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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 little deer Jan 07. 2020

난 고양이가 싫어요! (러브 스토리)

2020-01-07

우리는 이불을 같이 덮고,
신문도 같이 보지요.
~
잠을 자려고 불을 꺼요.
어둠 속에서 뭔가 움직이는 게 느껴져요,
부드럽고 묵직한 것이.


오늘 아침은 사망 직전인 바나나 세 개와 아몬드 밀크를 믹스한 스무디와 고양이 그림책. 그리고 졸졸 따라다니며 참견하기 좋아하는 수수. 이상한 자세와 못생긴 얼굴로 의자 위나 바닥 아무 데나 웅크리고 누워 자는 보리. 새로 산 깃털 장난감이 마음에 쏙 드는 수수와 보리. 매일 심심해하는 수수와 보리. 밤에 침대에 누우면 몸 어디라도 내 곁에 딱 붙이고 잠을 청하는 보리. 종종 내 배 위로 올라와 쓰다듬어 달라고 애교를 부리거나 얼굴을 핥거나 배를 대고 가만히 엎드려 있는 수수. "간식?"이라고 말하면 소리를 내며 눈을 반짝이고 달려드는 수수와 보리. 보기와 달리 식탐이 많은 수수. 덩치는 더 커도 입은 짧은 편인 보리. 펫 밀크를 좋아하는 수수와 입에도 안 대는 보리. 한 번씩 물을 엄청 많이 마시는 보리. 화장실이 치워져 있지 않으면 종종 바로 앞에다 똥을 싸놓는 수수. 펠렛을 마구 파헤친 후 화장실 입구 쪽에 경계 태세로 서서(?) 볼일을 보곤 하는 보리. 낯선 사람을 별로 경계하지 않는 수수. 의외로 겁이 많은 보리. 책이며 옷을 닥치는 대로 물어뜯어놓곤 하는 보리. 빗질도 귀 청소도 죄다 싫어하는 수수. 보리가 귀찮으면서도 히이잉 하고 다가가면 그루밍을 해주는 수수. 보드랍고 뜨끈하고 웃기고 귀찮고 사랑스럽고 이상하고 아름다운 나의 고양이들.


+ 이번 호주 최악의 산불로 수많은 동식물들이 죽거나 다치거나 혹은 살아남았어도 목숨을 잃게 될 위기에 처했다고, 멸종의 물결이 시작됐다고, 대재앙의 시초라고 뉴스가 무섭게 경고한다. 되돌리기엔 이미 늦은 건지도 모른다고.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지구를 지켜야 한다고. (교황님 말씀처럼) 결국 누구의 탓도 아니라면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정말 미안해. 이렇게 아무 짝에 쓸모없는 말 대신 당장 뭐라도 해야 할 텐데. 하찮은 데다 쓰레기만 만들어내는 인간은 오늘도 걱정만 하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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