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09
수강생 한 명이 영어로 질문하자 그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나무랐다. 그리고 천천히 쉬운 프랑스어로 왜 수업 중에 영어를 사용해서는 안 되는지 설명했다. 프랑스어는 영어를 번역한 것이 아니다. 즉 영어를 암호화시켜 프랑스어를 만든 게 아니기 때문에 이해하기 위해 프랑스어를 다시 영어로 변환시킬 필요도 없다. 프랑스어는 그냥 프랑스어일 뿐이다. 프랑스인이 프랑스어로 무언가 생각할 때 당연히 영어로 어떤 의미인지 떠올리지 않으며 그저 프랑스어로 의미를 표현한다. 영어 단어를 그저 프랑스어 단어로 바꿔치기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프랑스어 의미를 이해하려면 그것이 사용되는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p.219.
나도 프랑스어 배우기에 도전한 적이 있었다. 대학생이었고 프랑스 근처에도 가 본 적이 없을 때였다. (아, 작년 겨울에서야 파리에서 겨우 1박 2일을 해보았네!) 아베쎄데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상빈 교수님의 4학점짜리 '불어 강독' 첫 수업에 들어갔던 날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전공자들이 듣는 수업이었고 - 게다가 외국어대학교다 보니 외국에서 살다 오거나 외국어고 출신인 학생이 대부분 - 교수님은 당연한 듯이 한 사람씩 문장을 읽고 해석해보라고 하셨다. 몇 번 만에 내 차례가 되자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저, 그러니까, 그게... 저는 상경대 학생이고 부전공으로 들으려고 하는데, 처음이고... 잘 몰라서요..."라고 변명을 늘어놓으며 몸을 배배 꼴 수밖에. 수업 시간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던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복학생 오빠들이랑 재수강하던 거시경제학 수업 때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다며 귀를 닫고 뒷자리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교수님한테 딱 걸렸을 때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쯧쯧.)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도 일본어 - 가타카나는커녕 히라가나도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였기 때문에 정말 하나도 몰랐는데 왜 그렇게 무모했을까. 아마 이 책의 지은이처럼 어떤 동경과 약간의 허세, 감상적인 충동 때문이었겠지. 그래도 2학점인가 3학점짜리 '듣고 말하기' 수업은 조금 나았다. 교수님께 사정을 설명했더니 테이프를 반복해서 들으며 연습해보라고 격려해주셔서 정말이지 테이프(그 교재에 CD도 아니고 카세트테이프가 붙어 있었다!)가 늘어지도록 듣고 또 듣고 쓰고(받아쓰기) 발음을 따라 했다. 결국 '불어 강독'은 F학점, '듣고 말하기'는 B+(그러나 얼마나 기뻤던지! 내게는 A+보다 값진 점수)를 받았고 재수강과 계절학기 수업을 거치면서 부전공은 '문화콘텐츠학'으로 바꿨다.
사실 동경과 허세, 감상과 충동으로 뭉뚱그리고 낮춰 말했지만, 어떤 언어에 대한 관심은 - 필요가 아니라 - 그 문화를 더 들여다보고 싶고 사람을 더 알고 싶고 나아가 세상을 더 이해하고 싶은 욕심이겠지. '원하는 만큼 프랑스어를 익히지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내 인생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풍요로워졌다. 지난 몇 년 프랑스어를 배우면서 깨달은 교훈 중 이게 가장 중요하다. 그 어떤 것도 사랑할 뿐 소유할 수는 없다. 프랑스어가 나를 피해 다녀도 이 언어에 대한 나의 흠모는 커져만 간다. 나는 프랑스어를 사랑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것이 나를 사랑하든 아니든, 이 사랑을 막을 도리가 없다. Je ne regrette rien.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 p.316.' 물론 나 역시 여러모로 외국어를 비롯해 무언가를 새로 배우기에는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뒤늦게 이탈리아어를 배워 책까지 쓴 줌파 라히리 같은 작가도 있다는 사실을 애써 떠올리며 희망의 끈을 놓지는 않으려고 한다. 프랑스어도, 영어도, 글쓰기도, 수영도, 요리도, 테니스도, 요가도, 운전도, 또 배우고 싶고 잘하고 싶은 그 무엇이라도. 다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로 늦은 때'라지만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늦은 때란 없다'는 말로 이겨내면서. (하하, 나답지 않게 엄청나게 긍정적이군.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나는 나중에 귀엽고 쿨하고 똑똑하고 멋진 할머니가 되어야 한단 말이다.) '"쿠라주 Courage!" 힘내요! p.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