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

2018-08-01

by a little deer
바닷가에 왔더니
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는구려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
구붓하고 모래톱을 오르면
당신이 앞선 것만 같구려
당신이 뒤선 것만 같구려
그리고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
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구려
당신이 이야기를 끊은 것만 같구려
바닷가는
개지꽃에 개지 아니 나오고
고기비늘에 하이얀 햇볕만 쇠리쇠리하여
어쩐지 쓸쓸만 하구려 섧기만 하구려
p.56.


너무 더워서 눈이라도 시원한 표지를 골라보자 했더니 오늘은 이 책이 당첨이다. 시의 제목은 '바다', 아무래도 여름 바다는 아닌 것 같지만. 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고 이야기를 끊은 것만 같다니, 정말이지 너무나 너무나다. 다른 어떤 말도 덧붙일 필요가 없잖아! 흑흑(운다). 아무튼 펼친 김에 이렇게 더울 때 '푹푹 눈이 나리는' 시도 괜히 다시 읽어보고,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넋 하나를 얻는다는 크나큰 그 말을' 같은 시구에 눈길을 오래 주기도 한다. 어쩐지 하나같이 '아득하니 슬펐'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는 해서는, p.104.' 이런 글을 읽고는 좋아하지 않기가 어려운 것 아닌가.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p.103.' 특히나 나 같은 애들은 말이다.


아침에 고른 책을 밤에야 잠깐 읽어보는 요즘 생활인지라 매번 눈이 꿈뻑꿈뻑한데, 마침 '송아지들은 이렇게 잡니다'라는 동시가 실려 있어서 마지막으로 읽는다.


송아지들은 모두 엉덩이들을 맞대고 잡니다
머리들은 저마끔 딴 데로 돌리고 잡니다
승냥이가 오면, 범이 오면 뿔로 받으려구요
뿔이 안 났어도 이마빼기로라도 받으려구요
송아지들은 캄캄한 밤 깊은 산속도 무섭지 않습니다
승냥이가 와도 범이 와도 아무 일 없습니다
송아지들은 모두 한데 모여서 한마음으로 자니까요
p.137.


참, 오늘에서야 알게 된 백석 시인의 본명은 백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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