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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술한 공작새 Apr 18. 2019

티피컬하게 파리를 걷다

몽파르나스 역으로부터 노트르담 대성당까지의 짧은 여행

  점심을 먹고 이왕 나선 김에 주위를 더 둘러보기로 했다. 구글 지도를 보니 노트르담 대성당까지 걸어서 40분 남짓 걸린단다. 현재 시간은 1시 반, 내 기차는 3시 56분 기차. 2시간 반 정도가 남았다. 설렁설렁 걸어서 다녀올 시간이 충분하다. 겁도 없이 파리 시내로 뛰어 들어갔다.     

라파예트 백화점 주변

 알고 보니 몽파르나스 역 주변은 꽤나 번화가였다. 파리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는 전망대가 있는 몽파르나스 타워가 있고, 바로 옆에는 그 유명한 라파예트 백화점이 있다. 들어가서 구경해볼까 싶기도 했지만 거의 마흔 시간 동안 제대로 씻지도 못한 내 꼴은 이미 노숙자에 수렴했다. 면세점에서 산 만다리나 덕 슬링백과 지샥 시계 외에는 그 어느 것도 조금이라도 백화점에 어울리는 것이 없었다. 자칫 잘못 들어갔다가 이 먼 이국에서 오해받고 쫓겨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유명한 이야기지만 바로크, 로코코 시대의 파리에서는 화장실에 쌓여있는 오물을 그대로 거리에 던지는 것이 일상이었고 그 오물을 최대한 밟지 않기 위해 발명된 것이 바로 하이힐이라고 한다. 반짝이는 수천 유로짜리 하이힐로 가득 차 있을 백화점을 무심히 지나 한때 똥물이 가득했을 하이힐의 고향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아침에 공항리무진을 타고 파리 시내로 들어올 때 보였던 풍경에 솔직히 실망했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수도권으로 들어올 때의 풍경과 대동소이했기 때문이다. 근대 도시의 획일화를 잘 느낄 수 있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직접 걸은 파리는 내게 무척이나 색다르게 다가왔다. 라파예트 백화점을 시작으로 곧게 뻗은 헨느 가를 걸었다. 양쪽으로 늘어선 지극히 유럽스러운 건물들 1층에는 유니클로, 맥도날드 등 지극히 다국적인 상점들이 입점해있는 모습이 새삼 흥미로웠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북촌 고희동 가옥 정도 되는 집에다 스타벅스가 입점한 정도 되시겠다. 파리가 쥐 문제로 골머리를 앓으면서까지 구도심의 건물들을 지키려는 이유를 걸으며 깨달았다.     


일점 투시 원근법을 느꼈던 파리의 골목

 큰길가에서 다시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골목으로 꺾어 들어갔다. 내 의지가 아닌 구글 네비게이션의 의지였지만 골목에 대한 나의 사랑에 하늘이 감복한 것이라 믿고 싶다. 골목에 들어서자 중학교 미술 교과서에서 자주 보았던 장면이 펼쳐졌다. 일점 투시원근법의 교과서적 재현이었다. 빽빽하게 들어선 높이가 비슷한 유럽식 건물 사이로 좁은 인도가 평행하게 있고, 그 사이로 차도가 지난다. 그리고 그 모든 길과 건물의 옥상선, 층선이 저 멀리 어딘가 한 점에서 재회하는 것이 보였다. 실제로는 평행이지만 어디선가 다시 만나보인다면 우리 눈에는 평행이 아니다. 하지만 그 곳으로 가까이 가본다면 다시 그 모든 것들이 평행임은 자명해진다.     


 눈으로만 보아서는 사실을 파악할 수 없는 것들이 많고 사실만 보고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하지만 그 순간 내게 중요한 것은 길이 평행인가 아닌가 하는 사실이 아니라 바로 그 순간이 아름다웠다는 것이다. 심미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실제로 길이 평행하고 평행하지 않음은 부차적인 문제다.     


 이렇게 나는 파리에서 간단하게 투시원근법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이나 이런 파리의 거리를 접해보면 서양에서 투시 원근법이 일찍이 발달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인위적인 풍경이 대단히 직선적으로 나타난다. 또한 가까이 있는 사물은 선명하게, 멀리 있는 사물은 흐리게 그리는 공기원근법은 동서양 모두 발달했다. 한국에서는 공기원근법을 체감하곤 했다.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앞에서는 N서울타워와 제2롯데월드가 보인다. 다만, 그날그날 미세먼지 농도에 따라 선명하게 보이는 날도, 흐리게 보이는 날도, 아예 안 보이는 날도 있다. 아예 안 보이는 날에는 마스크를 반드시 껴야한다. 진정한 의미의 공기원근법이다. 선조들이 미세먼지를 예상하고 붙인 이름은 아니겠지만 역시 선조들의 지혜는 대단하다.     


