음식이 부족해서 이것저것 추가 주문을 하다 보니 어느 새 맥주 다섯 잔에 튀긴 베이컨 두 접시, 보카디요 하나를 먹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배는 빵빵하고, 지갑은 가볍고, 술이 오른 얼굴은 벌겋고, 다리는 무겁다. 하지만 나는 내일 다시 걸어야 한다. 내일은 그래도 꽤 큰 도시인 에스떼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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