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태어난 딸에 대한 엄마의 조바심 같은 거였을까? 인생에서 가장 빡빡한 스케줄을 이미 초등학생 때 경험했다. 그때의 후유증인지 몰라도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뒹굴뒹굴이고 의자만 있으면 앉고 보는 습관, 소파만 보면 어떻게든 몸을 비집고 들어가려는 의지가 생겼다.
'그 아파트에 작가 선생님이 어디서 등단을 했다는데 그렇게 잘 가르친데.' 어디서 들었는지 지금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어쨌든 일주일에 한 번씩 작가 선생님 댁으로 가서 '글쓰기'라는 것을 배웠다. 선생님은 항상 보자기로 머리를 감싸고 있었는데 보자기 속 선생님의 머리카락은 과외를 마치는 때까지 끝끝내 보지 못했다. 작가정신? 혹은 예술가의 상징 같은 건가 싶기도 하고 아니면 단순하게 귀찮아서 혹은 머리를 감지 않아서 그랬을 수도 있었겠지만 보자기 때문인지 괜히 선생님이 위대해 보이곤 했다.
작가 선생님의 실력이 꽤 뛰어났는지 아니면 나의 잠재력이 폭발해서 그런지 몰라도 과외를 받은 후부터 교내 글짓기에서 상을 타기 시작했다. 고작 초등학생 때였는데 그 잠깐의 요령으로 중학교, 고등학교 때까지 아주 교내 글짓기 대회가 있으면 건방지게 어차피 또 받겠네 하면서 우쭐했었다. 학교에서 상을 받기 위해서는 나름의 전략이 필요했는데 기-승-전-결이 분명히 할 것, 마지막 단락은 교훈 또는 깨달음으로 끝날 것, 선생님들이 좋아할 만한 맞춤형 단어 선택과 무엇보다 글씨를 잘 써서 가독성을 높일 것. 등등의 것들이었다.
그렇게 필승의 전략은 99퍼센트의 승률을 가져다주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교내 글짓기 수상자가 호명되었는데 어라! 내가 아니다? 상은 우리 반 다른 아이가 차지했다. 겉으로는 축하한다고 했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일단 침착하자. 그 아이에게로 갔다. 쓴 글을 보여달라고 했다. 글을 읽었다. 처음 보는 결말이었다.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 결론이 없는 그런 글이었다. 너무나 포스트모더니즘적이었다고나 할까? 게다가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 아이가 쓴 문장 중에 사용한 '밭은기침'이라는 단어였다. 살면서 구경도 못해본 이 단어를 어떻게 알았을까? 이것은 내가 믿고 있던 나의 재능이라는 것에 대한 배신이었다. 글쓰기와 나의 사이는 순식간에 차갑게 식었다. 서먹서먹해졌다. 밭은기침도 모르는 주제에 어디서 까불고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때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들의 글을 더 많이 읽어 봤더라면 세상에 이렇게 쓰는 사람도 있고 저렇게 쓰는 사람도 있고 화려한 문장도 있고 간결하지만 임팩트 있는 문장도 있다는 걸 알았을 텐데 무지했던 데다가 경험까지 없으니 남은 건 엄청난 자존감의 추락뿐이었다. 드러내지 말 것. 일기장에만 조용히 남겨둘 것. 그 후로 글쓰기에 대한 나의 신념은 꽤 소극적으로 변했고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문장의 개수를 늘려 갈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밭은기침'은 너무 큰 단어다. 앞으로도 영영 이 단어는 사용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쓸 수 있다. 아니 쓰고 있다. 한 번도 배신당하지 않은 것처럼...
밭은기침: 병이나 버릇으로 소리도 크지 아니하고 힘도 그다지 들이지 않으며 자주 하는 기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