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걸었을 뿐인데 마음이 달라졌다

식물은 대답하지 않는데, 왜 나는 위로를 받을까?

by lemoni

식물과 말을 나누는 시간


식물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꾸 말을 건넨다.

물을 주다가,
마른 잎을 떼어주다가,
창가의 화분을 햇빛 쪽으로 조금 밀어주다가.

“오늘은 좀 어때?”
대답을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묻는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만큼은
내 목소리가 허공으로 흩어지지 않고
어딘가에 가만히 내려앉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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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식물을 데려왔을 때는
그저 초록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텅 빈 방에 생기를 놓고 싶었고,
잘 살아 있는 것을 곁에 두고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나는 자꾸 식물에게 하루를 보고하게 되었다.

피곤했던 일,
괜히 서운했던 말,
별것 아니지만 마음에 남아 있던 장면들.

말을 꺼내고 나면
조금은 정리가 된 얼굴로
다시 나를 보게 되었다.


식물을 돌보는 일은 단순하다.

때가 되면 물을 주고,
빛이 부족하면 자리를 바꿔주고,
잎에 먼지가 쌓이면 닦아준다.

누가 보면 사소한 반복이다.


그런데 그 반복이
희한하게도 나를 하루 안으로 붙잡아 둔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에도
“물은 줘야 하니까.”
그 한마디 때문에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때 알게 된다.
아, 내가 완전히 멈춘 건 아니구나.


가끔은 그런 생각도 한다.

내가 이 아이를 키우는 걸까,
아니면 이 아이가 나를 오늘까지 데려온 걸까.

시들지 않으려고 버티는 잎을 보며
나도 조금만 더 해보자고 마음을 고쳐 먹는다.


말없이 건네받는 격려.

식물은 그런 방식으로
자꾸 사람을 단단하게 만든다.


신기한 건,
기분이 좋은 날엔 새순이 먼저 보이고
마음이 복잡한 날엔 상처 난 잎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는 사실이다.

같은 화분인데도
날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달라지는 건 늘 내 쪽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식물을 보다 보면
결국 나를 보게 된다.

“고마워.”
“오늘도 살아 있어 줘서.”

언젠가부터 나는 이런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 같지만
실은 나에게 들려주는 문장이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안다.


돌봄은 방향을 헷갈리는 법이니까.

식물과 함께 산다는 건
완벽하게 키워내는 일이 아니라
같은 시간을 통과하는 일에 더 가깝다.

천천히 자라고,
가끔 멈추고,
뜻밖의 순간에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

그 곁에 내가 있고,
내 곁에 초록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하루는 생각보다 잘 흘러간다.

오늘도 화분 앞에 잠시 멈춰
아무 말이나 한마디 건네본다.

잘 지냈어?

그러면 식물은 늘 그렇듯
아무 대답도 하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이미 충분히 들은 기분이 된다.


오늘 당신의 식물에게 이야기를 건네보세요.


나무 화분.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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