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 플랫폼 위에서 너를 그리다
사당으로 가는 과외길. 고려대역으로 막 들어섰다. 시간은 빠듯해 차량 한 편 한 편이 아쉬운 상황이다. 저 멀리 전광판에는 월곡역에서 막 열차가 출발했다는 문구가 뜬다. 뛰면 잡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더운 날씨에 괜시리 땀만 흘릴 것 같아 뛰지 않았다. 열차가 아쉽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열차를 놓친데다 땀까지 뻘뻘 흘릴 내 모습이 싫었다.
천천히 걸었다. 심지어 에스컬레이터에서도 가만히, 여유로이 있었다. 아뿔싸. 에스컬레이터에서 반쯤 내려갔을때서야 이제야 막 사람들이 내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차했을때는 늦었다. 뒤늦게 에스컬레이터를 뛰어내려갔지만 열차는 떠나고 없었다. 남은 자리에는 다음 열차가 7분 후에 온다는 문구만이 전광판에서 빛나고 있었을 뿐. 완전 지각이다.
인생의 많은 것을 나는 이렇게 놓치곤 한다.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 아니, 안 올 것이 분명한 너와의 관계도 그랬다.
나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번 열차를 타지 않는다면 돌이킬 수 없을 것임을. 그렇지만 과연 그 열차를 붙잡을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만일 못 붙잡게 된다면 헐떡거리며 뒤에 남겨질 내 모습을 감당할 수 없었다.
오늘 뒤늦은 후회를 하는 나처럼, 그때도 그렇게 후회하곤 했다. 너는 그 마지막 순간에 분명 반짝대며 내게 신호를 보냈지. 알아채지 못한 것은 내 실수다. 아니, 알았음에도 뛰지 않은 것은 나의 잘못이다. 너는 나에게 달려왔지만 나는 네게 뛰어가지 않았다. 네 품에 안겼을때 헐떡거리며 눈물 콧물 범벅된 녹록치 못한 몰골을 보이기가 싫었다.
그렇게 너는 떠나갔다. 내가 떠나보낸 것이다. 처음에는 네가 응암을 찍고 다시 돌아올줄 알았다. 여느때처럼 그럴 줄 알았다. 너는 언제나 그랬으니까. 나를 현명하게 되돌릴 줄 아는 아이였으니까. 그리고, 이번 차가 막차였음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너는 너무 현명해서 이런 바보같은 나에게는 다시 돌아오진 않나보다.
나는 승강장에 아직도 남아있다. 밤은 깊어 길에는 택시 한 대, 버스 한 대 다니지 않는다. 새벽이 올때까지 홀로 걷기로 했다. 너를 만나진 못할거라 믿는다. 사실 만날 염치도 없다. 하지만 네 덕분에 나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의 중요성을 조금은 깨달은 것 같다. 다만 언젠가 운명이 너에게로 다시 이끌어 옷깃이나마 스칠 때, 그 스치는 바람에 실어서라도 고맙고 정말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