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 국경을 건너는 방법

2018-07-24

by a little deer
어쨌거나 감명받은 그림의 제목은커녕 이미지 자체도 또렷하게 기억 못하는 문외한이 수많은 그림 가운데 그 그림에 사로잡힌 데에는 그림 자체의 힘도 힘이지만 그 그림을 그린 화가 보나르의 이름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리고 당대 화가들 가운데 첫손에 꼽힐 정도로 유명한 화가가 아님에도 내 머릿속에 그 화가의 이름이 남아 있었던 것은 오로지 내가 번역한 책에서 그 이름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작가 존 밴빌의 <바다>(2005; 원제는 'The Sea'로, 좋은 결과를 낳든 나쁜 결과를 낳든 번역서의 제목을 정할 때 번역가가 큰 권한을 갖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2007년 RHK에서 출간되었을 때는 '신들은 바다로 떠났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2016년 문학동네에서 다시 출간되면서 원제대로 '바다'로 제목이 바뀌었다)의 주인공이자 일인칭 화자로 등장하는 미술사학자 맥스가 연구하는 화가가 바로 보나르다. p.137-138.


아침부터 바다에 풍덩 빠지고 싶을 만큼 더웠다. 정말이지 대단한 더위. 상대적으로 짧은 출근길이지만 땀으로 세수를 할 지경이었다. 내일부터 폭풍 야근이 예상되는 가운데 오늘은 비교적 일찍 퇴근해 집에 들른 자매님과 저녁을 차려 먹었다. 먹으면서 자매님이 오늘 탄 버스의 운전기사 이야기를 했다. 버스가 에어컨을 틀어도 사람이 많아 더웠는데, 운전기사 쪽으로는 에어컨이 안 나와서 정차할 때마다 열심히 부채질을 하는 모습을 보고 앞에 앉은 손님 하나가 안타까워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더라는 것이다. 오늘 같은 날은 사무실 안에서도 딱히 시원하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바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오죽 힘들까, 하면서 말이라도 보태 보는 것이다. 하다못해 회사에 들리는 택배 기사나 배달 직원에게 시원한 물이라도 준비했다 건네야겠다, 하고 생각해 두는 것이다. 길 위의 사람이며 동물이며 더울 때는 더운 대로, 추을 때는 추운 대로 너무 고생이라 마음이 안 좋고 신경이 쓰인다. 그와는 별개로 어쩌다 좀 전에 읽은 아동 학대 사건(일명 울산 어린이집 23개월 아기 사망 사건, 한참 전의 일인데 국민청원에 등장하고 다시 재조명받고 있다고)에 흥분해서 속이 뒤틀리는 것 같다. 뉴스도 트위터도 잘 못 보는 요즘인지라, 그리고 어쩌면 그런 끔찍한 소식들을 못(안) 봐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때도 많은지라, 더 충격과 분노가 큰 것도 같고. 음... 그러니까 어제는 노회찬 의원이 사망했고, 오늘은 라오스의 댐이 무너졌고, 갈수록 기후도 엉망진창이고, 이렇게 세상은 곧 망할 것 같고... 아휴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그냥 전부 망해버렸으면! 하는 때가 종종 있는 것이다.


이야기가 옆길로 샜는데, 책에서 보나르의 이름을 보고 반가워서 옮겨 보았다. 마이클 키멜만의 <우연한 걸작>이라는 책에서 처음 알게 된 화가, 피에르 보나르. 작년에 런던에서 그의 그림을 보고 혼자 아는 체를 해보기도 했었다. 지극히 사적인 자신만의 세계를 그린 화가의 이미지로 기억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렇기만 한 예술가는, 아니 인간은 어디에도 없는 것 아닐까. 어떤 식으로든 세상과 연결되어 있을 밖에. 그러므로 어때야 한다기보다는, 그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지극히 당연한 소리지만. 아무튼 덕분에 존 밸빌의 <바다>를 읽어보고 싶어 졌다. 나보코프도, 매카시도, 보니것과 트레버도. 이렇게 'TO DO LIST'는 매일 길어지기만 한다.


그러나 후배는 아픈 상실을 겪고 고향으로 내려가 마음을 달래던 중에 이 책을 읽었다고 했다. 밤새워 책을 읽는데, 울다가 읽다가 밖에 나가 서성이다가, 다시 읽다 울다 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이 책만큼 자신의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고 흔들고 또 달래준 책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 어쨌거나 그 후배가 이야기를 하던 밤에는 아마 바다 건너 존 밴빌도 슬프고 아름다운 바다의 꿈을 꾸었을 것이다. p.140-141.


0724.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MAGAZINE B : KY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