 뤽상부르 공원과 미술관, 그리고 큰 성당 하나 옆을 지나 다시 대로변으로 나왔다. 축구팬들에게도 익숙한 이름이고, 쇼퍼홀릭들에게는 더더욱 유명한 생 제르망 거리였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샹젤리제 거리와는 달리 현지인들의 쇼핑 메카라고 한다. 쇼핑의 메카답게 엠포리오 아르마니, 루이비통, H&M, 휴고 보스 등 많은 브랜드들이 역시나 오래된 건물 1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사이로 거리의 사치와 향락에 제동이라도 걸 듯 꽤나 유서 깊어 보이는 수도원이 하나 서있다. 한남동 재규어랜드로버 매장 뒤, 고급 빌라들 사이에는 큰 규모의 프란치스코 수도원이 있다. 쇼핑과 사치의 중심지에 금욕의 장소가 있음은 알 수 없는 부조화를 느끼게 하지만 파리에서는 수도원이나 명품매장이나 건축양식이 비슷비슷한 덕에 외관상으로는 여태 스쳐지나온 여느 유럽의 거리와 크게 이질감이 없었다.     


 생 제르망 거리를 지나 얼마 걷지 않아 목적지에 도달했다. 노틀담의 꼽추로 유명한 노트르담 대성당, 구글이 제시해주는 발음에 따르면 노뜨흐 담므이다. 이번 여행 때 많이 가보겠지만 내게 큰 성당은 해봐야 한국의 명동성당 정도일 뿐, 아직은 대성당이라고 불릴만한 곳에 갔던 기억이 손에 꼽는다. 네비게이션은 아직 수백 미터를 더 가야 노트르담에 도착한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노틀담은 수백 미터 전에서 누가 봐도 저게 노트르담이구나 싶을 정도로 거대하다.     

웅장했던 노트르담 대성당

 하늘에 닿고자 하던 인간의 오만 때문에 언어가 다 다르게 되었다는 바벨탑 이야기는 유명하다. 물론 이야기일 뿐이지만 만일 바벨탑이 그러한 오만 때문이 아니었고, 애초에 신에게 제사를 바치는 장소로 지어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우선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문화유산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또 상당히 직업병적인 생각인데 세계의 외국어 교육이 아예 필요 없어지니 적어도 학생들과 여행자들에게는 좀 더 살기 좋은 세계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굳이 노트르담까지 와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내 자신이 야속했다.     

 한참 잡스러운 생각을 하며 세느 강 다리 위에서 사진을 몇 장 찍는데 저 멀리서 추레한 옷차림의 소녀 몇 명이 클립보드에 서명지를 끼우고 다가왔다. 미리 유럽 치안에 대한 조사를 한 덕분에 그들의 목적이 명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뭐에 관한 서명이든지간에 서명을 하는 순간 그 서명은 내 지갑에 대한 양도 동의 서명이 되겠지. 우리나라에서 도선생 무시하듯 무시하고 지나가려는데 삽시간에 나를 둘러싸고 여기저기서 정신없이 말을 걸어댄다. 독한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와 동시에 나는 외마디 욕을 뱉곤 한 쪽 여자를 밀치고 저 멀리 뛰어 도망갔다. 도망가는 저 뒤로 그들이 뭐라고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물론 욕이겠지만 못 알아들어서 별 타격은 없었다. 프랑스어의 장점은 발음이 부드럽다는 것이다. 그렇다. 욕마저도 부드럽다.     


 구글 검색으로도 쉽게 볼 수 있는 에펠탑과 개선문, 모나리자를 굳이 여기까지 와서 보는 대신 여기에서밖에 체험해보지 못하는 것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운이 좋은지 아무 손해 없이 프랑스식 코스요리, 파리 거리 걷기, 심지어 소매치기까지 직접 경험해볼 수 있는 것 모두를 파리에 떨어진지 한 나절 만에 모두 경험했다. 그나저나 마흔 여 시간 동안 씻지도, 제대로 자지도 못해 추레했던 나에게 접근한 것을 보면 이 업계도 요즘 겨울이라 그런지 불황인가보다. 수염도 덥수룩해서 동종업계 사람이라 착각할 만도 했는데.     


