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11
베이커는 책이란 이런 거라고 말했다.
“책은 우리 삶의 다양한 에피소드, 이상주의, 부조리한 생각, 사랑의 순간을 나타내준다. 길을 따라가며 우리가 남긴 발자국, 기호, 얼룩, 악의 없는 학대를 모은다. 피부에 주름이 생기듯 책은 우리가 책 표지와 제본 위에 만든 경험을 입게 된다.” p.78-79.
이 책은 줌파 라히리가 이탈리아어를 배워 쓴 두 번째 산문이라고 한다. 책 표지에 관한 이야기. 오, 아버지가 도서관 사서였다고. 갑자기 작은 학교 도서관에서 책 냄새를 맡으며 제목을 훑어보곤 하던 - 그러니까 책 표지가 아니라 책등 - 시절이 떠오른다. 제목만 계속 읽어도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은 어느 책꽂이 몇 번째 칸에 있는지 기억했었다. 영미 문학을 비롯해 내가 주로 빌려 읽던 소설이며 에세이는 거의 그 자리에 있었다. 빌려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단 얘기다. 이사벨 아옌데도 라우라 에스키벨도 이창래나 수키 킴, 샨사와 페터 회도 내 기억에는 거의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마 다들 시험공부하느라 바쁜 도서관에서 혼자 딴짓(?)을 하고 있었기에 그랬겠지만, 한편으로는 신기한 일이었다. 아무튼 그 책들이(작가들이) 나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 때문에라도 ‘도서관에서 책 제목 보기’는 비밀스러우면서도 든든하고 효과적인 오락거리였다.
갑자기 <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라는 책에서 내 맘 같던 구절이 떠올라 펼쳐본다. ‘나는 종이로 만든 책을 사랑한다. 서점에 들어서면 서가에 꽉 차 있는 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평생이 걸려도 꽂혀 있는 책들의 절반, 그 반의반도 읽지 못할 텐데 이미 다 읽어버린 것 같은 황홀한 느낌이 든다. 수많은 책들이 바로 눈앞에 있기 때문에 그런 착각을 하게 된다. 무형의 지식과 이야기를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어서, 읽기도 전에 경험한 것 같은 그런 착각 말이다. 멋진 표지와 묵직한 장정, 책을 넘길 때마다 느껴지는 감촉과 종이 냄새는 또 어떻고. 나는 책의 내용을 사랑하는 것일까? 책이라는 물건을 사랑하는 것일까? p.72.’
오늘도 ‘관심 저자’의 신간이 출간됐다는 알림이 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장바구니에 쓱 담았다. 언제 다 읽나요. 이번에는 한강의 산문집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의 한 부분이 떠오른다. ‘때로는 고통스럽고 때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 때로는 말로 할 수 없이 아름다운 것, 바로 그것들이 모두 인생이라는 듯이 그는 버릇처럼 그렇게 덧붙이곤 했다. “시간이 너무 없어. 언제 이 책들을 다 읽지? 언제 이 영화들을 다 보지? 언제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다 쓰지?” 그리고는 한숨을 쉬며 ‘하지만 이게 인생이지’라고 덧붙이는 것이었다. p.74-75.’ So, this is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