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25
<아침 식사(The Breakfast Table)> 같은 작품을 보자. 이 그림은 보나르와 마르트가 르카네에서 살던 집 2층의, 칸의 아름다운 전망이 커다란 창을 통해 내려다보이는 작은 응접실을 그린 것이다. 이 장면의 부분 부분들은 한참 들여다봐야만 그 형태가 잡히기 시작한다. 보나르의 다른 그림들처럼 처음에 그림은 평평해 보인다. 책갈피에 끼워 납작해진 꽃송이처럼 말이다. 미술사가 로버트 로젠블럼(Robert Rosenblum)은 보나르의 그림 표면을 트위드에 비유했다. 직물처럼 짜인 평면이 천천히 그 깊이를 드러내고 점차 창밖의 풍경, 탁자 위의 찻주전자, 의자의 모서리, 라디에이터 옆에 열려 있는 문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유령같이 흐릿한, 열심히 찻잔을 들여다보고 있는 마르트의 옆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 잠시 시간이 더 흐른 후에야 우리는 그림 속에 한 사람이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르트의 뒤에서 그녀와 불가피하게 엮여 있는, 가냘프고 말이 없는 거울에 비친 화가의 모습이다. 그는, 컵을 보고 있는 마르트를 보고 있는 우리를 보고 있다. p.26-27.
책에 실린 피에르 보나르의 <아침 식사> 그림을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는 밤.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 표지(?) 그림으로 먼저 떠올랐던 것이 바로 피에르 보나르의 저 그림이었다. 지금은 앙리 마티스의 <Breakfast>를 걸어두었지만 - 그때 마침 지인의 트위터에서 Gabriele Münter의 <Breakfast of the Birds>라는 그림도 보았고, 그건 겨울에 걸어두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 보나르의 그림은 식사라든가 테이블이라든가 하는 테마를 떠올리면 어김없이 어른거리는 이미지였다. 얼핏 소박하고 감상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결코 그게 전부는 아닌 그림. '그러나 사실은 그와 다르다. 보나르의 후기 작품을 제대로 본 사람이라면 아무도 그를 가벼운 쾌락주의자라 생각지 않는다. 얼치기는 더더군다나 아니다. p.22.', '그것은 보나르의 빛나는 내면에서 나왔다. 카르티에 브레송이 말한 대로 보나르의 작품은 섬세하고 그의 정교한 정서적 톤을 감상하려면 인내심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피상적인 감상도 가능하긴 하다. 왜냐면 황홀할 정도로 색이 칠해져 있으니까.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지 않으면 보나르의 연약함과 엄밀한 기하학을 동시에 읽어 내기가 쉽지 않다. 그의 그림 속 모든 것은 형체가 없이 흔들리는 듯하면서도 견고한 구도를 갖고 있다. p.25.', '현대미술의 거친 성격에 익숙한 사람들은 보나르는 너무 나약하다고, 그런 파라다이스 같은 아름다움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눈앞에 바로 드러나지 않는, 섬세한 복잡함이나 기이한 슬픔은 이해하지 못하고서 말이다. p.22.' 무언가를, 누군가를, 제대로 본다는 것.
책에 따르면 보나르와 마티스는 편지를 주고받던 사이였다. '그들의 편지는 평이하고 겸손하고 그리고 엄청나게 가슴 아픈 것이었다. 두 괴팍한 노인네들은 날씨나 건강에 대해서만 한탄했는데, 그들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들은 말하지 않아도 알기 때문이었다. 이야말로 보나르 예술의 본질적인 측면이다. 그의 그림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기보다 그저 암시될 뿐이다. p.41.'
아, 책에 등장하는 바람에 생각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말하라, 기억이여>를 장바구니에 넣어두어야지.
그는 포켓용 수첩을 지니고 다녔는데 수첩에는 대개 날씨나 쇼핑 목록, 전화번호 같은 것들이, 얼굴이나 풍경 또는 누드를 스케치한 페이지에 함께 적혀 있었다. "셔츠, 광택제, 껌, 꿀, 치즈, 연성 비누." "흐림.", "맑음.", "소나기." 1939년 9월 3일, 프랑스와 영국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 날, 그는 겨우 "비"라고 적었을 뿐이다. 20년 동안 그의 생각을 적은 건 단 세 번 뿐이었다. "행복하다고 말하는 순간 행복은 사라진다."(1939년 2월 12일) "남들에게 권태를 느끼는 것보단 자신에게 권태를 느끼는 편이 훨씬 낫다."(1940년 9월 4일)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라고 해서 언제나 즐거운 것은 아니다."(1944년 1월 17일) ~ 보나르는 언젠가 한 프랑스의 잡지에 실린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런 예술가는 오직 보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주변과 내면 모두를 보는 일이다." p.39.
보나르는 그의 세상을 매일 탐험했고, 탐험할수록 그의 세상은 점점 훌륭해졌다. p.3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