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17
북극여우와 긴꼬리도둑갈매기는 육지와 하늘에서 레밍을 찾아 떠돌았고, 북극토끼는 범의귀 풀을 뜯으며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 두툼하고 치렁치렁한 털로 온몸을 무장한 사향소들은 무리 내에서 새끼를 데리고 다니며 물과 풀을 찾아 부지런히 걸었다.
그곳에서 오랫동안 쓰지 않던 일기를 다시 적기 시작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잠들기 전이면 텐트에 누워 무언가를 계속 써댔다. 야외 조사를 하다가도 쉴 때면 바위에 걸터앉아 노트에 뭔가를 끼적이고, 자고 일어나서도 생각나는 게 있으면 더듬더듬 펜을 찾아 기록을 남기고, 동물들의 모습을 그렸다. 반드시 뭔가 써서 남겨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단지 그냥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p.6.
조금 더 더워지면 읽으려고 아껴두었던 책인데 못 참고 꺼내 들었다. 표지도 아름답지만 제목부터 <여름엔 북극에 갑니다>라니, 너무 멋있다. 죽기 전에 다른 곳은 몰라도 북극에는 꼭 한번 가보고 싶다(아니면 남극). 일단 몇 년 안에 스웨덴, 핀란드, 아이슬란드부터 먼저 가보자. 이런 생각을 할 때면 세상은 얼마나 큰지, 나는 또 얼마나 작은지, 하는 것이다. '세상에나! 나는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35년을 살아온 내 나이는 분홍색 변성암의 나이에 비하면 1억 분의 1에 불과하다. 불교에서 말하는 '찰나'가 75분의 1초에 해당된다고 하니, 지구 역사에서 내 삶의 길이는 찰나에도 미치지 못한다. 지구에 잠시 나타났다가 스쳐 지나는 존재. 35억 년과 35년이라는 숫자로 드러나는 격차가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p.252-253.' 그러게, 한 번씩 이런 사실을 떠올려보면 묘하게 위로가 되곤 한다. 종종거리며 'me, me, me!' 하던 것이 다 우스워진다. 정말이지 하찮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 '신경과 의사 올리버 색스가 생을 마감하기 얼마 전,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나의 생애 My Own Life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무엇보다 나는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지각 있는 존재이자 생각하는 동물로 살았다. 그것은 그 자체만으로 엄청난 특권이자 모험이었다" 색스는 지구에서 수없이 태어나고 사라지는 생명 가운데 인간으로 태어난 것에 감사했다. 나 역시 내 존재의 미미함과 찰나성을 생각했고, 동시에 그런 사유를 할 수 있는 존재로 태어나 북극의 자연을 알고 간다는 것에 감사했다. p.253-254.' 그러니 겸손하고 감사하고, 그럴 수밖에.
아침에 요가도 다녀왔고, 수건 빨래도 했고, 수박 주스도 마셨고, 쓰레기도 버렸으니 좋은 일요일이다. 음악을 들으며 책을 마저 읽다 자야겠다. 아름다운 것들만 생각하면서.
홀로 걸을 때면 어쩌다 들리는 새들의 지저귐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고요함이 몇 시간이고 이어질 때가 있다. 처음부터 소리는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무음의 상태다. 고요함은 낯설다. 평소 이어폰을 가지고 다니며 늘 음악을 듣던 내게는 오히려 적당한 소음이 익숙하다. 하지만 이제 조금씩 이런 침묵에 길들여지고 있다. 북극의 적막에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발걸음도 조심히 내딛는다. 나도 소리를 내지 않는다. p.241.
내일 읽고 싶은 책이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