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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s Jang Aug 07. 2024

40대 무소속의 기쁨과 슬픔


 얼마 전까지 소속해 있던 회사를 나오게 되면서 철저하게 무소속이 되었다. 그야말로 해당 사항 없음의 항목이 또 하나 늘어났다.

 

 결혼여부, 자녀여부, 직장여부 등등의 어떠한 그룹집단에도 포함되지 않고 커뮤니티에도 참여하지 않는 철저하게 자연인, 좋게 말하면 자유인이 되었다. 회사를 나오면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장기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휴가에 맞춰 억지로 일정을 조율하거나 루트를 짜지 않아도 되어서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모른다. 유명하지 않은 어느 시골마을에 있는 숙소를 여행 이틀 전에 예약하기도 하고 짐은 출발 몇 시간 전에 일단 눈에 보이는 것들을 집어넣었다. 그동안 계획! 계획! 대안 B, C, D, E, F까지 생각했던 사람에게 너무 파격적인 행보랄까? 하지만 이렇게 '충동적으로 살아보기' 조차 올해의 To do list에 있었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징글징글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가벼운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라탔으나 며칠 전부터 맘에 걸리는 게 있었다. 바로 출입국 심사! 직업은 뭐라고 해야 하나? 미혼의, 직업도 없는 40대 여자가 이렇게 오랜 기간 여행을 한다고 하면 아무렇지 않게 알겠어하고 도장을 쾅 찍어줄 것인가? 너무 상상을 오래 하는 바람에 14시간 30분이라는 비행시간이 오히려 짧게 느껴질 정도였다. 옛 회사의 명함을 보여줘야 하나? 그냥 개인 사업한다고 할까? 시골 텃밭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그냥 농부라고 할까? 별의별 직업이 머릿속을 헤집었지만 여태껏 상상하지도 못한 무소속의 서러움을 이런 곳에서 마주하게 될 줄이야. 황당했다.




 질문이 길어지면 거짓말이 탄로 날 수 있으니깐 솔직하게 현재 상태를 말할 것. 혹시나 상대방이 의심스럽다고 하면 파일클립에 구겨지지 않게 프린트해 간 비행기 티켓과 숙소 예약 확인 이메일을 보여줄 것. 이 정도의 준비성과 솔직함을 무기로 하자는 전략을 가지고 입국 심사대에 들어섰다. 심박수는 100을 넘어가면서 거의 숨차게 걸을 때의 두근거림을 능가했다.    


 요리조리 뒤에서 살펴보면서 어떤 심사원이 빨리 입국 심사를 마치나 눈치 싸움을 할 겨를도 없이 넥스트! 드디어 차례가 돌아왔다. 심호흡을 하고 스마일을 장착! 입국 심사원은 여권만 이리저리 뒤적거리다가 쾅! 쿨하게 나를 보내 주었다. 한마디 질문도 없이...


역시 대한민국 만세. K팝 K푸드 K뷰티 만세! 긴장이 확 풀렸다.


 그동안 집-회사-집-회사를 오가는 동안 내가 속하지 않았던 세계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던 걸까? 아주 몇 명의 지인들과 동료들의 삶 외의 것들은 거의 무지하다 시 피했던 나의 생활은 어떻게 흘러온 것이며 마치 큰 빙하의 보이지 않는 얼음섬 같은 보이지 않는 것들은 얼마나 또 거대할까" 엄청난 두려움이 몰려왔다.


 불혹...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는데 이 뜻이 정말 맞아?


 비로소 알게 된 무소속의 막막함, 마치 삶을 다시 리셋해야 할 것 같은데 그동안 내 세상만 믿고 살아온 세월도 꽤 흘렀고 나잇값도 못한다는 소리는 또 듣기 싫고, 스스로 고군분투해야 하는 이 상황이 너무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나름 후배들이 고민을 가지고 올 때마다 친구들이 걱정이 늘었다고 할 때마다 한 번도 건성으로 위로해 준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돌아보니 속속들이 알지도 못하고 그냥 공감하는 '척'만 했었나 싶기도 했다.



  점점 삶의 형태가 다양하게 늘어가고 결국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은 어떤 형식으로든 100% 이해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학문적으로든 삶을 통해서든 조금 더 많이 알고 겪었다고 누군가에게 유난 떨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무소속이 되고 보니 오히려 보이는 게 많아졌다. 더 궁금한 게 많아졌다. 아직도 모르는 게 많아서 조금 더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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