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2018-07-17

by a little deer
"집에 들어간다는 것은 들어오지 않는 것, 들어오지 못하는 것을 등 뒤에 남기고 자기만 안에 들어간다는 얘기니까." p.336.


제주 공항에서 탑승을 기다리면서 이 책이 떠올랐다. 휴가에 책 한 권을 못 들고 갔고, 가져갔어도 읽을 엄두는 못 냈을 것 같지만, 생각나는 책은 몇 권 있었다. 그중에 한 권이다. 집에 돌아와 펼쳐보니 인적 드문 사려니숲에서 삼나무가 가득한 길을 걷던 시간이 벌써 그립다. '"비를 맞거나, 태양에 이글이글 타거나, 강한 바람을 맞으면 그것을 견뎌내는 것만도 벅찼지. 그러나 움막이라면 아주 잠시라도 밖을 바라보기도 하고 불을 멍하니 보는 여백 같은 시간이 있었을 거야. 인간에게 마음이 싹튼 것은 그런 시간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우리는 반대로 집 안에 계속 있으면 점차 견딜 수가 없어져서 밖에 나가고 싶고, 자연 속을 걷고 싶고, 나무와 꽃을 보고 싶고, 바다를 보고 싶다고 원하게 되지. 인간의 내면 같은 것은 나중에 생긴 것으로 그다지 단단한 건축물은 아니라는 증거일 거야. 집 안에서만 계속 살 수 있을 만큼 인간의 내면은 튼튼하지 못해. 마음을 좌우하는 걸 자기 내부에서가 아니라 바깥에서 찾고 싶다, 내맡기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있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p.337.' 정말 그런 것이 아닐까. 햇빛과 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축축한 숲길을 걷고, 바다에 몸을 담갔던 짧은 시간의 의미를 새삼 헤아려본다. 그리고 매일 피곤하고 지칠 대로 지쳐 잠드는 요즘, 어쩌면 마음은 오히려 평온하다는 생각도. 말하자면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의 상태이므로. 아, 물론, 자의 반 타의 반이지만, 조금은 의도적으로 그런 상태를 견디고 있다, 견디어야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라서. 그저 통과하려는 것이다. 많고도 많게 느껴지는 생을. 좋은 징조인가? 그건 모르겠다. 다만 지금은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기로 한다. 아니 그런 생각조차 할 수가 없다.


"남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돼오는 것을 좋아해. 빙빙 돌리거나 복잡한 것은 싫거든. 새들도 세력 범위라든가 사랑이라든가 심플한 것을 노래하니까 순진하고 예쁜 소리를 내는 게 아닐까?"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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