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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s Jang Aug 22. 2021

나를 데리고 살기



 올여름에 입고자 한 옷들 중에 한 번도 입지 못한 것들 투성이다. 티셔츠 서너 개로 여름을 나기는 또 처음이라며 덕분에 뭔가 진짜 필요하고 필요 없는지 삶의 군더더기들을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건뿐만 아니라 억지로 명맥을 유지하던 인간관계들도 새로운 양상으로 자연스레 멀어졌고 어떤 부분은 만족스럽기까지 하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밖으로 발산된 에너지를 충전도 해야 하고 생각을 정리해서 임해야 하는 삶의 부분들도 있는 법이니깐. 그런데 막상 '나만의 시간'이 넘치니깐 잉여에도 계획이 필요해졌다. 처음엔 무엇부터 해야 할지 어리둥절하다가 맘먹고 '이왕 시간도 남는데 영문법도 마스터하고 글도 꾸준히 쓰고 운동도 해서 복근을 한번 만들어보자!' 계획만 몇 달을 세우다가 다시 이것도 저것도 다 귀찮아서 시작조차 하기 싫은 단계에 이르기까지 무한루프를 경험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게 다 일이구나.



 왜 이렇게 한도 끝도 없이 늘어져 있고만 싶고 시작하는 것이 두려울까 생각해보니 이런 것들도 마음속 어딘가에서 해치워야 하는 일로 분류되어 있던 것이다. 그래서 이 계획들을 일이 아닌 것처럼 나 자신조차 속이기로 했다. 꼬박꼬박 페이지를 채우는 일기 대신 '오늘은 구름이 이뻤다.'와 같은 간단한 메모를 남긴다던가 어려운 책들은 일부러 오며 가며 제일 잘 보이는 곳에 펼쳐 두었다. 시작이 거창하지 않으니 훨씬 수월하게 모든 것이 스쳐 지나갔다.



 좋은 습관의 중요성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그중에 대부분은 성공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이용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무너지지 않기 위한 믿음으로 붙들고 있는 듯하다. '습관... 중요하지.' 내심 인정하면서도 한꺼번에 요요처럼 지키지 못한 약속들이 한꺼번에 쏟아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계획을 지키는 것이 나와의 싸움이라고 믿었던 적이 있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날에는 죄책감과 실망감에 자존감이 한없이 추락했다. 밖에 싸울게 얼마나 많은데 자신과 싸우냐는 어느 드라마의 대사처럼 '그렇지! 싸울게 얼마나 많은데....' 변명이 아니라 결국 평생 본인을 책임질  있는   본인밖에 없다는 사실을 지각하고 나서야 알았다. 마음도 몸도  다독여서 오래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을...



  절망이란 엄청난 큰 재해, 전쟁, 가슴을 뜯는 이별에서나 등장하는 단어인 줄 알았다. 요즘은 지루함이, 권태로움이 무기력한 절망의 모습으로 찾아올 수도 있다는 걸 매일 경험하고 있다. 사소하지만 다른 매일을 꾸준하게 살아야 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눈을 뜨자마자 어제보다 조금 자란듯한 화분에 물을 주고 날씨와 기분에 맞는 음악을 고른다. 입맛이 도는 맛있는 아침도 만들어 먹고 있다. 글씨가 잘 써지는 펜을 어렵사리 골라 사각거리는 종이에 글자를 긁적이다 문장이 한 줄씩 늘어났다. 더 쓰고 싶은데 펜이 닳을까 봐 아껴 쓰는 중이다. 자주 걷다 보니 일찍 잠자리에 든다. 사소하지만 이런 일상이라도 살아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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