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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 little deer Nov 27. 2020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

2020-11-26

"그러니까, 이게 인생이지."
때로는 고통스럽고 때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 때로는 말로 할 수 없이 아름다운 것, 바로 그것들이 모두 인생이라는 듯이 그는 버릇처럼 그렇게 덧붙이곤 했다.
"시간이 너무 없어. 언제 이 책들을 다 읽지? 언제 이 영화들을 다 보지? 언제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다 쓰지?"
그리고는 한숨을 쉬며 '하지만 이게 인생이지'라고 덧붙이는 것이었다. p.74-75.


아침에 코로나 확진자가 583명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저녁에 '나만 듣기 아까운'이라는 제목의 클래식 음악 모임에 가기로 되어 있었기에 혹시 취소될까 봐 걱정이 됐다. 이런 날 밖에 나가도 되는 건가 불안하기도 하고. 점심으로 어젯밤에 끓여둔 카레를 든든하게 먹고 낮잠도 자고 길게 샤워를 한 후에 집을 나섰다. 내가 탄 열차의 지하철 노선표에 깜빡이는 불빛이 고장이 난 바람에 두 정거장이나 지나쳐서야 눈치를 채고 얼른 내렸다. 곧바로 반대편으로 건너가 열차를 갈아탔지만 오 분 정도 늦고 말았다. 다행히 모임은 취소되지도 먼저 시작하지도 않았지만, 참여자는 반으로 줄어있었다.


내 선곡은 프란츠 리스트의 '3 Etudes de Concert, S.144 No.3'였다. 연주는 다닐 트리포노프의 것으로 골랐다. 이 곡은 리스트가 작곡한 세 개의 연주회용 연습곡 중 세 번째 곡으로 보통 'Un sospiro'라는 부제로 잘 알려져 있다. 번역하면 '탄식' 또는 '한숨'이라는 뜻. 부제의 뜻을 알게 되었을 때, 바로 저 구절이 떠올랐었다. 듣자마자 리스트의 곡이구나 하고 대번에 알 수 있지만, 난이도가 높기로 유명한 그의 다른 작품들처럼 너무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고 그저 듣기에도 너무나 아름다워서 '나만 듣기 아까운'에서 함께 들을 곡으로 정한 거였다. 슬픔의 탄식이나 고통의 한숨이 아닌, 너무 아름다워서 탄식하고 벅차오르는 기쁨과 행복에 한숨을 쉬는 것. 지금처럼 '때로는 고통스럽고 때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에서도 '말로 할 수 없이 아름다운 것'에 기대어 살아가는 것. 그런 생각을 하며 고른 곡이라고 설명하고 가져간 책을 펼쳐 저 구절을 읽었다.


로베르트 슈만의 아베크 변주곡과 클라라 슈만의 피아노 트리오부터 라흐마니노프의 심포니 2번과 프렐류드, 모차르트의 레퀴엠, 바흐의 푸가까지 오늘도 역시 선곡이 너무나 훌륭했다(글렌 굴드 연주의 베토벤 월광 소나타만 빼고!). 그리고, '그리고'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슈트라우스의 가곡으로 끝맺음을 해 더할 나위 없었다. 나만 듣기 너무나 아까워 돌아오는 길에 함께 듣고 싶은 사람에게 바로 알려줬다. 러브레터를 보내듯이. 실제로도 슈트라우스가 파울리네에게 결혼 선물로 주었던 곡이라고.


R.Strauss - Vier Lieder Op.27 No.4 Morgen!


Und morgen wird die Sonne wieder scheinen

Und auf dem Wege, den ich gehen werde
Wird uns, die Glücklichen, sie wieder einen
Inmitten dieser sonnenatmenden Erde


Und zu dem Strand, dem weiten, wogenblauen
Werden wir still und langsam niedersteigen


Stumm werden wir uns in die Augen schauen
Und auf uns sinkt des Glückes stummes Schweigen


- John Henry Mackay


내일


그리고 내일 태양이 다시 빛날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는 길 위에서

태양을 호흡하는 땅의 한가운데서

우리, 행복한 우리를,

내일은 다시 결합시켜 주리라


그리고 넓고 파도가 푸른 해안으로

우리는 조용히 천천히 내려가


말없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리라

그러면 우리 위에 조용한 행복의 침묵이 내려오리라


- 존 헨리 맥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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