 너무 여유를 부리며 걸었는지 노트르담을 한 바퀴 돌고 시계를 보니 한 시간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세느강 다리를 건너며 맞은편의 소매치기들을 흘끗 보았다. 또 한번 허탕을 치는 것이 보였다. 눈이라도 마주쳤으면 한번 째려봐주는 건데 아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괜스레 마음이 급해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운전사는 알제리 계로 영어가 잘 통하고 유머러스한 사람이었다. 어디서 왔냐는 말에 Korea 라고 답한 다음 뒤늦게 South를 덧붙이자 웃으면서 Mad man Kim과 닮지 않아서 북한인이 아닌 것을 알았다고 말해준다. 파리에는 일방통행이 많아 왔던 길을 완전히 똑같이 되돌아가지는 않았지만 얼추 비슷한 길로 돌아갔다. 오면서 보았던 큰 성당 하나가 다빈치 코드에 나왔던 생 쉴피스 성당이라고 말해준다. 알았으면 오는 길에 한번 들어가 봤을 것을.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역시 모르는 것이 약일 때가 있다. 그래도 고마운 택시 운전사 덕분에 나는 생 쉴피스 성당을 가본 여행자 칭호를 얻을 수 있었다. 안까지는 못 들어가 봤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콜로세움에서 사자랑 싸우거나, 싸우는 것을 봐야지만 콜로세움에 다녀온 것이 아니니까.     


 택시를 타고 역으로 가며 파리의 거리에 대해 느낀 점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신나게 얘기를 하는 내 모습을 보고 'Typical'한 파리에서 그런 것들을 느꼈냐며 재미있어했다. 고려대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무렵 고려대 건물들을 보며 하루하루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설렘은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무너지고 말았다. 호그와트를 닮은 외관에 고그와트라고도 불린다는 교양관은 그저 [사고와표현] 수업을 듣는 곳일 뿐이고, 유럽의 어느 기차역처럼 고풍스럽게 생긴 문과대 서관은 수업을 들을 때 길을 찾기 힘든 건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고려대에 입학한지 어느덧 6년 가까이 지난 요즘도 가끔, 아주 가끔 고려대 건물에 감동할 때가 있다. 이 티피컬한 파리의 택시운전사 아저씨도 때로는 그런 경험을 할 때가 있지 않을까.     

'티피컬'했던 파리 풍경

 한국에 돌아가면 홍세화 씨의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를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홍세화씨가 망명 도중 직접 택시운전사를 하면서 느낀 점을 다룬 책으로 알고 있다. 구로구를 작전지역으로 하는 부대의 대대장 운전병을 한 나는 전역한지 2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아직도 구로구 전역을 다 꿰고 있다. 고작 21개월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구로구를 운전하고 다녔는데도 구로구는 내게 무척이나 티피컬한 동네가 되었다. 나도 그럴진대 파리의 택시운전사씩이나 되는 분께는 얼마나 파리가 티피컬할지, 그리고 그분은 그 속에서 어떤 경험들과 어떤 생각을 하셨을 지가 궁금하다.     


 10여 분 간의 택시 여행. 한국의 택시 요금을 생각하고 5유로짜리를 손에 쥐고 있었다. 그런데 요금은 할증이라도 붙은 듯 올라 내가 내릴 때쯤 미터기는 8유로 80센트를 나타내고 있었다. 급하게 지갑을 열어 5유로 지폐를 한 장 더 꺼내 10유로를 택시 기사에게 건넸다. 그리고 멋있게 한 마디 덧붙였다. Keep the change. 1유로 20센트면 역 화장실을 한번 이용하고도 40센트가 남는 큰돈이었지만 나에게 생 쉴피스 성당을 다녀온, 하마터면 묻혀버릴 뻔 했던 경험을 일깨워준 데다 티피컬한 파리를 간접 경험 시켜준 데에 대한 답례였다. 파리의 택시 운전사는 프랑스 입국 후 본 중에서 제일 환한 미소로 답해주었다.     


 이제 파리는 내게 비싼 화장실과 맛있는 에스까르고, 멋있는 투시원근법을 실생활에서 티피컬하게 볼 수 있는 곳, 부드러운 욕을 하는 집시 소녀들의 암모니아 냄새와 택시 운전사의 환한 미소의 도시로 남게 되겠지. 파리에 온 지 9시간 만에 파리를 떠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남겼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여행의 즐거움이 슬슬 되살아나고 있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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