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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s Jang Sep 03. 2022

정성 꼰대입니다.

  십여 녀 만에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막상 우리 동네까지 찾아온다고 해서 어디를 가야 하나 생각하다 예전에 방문했을 때 인상 깊었던 맥주집으로 안내했다. 맥주 가격은 좀 비싸긴 했지만 정성스럽게 맥주를 따르는 그 모습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가도 예상치 못한 불친절함으로 인해 분위기를 망치지 않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수제 맥주도 아니고 일반 병맥주를 잔에 따르는 것뿐이었지만 맥주를 따르는 속도, 거품의 양, 잔의 청결함까지 깔끔하게 잔에 담긴 맥주를 보며 친구도 나도 오랜만에 정성스러운 맥주를 마신다며 차분하게 맛을 음미하였다. 가게 주인의 정성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반복되는 일을 하면서 처음과 같은 정성을 쏟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관성에 젖어 매일 같은 길로 출발해서 같은 길로 돌아오는 일상에서 대단한 직업의식이나 소명의식 없이 똑같이 받는 질문들, 작업 루틴이 얼마나 지루할까. 이 와중에 영화 홍보차 무수한 인터뷰에서 무수하게 받는 비슷한 질문들을 다른 방식으로 정성스럽게 대답해주는  OOO 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연히 정성을 다하는 누군가를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출근길에서 매번 급 브레이크를 밟는 기사님이 있는가 하면 수능이 끝난 날 지하철 방송으로 들려오는 수고했다는 멘트를 날리시는 기사님도 있으니깐. (7호선 미담으로 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라디오 디제이 급으로 좋은 말씀을 많이 전해 주신다고 합니다.)



 정성이 전염되듯 짜증도 전염된다. 누군가 카톡에 ㅇㅇ을 남기고 나면 바로 되받아치기로 ㅇㅇ을 날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ㅇㅇ 을 싫어하는 취향입니다.) 그릇이 날아다니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왔을 때의 찝찝함, 생뚱맞은 끼어들기, 맥락 없는 성냄과 같이 방심하는 순간 찾아오는 이런 것들을 내선에서라도 끊어 버리려고 한다.  



  아침에 가정의 문제로 인해 기분이 언짢으셨던 기사님의 급 브레이크가 구두를 신은 발목을 부러지게 하거나 누군가의 발등을 밟게 했다면? 이를 당한 사람이 망쳐버린 기분으로 회사를 출근했는데 나의 짜증을 알지 못한 누군가가 접근했다가 아무 이유 없이 화풀이 폭격을 받고 쓰러진다면? 그 누군가는 어딘가에서 미사일급, 핵 미사일급 점점 더 걷잡을 수 없는 짜증을 내고 있겠지? 이렇게 퍼지게 될 짜증의 수들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지구를 뚫고도 남을 듯하다. 



 다 제가 안고 가겠습니다...




 정성은 나를 통해 흐를 수 있도록 짜증은 내선까지만 지키는 걸로 맥주 한잔과 함께 맘먹어 본다. 내가 베푼 친절함이 따뜻한 말 한마디의 정성이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버틸 수 있는 힘이 될 수도 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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