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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s Jang Feb 09. 2022

인생이 '트루먼 쇼' 라 여겨질 때



 회의 시간에 어제 잠들기 전 외웠던 마지막 영어 단어가 등장했다.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한다며 뿌듯한 순간도 잠시 어떻게 저 매니저는 이 단어를 말했을까? 몇 년 동안 주간 회의 시간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그 단어가 왜 하필 오늘 나온 것일까? 마치 나에게 보란 듯이 이렇게 사용하는 것이라고 일부러 알려주려는 것처럼...


 아침에 흥얼거렸던 노래가 퇴근길 라디오에서 나온다던지 내가 오랜만에 연락하고 싶었던 지인이 갑자기 '네 생각이 나서 연락해봤어."라고 먼저 연락을 해오는 일들이 실제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등골 한줄기가 서늘해짐을 느낀다. 


나 혹시 트루먼쇼 주인공인 건가?



 이런 경험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면 반응은 2가지로 나뉜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 그런데 보통 사람들 생각이 얼추 비슷해서, 비 오는 날 막걸리가 생각나는 것처럼 그날의 분위기, 날씨에 따라 다 비슷한 생각과 감정을 느끼는 거지 뭐." 

대수롭지 않게 대처한다. 인생의 보편성에 근거한 주장이다. 


다음 반응은 조금 더 학문적인 접근으로 각종 알고리즘과, 빅데이터가 등장하는데 내가 이용하고 있는 각종 디바이스들이 나의 의도와 행동을 눈치채고 '짠!' 하고 내 일상에 넌지시 등장한다는 거다.


 둘 다 나름 설득력이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글쎄... 이거 완전 '트루먼쇼 모먼트'인데...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건  트루먼쇼 모먼트다!




 고백을 적어 놓은 엽서를 부치치 못하고 카페를 나왔는데 그 편지를 우연히 테이블 위에서 발견한 다음 손님이 엽서를 대신 부쳐주어 결혼하게 되었다는 어느 커플의 이야기를 읽었다. 고백을 적은 사람이 주인공이었고, 편지를 부친 사람이 조연이었다면, 감독은 우연을 가장하여 편지를 보내게 하였다.



 할아버지가 매번 들려주시던 전쟁 이야기 속 주인공은 1000명 중에서도 홀로 살아남았고 10000명 중에서도 홀로 살아남은 본인이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다친 다리를 이끌고 몇십 리를 걸어서 집에 도착했고 초등학교 때 눈여겨보았던 달리기를 잘하던 예쁜 소녀와 결혼해서 무려 100년 가까운 삶을 함께 지속했다.


 

 내가 진정 이 트루먼쇼의 주인공이라면 기꺼이 주인공으로 잘 살고 있는 건지 감독의 예상 시나리오대로 가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든다. 우연을 가장한 인연들, 세트장에 설치되어 있는 역경들, 미리 세팅된 미션을 어떻게 지나쳤을까?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않다면 이제부터라도 주인공 역할에 최선을 다해봐야겠다. 굿모닝,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을 외치며 멋지게 퇴장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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